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 삼만리
이마을 저 마을로
밤이 이슥해서야 마르코는 보카에 도착했습니다. 보카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그 어디에도 불빛 하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시간에 남의 집에 갈 수도 없고...... ."
마르코는 냇가의 헛간에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잠들수가 없었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한 마르코는 해가 떠오르기가 무섭게 편지에 적힌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 사람을 무척이나 친절했습니다.
"마침 내일 아침에 로사리오까지 과일을 싣고 가는 배가 있다. 그 배를 타고 가서 로사리오에 도착하면 이 사람을 찾아가라. 그가 코르도바에 갈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보카의 신사는 마르코에게 명함을 주었습니다. 마르코는 다음 날 아침 과일 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배는 돛을 높이 올리고 라플란타 강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세 사람의 뱃사람은 모두 이탈리라 사람이었습니다.
"이 라플라타 강은 우리가 태어난 이탈리아의 길이보다 네 배나 길단다. 놀랐지?"
배는 곧이어 오렌지 나무가 우거진 섬 사이를 지나갔습니다.
"저기 저 섬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뱀과 호랑이의 소굴이었단다."
뱃사람은 마르코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마르코는 하루에 두 번 약간의 빵과 소금에 절인 고기를 먹었습니다. 잠은 갑판에서 잤습니다.
밤이 되면 뱃사람들은 정다운 제노바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르코는 어린 시절 자장가를 불러 주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마침내 울음을 터뜨링고 말았습니다.
"왜 그러니, 마르코?"
뱃사람들은 노래를 멈추고 마르코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기운을 내라, 마르코. 집을 떠났다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울보는 제노바 소년이 아니야, 슬픔과 외로움을 참아내야 진짜 제노바 사람이지."
뱃사람은 마르코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그래, 나는 씩씩한 제노바 소년이야. 울지 않을 테다.'
마르코는 머리를 번쩍 들었습니다.
'좋아, 몇 년이 걸리든 엄마를 찾을 때까지는 어디든지 걸 테다, 용기를 잃지 않고!'
마르코는 사흘 뒤, 하늘이 장밋빛으로 물들어 오는 싸늘한 새벽ㅇ[ 로사리오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안녕히들 가셔요."
"그래, 잘 가거라. 엄마 만나면 안부 전해 다오."
제노바 출신의 뱃사람들은 배 위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로사리오도 부어노스아리레스처럼 번화한 도시었습니다. 낮고 하얀 집들이 길 양쪽으로 줄지어 있었습니다. 집들 위로는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습니다. 거리마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과 마차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메렐리 아저씨의 집을 찾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마르코는 몇 시간 만에야 보카의 신사가 준 명함에 젹혀 있는 집을 찾아냈습니다. 훌륭한 집이었습니다. 마르코는 씩씩하게 문 앞의 초인종줄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러자 심술궂은 인상의 뚱뚱한 남자가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냐?"
마르코는 무척 놀랐으나 용기를 내어 명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명함을 흘긋 보고 나서 말했습니다.
"주인은 안 계시다. 어제 집안 식구들과 부에노스아리레스로 여행을 가셨다."
마르코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저는 여기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내가 알 게 뭐냐? 주인이 돌아오면 전하겠다. 다른 수가 없지 않니?"
"저는 그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마르코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아! 귀찮아. 그렇잖아도 로사리오에는 이탈리아 거지들이 우글거리는데....... . 그걸하려거든 너희 나라에 가서 해!"
그 사람은 문을 꽝 닫고 들어기 버렸습니다.
룸바르디아 할아버지
로사리오에서 코르도바까지 가려면 기차로 하루가 걸립니다. 하지만 마르코에게는 오늘 먹을 빵을 살 돈밖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도저히 기차표를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지?'
마르코는 옷보따리를 축 늘어뜨리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제 더 이상 걸을 힘조차 없습니다. 마르코는 벽에 기대어 힘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 마르코를 보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손가락질하며 속삭였습니다.
"거지인가 봐!"
그 때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을 걸어 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니 넌 마르코가 아니냐?"
마르코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사람을 제노바를 떠나올 때 배에서 만난 붐바르디아 할아버지였습니다.
마르코는 너무나 반가워 할아버지 품에 아기며 주르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할아버지!"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마르코는 그 동안의 일을 이야기한 뒤, 일자리를 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기차표를 사야 해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요."
"그렇다면 좋다. 한번 알아보자그나."
마르코는 할아버지의 말에 새 힘이 솟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데려간 곳은 '이탈리라의 별'이라는 술집이었습니다.
"사람이 많군. 마침 잘 됐다."
할아버지는 마르코의 손을 잡고 넓은 홀로 들어갔습니다.
"할아버지, 오셨군요."
손님들은 무두 할아버지를 환영했습니다.
룸바르디아 할아버지는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며 마르코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훌륭한 이탈리아 소년을 위하여 코르도바까지의 기차표 값을 모아 주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우리 역시 이탈리아 사람이니까요."
"훌륭하다. 마르코, 힘을 내라!"
모두들 마르코를 격려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르코를 번쩍 안아올려 환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자 안에 돈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돈이 모아졌습니다.
