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김 난 석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秋殷周).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2004년도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김훈의 소설
<화장>에 나오는 주인공 오상무의 독백이다.
55세의 나이가 되도록 치열하게만 살아온 오상무는
화장품회사의 중역까지 올라 한 조직의 중책을 맡고 있다.
하지만 세 번의 수술과 4년 째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를 간병해야 하는 고달픈 실정이기도 하다.
육신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
오줌을 수시로 호스로 빼내어야 하는
요로폐쇄로 성기능 무력의 좌절 속에 살아가야 하는데,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20대의 미모 여성 추은주를 보는 순간
왠지 모를 연모에 빠져들게 된다.
“아, 살아있는 것은 저렇게 확실하고 가득 찬 것이로구나 싶어서,
저의 마음속에 조바심이 일었습니다...”
그가 토해내는 독백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으니,
갑자기 역동적 삶과 성에 대한 불꽃이 일어 내면에서 활활 타고 있지만
정작 추은주에게는 이르지 못하고 갈등만 겪으며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이다.
“당신은 계절마다 옷을 바꾸어 입었고,
입사한지 여섯 달 만에 청첩장을 돌리며 결혼했고,
당신을 꼭 닮았다는 딸을 낳았고,
어쩌다가 회사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당신과 마주칠 때
당신의 몸에서는 젊은 어머니의 젖 냄새가 풍겼습니다.
당신의 몸 냄새는 저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왔고,
저는 어쩔 수 없이 당신의 몸을 생각했습니다...”
독백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으나
마침내 아내는 죽음을 맞는다.
납골당에 유골함을 맡기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거기까지 따라온 인사담당 이사가 회사 소식을 전하게 된다.
“상무님, 추은주가 오늘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추은주라면? 그 기획과의 여직원 말인가? 얼굴이 갸름한?...”
“그렇습니다. 남편이 외무공무원인데, 워싱턴으로 발령을 받아 간답니다.”
맨 처음 화려한 의상으로 입사 인사 왔던 추은주가
까만 소복차림으로 문상 온 뒤에 그렇게 옆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여름에 출시할 신상품에 대한 컨셉을
“내면 여행” 으로 하자는 건의와 “가벼워진다” 로 하자는 건의를 받고
양자택일해야 하는 고민도 해야 하며,
아내의 유품도 정리해야 하는 오상무다.
이윽고 아내가 벗 삼아 키우던 개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안락사 시키고
유품도 하나하나 불태우고 나서
“내면 여행”은 아무래도 관념적이라는 생각 끝에 “가벼워진다” 로 결정한 뒤에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는 화장을 火葬이라 하지도, 化粧이라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작가의 의중이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둔 것인지도 궁금하다.
전자는 상실 내지는 없애버림을 뜻함이요
후자는 꾸밈 내지는 드러냄을 뜻할 텐데,
상실에서의 무력감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 인간내면의 본래적 갈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싶다.
임권택 감독은 오래 전부터 김훈의 소설 <화장>을 영화화해보고 싶었다고 했단다.
영화에서는 추은주를 대신한 김규리의 매혹적인 젊음과
오상무를 대신한 안성기의 선망 어린 눈초리를 대비시켜
갈등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오상무가 아내의 유품을 하나하나 불태우면서
지갑에서 자신의 사진이 나오자 얼른 안주머니에 집어넣는 장면은
자신을 지키자는 의지요,
곧 출시할 상품의 컨셉을 “가벼워진다” 로 결정한 건
이제 처지에 맞춰 허욕은 버리고 가볍게 가자는 암시로 전해졌다.
노감독의 메시지도 그런 체념이 아닐까싶은 것이어서
나는 이 영화가 서글펐다.
사람이 태어나면 갖은 꾸밈을 하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화장품에도 기초화장품과 색조화장품이 있듯
기본적인 꾸밈 외에 현란한 꾸밈도 해본다.
그것이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는 것을 넘어
온갖 위세와 작위도 동원된다.
하지만 황혼기에는 그들 모두 마다한 채 민낯으로 나기 마련이요
중당에는 화장터로 실려 가게 되는 게 우리의 운명이 아니던가.
이젠 가벼이 할 일이다.
등도... 어깨도... 두 손도... / 2022.5. 7. 수필방에 올린 글
어느 회원이 짧은 청춘, 긴 노인이란 제하의 글을 올렸기에
위 글을 다시 소환해봤다.
결국 모두 노쇠해가는 비애를 말하는 게 아니던가.
나는 회원의 글에 화답하기를
"단정하게만 하고 다니면 되겠지요." 라 했더니
돌아온 말은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였다.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ㅎ
나는 송곳니 옆에 덧니 하나가 나서 그게 늘 컴플렉스였다.
그래서 학창시절 여학생들 앞에서 말할 땐 손으로 가리곤 했다.
학업을 마치고 교사 발령을 받아 근무 중에
어떤 선생님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내 치아가 화제가 되면서
자기 동생이 칫과의사라 하더라.
그래서 그 의사를 찾아가 덧니를 발치했는데
처음엔 개운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거기가 늘 말썽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왜 그걸 발치했던지...
두고두고 후회 막급이다.
그게 계기가 되었던지
나는 늘 '신체발부 수지부모' 를 생각한다.
즉 단정하게만 하고 지내자는 거다.
천구백년도 말엽에 첫딸을 결혼시킬 때
나는 흥분 그 자체였다.
그래서 당시 이태리의 유명 메이커인 양복을
그것도 백만 원 넘는 돈으로 사입었다.
그런데 그 뒤엔 어떤가...?
아직까지 한 번도 더 입지 않고 장 속에서 잠잔다.
