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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의식 행사
예천아리랑 부르기 : 이상휴(통명농요 기능보유자)
사회 : 변두연(예천민예총 사무국장)
인사말 : 김소내(예천민예총 대표)
축사 : 이한성(국회의원)
<2부> 예천문화포럼
(서두)
사회 안성배(예천민예총 사무차장, 국악인)
사회(안성배) : 먼저 토론회 진행 방식부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천문화를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꼭 지켜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토론 순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페널별 주제 발표가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페널끼리의 상호 토론이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페널 분들과 방청객 분들이 같이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문화 갈증이 있기 때문에 예천아리랑 못 부르고 예천아리랑 못 부르면 먹고사는 데 지장 없지만 우리 문화를 잃어 간다는 데 허전함이 생길 것입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아리랑을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재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아리랑인데 이미 그들의 아리랑으로 등록해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뒤늦게 아리랑을 만들어서 따라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천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예천사람이 예천아리랑을 몰라, 박수를 못 쳐, 노래를 못 부릅니다. 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토론회를 만들었습니다. 자 그러면 페널 분들 올라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수 (페널 함께 인사하고 자리 앉음)
페널 소개
정희융 예천문화원장이십니다. -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김시우 전 독립기념관 사무처장이십니다.
홍현기 전 인천카톨릭대 교수이십니다.
도기욱 도의원이십니다.
권두현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이십니다.
홍석중 안동MBC 기자이십니다.
그럼, 페널 분들의 발제가 있겠습니다. 앉으신 순서대로 정희융 예천문화원장님부터 말씀하시겠습니다.
페널 발제1
정희융(예천문화원장)
반갑습니다. 연장자 순서로 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 제가 먼저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예천군민 여러분, 그리고 회원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이신 내빈 여러분, 페널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특히 스무번째 예천아리랑제를 맞이하여 예천문화 발전 방안 모색을 위한 포럼을 마련해 주신 김소내 민예총 예천지부장님과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이 사람에게 문화원장이라는 막중한 소임을 맡겨 주시고, 초대해 주셔서 한편으로 감사하기도 하지만 무척 무거운 책임감과 두려움이 앞섭니다. 모든 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전심전력을 다 해서 예천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이 지역 문화 발전에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예천 문화 발전을 위한 생각을 가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오늘 발표할 내용은 이미 여러분들께 유인물로 배부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그 내용은 벌써 예천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가 문화원장 자격으로 이 자리에 초대된 것인 만큼 주로 우리 문화원을 중심으로 예천 문화 발전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마는 예천문화원 중요 활동의 하나인 문화학교 강좌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사업은 적은 예산이지만 알찬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좌의 제한 때문에 우리 주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음에 또 언급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현재 군내에 여러 악단이 있기도 합니다마는 실버관현악반, 상설한문반, 문학반, 그림반 등 다양한 강좌를 개설해 볼까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현재 한문반이 가장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용반, 고전무용반 등등의 강좌가 있습니다만 앞으로 더 좋은 강좌가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우선 저희 문화원과 관계되는 제가 구상한 생각 몇 가지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는 우리 문화원에 대한 선입견과 고루하고 진부한 그런 의식 때문에 상당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사실은 우리 문화원이 주체가 되어 시설을 확충하고, 운영위원회가 활성화되어서 군민들에게 가까운 문화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천은 아시다시피 예천문화회관이라는 큰 건물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우리 문화원인 줄 압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문화원이 문화회관에 곁방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조그마하게 세 들어 사는 입장입니다. 앞으로 각종 자료라든지 문화 관계 물건 자료들이 사장되어 있습니다.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둘째로 문화원의 역할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지역의 각 문화 단체 간의 교류와 회원과의 화합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중재자 역할을 문화원에서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후원이라는 것은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겠습니다마는 각 문화 단체간의 협력과 화합하고 협의하면서 좋은 문화 단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우리 원사 이야기 나왔습니다마는 우리 예천에도, 각 시군에 보며는 거의 박물관급 수준에 속하는 많은 문화재 자료 전시실이 다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천에도 가칭 문화 박물관이라고 할까 이러한 것도 건립을 해 보는 것도 좋지 않으냐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한 때 우리 농촌에 있던 모든 농기구들, 또 문화재 자료를 읍면별로 경쟁을 붙여서 모았더랬습니다. 그게 그냥 빛도 못 보고 사장, 폐기된 일도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들이었습니다.