"어떠냐, 마르코?할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모아진 돈을 마르코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포도주 잔을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얘야, 한 잔 마시고 힘을 내라."
"어이, 모두들 건배하세. 마르코와 마르코의 어머니를 위해..... ."
또 다른 사람이 말하자 모두들 잔을 높이 드렀었습니다. 마르코도 잔을 들었습니다.
"우리 어머니....... ."
마르코는 목이 메어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르코는 잔을 놓고 룸바르니아 할아버지의 목을 얼싸안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마르코는 코르도바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이번에야말로 꼭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마르코의 가슴속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무척이나 거칠고 쓸쓸했습니다.
잿빛 구름 아래 우중충하게 펼쳐진 넓은 들판에는 집 한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르코는 어쩐 일인지 무서워져서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어느 틈에 잠이 들었나봅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마르코는 얼굴이 파랗게 되어 달달 떨었습니다.
벌써 추위가 밀어닥친 것입니다. 마르코는 아직도 여름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챙겨 주신것도 여름옷밖에 없습니다.
아르헨티나로 가면 곧 어머니를 만나게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앗!"
마르코는 눈을 크게 뜨며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기차 저쪽 구석자리에 남자 셋이 앉아 있었습니다. 울긋불긋한 머풀러를 두르고 턱수염을 기른 사람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마르코 쪽을 흘끔흘끔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내 가방을 빼앗을지도 몰라. 어쩌 나를 잡아갈지도 모르지.'
마르코는 무서움에 이가 딱딱 부딪쳤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마르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습니다.
마르코는 겁에 질려 숨이 멈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전 엄마를 찾아 이탈리에서 왔어요. 제발 살려 주세요."
그러나 그 사람은 나쁜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자리에 남아 있던 두 사람도 마르코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외국어로 말을 하면서 마르코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머플러를 풀어 떨고 있는 마르코의 어께에 덮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잠을 자라는 듯 톡닥거려 주었습니다.
마르코가 어느 정도 안심을 하고 있으려니 그들은 빙긋이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아! 다행이다. 친절한 사람들인 모양인데[ 내가 오해를 했나 봐.'
마르코는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습니다. 얼마나 잤는지 모릅니다.
"얘야, 코르도바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마르코는 퉁겨지듯 일어났습니다. 그 곳은 분명히 코르도바 역이었습니다. 역 주위는 대낮처럼 훤히 불이 밝혀져 있었습니다.
마르코는 기차 구석자리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향하여 손을 흔들어 보이벼 기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마르코는 역 직원에게 물어 메키네즈 댁을 찾아갔습니다.
역 직원이 가르쳐 준 교회 옆집 앞에 이르자 초인종 줄을 잡아당겼습니다.
"무슨 일이냐?"
할머니가 나와서 등잔을 높이 쳐들고 마르코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예, 메키네즈 씨께 .......... ."
할머니는 딱하다는 듯이 머리를 저었습니다.
"맙소사, 너도 메키네즈 씨를 찾니? 메키네즈 씨는 얼마 전에 투쿠만으로 이사하셨는데....... , 그 분을 찾아오는 사람이 지금 몇 명째인지도 모르겠구나."
마르코는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어머니도 만나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마르코는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그 투쿠만은 얼마나 멀어요?"
"아마 7, 8백 킬로미터는 될 거다."
그 말에 마르코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켜 울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나 보구나. 무슨 일인지 내게 말해 주지 않으련?"
마르코는 제노바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얼굴을 활짝 피며 말했습니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큰길을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세번째 건물에 운수 회사가 있다. 거기에는 내일 아침에 투쿠만까지 가는 화물이 있을 게다. 일을 하겠다고 하고 투쿠만까지 태워다 달라고 해라."
마르코는 할머니에게 꾸벅 인사하고 코르도바의 밤거리를 힘차게 달려갔습니다.
운수 회사에서는 일꾼들이 짐마차에 곡식 자루를 쌓아올리고 있었습니다.
구레나룻 얼굴에 긴 가죽장화를 신을 키가 큰 사람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사람들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감독인 모양이다'
마르코는 그 사람 앞으로 다가가서 지금까지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투쿠만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그건 안 되겠구나."
"제게 아직 돈이 조금 남아 있어요. 그걸 몽땅 드리겠어요. 투쿠만까지 가는 동안 일을 하겠어요. 소에게 물을 먹이고 여물도 주겠어요."
마르코가 열심히 부탁하자 감독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웃 나라 칠레에 있는 산디아고 델에스테로로 간단다. 네가 탄다고 해도 중간에서 내려야 해. 거기부터 투쿠만까지는 멀고도 힘든 길이 될 텐데."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수 있어요. 저는 어떻게해서든 투쿠만까지 가야해요. 태워 주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어요. 예? 제발 부탁이어요."
감독은 마르코의 얼굴을 뚫어져라고 바라보았습니다.
"좋아, 그럼 태워다 주지."
마르코는 감독의 품에 와락 안겼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 이제 그만 자렴. 내일 새벽 일찍 출발해야 하니." ...............
- (주)예림당 : 엄마 찾아 삼만리 :아미치스 지음 : 신상철 옮김 - 에서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