2년 뒤에 두번 째 딸을 결혼시키는데
나는 십만 원 짜리 양복을 사입었다.
그 뒤로 예식장에 나갈 땐 그걸 입는다.
단정하기도 하고 참 편하다.
나이 들어가니 얼굴 여기저기에 검버섯이 핀다.
남들은 레이저 시술을 받는다는데
이걸 어쩌랴...?
여성의 경우, 빨갛게 입술 연지를 바르고
손톱에 매니큐어도 한 모습이 보기에 좋더라.
나도 남들이 보기에 그렇지 않을까?
그게 지금 걱정이다.
첫댓글
영화는 못보았습니다.
저는 소설이 너무 작위적 설정이라는 느깜아 들었던게 기억 납니다.
저의 독서 스타일이 저자의 의도를 파악치 않고
글을 읽어버리는 것에서 끝나기 때문이겠지요.
등도.. 어깨도.. 두손도.. 이제 가벼워야 한다는 의미가 알듯 모를듯 하지만
단정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을 합니다.
사람마다 여러 시각이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火葬같은 化粧 글 참 잘 쓴 수필입니다
작가님 다운 내공 남달라 보입니다
조금도 공치사로 답글단게 아니었습니다
영화 검색으로 찾아서 안성기의 연기도 보고싶어 집니다
아이구우 부끄럽습니다.
영화는 한번 보세요.
나이들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검버섯을 가지고
걱정이 되신다 하니,
참 걱정도 없는 분인 것 같습니다.
하기야,
누구나 맑고 깨끗한 피부를 가지고 싶은 건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젊고 활달한 신입 여사원에게,
남성들의 이목을 받는 건,
젊다는 특권이지요.
그때가 아니면, 그럴 시기가 드물겠지요.
그것을 잘 받아 들여야지,
멋 모르고 흔들려서, 아까운 청춘 그늘에서 보내게 되지요.
추은주를 향한 오상무의 독백은
독백으로써 끝나는 가 봅니다.
독백한다는 것은 혼자의 마음이니
얼마든지 한다고,
상대를 다치게 하지는 않으니...ㅎ
네에, 그렇기도 하겠지요.
김훈의 글을 읽으면서 화장이라는 단어의
두 뜻이 극명하게 대립됨에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마음이 곧 얼굴이라 했으니 날마다 거울을
보며 화장(?) 상태를 저는 확인합니다만,
석촌님께서야 그대로 좋아 보이시던데요.
두 뜻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혼란
그게 글의 묘미이기도 하겠지요.
저야 뭐 볼품없이 사위어 갈 뿐인데 고맙습니다.
나이답지 않게
얼굴에 보톡슨가 뭔가 하는 걸
해가며 오두방정을 떨기보다는
답게!
나이답게
어른답게
완숙함도 치장 그 이상입디다!
모렌도 공은 반듯하니까 그런데
많이 일그러지면 그것도 해봐야지요.ㅎ
그 둘 사이엔 뭔가 가 있던데요 썸씽
그녀, 차라리 청산가리 마시겠다던.
조용필 과 안성기 가
경동고교 한 반 짝지 였다는데,
진짜일까요 ??
그런가요?
저는 모립니다.ㅎ
화장과 화장의 묘한 대비가 글 속에 배치되어 있었던가 봅니다.
전 소설은 못 읽어봤지만 영화는 보았습니다. 배우 안성기씨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석촌님의 글에도 묘한 대비가 있어 화장의 대비와 멋지게 버물어졌어요. 아주 즐겁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게 묘미지요.
여자들은 화장할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예뻐지니까요.
그건 화장이 아니라 분장일까요?
암튼 꾸민다는건 좋은거지요.ㅋㅋ
늙는건 어쩔 수 없지만
곱게 늙고 싶어서 기를 쓰지요.
고집세지 않고 드세지 않고
내면을 단장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김훈작가의 화장
안성기님과 김규리 깔맞춤이에요.
저는 꾸미는게 좋데요.
나이먹은 사람들이 늙은 모습을 감추는 것은 화장하는 것입니다. 옷도 단정하게 입는 것입니다. 앞서 장고님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늙으면서 겉모습까지 괴째째하면 이것처럼 보기흉하고 초라한것이 없습니다. 재산이 수천억이라고 말하는 동창이 있습니다. 하고다니는 몰골은 노숙자같습니다. 그누가 수천억이라는 말을 믿을까요? 전 상대하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단정한게 좋데요.
김훈의 소설 화장을 보지는 않았지만 선배님의 글을 보니
예전에 조선작의 완전한사랑을 조선일보에서 연재했을때
매일매일 애독했는데 신입사원을 짝사랑하는 노총각 주인공이
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공감했다는 뜻이겠네요.
김훈 작가가 화장으로 이상 문학상을 받았군요.
저는 칼의 노래가 훨씬 좋았는데요.
영화나 책을 안 봐서 뭐라 할 말은 없는데요.
화장은 여자에게 있어 외출복 같은 거예요.
풀 메이컵은 하지 않더라고 외출 할
때는 최소한 립스틱이라도 바르니까요.
늘 느끼는거지만 선배님은 영화도 참 많이 보시고 다양하게 문화생활을 하시는 것같아요.
칼의 노래도 수작이고 화장도 수작이지요.
그중에 임권택감독이 화장을 영화로 표현하고싶었던 모양입니다.
결과는 성공이었지요.
고마워요.
소설을 읽으려고 골방에 갔다가
허탕쳤습니다.
버렸네요.책을 거의 없앴습니다.
영화는 방금 봤습니다.
이젠 그렇게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