셋째는 우리 문화 사업을 하기 위해서 수시로 군민들과 회원 여러분, 문화 가족 여러분들께 설문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군민들이 진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현장을 체크하고 현장의 요구사항을 들어서 그대로 이끌어가는 길잡이가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아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마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그런 문화 학교 강좌가 아니고 연중 또는 평생 필요로 하는 질 높은 강좌가 되도록 하고 또 문화 강좌에 참여하지 못한 소외계층이라든지 또는 일반 군민들에게도 같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사실 제가 예천 한문반을 13년 동안 문화원의 한문반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금년에는 문화원장으로서는 한문 강좌를 못 한다네요. 그래서 우리 (청중을 가리키며) 한중섭 명당서실 원장님께 부탁을 해서 지금 문화원 한문 강좌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상설 한문반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월요일은 천자문, 화요일은 명심보감, 수요일은 논어 또는 경전 등 이런 식으로 월, 화, 수, 목, 금 어느 날이든지 그 장소에만 가면 내가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 저의 복안입니다. 장소, 예산이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마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한 번 해 보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 예천은 타 지역보다도 보기 드문 각 읍면에 문화원 지부가 결성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활동을 많이 하고 특히 지보, 유천 같은 데는 상당히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 읍면에 지부가 결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지원하고 활용한다면 농촌 지역에 구석구석까지 문화의 혜택이 있게 할 수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연차적으로 지원을 확보해서 각종 행사 지원이나 교육 사업을 지원하도록 꾸준히 노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보화 시대에 맞추어서 우리 문화원도 IT 영역에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될 걸로 봅니다. 아까 제가 이야기를 조금 했습니다마는 이런 문제가, 앞으로 많은 향토 사료라든지 문집 등의 내용을 데이터베이스화해 가지고 체계적으로 관리해 놓아야 우리 후손들이 자손 후배들이 앞으로 참고로 하지 않겠나 생각이 들고 앞으로 예천의 자랑스러운 문화 전통을 세계에까지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문화원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화 단체입니다. 언제든지 방문을 하셔서 담소를 나누고 문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고 또 여러분께서 많이 아껴 주시고 조언을 해 주실 것을 말씀드리고 또 뒤의 다른 페널 분들이 좋은 말씀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큰 소리로) “경제가 발전된다 해서 문화인이냐? 문화가 발전되고 문화인스러워야 그게 문화인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박수)
격조 높은 문화 예천을 위한 제언(발제2)
김시우(전 독립기념관 사무처장)
오늘의 과학 문명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눈부신 발전을 가져와 인간생활을 한없이 편리하고 윤택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에 비례하여 인류의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경제발전은 극빈과 거부(巨富)가 오히려 인간과 인간의 격차를 더욱 심하게 만들고 있다. 가난은 그날그날의 생존을 위한 아우성을 가져왔고 풍요는 그것이 지닌 부와 그것이 가져온 문명으로 인해 인간성이나 인간으로서 품성마저 상실해 가고 있다. 그러면 발전이란 인식과 가치기준은 무엇인가? 한때 우리는 발전=근대화=서구화란 틀에 묶여 우리의 전통을 깡그리 내던지고 부셔버리는 때도 있었다. 흔히 산업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전통사회와 근대사회가 서로 연속성이 없는 단절된 것으로 양분되어 전통사회는 폐쇄적이고 비전문성 비도시화 불합리한 교육 문화 등 발전이 여지가 없는 것으로, 근대사회는 이와 대조적으로 개방적 전문성 도시화 교육 문화 등이 발달한 사회로 규정하여 편견과 갈등을 유발하였다.
일찍이 백범 선생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하게 할 만하고 우리의 병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이다. 문화의 힘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백범일지에 기록하였다.
이웃 불량국가의 침략에 가슴 아픈 고통을 겪은 노 애국자의 이 국가관은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백범은 인류의 갈등과 대립을 보고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이 아니고 경제력도 아니다.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와 사랑이 부족하다.”고 개탄하였다. 문화의 특성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그것을 고루 누리는 데 있다. 그러므로 문화의 힘이란 공유성을 뜻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소득분배가 심각한 불균형을 보이고 있는 것도 문화의 공유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한 문화의 이중구조는 빈부의 격차를 넘어 사회적 동질성의 분열 요인이 되고 있다.
서울 동소문동의 한옥에 사는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는 한옥 전도사이다. 1968년 미국평화봉사단원으로 왔다가 한옥에 매료되어 그대로 눌러앉았다고 한다. 그의 한옥예찬은 끝이 없다. 중국의 전통가옥은 오만하고 일본은 너무 깔끔하여 정이 안 붙는데 한옥의 부드러운 곡선은 “어서오세요.”하고 따뜻하게 맞아 주는듯한 포근함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옥을 “고려청자만큼 유럽의 모나리자 그림만큼 중요한 보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이 한국의 혼 같은 한옥을 헐어 버리고 아파트를 지은 뒤 돈을 벌었다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열불이 난다고 했다.
예천문화발전의 포럼주제인 ‘예천지역의 발전에 대한 인식과 가치’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한편에서는 한옥을 푸대접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옥의 열풍이 뜨거워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북촌이나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외국관광객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재래적인 유산의 파괴가 발전이란 이름으로 둔갑하는 현상에 대한 자성이 필요한 때이다.
예천지역 발전은 예천지역의 역사와 전통적 삶의 양식을 갖춘 문화의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협동적이고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창조하는 연대의 결속, 관용의 매력을 중시하는 그러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지자체의 기본적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여서 독창적인 지방문화의 발전이 매우 취약한 편이다. 지금 각 지자체가 무분별하게 벌이는 이벤트성 축제도 독창적이고 전통적인 놀이문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축제란 말 자체도 일제의 잔재이고 우리말에는 축제가 아니라 “놀이”라 해야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가장 한국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듯이 가장 예천다운 문화전통이 예천의 생명력이 될 것이다.
첫째, 예천에 박물관이 설립되어야 한다.
