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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우리 카페 작가 방영주의 처녀작
단편소설 해명(海鳴)입니다. 1980년 북악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입니다. 심사는
전 문화관광부장관이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었던 현기영과
전 한국평론가협회장이었던 장백일이 하였습니다.
작가 방영주의 작품 경향을 시작부터 알 수 있는
작품이어서 이렇게 알립니다.
해명(海鳴)
방 영 주
안골댁과 해철은 방풍림 사이로 난 길을 빠져나갔다. 비릿한 갯내가 물씬 풍겼다. 안골댁은, 호흡을 길게 하여, 그것을 가슴 가득 넣었다 뱉었다. 여기에 나오면 늘 하는 짓이었다. 그러면 머리가 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바다는 청갈치 빛으로 시나브로 밝아 오고 있었다. 소형 어선이 통통거리며 먼바다를 향해 떠나가고 있었다. 바다는 항상 그 소리에 의해 깨어나는 듯했다. 안골댁은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바다 저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자신도 배를 타고 어디론가 무작정, 아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지게를 진 해철은 팔을 펴 갈매기처럼 팔랑거리며 모둠발로 콩콩 뛰었다. 그러더니 바지게에 올려진 지겟작대기를 내려, 안골댁에게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빵빵, 쏴라 쏴."
안골댁은 해철을 보고 상을 찌푸렸다.
"나이 사십이 넘은 녀석이……."
해철의 입 가장자리는 군침으로 질펀했다. 안골댁은 해철의 머리에 남은 황갈색의 죽창 흔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때문에 황급히 눈길을 돌렸다. 자신의 머리칼을 뽑아 확 붙여 감추고 싶은 상흔이었다.
안골댁은 방파제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월명산을 쳐다보았다. 산은 인자한 모습으로, 팔을 벌려, 솔머리 마을을 감싸안은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 산은 겉과 속이 달랐다. 산너머 안골에서 보면 힘차게 뻗은 산맥, 우뚝우뚝한 봉우리, 그것들을 요리조리 감돌며 흐르는 계곡 물이 마구 얼크러져 험산으로 보였다. 해서, 안골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고개를 방구재라 불렀다. 너무 험준하고 가팔라, 방귀를 뀌어 그 추진력으로, 올라야 한다는 재였다. 월명산에 안골댁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안골댁은 시집을 가고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징병을 떠나는 집의, 씨받이로 가는 중이었다. 연분홍 저고리에 남색 치마, 그리고 쪽진 머리 위에는 보퉁이가 하나 올려져 있었다. 그녀는 눈물 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손을 흔들다, 고개를 모로 돌리며, 얼굴을 감싸는 그녀의 어머니가 있었다.)
안골댁은 월명산에서 급히 시선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방파제 아래로 내려섰다. 다시 한 번 바다 냄새를 폐부 깊숙이 호흡했다. 그러자 풀어진 힘이 모여드는 듯했다. 안골댁은 사위를 휘둘러 봤다. 쌍도가 사이 좋은 오누이처럼 어깨를 마주하고 있었다. 용숫말 쪽의 잠지 바위는 거무죽죽한 자태로 거대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안골댁은 눈길을 멀리 던져 띠섬, 거북섬, 할미섬 들을 차례로 훑었다.
갈매기가 그물에서 멸치를 찍어 물고 날아갔다.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였다. 오늘은 열맷날이었다. 내일부터는 물이 적게 빠져 그물을 볼 수가 없었다. 물은 그물 근처에까지 물러나 있었다. 드러난 모래밭에는 물이 조금씩 고여 있었다.
이곳은 조수의 차가 큰 바다였다. 그래서 안골댁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그물을 매어 놓고, 밀물을 따라 들어왔다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고기 등속을 잡았다. 한동안 꽤 재미를 본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연안에는 고기가 별로 없었다. 모두 그악스러워진 사람을 피해, 심해로 도망가자고, 무슨 단합 대회라도 한 모양이었다. 안골댁은 이제 그물을 치워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안골댁은 그물을 향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걸었다. 거품을 부걱부걱 내뿜고 있던 게들이 놀라 제 구멍으로 쪼르르 달려가 숨었다. 해철은 그런 모습이 신기하고 귀여운지 어머니를 따라가며 헤벌쭉 웃었다.
그물 안쪽은 은빛으로 번쩍였다. 안골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잘못 본 게 아닌가 하여, 손바닥으로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분명 고기떼였다. 그녀는 한시름 놓인 듯하여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골댁은 오랫동안 그 많던 숭어 한 마리 건져 가지 못했던 것이다. 전에는 청갈치, 백조기, 삼치, 숭어 떼 등이 몰려 익도가 몇 번씩 지게로 져 나른 적도 있었다. '오늘도 그렇게 값이 나가는 것들이었으면 좋으련만…….' 안골댁은 입맛을 한 번 쩍 다셨다. 그러나 그녀는 가까이 접근해 들며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것들은 준치뿐인 때문이었다. 준치는 가시가 많고 쉽게 썩어 상품성이 없었다. 안골댁은 고기를 대야에 담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귀 안쪽에서 익도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엄니, 황소를 팔아유."
