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팀과 레하겔 감독에 대해 더 자세히 분석한 글이라 사료되어 올립니다.
유로 대회 시작전에 후추 김영주님이 쓰신 글인데 몰래 퍼왔습니다(후추사람들은 글 퍼가는걸 별로 안좋아하셔서) 걸리면 저 혼나요 ㅠ_ㅠ
그리스 신화 가운데, 아르고 號를 타고 금양모피를 구하러 떠나는 이아손 얘기가 있다.
아르고나우타이(Argonautai)는 아르고의 선원들이란 뜻으로, 아르고에 탔던 50명의 영웅들을 이른다.
이아손이 헤라 여신의 도움으로 모집한 젊은이들, 즉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오르페우스, 네스토르 등이 그들이다.
테살리아의 이올코스 왕위를 빼앗은 펠리아스는 정통 왕위 계승자인 조카 이아손에게, 흑해 너머 거친 카프카스 땅에 있는 금양모피를 가져오면 왕위를 양보하겠다고 한다.
이아손은 모험을 거듭한 긴 항해 끝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다.
우여곡절 끝에 금양모피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펠리아스는 이미 이아손의 아버지를 죽인 뒤였다.
이아손은 다시 아내 메데아의 도움을 받아 펠리아스에게 복수한다.
그동안 평가절하 되었던 헬라의 나라 그리스가 유로 80과 `94 월드컵 이후 세 번째로 큰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2001년 8월부터 팀을 맡은 오토 레하겔 감독의 지도력과 그리스 대표팀 선수들이 이루어낸 쾌거였다.
예순 여섯의 이 독일 신사와 26명 그리스 선수들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눈시리게 푸른 에게해의 나라 그리스에도 우리처럼 60년대에 쿠데타가 일어났고, 정치 군바리들이 실각한 뒤에도 그들의 해악이 부스러기처럼 남았다.
그리스 사람들이 독일로 흘러든 것은 이 무렵인데, 지금이야 EU 역내 교역국이 되었지만 최대 수출입 상대국이었기 때문이다.
늦가을 우듬지의 시든 잎 같던 그들에게 축구도 위안을 주지 못했다.
대표팀은 유럽에서 찬밥 신세였고, 우리처럼 동네에서라도 떵떵거린 적 한 번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꾸준히 프로리그를 가꾸었다.
아테네의 두 팀, 1908년 창단된 파나시나이코스와 1925년 창단된 올림피아코스는 좋은 응결핵이 되어주었다.
불구대천의 원수 터키처럼 그리스의 홈경기도 광적인 응원으로 유명한데, 실상 관중석을 가득 메운 열광적인 인파는 채 2만이 되지 않는다.
살벌한 휘파람으로 이름난 파나시나이코스의 아포스톨로스 니콜라이디스 구장은 16620석, 올림피아코스의 리조우폴리 구장도 14750석에 불과하다.
이렇게 상상을 뛰어넘는 그리스 축구 열기에 레하겔의 노하우가 접목된다.
헤르타 베를린과 카이저스라우테른의 수비수였던 레하겔은, 1973/74 시즌부터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바야흐로 분데스리가 최다승 감독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1979/80 시즌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를 이끌고 DFB포칼을 우승한 것이나 1995/96 시즌 바이에른 뮌헨의 UEFA컵 우승은 지나가는 얘기에 불과하다.
그의 진가는 베르더 브레멘을 14시즌 동안 맡으면서 드러난다.
우선 그는 컵대회를 공략했다.
DFB포칼에서 1988/89, 1989/90 두 시즌 연속 준우승을 하더니 1990/91, 1993/94 시즌엔 드디어 우승을 차지한다.
1991/92 시즌엔 유럽으로 나가서 AS 모나코를 2:0으로 꺾고 컵위너스컵을 가져온다.
레하겔은 단기전의 명수만은 아니다.