예천의 역사와 특징 풍물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는 박물관을 건립하여 각 방면에 걸친 유물의 수집 전시 보존 관리는 물론 교육의 기능까지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박물관, 주민과 멀기만 했던 박물관이 아니라 예천인들의 생활과 가까운 박물관, 주민과 친근한 박물관, 가고 싶은 생활 속의 박물관으로 자리 잡게 하여 지역의 특징과 역사적인 사실을 알리고 긍지를 갖도록 하는 교육의 장을 마련해야한다. 전남 강진군의 청자기자료 박물관, 영암군 농업박물관, 제주와 온양의 민속 박물관 들이 그 예일 것이다. 예천을 찾는 관광객(도청이 옮겨지면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는데 대한 대비도 있어야 한다.)이나 부모의 고향인 예천에 뿌리를 둔 사람들은 예천에 살지 않더라도 예천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것이다. 그들은 가장 짧은 시간과 가장 제한된 공간에서 예천의 전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러한 기능을 담당할 지역박물관이 필요하다. 지금 예천 감천에 세워진 충효관의 기능을 보완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둘째, 예천에 대한 전체적인 지표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표조사의 바탕 위에 예천의 장기적인 종합개발계획인 마스터플랜을 완성하고 일의 선후와 완급이 정해져야 할 것이다. 예천은 선사시대 이래 사람이 정착된 유물유적이 도처에 발굴되고 있으며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국경이 맞닿는 접경지대로서 많은 역사유물유적과 애환이 서린 곳이다. 고려 조선시대는 영남인들이 서울을 넘나들던 교통 요충지대였다. 고려 때 특히 영남 혹은 경주 지역에서 일어난 민란이나 국난 시에는 그 진압의 중심지가 교통의 요충지인 예천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예천은 숱한 역사적 애환이 서린 곳이다. 고려시대 최대의 민란인 김사미 효심의 난이 일어났을 때도 북상하는 반란군을 막기 위한 거점이 예천이었다. 이때 관군 총사령관인 전종걸이 자결한 곳도 예천이었다. 홍건적의 침략을 격퇴한 당시대 최고의 용장인 이방실이 김용의 모함과 간계로 격살된 곳이 또한 예천 용궁이었다. 예천은 동학의 제2세 교주 최해월(최시형)의 피난처이기도 했으며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곳, 삼봉 정도전의 귀양처, 3․1운동 때 용문 용궁 하리 호명 풍양 등의 시위현장, 형평운동이 무너진 곳이다. 이런 역사현장에는 표지석이라도 세워야 지역민이 역사의식을 높이고 지역적인 긍지도 느끼게 될 것이다.
셋째,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
안동국립진흥원에서 목판 문집 간찰 문건 등을 대대적으로 수집하여 우리 지역의 옛 선비들이 혼을 담았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국학진흥원으로 많이 흘러들어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이 보관하기 힘든 점을 감안하면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예천에서는 유출되는 문화유산과 유물에 대해서는 반드시 전체적인 목록이 작성되어야 한다. 되도록이면 복사본이나 복제본을 만들어 일정한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세계화의 전제 조건이 문화의 독창성과 평등성이 전제되어야 하듯이 예천의 문화유산은 예천이란 호적에 등재된 후에 진흥원이든 어디든 가야한다.
영남학파의 조종은 선산의 길재가 아니라 예천의 조용, 윤상이다. 특히 윤상은 세종조의 유종(儒宗)으로 점필제 김종직의 아버지 김숙자의 스승이기도 하다. 흔히 김숙자는 길재(吉再)에게 사사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윤상이 황간(黃澗)원이었을 때 김숙자는 거기까지 걸어가서 주역을 배워 역학에 정통하였다고, 김종직이 편찬한 김숙자의 언행록을 모은 이준록(彝尊錄)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영남학파는 윤상-김숙자-김종직-권오복(예천 용문)․이문좌(예천 용산)등으로 내려와서 이퇴계에 이르러 영남학파를 형성하였다. 퇴계문집은 권오복의 조카 초간 권문해가 편집했으며 예천은 안동과 함께 경상좌도 퇴계학파의 중심지였다.
그 후 예천은 가학으로 학맥을 이어 문중마다 문집 간찰 문건 목판 등으로 귀중한 자료가 많은 지역이다. 이들 자료에 대한 목록을 만들고 복제본을 한 곳에 종합 전시하는 것도 격조 높은 문화 예천을 가꾸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사업은 행정력의 뒷받침과 출향민 등 범 예천의 군민운동으로 전개 되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예천공항을 산업용으로 부활시켜야 한다.
수천억원의 혈세로 설치된 예천공항이 지금 잠자고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민항기로서 기능을 부활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꽃시장은 일본이다. 일본 꽃시장에서 경쟁력이 가장 강한 나라는 네덜란드와 한국이다. 네덜란드의 꽃이 유명하지만 운송비 때문에 한국한테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꽃의 품질은 청정지역이어야 한다. 예천은 한국 제일의 꽃 생산지인 김해보다도 그 입지조건이 유리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해는 벌써 대도시화되어 새벽 비행기가 뜨는데 민원이 많아 06시 이전에는 비행기 운행이 불가하다. 예천공항을 이용하여 오사카 후쿠오카 등의 꽃시장에 새벽입찰을 하면 예천의 유망한 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천 전역을 꽃 재배단지로 만들면 관광예천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Ⅲ
이제 한국적인 것을 찾는 외국인을 데려갈 만한 곳은 산속 절간 정도지만 여기도 입구부터 빼곡히 들어선 모텔, 어디나 똑같은 싸구려 기념품, 날림 식사 따위에 질려 찜찜하기만 하다. 우리는 과거에서 살려야 할 전통의 명맥을 찾아내어 그 정신을 이어받아 성실히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근대화란 말이 지닌 포괄적인 뜻은 부조리한 것으로부터 합리적인 것으로, 전제적인 체제의 속박으로부터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한반도는 지금 먹고 살기에 급급한 경제 제일주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질적 가치와 욕구가 실현된다면 무엇이나 용서될 수 있다는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시절에서 예천의 문화발전이란 주제를 가진 진지한 논의는 그 자체로도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를 모르는 인간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예천은 이웃 안동 점촌 상주 영주 보다 면적이나 인구수로는 작은 고을이지만, 역사나 문화 인물 면에서 견주면 결코 작은 곳이 아니다. 예천이 지닌 역사를 파고들고, 예천에 녹아있는 문화 속으로 들어가면 조상들이 닦아놓은 우리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격조 높은 문화 예천선조들이 물려준 역사와 문화를 갈고 닦아 새로운 예천을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할 몫일 것이다.