안골댁의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었다. 그녀는 이제 생을 마감할 때가 다가온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소마저 처분하면 형인 해철은 어떻게 산 단 말인가? 안골댁은 고개를 거세게 도리질 쳤다. 익도는 눈을 부라렸다.
"저 황소 안 팔거유?!"
"어디서 그런 몹쓸 병은 얻어 와서는……."
안골댁이, 익도를 끌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화부터 벌컥 냈다.
"아니, 이런 몸을 아직까지 그냥 뒀오?"
안골댁은 머리만 조아렸다.
"신장암입니다."
"예?"
"얼마 못산다는 예기입니다."
안골댁은 머리 속이 휭 비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의사의 달싹이는 엷은 입술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법이 있지만 사는 날을 조금 연장하는 것뿐입니다. 하긴 이십 년 이상을 버틴 사람도 있지요."
"버텼다……."
의사는 입원 쪽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안골댁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의사의 팔을 덥석 잡았다.
"그렇게 해주세유."
익도는 혈액 투석기로 계속하여 수혈을 받았다. 그러며 익도는 머리를 감싸쥐고 아프다고 몸부림쳤다. 게다가 그는 한기로 온몸을 심하게 떨며 토악질을 해댔다. 하던 익도는 끝내 안골댁에게 호소했다.
"집에 가 편히 죽겠어요……차라리 그게 낳겠어요……."
돈은 이제 바닥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괴로워하는 자식을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안골댁은 어쩔 수 없이 익도를 퇴원시켰다. 그런데 막상 퇴원을 하자, 아들은 다시 병원으로 보내 달라고 들볶았다. 익도의 눈은 이미 정상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낼이 장이니께 꼭 파세유."
"그래……그래야제 워칙허겄냐……."
제 몸값을 하는 고기만, 전처럼 한동안 그물에 코를 박아 줘도, 다른 데서 약간 변통을 하면, 그런 대로 익도의 입원비가 될 것도 같았다. 그러나 역시 아니었다. 안골댁은 준치를 부지런히 대야에 주워담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오늘 소를 팔아야제……다음엔 집……그리고 또……그 다음엔……아무 것도 없다…….' 안골댁은 그저 막막할 따름이었다.
해철은 물 속에서 문어처럼 어기적거리며 헤죽 헤죽 웃고 있었다. '모든 게 업보일 뿐여.' 큰스님의 음성이 들렸다. 안골댁은 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하여 한숨을 뽀오 내쉬었다.
안골댁은 종아리의 반점이 몹시 가려웠다. 안골댁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곳에 지져 가려움증을 없애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담배를 손에 들고 몸을 숙였다. 순간 허리가 삐걱하며, 심한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 갔다. 안골댁은 주먹으로 허리께를 퍽퍽 찍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목숨을 지탱해 줄 날도,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안골댁은 통증이 좀 가시자 치마를 들췄다. 살비듬이 허옇게 인 다리에 반점은 붉은 색으로 탱탱히 부풀어 있었다. 요즘 들어 그 가려움증이 부쩍 심해진 것 같았다.
"이놈에 것 저승까지 따라올 거여."
안골댁은, 반점 부위를 벅벅 긁은 다음, 담배 불로 지졌다. 거기에서는 진물이 도로록 흘러내렸다. 이어 뜨거운 기운이 살 속으로 파고들며 가려움증을 잠시 잠재워 줬다. 안골댁은, 다시 허리를 펴고, 담배를 뻑뻑 빨았다. 담배 연기 사이로 시체가 하나 보였다. 다리 밑에서 퍼렇게 부패해 가던, 익도의 아버지, 억보였다. 다른 시신은, 모두 누가 거둬 준 모양이었고, 억보의 주검만이 물위에 떠 있을 뿐이었다.
한여름이었다.
국방군은 포로를 트럭에 실어 골독재로 뽀얀 먼지를 날리며 떠났다. 끝까지 저항하다 사살된 사람들은, 모두 다리 밑으로 던져 버렸다. 그런데 억보의 시체만, 다리 밑에서 물살에 맴돌고 있다는 소리를, 안골댁은 들었다.