베르더 브레멘 시절 분데스리가 우승 2회에 준우승 4회, 2부 리가에서 갓 올라온 카이저스라우테른을 이끌고 우승,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에서 2위를 한 번 했다.
특히 카이저스라우테른을 1996/97 시즌부터 이끌어 1부로 승격시키고, 이듬해에 우승시킨 것은 전 독일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독일 언론은 일제히, 프리쯔 발터가 그의 손을 꼭 잡고 포즈를 취한 사진을 실었다.
그 뒤 레하겔은 새로운 도전을 찾아 독일을 떠나, 그리스 축구협회와 유로 2004 까지 계약하게 된다.
당초 그리스는 바실리스 다니엘 감독 후임으로, 유로 2004 진출을 위해 거물급 감독을 찾고 있었다.
에스빠냐의 하비에르 끌레멘떼, 잉글랜드의 테리 베네블스, 이탈리아의 네비오 스깔라와 마르꼬 따르델리 감독이 물망에 올랐었는데, 모두 레하겔 급의 명장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리스는, 당시 아프리카 강호들에게 러브콜을 받던 레하겔을 택했다.
레하겔은 선임되자마자 당연히 직접 승무원들을 골랐고, 그들 아르고나우타이와의 인연은 시작된다.
팀의 체질 개선이 한 두 해에 되는 것은 아니었다.
레하겔은 평가전을 전전하며 알바니아와 슬로바키아에게도 지기 일쑤였고, 그리스와 독일 언론들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4-4-2와 3-4-3을 혼용하는 레하겔의 공격 전술이 뿌리내리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2002 월드컵도 독일과 잉글랜드에게 막혀버렸다.
레하겔은 여전히 팀에 색깔을 입히기에 바빴다.
수세에 5-4-1 스위퍼 시스템으로 늘어서는 것을 골자로 한, 밀집 방어였다.
이 진형은 상대적으로 강한 유럽에 나갈 때, 파나시나이코스나 올림피아코스 같은 그리스 클럽을 비롯해 레반트 지역의 클럽들이 쓰던 방식이었다.
공격 방식은 역동적인 자신의 색깔을, 수비 진형엔 그리스 선수들이 익숙한 밀집 대형을 도입한 것이었다.
레하겔과 아르고나우타이는 잇단 평가전에서 스웨덴, 체코 공화국과 비기더니 벨기에와 루마니아를 꺾는다.
그리고 라울의 에스빠냐와 셰브첸코의 우크라이나가 기다리는, 유로 2004 6조 지역 예선에 기세를 몰아 들어간다.
하지만 에스빠냐는 아포스톨로스 니콜라이디스 구장에서 라울과 후안 발레론의 연속골로, 우크라이나는 키예프에서 보로베이와 보로닌의 골로, 보기 좋게 레하겔을 주저앉힌다.
그는 결국 호세 이그나씨오 사에스 감독과 레오니드 부리악 감독의 적수가 아닌 듯 했다.
강팀들을 만나면 선수들이 제대로 뛰어주질 못했지만, 효과는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전술적 틀 위에 정신력을 강조하면서 팀이 무패 행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아르메니아, 아일랜드, 키프로스,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북아일랜드, 슬로바키아를 요리하고, 에스빠냐 원정 경기를 위해 사라고사의 라 로마레다 구장에 들어간 것은 작년 6월이었다.
경기는 백중세였다.
밀리지 않던 아르고나우타이는 전반 42분 드디어 선제골을 뽑는다.
잉글랜드 볼튼 원더러스에서 뛰는 오른쪽 날개 스틸리아노스 기아나코포울루스가 해낸 것이었다.
레하겔은 수세의 5-4-1에서 공세로 전환할 때 전술적 조합에 융통성을 발휘하며 공간을 장악하는 역습을 강조했었고, 기아나코포울루스에 의해 실현된 것이다.
후반은 눈물겨운 저항의 연속이었다.