주제 : 미의식의 변화(발제3)
홍현기(전 인천카톨릭대 교수)
앞에서 두 분, 소위 문화에 대한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대해 충분히 말씀을 드렸고 저는 미술 공부만 한 50년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저의 전공분야만을 주로 말씀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제목을 ‘미의식의 변화’ 그렇게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가지고 계신 유인물의 마지막장입니다. 거기에 보시면 서두에 인식론이라고 적어 놨는데 이게 뭐냐면 다 아시겠지만 칸트의 유명한 그의 인식론 abc에 해당될 정도로 쉬운 말 <주관 없는 객관은 없다.> 아무리 냉혹하게 냉엄하게 객관적으로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거기에는 자기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인간인식의 한계에 대한 얘기죠. 따라서 제가 오늘 드리는 것도 객관적 말씀을 드리려고 하지만도 주관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한계입니다. 그런데 몽떼뉴를 보면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라고 했을 때 아주 명쾌하게 인간의 본질은 변전(變轉)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한 20년, 30년만에 어디 동창회에 갔는데, 만난 친구가 ‘야, 너 임마 2-30년만에 만났는데 하나도 안 변했다.’라는 말을 했다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분명 문제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변해야 됩니다. 예 변해야 됩니다. 변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변하지 않으면 추락해요. 그러나 뿌리 없는, 뿌리 없는 다변(多變)은 공허함이고 괴멸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개념정립이지요. 중언부언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공부한 미술이라는 범위 내에서 변화된 것을 몇 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쉬운 것 다 아시는 것부터 얘기해볼까요? 유인물 두 번째 ‘죽었다’라고 적어 놨는데 이게 뭐냐면 여러분 잘 아시지요? 1882년 니체의 ‘즐거운 지식’인가 그 책에 보면 ‘신은 죽었다’ 했어요. 카톨릭에서 야단났지요. 지금도 니체는 카톨릭 계통에서는 그렇게 평가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술 쪽에서는 1837년에 카메라가 발견되면서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들, 화가라는 인간들은 뭐라고 했느냐? ‘아, 이제 회화는 죽었다.’ 그러니까 그 붓으로 물감 찍어서 몇 날 며칠 그림을 그리고 뭐 산천을 그리고 뭘 하는데 이놈의 기계는 ‘찰카닥’ 하면 일 초만에 손으로 그린 것보다 더 정확한 평면을 만들어내니까 ‘아, 이제 회화는 죽었다.’ 그러고 조금 지나서 1980년대에 오면 우리 한국 사람으로서 세계에 알려진 예술가 중에 백남준 선생은, 이 양반은 뭐라고 그랬는가? ‘이제 종이는 죽었다. 단 화장지만 제외하고.’ 책에 있는 그 많은 내용들 이 스마트폰에, 저는 아직도 원시인처럼 종이에 쓴 친구들 주소록을 가지고 다닙니다만 그 스마트폰 하나 속에 그 하나 속에 얼마나 많은 종이에 담아야 할 내용이 들어갑니까? 종이는 죽었다. 제가 알기로는 죽었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변해 왔는 것 같습니다.
다음 두 번째 미술 쪽으로 쪼끔 들어가 볼 게요. 혹시 이 자리에 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은 글쎄 관심 없는 분들은 제가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걱정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제 영역이니까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낭만주의시대 1863년에 죽은 낭만주의 대표작가 들라끄로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63년에 죽었으니까 40대 50대가 이 사람의 황금시대라면은 1820년 30년대에 맹활약한 사람입니다. 파리에 자신의 화실이 있었지요. 친구가 찾아왔어요. 야, 이 사람아! 자네 오늘 참 중요한 걸 놓쳤네. 왜? 내가 오늘 여기 오다가 영국 대사관에 잠깐 들어갔다 왔는데 마침 영국에서 웰링턴 공작이 와 있더군. 그래서 우리 프랑스의 달테냥 공작과 두 사람이 영국대사관에서 만났어. 그런데 그 역사적인 두 거물이 한사람은 빨간 그 귀족 복에 노란 숱이 번쩍거리는 영국 귀족복장을, 다 아시잖아요. 프랑스는 에메랄드빛이 나오는 파랑색의 옷 아닙니까? 그 역사적인 두 거물이 마주 앉았으니 자네가 그걸 봤다면 얼마나 멋진 그림의 소재가 아니었겠나. 하고 말하니 화가 들라끄로아는 뭐라고 대답했느냐? 나는 그런 역사적인 거물은 필요 없어. 그저 빨간 옷, 파란 옷만 있으면 돼.
뭔가 느낌이 가시지요 그러다가 조금 더 세월이 지나서 19세기 말 포스트 인프레쇼니즘 후기 인상주의의 폴 세잔느라는 사람 아마 아실 거예요. 홀 세잔느가 빨간 옷 파란 옷만 있으면 돼.’ 라고 말하는 들라끄로아의 말을 들었다면 그가 뭐라고 반박 했을까요. ‘나는 그런 옷은 필요 없어 빨간 사과, 파란 사과만 있으면 돼. 뭔가 또 걸렀지요? 다음 거기서 40년 더 지나면 그 유명한 추상주의 대표작가 깐딘스끼가 나오지 않습니까? 깐딘스끼가 만약 세잔느의 이 사과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는 빨간 사과, 파란 사과 필요 없어. 빨간 원과 파란 삼각형만 있으면 돼. 라고 말했겠죠. 제 얘기는 여기서 미술하시는 분이나 안하시는 분이나 특히 젊은 학생을 보니까 참 기분이 프레시하고 좋습니다만 학생들 이제 그대들의 몫이에요. 깐딘스끼가, 나는 파란 원과 빨간 삼각형이 있으면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거기서 추상주의가 나왔지 않습니까? 자 세월이 한 7~80년 지났지요. 이제 여러분들 다음 말을 받으세요. 이게 젊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다음 두 번째 어느 날 신문에 보니까 스티브잡스 사망 기사가 났데요. 이것도 생각해 보세요. 사과가 나왔는데 그 유명한 아담과 이브의 사과 도덕에 대한 스탠다드이지요. 뭐 선과 악이라는 그런 거 말씀하시면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 다음 얼마 지나니까 뉴턴이라는 인간이 나와서 그 유명한 뚝 떨어지는 사과가 나오지요 이거는 뭡니까? 