억보는, 이 마을에 홀몸으로 들어와, 자청하여 안골댁의 머슴이 되었다. 얼마 후, 그는 붉은 완장을 차고 설쳐댔다. 억보는 그 누구보다도 악질적이었다. 따라서 억보의 시신을 거둬 줄 사람은 이 마을에 아무도 없었다. 안골댁은, 집안을 송두리째 거덜 낸 작자였지만, 한때 주인이었던 입장에서 그를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안골댁은 옷을 입은 채 물 속으로 들어섰다. 악취로 생목이 몹시 오르는 것을, 손으로 코와 입을 감싸쥐며, 겨우 참아 내었다. 그리고 시체를 끌어내 지게에 손수 져 월명산의 한 자락에 묻었다. 다음 날, 안골댁이 잠에서 깨어 보니, 허벅지에 붉은 점들이 돋아 있었다. 그녀는 별것이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그것이 곧 창독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겁이 더럭 난 안골댁은 이웃이 권한 처방대로 수세미외와 참기름을 구해 함께 찧어 붙였다. 며칠 후, 독이 빠지는가 싶더니, 종아리에 엽전 만한 하나의 붉은 점으로 남았다.
그 반점은 한동안씩 안골댁을 내버려뒀다가 심심하면 성을 내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안골댁은 담배가 다 타 들자 물에 던졌다. 담배는 물에 떨어져 발악하듯 연기를 토하고 짙은 밤색으로 변했다.
밀물이 슬금슬금 기어들고 있었다. 물은 이미 쌍도를 감돌아, 그곳에 이르는 길을, 덮고 있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안골댁은 서둘러 남은 준치를 부지런히 대야에 주워담았다.
"잡것 한 두름에 천 원도 안되는 것. 허긴 썩어도 준치라는디 안 팔리면 젖을 담아 먹지 뭐. 맛은 제일인 게."
준치 외에도 전어나 꽃게 등속이 조금 섞여 있었다. 하긴 그래도, 근래에 드문 수확이었다. 안골댁은 그것들을 부지런히 대야에 담아 해철의 바지게 위에 얹었다. 그리고 한 대야는 자신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안골댁은 그물을 풀어 올려 말짱 위에 묶어 놓았다. 내일부터는 물을 볼 수 없었고, 또 그렇다면, 파도에 찢길까 염려되어서 였다.
안골댁은 대야를 머리에 얹었다. 밀물은 어느 사이 발목 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걸음을 옮기며 해철을 봤다. 해철은 예의 그 해죽거리는 얼굴로 잡은 고기들을 풀어 주고 있었다. 안골댁은 놀라 그쪽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려다 머리에 인 것을 쏟았다. 살아 있는 고기는 물살을 가르며 도망갔다. 죽은 것들은 흰 배를 까뒤집으며 밀물에 밀렸다.
해철은 박수를 치며 깔깔 웃었다. 그리고 지겟작대기를 뽑아 쥐었다. 그 통에 지게가 쓰러지며 고기가 쏟아졌다. 해철은 작대기로 '앞에 총' 자세를 취했다.
"빵빵, 쏴라 쏴."
안골댁은 해철에게 달려가 그의 멱살을 줴흔들었다.
"어이쿠 이놈이 꼴에 방생을 허구 계시는구먼……."
안골댁은 해철을 안은 채 물 속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대로 앉아 한동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목에까지 잠겨 들었다. 안골댁은, 물이 더 빨리 밀려들어, 자신의 머리 위로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의부증을 앓았다. 그것은 아주 심한 중증이었다. 그런 시모는 남편을 깐죽거려 툭하면 싸움을 벌였다. 하면 시아버지는 참다못해 폭력을 휘둘렀다. 물론 그 여파는 모두 안골댁의 몫이었다. 시모는, 시도 때도 없이, 안골댁의 머리채를 잡고 휘둘러 댔다. 시어머니는 거의 필사적이었다. 안골댁은 시모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날도, 시어머니한테 한바탕 오지게 당한 안골댁은, 바닷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뭔가 결심을 한 안골댁은, 모래가 퇴적되어 난, 소로를 따라 걸었다. 그것은, 쌍도로 이르는 길이었는데, 이미 밀물에 조금씩 덮여 가고 있었다. 하여서 안골댁의 무릎도 바닷물에 서서히 잠기어 들었다.
수평선 너머 멀리에서 남편이 손짓하고 있었다. 등에 업힌 해철은 칭얼댔다. 안골댁은 해철을 앞으로 돌려 젖을 물렸다.
해철은 억세게 젖을 빨았다. 젖꼭지가 다 아릴 정도였다.
"작것 왜 이런디야?"
