[찬샘레터 46/이해찬회고록]퍼블릭 마인드?
지난주 이틀에 걸쳐 『이해찬회고록-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567쪽, 2022년 9월 21일 돌베개 발간, 23000원)을 통독했다. 그 소회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나와 동시대 친구들을 비롯해 40-50대들은 꼭 한번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물론 나의 졸문의 독후감이 얼마나 자극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마디로 “놀라웠다”. 이승만의 독선과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30년으로 이어진 우리 현대 정치사의 태반이 꼬일대로 꼬이고 기구절창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지만(애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고 고통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6월항쟁은 마침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완성했지 않은가. 그리고 그이후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이명박근혜정부 그리고 문재인정부, 그리고 또 오늘의 ‘참담한 정부’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온몸을 불사른 ‘이해찬李海瓚’(1952-)이라는 은퇴한 정치인이 엄연히 실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창피하지만, 이번에야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 모처럼 상경하여 지난 9월 23일 문을 연 창덕궁 옆 ‘노무현시민센터’를 둘어보면서, 이 센터를 짓는데 ‘주역’이었다는 이해찬이 처음으로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 센터가 빛을 봤을 것인가. 자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매에 참여, 입찰을 따낸 과정과 ‘개미’들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세워진 이 센터는 ‘바보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몫’을 하리라고 믿는다. 그는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현, 겸손하게도 ‘개미센터’라고 말했다.
회고록으로 알게 된 그의 ‘진면목’은 많고도 많지만, 일곱 번 출마하여 한번도 떨어지지 않은 7선의원이었고, 전통야당(여당에도 세 번 참여한 행운의 정치인이었다)의 최고의 선거 책사策士이자 정책기획의 ‘달인’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일관된 ‘퍼블릭 마인드public mind'의 소유자였다. 퍼블릭 마인드는 무엇인가? 공적(公的)인 사람(公人)의 의식구조로써, 사심(私心, private mind)의 반대말일 듯. 그는 한번도 여기에서 이제껏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듯하다. 20대초(재수해 들어간 1973년 서울대 사회학과 1학년, 전체 대학 휴교령에 따라 청양 고향집에 내려가 저녁밥상에서 아버지가 넌즈시 건넨 “이렇게 대학생들이 전부 내려와버리면 4.19가 너무 아깝지 않느냐?”는 질책 아닌 질책 한마디에 다음날 짐을 싸 상경)부터 ‘대한민국의 민주화’을 위한 투쟁의 연속선상에서 기이하게 얽혀 ‘김대중 일당’이 되어 1988년 나이 35살에 ‘정치인 이해찬’으로 변신하게 된다.
최민희 전의원이 2년 동안 묻고 이해찬이 답한 문답식으로 이루어진, 유례없는 이 회고록은 언제까지나 진보성향일 나의 특성 때문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식일지 모르지만,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쉽고 재미있기에 567쪽이 넘는데도 술술 읽힌다. 우리에게 생각하게 하는 대목들이 참 많다. 그저 감탄과 감동을 잘 하는 나를 비웃을지 몰라도, 이 땅에 이만한 의회주의 정치인이 있었는지를 묻고 싶기까지 하다. 교육부장관과 국무총리를 하면서도 무엇을 얼마나 공헌했는지 몰랐던 게 부끄러웠다. 민주화를 이루었으면서도 왜 꽃이 활짝 피지 못했는지를 아프게 증언하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꿈이 모여 역사가 되었던 경위들을 하나하나씩 들으면서, 때로는 찬탄을, 때로는 탄식을 하게 된다.
그와 거의 비슷한 길을 걸었던 ‘지식 소매상’후배 유시민은 독후감 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본 사람 가운데(한 사람을 제외하고) 이해찬만큼 철저하게 사사로운 욕망을 억누르면서 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이는 없었다. 남은 시간 동안 그가 사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기를 응원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내 심정에 공감할 것이다”이해찬은 최근 어느 대담에서 자기의 많은 별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사무사思無私 이해찬’이라고 말했다. ‘속이는 사邪’자가 아닌 ‘사사로운 사私’자임을 주목하자. 여생을 사적 욕망 충족하는 즐거움을 누리라는 충고 아닌 충고, 세상에 이런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위인이, 정치인이 몇 명이나 될까, 책을덮으며 생각해 봤다. 지금 유시민이 이해찬에게 조언하듯, 마치 ‘선계仙界의 사람’같았던 김대중 대통령이 세 번째 낙선하고 은퇴선언을 할 때, 나도 DJ를 향해 마음속으로 수없이 “꽃길만 걸으소서”기도를 했던 기억을 불러내지 않은가. 왜냐하면 그분들은 충분히 그럴 자격들이 있으니까.
그는 말한다. 정치인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최대의, 유일한 덕목은 “책임과 열정, 균형”이라고. 책임감이 없으면 어찌 ‘공인公人’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공의롭다’는 말과‘공의로운 사람’을 좋아한다. 5천년 역사상 수많은 의병들과 일제강점기 항일독립투사들은 100% 공의公義로운 사람들이었다. 공무원들을 ‘공복公僕’이라 하는 이유도 그렇다. 퍼블릭 마인드로 충만한 사람은 ‘공민公民’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그의 지론은 또 역사와 현실을 함께 사고하는 ‘사회과학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적 안목이라 함은 우리나라의 역사전개 과정의 통시적通時的 흐름을 알고, 우리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공시적 구조를 파악하며, 현재 이 나라에 사는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항상 의식하는 것 등 세 가지라고 덧붙였다. 그는 김대중도, 노무현도, 문재인도 아닌 또 한 명의 큰 정치인이었다. 거물같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거물 정치인, 그는 이번 대선 결과를 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선거는 누구라도 언제든 질 수 있지만(김대중은 네 번의 도전 끝에 되지 않았는가), 이기는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번 선거의 패배 이유는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에 임하는데 있어 진정성과 정성이 부족했다. 자격과 준비가 없는 야당이 0.7% 신승辛勝을 한 이유는 국민들을 탓할 게 아니고 무조건 여당 책임이라고. 금배지 저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우리에게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던가? 그리고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가? 그가 일곱 번이나, 한번도 지지 않고 당선된 이유(일곱 번마다 소속 당이름이 달랐다. 재밌지만 씁쓸하다)는 그가 유권자들에게 가슴을 열어 보여주고 ‘정성’을 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아야 하는 법”이거늘. 대의명분大義名分만 가지고 우겨대면 ‘시대정신이 마치 정권교체’인 것처럼 부나비처럼 날뛰는 엉터리 정상배들에게 정권을 뺏길 수 있다는 교훈을 얻고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갈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김대중선생의 어록을 마음에 담는다. 좌절은 없다! 또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