만유인력, 얘기 안 해도 과학의 출발 아닙니까? 최근에 작년 10월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 유명한 스티브잡스 죽었지요. 애플, 그런데 어떤 평론가가 뭐라 그랬느냐 아~ 하나님도 스마트폰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이런 것을 시사할 때 의식이나 자기 사고의 기준이 어떻게 변화해 갈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여러분 잘 아는 그 유명한 그 마르셀 뒤상 얘기 할 게요 이거는 미술 하는 분들은 다 알겁니다. 1917년 뉴욕 앙데빵당 전에 마르셀 뒤상이라는 인간이 작품을 냈어요. 그게 뭐냐 남성용 변기 하얀 세라믹으로 만든 그 오줌 누는 변기를 그 전시장에 갔다 제출했어요. 하니까 주최 측에서 아, 우리는 이런 작품 전시 못해. 이러면서 거절당했어요. 그래서 끝내 그 작품은 전시가 안 됐습니다. 유명한 전시회에 전시 안 된 작품이 지금 세세연연 프랑스 파리 퐁피두미술관에 남아서 현대 미술 하는 사람들이 바이블처럼 쳐다보면서 바라보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날 저녁에 뉴욕타임즈 기자가 마르셀 뒤상하고 인터뷰를 했어요. 뒤상이 이렇게 말했어요. 첫째 변기가 불결해서 전시 안 했는가? 그러면 내가 출품한 변기는 금방 공장에서 나와 반짝반짝하는 새 변기인데 그게 불결해?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관념이 불결한 게 아니냐? 관념에 대한 얘기입니다. 예술 하는 분들, 관념이라는 것을 하나에 매여 있을 것인가, 어떻게 갈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보실 메시지로 던집니다.
두 번째 그러면 그 변기를 내가 직접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전시 안 했는가? 얘긴데 어쨌거나 가장 잘 그린 것은 사진입니까? 그림입니까? 실물 그거 아니냐? 여기서 미술사의 유명한 오브제 이론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그 변기는 내가 직접 안 만들었기 때문에 전시 안 했나? 그럼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 중에는 아름다움이 없나? 여기서 새로이 나온 것이 레디메이드이론입니다.
에~ 보세요. 컵이 여기 있습니다. 이거 종이에다가 이렇게 형상을 그리고 명암을 집어넣고 이렇게 하면은 ....정물화지요. 맞지요. 다음 껍데기 외형 다 공부하고 나니까 재미가 없어. 야 이건 뭘로 만들었나? 종이로 만들었으나 이 종이로 만든 컵이라는 것의 본질 물질은 뭐냐? 이게 관심 있으면 어떤 그림을 그리겠어요. ..... 추상미술이 나올 수밖에 없잖습니까. 눈에 안 보이는 본질을 어떻게 그릴 거예요? 현미경적 태도라 할까요.
그럼 현대미술은 뭐냐? 앞에 1번도 아니고 2번도 아니에요 어쨌거나 이 컵은 물을 담든 술을 담든 무언가를 담는 것이라면 현대미술은 <담음> 담는다는 것이 주 관심의 태마입니다. 그러니까 개념 미술이 나올 수밖에 없잖습니까? 자 이제 젊은 분들 다음 대답을 어떻게 할 겁니까. 그것이 우리들한테 주어진 몫입니다.
에~ 뒤에 말씀하실 분들 많이 계시고 하니까. 이쯤에서……. 하여튼 인간의 의식은 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한번 해볼까요? 정치하는 분들한테 맞아 죽을지 모르겠다만 정치가는 세상이 다 망해가도 최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술가는 진짜로 가장 좋은 최상의 시절에도 최악을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술가들 대접 받아야 돼요.
몇 가지 말씀이 더 있지만 뒤에 분들도 계시고 미술 분야 내에서는 뭘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가. 제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나중에 이 부분만 허심탄회하게 포럼 하는 시간이 있으면 저는 행복하겠습니다. 삶은 꿈꾸는 자의 몫입니다. 변해야 합니다. 끝.
페널 발제4
도기욱(경상북도의원)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의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 정신적 과정의 산물인 문화는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라서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도의회의 예산분과 의원으로서 오늘은 최근에 느낀 짧은 소회를 예산과 관련하여 이야기 드리고자 합니다.
저가 어제 6일 동안 호주 뉴질랜드를 다녀와 느낀 점은 문화는 공유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뉴질랜드는 건전한 중산층의 나라로 수돗물이 음용 가능하고 와이셔츠를 3일 동안 입어도 때가 끼지 않으며 치매가 걸리지 않는 청정지역입니다. 안경에 먼지가 끼지 않는, 공기, 물이 오염 안 된 정말 살기 좋은 국가, 세계적으로 청렴도 5년 연속 1위의 나라입니다. 물론 우리 예천군도 대한민국 청렴도 2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지요.
호주는 국민행복지수 세계1위로 물과 공기가 맑은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암 예방 내지는 질병 예방 의학이 가장 잘 발달된 나라이며 국가는 질병 예방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가 하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우리는 가보지 않으면 오감으로 느낄 수 없고 대화나 책으로 읽기보다는 직접 듣고 보고 대화해 보아야만 보다 진실되게 느낄 수 있고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점심 식사 중에 식당에서 농사짓는 두 분이 하시는 말씀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무공해 무농약 농산물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뉴질랜드는 사과는 적지만 무농약입니다. 저는 그걸 그냥 한국이라면 무농약이라고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꼈기 때문에 믿게 되었습니다. 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축사도 없고 사료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광우병 구제역이 걸리지 않는 청정 지역입니다. 국민 지엔피가 3만에서 3만5천불입니다. 그런데도 IT(아이티)는 잘 모릅니다. 저희들은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워왔습니다. 젊은 우리 학생들이 잘 들어주기 바랍니다.