안골댁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갔다. 해철은 늘 힘없이 젖을 빨았다. 해철은, 날 때부터 몸피가 작았고,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안골댁은 몸을 마구 굴렸다. 그녀는, 시모로부터의 정신적인 고통을 감당하기 위해선, 일에라도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해철은 태아 때부터 정상적인 발육을 못한 것 같았다. 해철의 아버지 역시, 왜소한 체구에, 심약한 사내였다. 안골댁은, 그가 전선에 나가 총을 잡는다는 것부터, 도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면 해철은 유전적인 요인도 있을 터였다.
수평선 저쪽에서 남편이 다시 손짓을 했다.
"흉허기도 하지……시아버지와의 관계를 의심허다니……."
벌써 물은 안골댁의 허벅지까지 차 왔다. 그때부터 였다. 해철은 필사적으로 젖을 빨았다. 놀란 안골댁은 해철을 다시 등으로 돌려 업었다. 그러자 해철은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안골댁은 손등으로 눈의 물기를 문질렀다.
"그려……지금……에미가 잘못하고 있제……."
안골댁은 몸을 돌렸다. 동시에 밀려드는 물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어 그녀는 사력을 다해 바다 밖으로 나갔다.
안골댁은 넋을 놓고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그때 모든 것을 마감해 버렸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의 삶은 더욱 힘에 겨웠다.
해철은 밀물이 목을 삼키고, 입으로 차 오르는 데도 그대로 앉아 있는, 어머니가 두려운 모양이었다. 해철은 발딱 일어나 안골댁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물위에 떠 있는 준치를 건지려 허우적거렸다.
해철은 모래가 깊게 파인 곳에 풍덩 빠졌다. 그의 몸이 완전히 잠겨 들고 있었다. 안골댁은 잽싸게 몸을 일으켜, 해철의 옷을 잡아끌고, 물 밖으로 나갔다. 모든 것을 수장시킨 채 빈 손으로 였다. 그런데 해철이 품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준치 한 마리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안골댁은 콧등이 찡했다.
"그려……잘혔어……."
해철은 밝게 활짝 웃었다. 문득 그 모습 위로 익도의 전 모습이 떠올랐다. 녀석은 굵은 장딴지에 힘줄이 불거져 있었다. 거쿨진 몸으로 고기를 힘차게 지게로 져 나르고 있었다.
"녀석만 집을 나가지 않았어도……."
익도는 억보가 억지로 만든 죄의 씨였다. 안골댁은 그것을 지우려고 무진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란 묘한 것이었다. 안골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파도 소리에 맞춰,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익도는, 안골댁이 전혀 원하지 않은 생명이었지만, 성장해 가며 모든 면에서 특출했다. 몸집이 컸고, 어깨도 딱 벌어져 있었다. 두뇌 또한 명석했다. 주위 사람들은 월명산 정기를 이어받은 장군감이라고 입을 모았다.
녀석은 집안 일을 도맡아 했다. 논, 밭, 그리고 바다로 부지런을 떨었다. 전답에서의 소출만으로도 자급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모두 익도의 덕이었다. 하면서도 학교에서의 성적은 항상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해물은, 안골댁이 머리에 이고, 익도가 지게에 져 30리 길을 걸어 서천 장에 내다 팔았다. 그리고 송아지를 황소로 키워 팔기를 몇 번 저금도 꽤 해 놓았었다. 안골댁은 모두 바다의 보살핌으로 생각되었다. 돌멩이에도 정성을 쏟으면 복을 준다던 큰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한순간 익도로 인해 자신의 힘겨웠던 삶이 보상받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익도의 사관학교 시험으로 인해 그것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지는 빨갱이의 자식였더구먼유!"
익도는, 면접시험을 끝내고 잔뜩 부어 터진 얼굴로 집에 와, 그렇게 외치고는 가출을 해 버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 그럴 거였다. 익도는 붉은 완장의 아들이었다. 또한 안골댁도 부역 혐의로 형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머리에 죽창을 맞았던 해철은, 인민군 군의관이 살려줬다. 그리고 안골댁은 그 군의관을 숨겨 주었었다. 하지만 군의관은 곧 체포되었고 안골댁은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런 것들이 종아리의 반점처럼 달라붙어 끝까지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러자 익도는 돌아왔다. 하지만 전의 익도가 아니었다. 그는 비썩 말랐고 얼굴은 흙빛이었다. 온몸에 부종까지 솟아 있었다. 악취를 풍기는 익도의 옷을 벗기던 안골댁은 기가 막혀 혀만 끌끌 찼다. 익도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놈이란 것을 깨달았어유……하여, 밥을 빌어먹으며 어느 역에서 기거했지유……얼마 전부터 몸에 한기가 들더니 기침을 심하게 했어유……온몸은 부어 올랐고 고름이 들기 시작허더만유……오줌에 피도 섞여 나오고유……전, 죽을 날만 기다렸쥬……그런데 어느 날 옆의 동료 하나가 동사했어유……그때 엄니가 생각났던 거예유……."
