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점
1. 본거지가 대륙 변방에 위치
바이킹 : 유럽 북쪽 끝자락 스칸디나비아 반도 일대
왜구 : 아시아 동쪽 끝자락 일본열도
2. 근해가 아닌 저 멀리까지 해상활동을 함
바이킹 : 영국 프랑스는 물론 지브롤터 지나 지중해도 진출. 동쪽으로는 아예 강타고 러시아 지역까지 진출함
왜구 : 중국 연해 지역을 지나 동남아 까지도 진출 함
3. 싸움을 잘 함
설명이 필요한가?
4. 예네 대응 했던 걸로 유명세를 탄 것을 계기로 왕이 탄생하기도 함
바이킹 : 서 프랑크 외드
왜구 : 고려 이성계
차이점
1. 체구
바이킹 : 큼
왜구 : 작음
2. 주요 무기
바이킹 : 도끼, 방패
왜구 : 긴 칼, 장창
3. 항해루트
바이킹 : 새로운 항해 루트를 '개척' 했다는 이미지가 강함
왜구 : 기존에 존재 했던 항해루트들을 활용
4. 이주
바이킹 :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등등 침략 지역에 대규모로 눌러앉아서 아예 그 지역에 국가를 세우기 까지 함
왜구 : 소수의 귀화인들을 제외하고서는 한반도와 중국에 대규모로 이주한 사례 없음
5. 현대에서의 이미지
바이킹 : 드라마나 영화 등 매체에서 자주 나타날 정도로 그다지 나쁘지는 않음(놀이기구 이름이기도 할 정도)
왜구 : 안좋음. 저 단어 부터가 일종의 비칭. 침략당한 한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안좋은 나머지 - 2차대전때는 일본무사단의 해상 진출 어쩌고 하더니 - 사료에 나타난 것들을 근거로 고려(조선), 중국인 포함설을 넘어서 다수설로 물타기하는 주장이(가장 황당한 주장은 아기발도가 제주목호) 나오기도 함.
첫댓글 바이킹도 이미지는 원래 좋은편아니었던게 근대들어서 세탁된거라
왜구는 그저 세탁 못받았을뿐인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노르웨이 같은 국가가 근대 유럽에서 일본 포지션이었다면 현대에 와서 그다지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을 수도 ^^;;
근데 제가 생각할 땐 1958년 커크 더글러스의 바이킹이 이미지 바꾸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ㅎ
22 후손들이 영국등 유럽에 정착하거나 나라를 세워서 현대에 이르렀으니
조상님들 미화좀 해드렸을듯 합니다.
왜구는 일본에서도 그냥 도둑놈 무리이니(막부가 써먹기도 했겠지만) 딱히 일본이 나서서
미화할 이유도 없겠구요.
바이킹도.. 왜구 이미지 였군요.ㅋㅋㅋ
외부 해양 침입세력이라는 점에서는 뭐 ㅎ
??? : 우리가 대 선배여
미디어에서 비추어지는 이미지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바이킹은 섹시한데 왜구는 꼬질꼬질한 이미지네요. ㅋㅋㅋ
전 옛날 미디어 영향 때문인지 섹시 보다는 우락부락 이미지가 아직 더 남아있다는 ㅋㅋㅋ
바이킹은 중세초기의 한축을 담당한 민족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한편 왜구는 왕조와 시대를 넘나드는 해적집단이란 이미지가 강렬하니 특히 한국인으로써 두 집단에대한 이미지가 다르게 다가오지 않나 시포요
근데 사실 그래서 전 앵글로 색슨계열 왕국들이 바이킹의 잔혹성에 대해 기록한 것을 보고,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이 먼저....
바이킹들의 모습이나 앵글로 색슨이 처음 잉글랜드에 왔을때 모습이나 ^^;;
@배달의 민족 사실 같은 언어군에 속한 민족이고 앵글로랑 색슨족이 북독일 덴마크에 왔기 때문에 후에 영국을 침공한 덴마크 바이킹과 그 결이 다르지 않습니다
바이킹은 오딘신화라는 종교라도 있어서 신성성까지 갖췄는데 왜구는 뭐 근본없는 양아치 느낌..
22
일본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인구 부양력 이 가장 큰 차이일 듯..
근데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왜구들의 주 본거지였던 큐슈와 주변도서 지역도 딱히 인구 부양력이 높지는 않았습니다.
요즘은 학계에서 반박도 있기는 하지만 사료에서 왜구의 발생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게 "왜구네 애들 지역 농사가 제대로 안된다" 여서. 반박하는 분들도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그 것만을 침략원인으로 볼 수 없다 정도. 내란 때문이건 가뭄때문이던 간에 당시 큐슈와 그 도서지역이 식량수급에 차질이 있었던 것 만은 분명했던 것 같네요.
구는 애초에 해적을 뜻하는거
사실 처음에는 '왜' 와 '구'가 별개로 쓰이고 구(寇)는 보통 동사로 쓰였는데 나중에 두 글자가 합쳐져서 명사로 ㅎㅎ
한국이나 중국이나 얼마나 학을 뗏으면 ^^;;
길 잃은 바이킹 vs 길 잃은 왜구
앜ㅋㅋㅋㅋㅋㅋㅋ
바이킹이 이미지가 좋은 이뉴는 유럽 각지에 정칙에 성공한 후손들과 그들이 세운 왕국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근데 4번은 고려말 이성계니 최영같은 명장이 없었다면 한반도 남부에 이주 했을수도 있지요
왜구가 기승부릴 때 중국이고 한국이고 연해 도서지역을 장기간 거점으로 삼아서 침략하기도 했었으니 성공적인 군사활동이 없었다면 아마 고착화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겠죠.
다만 왜구가 활동하던 즈음에는 고대보다 훨씬 더 한중일 각 지역 사람들간 정체성에 대한 차이가 심해서 나중에는 어떻게든 수복하려 했었을 겁니다. 그러니 오우치 요시히로의 "백제 후손이니 땅 좀 떼어 주쇼" 하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게 되지요(근데 정종은 왜 주려고 고집을 피웠는지 ㅎㅎ)
바이킹 친구들의 후손은 이후 연어박이 이케아박이 레고박이가 되어 대체로 평화롭게(?) 사는 반면, 왜구는 그 후손들이 인근 지역의 근현대사에 쓰라린 상처를 남긴 까닭이 우리에게 커다란 인식차를 준 점도 있을 것 같네요.
동아시아 한정으로 양 집단에 대한 인식차이는 그게 가장 클 듯요.... ㅜㅜ
키가 중요하다는... 그런데 후반기 왜구 대다수는 남중국인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이들은 왜구보다도 더 왜구다운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