K-팝에 빠진 호주 젊은 여행객들이 말하기를, 호주의 이민 2세들은 한국에 와서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한국 같은 천국이 없다고 합니다. 24시간 놀 수 있으며 통행금지도 없고 밤에도 낮같이 불을 밝히는 네온사인에 술집들이 즐비합니다. 술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고, 못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이 나라가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면 우리나라 사람은 청정국가인 호주나 뉴질랜드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저희 집사람에게 이야기했더니만 자기도 거기 가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에 대한 동경과 우리가 그쪽의 사정을 알려고 하면 직접 가서 보고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쪽 사람은 평생 1차 산업인 농사만 짓다가 IT(아이티) 강국인 대한민국에 오니까 새로운 세상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거기는 네온사인도 술집도 놀 곳도 없습니다만 그런데 왜 행복 1위 국가일까요? 그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우리나라를 동경합니다. 그래서 이것도 문화다. 우리가 나가보지 않으면 못 보고 알 수 없습니다.
또 여기 계시는 부모님들도 공부 잘하는 자식이 있으면 전부 서울로 공부를 보냅니다. 그것은, 서울은 예천과 다르지요. 많은 사람이 모여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공부를 잘 하는 우수한 인재는 외국 문물을 알기 위해 외국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필요한 것이지요.
호주, 뉴질랜드 역사는, 영국신민지에서 해방된 지 220년 미국과 비슷한 짧은 역사로 우리보다 더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그나마 1960년대 이후부터 50년간 피눈물 나게 노력하여 눈부시게 발전해서 시드니 올림픽 때 삼성에서 6000억 현금으로 쏴 버리니까 전부 대한민국이 최고라고 했습니다. 교민들이 날아갈듯 기뻐했었습니다. 아테네 올림픽 때는 삼성, 현대에서 차와 현금으로 7000억을 투자했습니다. 교민에게 뿌듯한 자긍심을 높여 주었습니다.
본국이 잘 살면 외국 가서도 대접받고 삽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느낀 점을 여러분께 말씀드린 것은 우리도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대한민국만이 삶의 터가 아니고 세계가 여러분의 시장입니다.
세계 189개국 중에 가장 짧은 시간에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50년이란 짧은 시간만에 성과를 거둔 나라는 지구 역사상 우리나라뿐입니다.
호주, 뉴질랜드 가이드가 똑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인구 460만, 대한민국 면적의 3배, 3만명의 우리교민이 거주합니다. 호주는 인구 2300만, 대한민국 면적의 70배, 교민 10만 명이 사는데, 이분들이 하는 말씀을 들어보면 대한민국 같은 사람들의 정신이라면, 뉴질랜드에 20만명 교민이 산다면 대한민국 같이 된다고 하고, 호주에 이민자 50만명만 있으면 대한민국의 영토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우리나라 국민의 우수성과 근면, 창의성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한때 우리나라의 문화를 부끄러워하고, 천시하며 비판했습니다. 정치 못 한다고 손가락질하고, 국회의사당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우리 고유의 문화는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자조 섞인 한탄을 하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세계의 문화 기류 중 한류라는 문화의 한 맥으로 당당히 자리한 K-POP과 세계유네스코 문화기록에 등재된 수많은 우리의 옛 문화들을 많은 세계인들이 부러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문화는 공유하는 것입니다.’ 예천문화에 대하여는 예천문화를 알아야 하고 예천 밖의 새로운 다른 문화도 알아야 한다고 보며 그것을 알지 못하면 예천문화의 중요성을 알지 못합니다.
앞선 토론자인 김시우님의 말씀처럼 우리 예천문화의 특성을 잘 살려야 하며, 예천만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밖의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고 보며, 그래서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만 우리 것이 뭐가 중요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글로벌시대의 우리 예천이 문화적으로 발전하고자 하면 이웃 문화, 더 나아가 외국의 문화도 많이 알아야 하며, 농사, 정치 등 외국의 문화도 넓은 시각으로 보아야 된다고 봅니다. 예천의 독특한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외부의 문화를 많이 알고 이해하여야 할 것 이라는 생각을 말씀 드립니다. 우리 예천만의 것, 독특한 문화라는 것도 다른 외부 문화와 비교해 보면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차이입니다. 남의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알아야 우리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어떻게 발전, 보존되어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현실적으로 우리가 계승 발전시켜야 될 문화의 융성을 위한 예산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예산이 필요하게 됩니다. 결국 예산책정은 소통과 공감입니다. 막연히 자기주장만 많이 한다고 행정에서 그냥 예산을 배정해 주지 않습니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누군가 내 생각에 동감하지 않으면 선뜻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공무원도 사람입니다 군청의 담당부서의 담당자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설득, 노력해야 합니다.
정치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문화쪽 예산을 많이 얻기 위해서는 끈임 없이 소통하고, 대화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예산이 왜 필요한 것인지 설득하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우리는 외치지만 호주에 직접 가서 지도를 보니 동해가 아직 일본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새까맣게 지워놓고 동해라고 써놓았습디다. 그것을 제가 핸드폰에 찍어 왔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걸 들고 호주 정부에 항의하러 간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국민들이지요. 또 경상북도 의회가 상징적으로 독도에서 처음으로 개의했지만 국제적으로 별 효력이 없는 것이지요. 강대국에게, 우리의 생각을 국제법상으로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중 우리에게 가장 자신감을 주는 것은 실효적인 지배 즉 문화적 지배인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문화의 강국이 세계의 강국이라 합니다. 문화는 그 사회의 생활양식이자 상징체계인 것입니다. 문화가 융성, 발전하면 그 만큼 우리 사회도 발전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지역 예천의 1300여년의 오랜 전통과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군민 모두가 다 같이 노력하고 공유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페널 발제5
권두현(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사무국장)
문화발전 포럼에 나오신 앞선 많은 토론자 분께서 의식의 전환, 시선을 바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무서는 세금을 많이 거둬들여야 하는데 과거 세무서는 불법 체납자 색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세무서는 더 많이 친절하고 기업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협조하고 지도하며 기업의 활성화에 더욱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의식의 전환을 이룬 거죠.