"이놈아……여기서 전처럼 살면 됐잖어……."
"그때, 전 그럴 수는, 없었슈……."
안골댁은 힘없이 무너져 앉았다. 해철과 익도의 손을 잡고, 금빛 놀을 받으며, 바다에서 돌아오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한 자식들과 갈매기를 쫓으며 소라와 게를 잡던 모습도 생생했다.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젠 모두 전설처럼 되어 버린 옛 이야기였다.
안골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한숨과 함께 뱉었다.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여……."
안골댁은 이제 바다마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준치 한 마리라니! 게다가 며칠간은 그물을 볼 수도 없었다. 이제는 황소를 팔아야 했다. 자신의 목숨도 언제 마감될지 몰랐다. 그렇다면 제 몸 하나 간수 못하는 해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안골댁은 아득하기만 했다.
물은 벌써 방파제에까지 차 오르며 찰랑거렸다. 해철은, 어머니의 얼굴에 검은 구름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아마 자신이 고기를 모두 잃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러는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안골댁은 해철을 끌어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던 안골댁은, 곧 화들짝 놀라며, 거기에서 손을 떼었다. 대창이 쑤셔 만든 미끈한 부분이 만져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부지간에 그것을 보고 말았다.
북쪽 멀리서 포성이 들려 왔다. 그쪽 하늘과 대지는 심한 배앓이를 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마을도 복통을 앓아 갔다. 억보가 붉은 완장을 차고 설쳐대면서부터 였다.
억보는 2년 전, 어느 해거름 녘에, 게접스런 옷을 걸치고 안골댁네에 찾아 들었던 것이다. 억보의 입성은, 남의 것이라도 빌려 입은 듯, 그의 몸에 전혀 맞지 않았다. 고의는 낡은 허리띠로 엉덩이께에 걸쳐 있었다. 적삼도 통이 좁아 근육이 툭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억보는 험상궂은 얼굴에 눈매가 싸늘했다. 안골댁의 시아버지는, 억보의 첫인상부터 매우 못마땅했지만, 일손이 딸리는 데다, 힘 좀 쓸 작자로 보여, 일단 그를 채용했다. 안골댁은 가끔 심상찮은 눈빛으로, 자신을 벗기 듯 쏘아보는, 억보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억보는 안골댁네 식구를 깍듯이 대하며 소처럼 일만 했다. 그런 억보는, 어느 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씨를 보면 엄니가 생각나유. 꼭 아씨와 닮았었지유.' 하더니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모두 힘 센 자들만 살맛 나는 세상이지……가죽이 벗겨지도록 일하면 무엇 혀……결국엔 마누라까지 뺏기고 목숨을 잃기 십상이지……제엔장…….' 억보는 실눈을 뜨고 잔인하게 웃었다. 했던 억보가, 어느 날 갑자기, 붉은 완장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마을을 들쑤셔 놓았던 것이다.
안골댁은 해철과 함께 시부모를 따라 지하실로 피했다. 안골댁은 집에 그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시아버지는 '자신과 조상만 아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을의 공기가 조금 수그러들면 기회를 봐 탈출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비밀 출입구가 곡괭이 소리로 쾅쾅 울부짖고 있었다.
시아버지의 얼굴로 절망의 빛이 일순 스쳤다. 그는 입을 꽉 다물었다. 그리고 해철의 입에 재갈을 물려, 바지의 한쪽 가랑이 속에 넣고, 허리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허나 해철의 머리가 허리끈 위로 나왔다. 시아버지는, 배를 안으로 끌어넣으며, 저고리로 해철의 머리를 덮었다. 그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출구로 횃불을 든 억보가 앞장 서 내려오며 말했다.
"이미 조사해 뒀지. 크흐흐."
억보는 시아버지의 멱살을 우왁살스럽게 잡아 흔들었다. 시모는 억보의 팔에 매달리며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뭔 웬술 졌다고 우덜한티 이런디야?"
억보는 시어머니의 가슴을 양손으로 모지락스럽게 밀었다. 시모는 벽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고목처럼 옆으로 픽 쓰러졌다. 억보는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이러고도 남지!"
억보의 얼굴로 횃불이 너울거렸다. 때문에 험상궂게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더욱 괴기스럽게 보였다. 그는 그렇게 한동안 서 있다가 말했다.
"난, 당신네 행랑채에 살았었다."
시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억보는 시아버지를 노려봤다.
"어머니는 당신한테 유린당했지……그런 모친은 스스로 목을 맸고……낫을 들고 달려들던 아버지는 당신의 칼을 맞았지……."