에스빠냐의 파상 공세는 그리스 진영을 파고들었고, 겹겹이 늘어선 밀집 대형은 통째로 흔들렸다.
그러나 팀엔 파나시아니코스의 골키퍼 안토니오스 니코폴리디스가 있었다.
그는 정신적 지주로서 팀원들에게 투지를 불어넣어 주었고, 스스로도 숱한 선방으로 골문을 지켰다.
게다가 유프 하인케스와 알렉스 퍼거슨 경이 눈독을 들였던, 파나시나이코스의 신예 수비수 기오르기오스 세이타리디스가 있었다.
바벨이나 네스타처럼 센스 있는 방어를 선보이는 그는 이제 겨우 22살이다.
파나시나이코스의 광팬이었던 아버지는 17살의 그를 클럽에 헐값에 바쳤었지만, 이제 또래에서 그와 견줄 수 있는 수비수는 크리스티안 키부 뿐이다.
세이타리디스는 비센테와 라울을 무력화시키며 이 감동적인 승리를 돕는다.
프랑스의 알렝 사스 주심이 경기 종료를 알린 뒤, 회견장에서 레하겔은 담담하게 밝혔다.
"Es war eine fantastische Nacht. Es hat sich ein wunderbarer Teamgeist entwickelt."(환상적인 밤이다. 훌륭한 팀 정신의 발현이었다.)
그렇게 에스빠냐의 A매치 무패 행진은 10경기에서 막을 내렸다.
그 뒤, 레하겔과 아르고나우타이는 아테네로 불러들인 우크라이나를 1:0으로 누른다.
이 경기에선, 브레멘 진출 시 레하겔이 관여했다는 말이 있었던 아리스 살로니키의 영건 앙겔로스 카리스테아스가 종료 4분 전 결승골을 넣는다.
그러께 1월 브레멘으로 이적한 그는 아이우톤의 짝으로 손색이 없게 커있었다.
셰브첸코, 레브로프, 보로닌, 보로베이의 공격력은 결국 니코폴리디스를 뚫지 못했다.
레하겔과 아르고나우타이는 지금 A매치 14경기 무패 행진 중이다.
스웨덴 노르쇠핑에선 전반에 안데르스 스벤손에게 먼저 실점하고도, 후반 18분과 20분에 기아나코포울루스와 올림피아코스의 왼쪽 날개 판텔리스 카페스의 연속골로 이겼다.
게다가 포르투갈 아베이루에서는 전반 29분에 인테르나찌오날레의 게오르기오스 카라고우니스의 퇴장에도 불구하고, AEK의 바실리오스 라키스의 골로 앞서 나갔다.
나중에 파울레타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팀에 자신감이 꽉 찼을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홈이었지만, 지난달 불가리아를 2:0으로 완벽하게 이기면서 증명되었다.
지역 예선 6조 수위로 본선 A조에 직행한 그리스는 개최국이자 우승 후보인 포르투갈과의 대회 개막전을 비롯해, 에스빠냐, 러시아와 차례로 겨룬다.
레하겔은 지역 예선에서 이겨 본 에스빠냐를 다시 만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믿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쯤 되면 레하겔의 신통력이 아니라 "그들" 땀의 결과다.
레하겔과 아르고나우타이는, 3월 31일 크레타 섬의 헤라클리온에서 스위스와, 4월 28일 아인트호벤에서 네덜란드와 평가전을 치른다.
5월 29일엔 덴마크 원정 평가전이 잡혀 있는데, 구체적인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세 번의 모의고사를 치르면 레하겔 스스로도 아르고나우타이의 수준을 더욱 확실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레하겔은 야심가이긴 하지만 우승을 노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왕 본선에 올려놓은 김에, 유종의 미를 8강 이상에서 거두고 싶은 것은 감독임을 떠나 인지상정이다.
이미 8강이라는 금양모피를 찾는 레하겔과 아르고나우타이의 이물은, 모험이 펼쳐질 이베리아 반도를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