건강검진에 대해서 예전의 기업들은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지금은 기업의 생각이 반대로 바뀌었습니다. 예산의 절약보다 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직원들이 건강해야 된다는 것으로 의식을 전환하고 직원들의 건강 검진을 1박2일이나 2박3일로 하는 등 더욱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긍정적인 사고로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어떻게 일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할 것으로 그런 측면에서 예천, 안동을 떠나서 이 시대를 바르게 바라보는 연구를 많이 하여야 할 것으로 봅니다. 저는 이런 고심 속에서 지방자치시대 예천의 문화발전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 후 20년 후 예천을 어떻게 만들어야할까. 10년 20년 후 예천의 모습을 그려보고 전망과 비전을 설정하고 지역 주민 모두가 공감할 때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천 아리랑제가 올해로 20년인데 30회의 예천아리랑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가 고민하고 꿈을 그려봐야 발전 방향과 과제가 설정될 것입니다. 10년 후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위치는 어디인가 울산처럼 공업도시가 되어야 될 것인가?, 농업도시 환경도시, 신도청시대 행정 도시가 될 것인가 토론하여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신도청시대 꿈을 꾼다면 누가? 군의원이, 군수가, 문화원이, 민예총이?... 내가, 누가 만들어야할까? 각자의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천을 꿈꾸는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동력이 있어야 될 것으로 그 동력이란 예천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문화유산, 문화예술자산, 핵심적인 문화 인력들, 정치, 경제 정황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아 자기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 좋은 뛰어난 사람이라도 협력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바퀴, 운전대, 엔진 등이 각자의 역할을 해야 됩니다
예천 지역 속에서 각각의 역할들과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방향타, 자기역할에 대한 동력, 그 기능들이 함께 꾸려져 나가야 됩니다. 이것을 소위 거버넌스, 그리고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이어령 장관이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산업화의 영웅도 가고 민주화의 영웅도 떠나라” 즉 새로운 시대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새로운 동력이란 각자의 역할 속에서 네트워크가 구성되고 클러스트화되어 공동체의 이익 속에서 같이 협력할 때 힘을 받을 수 있고, 예천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방향성이 정립되었을 때 예천의 발전이 크게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오늘의 주제가 문화예술의 발전방안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예천의 문화예술 발전에 대해 우선 몇 가지 던지는 식으로 말씀드려보면, 예천은 석송령, 용문사, 금당실 등 훌륭한 문화적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문화적 감각은 회룡포, 삼강 주막이 대중적으로 각광 받을 수 있는 자원이 아닐까요? 혹시 석송령 용문사 등의 가치에만 너무 고집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통명농요, 공처농요, 청단놀음 등 훌륭한 문화자원이 있습니다만 곤충, 활 등이 감각적으로 끌고 갈 문화 자원리라고 봅니다. 저도 통명농요도 한 소리 부를 줄 압니다. 잘 합니다. 통명농요, 공처농요가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현대적인 감각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예천의 문화발전을 위해 예천에서 제가 주목해 본 것은 나일성 천문관과, 겔러리 미술관입니다. 천문대와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전시 예천지역 문화예술에 던지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통명, 공처농요 등은 전통적 자산은 교육프로그램으로 군 교육청에서 사회과목으로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입니다. 교육은 지식이 동반된 체험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문화적 자산이 문화예술에 대한 현대적 감각을 받지 않는다면 자원으로 동력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현대는 감각, 느낌의 시대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리랑제에 대해 말씀드리면 전국적으로 민간차원으로 20년 이상 지역 문화축제로 개최, 전승되어온 곳은 매우 드믑니다. 20년 동안 민예총 예천지부에서 아리랑제를 지속적으로 고집스럽게 이어온 노력은 지역문화사적 의미에서 볼 때도 분명히 남다른 것입니다.
예천지역 문화유산의 다양한 것을 아리랑제에 끌어들여야 합니다. 함께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천과 안동의 두 민예총이 협력한 합동 공연, 등을 다양하게 시도하여, 지역의 고유 행사에서 탈피하고, 폐쇄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더 개방적인 발전의 저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예천아리랑제나 통명, 공처농요 등 자발적으로 이어져온 행사입니다만 앞으로는 협력행사로 키워야 하는 바람이 있으며, 지역 방송국 등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당연히 지역방송사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될 것이고 문화단체에서도 적극 요청해야 될 것입니다. 곤충엑스포, 세계유교문화축제인 광역문화 행사등과 연계한 협력행사를 개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천문화는 농촌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예천의 터전인 농촌문화를 살려나가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참석하신 의원님께서도 많이 힘써주셨으면 합니다. 예천만의 독창적인 문화는 분명 아름답고 그것을 미래지향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전국 어디가도 모심기 하면서 아부레이수나를 부르는 곳은 없습니다. 예천만의 자랑이죠, 이것을 보다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금당실은 전통마을이란 외관은 있으나 내용이 없고 통명농요는 내용은 있으나 외형이 없어 보입니다. 잘 결합해서 문화적 협력프로그램으로 꾸려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살아있는 것은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넘어져도 안 다치죠. ‘죽어 있는 것은 굳어있습니다.’ 경직되어 있는 거죠. 살아있는 문화는 따뜻하여 남을 부드럽게 합니다. 죽어 있는 문화는 차거운 것으로 사람을 써늘하게 만듭니다.