억보는 시아버지의 목을 죄었다. 시아버지는 숨이 막혀 캑캑거렸다. 억보는 그를 시모처럼 벽에 밀어 버렸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사력을 다해 몸의 중심을 잡았다. 숨긴 손자 해철 때문이었다.
억보는 말을 계속했다.
"나는 간도로 갔어. 이국 땅에서 소작을 붙여 먹으며 개처럼 살았지. 해방이 되자 돌아와,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불빛에 억보의 눈은 짐승의 그것처럼 번뜩였다.
억보는 결론지었다.
"네가 뿌린 씨, 네가 거두는 겨!"
억보는 부하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모두 끌고 나가, 말뚝에 매어 놓아라!"
시아버지는 억보의 졸개들이 몰려들자 호령을 했다.
"너희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덕에 산 놈들이여! 야, 이놈들 물러서라! 내 발로 가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골댁네의 소작인이었던, 그들은 서슬에 물러났다. 그러나 억보가 험악한 눈으로 노려보자, 그들은 할 수 없이, 안골댁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시아버지도 그들을 순순히 따랐다. 역시 해철의 안전을 생각해서 였다. 때문에 억보들 아무도, 해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안골댁은 억보의 손에 손목이 끌려나갔다.
대문 밖 공터에는, 모닥불이 어둠을 향해,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말뚝에 묶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들은 이미 죽은 형상이었다. 시부모도 그들 옆에 묶였다.
억보는 안골댁을 끌고 솔밭으로 가 따로 묵어 놓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모닥불 옆으로 갔다. 억보는 이어 한 졸개에게서 죽창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양손으로 힘껏 쥐고 시아버지의 목에 겨누었다.
"이놈들은 너희들의 피땀으로 배에 기름이 잔뜩 오른 자들이다. 자, 모두 이렇게 하란 말여."
억보는 시아버지의 목에 죽창을 꽂았다. 피가 모닥불을 향해 확 품어졌다. 억보는 뒤로 물러서 시부모의 심장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시부모의 몸은 약간 뒤틀리다 앞으로 푹 숙여졌다. 이어서 졸개들의 죽창질이 시작됐다.
"이놈, 쇠스랑 좀 빌려 달랬더니……."
"넌 왜 못마땅한 눈으로 날 찍어 보며 다녔어?"
"죽어 가는 애를 살리겠다고 돈을 조금만 꿔 달랬더니!"
"물꼬를 막아 버리면 우리 논은 어떻게 할 겨-?!"
안골댁은 어의가 없었다. 도시 현실 같지 않았다. 꼭 비몽사몽간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녀의 소견으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은 한 마을에서 서로 이런저런 관계로 마음을 나누며 산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렇게 상대방에게 잔혹해질 수가 있단 말인가? 억보는 나름대로 원한이나 있다고 하자.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살육의 이유는, 그야말로 가져다 붙인 것에 불과했다. 안골댁은 악마들의 향연에 치를 떨고 있었다. 억보는 곧, 안골댁에게 다가가,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히죽 웃었다.
"우리 조상님들을 위한 살풀이지."
억보는, 안골댁을 끌고 풀밭으로 가, 그녀를 슬쩍 밀었다. 기진 한 그녀는 옆으로 푹 쓰러졌다. 억보는, 거칠게 안골댁의 속옷을 내리고, 그녀 위에 자신의 몸을 실었다. 억보는 조금 후, 안골댁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렸다. 안골댁이, 자세히 들어보니, 그건 '어머니-!'였다.
억보는 안골댁의 몸을 힘차게 짓눌러 왔다. 그녀는 몸을 맡긴 채 모닥불 쪽을 보고 있었다. 졸개들은 막걸리를 바가지로 퍼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살육의 잔치를 모두 파하고 쉬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모닥불도 서서히 사위워 들고 있었다.
안골댁은 시아버지의 바지를 다시 확인했다. 바지 한쪽이 이따금 약간씩 꿈틀거렸다. 그녀는 일단 불행 중 대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술에 취한 졸개들의 죽창질이 다시 시작된 때문이었다. 그것은, 혹 살아 있는 사람이 없나를 확인하는, 마지막 절차로 짐작되었다.
죽창 하나가 시아버지의 배꼽 밑에 꽂히고 있었다. 이어서 바지 가랑이가 심하게 요동치다 멎었다. 안골댁은 혼절해 버렸다.
안골댁은 살생의 피비린내를 아슴푸레하게 맡으며 눈을 떴다. 동녘이 시퍼렇게 밝아 오고 있었다. 주위는 주검만 남아 고즈넉했다. 그녀는 옷을 추슬렀다. 그리고 말뚝으로 달려갔다. 안골댁은 시아버지의 시신부터 풀었다. 해철은 온통 피걸레였지만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그녀는 해철의 머리에 치마를 찢어 지혈시켰다. 그리고 시모의 밧줄을 풀었다.
해철은 겨우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안골댁은 우선 해철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한동안 불덩이같이 끓던 해철은, 쫓기던 인민군 군의관에 의해,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철의 정신적 성장은 그로부터 아주 정지해 버렸던 것이다.
안골댁은 황급히 눈을 돌려 황갈색 상흔을 피했다. 그리고 해철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집을 향해 걸으며 월명산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거기에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딸을 판 아버지였지만, 안골댁은 한번도 그를 원망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무능한, 그래서 불쌍한 분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안골댁의 친정은 식량이 없어 거의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었다. 안골댁은 아버지에 의해, 월명산 기슭에 있는 비구니들만 모여 수도하는 절에, 식모나 다름없는 공양주 보살로 보내어 졌다. 그리고 끝내, 그녀는 쌀 몇 가마에 팔려, 방구재를 넘었던 것이다. 안골댁의 남편은, 짧은 기간에, 많은 정을 듬뿍 주고 떠났다. 그리고 결국 그는 징병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안골댁은 문득, 자신이 저 월명산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과 속이 다른 산, 안골댁이 바로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안골댁은 터벌터벌 걸었다. 그녀의 몸은 맥이 탁 풀려 있었다. 안골댁은 힘없이 말했다.
"니가 잡은 고기로 밥을 해 묵고 장에 가야제. 그라고 황소를……."
해철은 배실 배실 웃기만 했다. 안골댁은, 방풍림을 빠져나가, 이제 남의 것이 되어 버린 전답 사이를 걸었다. 다리에 가려움증이 다시 일었다.
"긁으면 안돼여……그냥 둬야 제풀에 웂어지는 거여……."
안골댁은 어금니를 사려 물며 참았다. 그녀가 빈손으로 들어서자, 익도는 마루에 걸터앉아 있다가, 상부터 찡그렸다. 그는, 살이 모두 빠져나가 허수아비 같은 몸에, 이목구비만 더 크게 보였다. 검은 얼굴에 박힌 눈은 동자마저 풀려 있었다. 아들은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익도의 목소리는 더 쉬어 있었다.
"오늘 꼭 소를 팔어유."
안골댁은 부엌으로 들어가며 받았다.
"그래……그래야제……."
안골댁은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였다. 막 잡은 전어로 만든 찌개는, 기름이 둥둥 뜨고, 구수한 냄새가 났다. 그러나 안골댁은 음식이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몇 숟갈 깨지락거리다 수저를 놓았다. 익도도 밥을 물에 말아 조금 뜨다 말았다. 해철만이 걸신이라도 들린 듯, 밥과 찌개를 볼이 터져라, 우겨 넣고 있었다. 안골댁은 그가 한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네가 부럽다!"
해철은 히죽 웃었다. 그리고 밥상에 올려진 것들을 바닥내었다. 놀라운 식욕이었다. 하지만 해철의 몸은 다른 사람에 비해 형편없이 적었다. 안골댁은 양분이 모두 머리의 상흔으로 빠져나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안골댁은 상을 대충 치우고 황소의 끈을 풀어 쥐었다. 이어 안골댁은 장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해철이 좇아오며 손으로 권총을 만들고 소리쳤다.
"빵빵, 쏴라 쏴!"
안골댁은 해철을 그대로 두었다. 쫓아 버려야 다시 따라올 게 뻔했다. 그녀는 소를 앞세우고 터덕터덕 걸었다. 황소는 해철처럼 침을 겔겔 흘렸다. 놈은 그런 채로 이따금,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려, 슬피 울었다. 안골댁은 놈의 목을 어루만져 주었다.
"바로 도살장으로 가지나 않음 좋으련만……."
안골댁은 목이 잠기어 왔다. 바람이 황토를 날렸다. 그녀는 눈에 흙이 들어 간 때문인지 눈물이 자꾸 나왔다. 안골댁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장에 들어섰다. 장꾼들은 여기저기서 확성기로 악을 쓰고 있었다. 장은 전 같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남편이 징병에 끌려갈 때나, 억보가 완장을 두르고 설쳐댈 때처럼, 험악스러워져 가고 있었다. 이제는 구레나룻의 구슬픈 바이올린도, 떠돌이 창극단의 창극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우시장은 한산했다. 송아지 몇 마리만 말뚝에 묶여 있을 뿐이었다. 거간꾼이 다가와, 외국 소 수입 등 속내를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헐값에 처분하도록 종용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안골댁은 소고기나 한두 근 사려고, 만 원 권 지폐를 두 장 빼어 들고, 나머지는 고쟁이 속에 넣었다. 그것마저 도난 당하면 큰일이었다. 해철은 어머니의 손에 쥐어진 돈과 국밥집을 번갈아 보았다. 가마솥에서는 국이 설설 끓고 있었다. 해철은 군침을 질펀히 흘렸다.