저는 나이와 연륜 이런 것을 떠나서 문화가 살아있으려면 부드러워야하고 따뜻해야하고 품어야 되고 유연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예천지역에서 고집스럽게 이어온 예천아리랑제 20주년을 맞아 보다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예천 지역의 따사로움과 부드러움이 많이 녹아져 있는 행사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페널 발제6
홍석준(안동문화방송 기자)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은 지역의 여러 문화가 있는 가운데 그 소비되는 방식 중, 문화영상 콘텐츠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문화영상을 소비하는 방식 중 대표적으로 TV가 많이 이용되어 왔습니다.
뉴스라든지 드라마라든지, 예능 프로라든지 지역에서 소비되는 방식이 10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방송사인 안동 MBC를 포함 지역방송사들이 문화영상 콘텐츠의 90%이상을 직, 간접적인 소비의 통로로 이용하여 왔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는 KBS 18개 지역, MBC는 19개, 민방 같으면 8개 등이 지역방송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런 영상 컨텐츠가 TV가 아닌 방식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쯤 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을 통한 소비가 되겠죠, ‘그래서 TV는 죽었다’ 하였는데 막상 10여년이 지나고 보니 TV방송이 인터넷을 통해 확대 재생산 소비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그 대부분이 방송국에서 생산하는 문화와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방송이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의 경우 거의 서울에서 생산되고 있고, 주제를 보더라고 지역성보다는 보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콘텐츠들이 많아 지역방송의 존재 이유에 대해 많은 의문 제기가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역문화발전과 관련한 지역성이란 것에 대해서 그 의미를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지역방송이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지역민을 대상으로 지역성을 살리기 위한 공중파 방송을 지역방송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역방송이란 ‘공익성, 공정성과, 공공성, 지역성’을 살려야 된다는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역성이 뭐냐? 행위나, 장소, 행위를 중요하게 볼 것이냐 행위를 한 사람을 주체로 중요하게 볼 것이냐 어떤 것을 기준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2011년 카이스트에서 네 명의 학생이 1달 동안 연쇄적으로 자살한 사건이 일어나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에게 물러나라는 퇴진 요구가 일어났었습니다. 그 때 (서남표 총장->오명 카이스트 이사장 겸 웅진 폴리실리콘 회장)이 (웅진 폴리실리콘) 상주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였는데 이 기사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서남표 총장에 대한 인사권은 이 공장을 만든 회사의 (대표->오명 회장)가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 사람의 말이 항상 중요했기 때문에 전국에서 많은 기자단이 모였었습니다.
당시 회사 (오명 카이스트) 재단이사장이 서남표 총장을 자를 것이냐 안 자를 것이냐 결정을 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우리 MBC에서 보도했었는데 지역성에 대한 비판논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디서, 누가, 어떤 일이 지역민에게 작용하느냐 하는 기준에 보면 상주에서 생긴 일이지만 카이스트의 일이 지역방송으로 적합하냐 하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또 (브라질->남아공) 월드컵대회에 출전했던 정대세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정대세 할아버지의 고향이 의성군 금성면인데 정대세의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지역주민들이 모여 당시 정대세를 열심히 응원하는 것을 기사로 방송하였는데 이 기사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 지역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정대세 본인의 고향도 아니고 정대세의 아버지가 사는 곳도 아닌데 지역신문의 기사거리로 가치가 있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지역성의 기준이 너무 천차만별 너무 광범위합니다.
지역성을 많이 담고 있다는 지역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에 대해서 보면 지역민의 관점에서 지역의 전통문화 콘텐츠보다는 근대 이후 해방 이후의 지역성이 담긴 아이템으로 많이 옮겨간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 TV 다큐멘타리 지역부문 역대수상 작품을 보면 2011년 독도야, 2010년 춘천의 사북항쟁, 2006년 예천의 산성리 폭격 등이 문화대상을 받았었는데 지역의 뿌리 깊은 전통문화보다는 근대 이후의 현상, 사건으로 지역의 보편성 획득에 방송의 관심이 전환되었습니다.
따라서 지역 전통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방안은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불가피한 고민이라고 하겠습니다.
안동MBC 지역방송에서 9년차 근무하는 사람으로 지역방송의 활성화를 위한 예천의 지역성과 보편성을 가지기 위한 제 개인적 방안 세 가지 정도를 꼽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순대로드 예천용궁의 짚신 원정대’ 이런 식으로 순대는 유목인의의 곱창요리가 동양에서는 순대, 서양에서는 소시지로 발전되었는데 동서간 음식문화교류를 통한 예천 용궁의 순대의 우수성과 세계적인 음식문화의 연결성을 찾아 지역성을 살리고,
둘째 용문사의 윤장대를 보면서 지금까지 윤장대에 대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종합예술에 집중되었다면, 티벳 불교문회와 전래된 불교 대중화 형식으로 불교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정점에 윤장대를 두고 용문사 하면 윤장대라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셋째 아이템인 내성천 모래사장에 대하여는 4대강사업에 대한 정치적 찬, 반 논쟁은 젖혀두더라도 4대강사업 이후 전국의 내수면 모래사장이 거의 없어지고 영남지방에 몇 군데 남아 낙동강 본류에는 거의 없어지고 지류 중 내성천을 능가할 모래사장이 없는 실정으로 내성천의 환경적 가치와 연계한 세계자연유산적 보존 방안을 강구하는 등 지역성이 담긴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지역방송이 거부감 없이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예천아리랑이 좋습니다. 보세요.’ 하는 자기주장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 때 지역방송의 소비 확대를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주 MBC에서 재작년 “콩‘ 인류를 살리다.” 대표적인 농작물인 콩에 대한 일본, 태국, 중국, 인도네시아, 미국, 벨기에 등 각 나라마다의 콩 음식문화와 나라마다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 단순히 농작물이 아닌 엄청나게 큰 세계적인 문화로 보도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지역의 것이 타 지역보다 무조건 좋다는 자기 논리보다는 타 지역의 주민들까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역주민의 노력과 방송이 존재하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