안골댁은 국밥 두 그릇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녀는 소주를 거푸 몇 잔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국물을 마셨다. 속이 찌르르하며 맥이 탁 풀렸다. 그러자 정신이 몽롱해지며 마음에 맺힌 것들이 다소 풀려 가는 느낌이었다. 안골댁은 무심결에 고쟁이를 더듬어 보았다. 돈은 그대로 있었다.
안골댁은 해철을 보았다. 아들은 역시 잘 먹었다. 안골댁은 그에게 소주를 한 잔 권했다. 해철은 그것을 한입에 벌컥 들이키더니 오만상을 찌푸렸다. 안골댁은 웃으며 다시 권했다. 그러자 해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골댁은, 해철과 함께 정육점으로 가, 소고기 한 근을 사고는 이내 장을 빠져나갔다. 안골댁은 술기운이 꽤 올라 있었다. 해철도, 처음 마셔 본, 한 잔 술에 취했는지 뒤뚱거렸다.
저녁놀이 주황색으로 타 들고 있었다. 섬들은 그것에 얼비치어 환상적으로 보였다. 안골댁은 저녁놀처럼 저렇게 늙다 죽고 싶었다. 그러나 그쪽과는 거리가 너무도 먼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은 오백녀언……살자는디……웬 성화야아……."
안골댁은 흥얼거리다 목이 잠겨 들고 눈물이 솟아 그만두었다. 그녀는 걸음을 빨리 했다. 익도에게 밥부터 먹여야 했다. 그녀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대지를 삼킨 뒤였다. 익도는 가부좌를 하고 평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어떤 생각에 팔려 있는 눈치였다. 익도는 눈까지 감고 있었다. 해철이 그를 보며 소리쳤다.
"빵빵, 쏴라. 쏴."
익도는 눈을 떴다.
"파셨구먼유……."
안골댁은, 고쟁이에서 한 다발의 지폐 뭉치를 꺼내, 익도 앞에 놓았다. 그리고는 한숨과 함께 비벼 내뱉었다.
"그래, 네 소를 팔았으니 네가 써야지."
익도는 한동안 어머니와 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더니 돈을 다시 안골댁 앞으로 밀었다.
"넣어 두세유……그라고 이걸루 송아지를 두 마리 사세유……지가 내일이락도……어떻게 될라나 모르겠지만……한번 키워보겠어유……."
안골댁은 익도를 끌어안았다.
"그려, 넌 역시 내 새끼여. 그러나 우선 죽어 가는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제. 우린 걱정 말고 내일 병원부터 가 보자."
익도는, 완강히 고개를 도리질 치더니, 벌떡 일어났다.
"바다를 보고 싶어유."
익도는 앞장서 바다 쪽으로 비척비척 힘겹게 걸었다. 안골댁과 해철은 익도를 따랐다. 얼마 후, 그들은 방파제 위로 올라섰다. 익도는, 달빛을 받아 빛나는 바다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하더니 그는 몸을 돌려, 손가락으로 월명산을 가리키며, 안골댁의 손을 꽉 잡았다. 근래에 볼 수 없었던 악력이었다. 그곳에는, 안골의 험준한 처처를 쓰다듬으며 올라온 보름달이, 월출봉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 산은 원광에 빛나는 관음상 같았다.
안골댁은 월명산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등뒤에서 높은 파도가 쏴아 쏴아 울었다. 해철과 익도를 낳던 날도 바다는 저렇게 소리쳤었다. 안골댁은 그 소리에 맞춰 아랫배에 힘을 줬었던 것이다. 안골댁은 전신에 힘이 모여드는 듯했다. '하긴 이십 년 이상을 버틴 사람도 있으니까요'라는 의사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안골댁은 오늘 돌변한 익도의 모습을 보고, 어쩐지 가슴 한편에서부터, 어떤 희망이 살아나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신이라도 잡힌 것 같았다. 하여 안골댁은 익도를 등에 업었다. 뼈만 남은 익도는, 그녀에게 오히려 가뿐했다.
"자, 집에 가자! 가서 밥부터 묵자!"
안골댁은 걸음을 빨리 했다. 보름달이 월출봉 위로 불끈 솟아 안골댁네들을 밝혀 주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는 쉼없이 힘차게 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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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방영주 작가의 메일을 보고 저도 그가 얼마나 글을 잘 쓰나 보고싶었어요... 한편으론 매일 메일을 보내는 그의 끈질김에 혀를 내두르기도 하다가 나중엔 화가 나기도 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