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휴가의 시작은 휴게소에서!
각자의 입맛에 맞는 기호식품을 이렇게 한가지씩만 사기로 한다.
차를 운전하지 않으니
눈이
망망대해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저희들끼리는 의식 안하는가본데 나는 마구 설레었다.
참, 여기는 익산 미륵사지.
우리는 길이 펼쳐지는 대로 나섰지만, 길 위에서 길을 만들었고
길 위에서는 마음이 이끄는대로 길을 잡았다.
군산 가는 길에 배가 아주 고팠고 익산이 나오길래 미륵사지나 한번 구경할까, 하여 미륵사지를 본다.
백제나 서동이름을 단 간판들을 읽는 재미가 새로웠고
미륵사지 주변에서 식당을 찾으니 정원이 펼쳐진 집이 있어 거기로 들어간다.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 넷이 산채비빔밥과 냉면을 나누어 시키니,
"아, 요즘엔 냉면이 젤이지~잉, 그냥 냉면 잡숴~" 하며 '쪼까 거시기허게' 우리들 입맛을 통일시킨다.
저런 아주머니 그 귀찮을 마음 내가 너무 잘 아니, 그 아주머니 괜히 좋다.
손님 입장 생각해서 따로 하기 싫단 소리도 못하는 것보다 그냥 긴 설명 없어도
여자마음 충분히 알 그런 간결한 어투.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있는 식당 아주머니.
그 덕에 도토리 묵무침도 우리는 이렇게 사정하며 말한다.
"저어~ 그라모, 묵무침도 안될까예~?"
"아, 그기사 되재잉" (아, 그걸 말이라꼬)
전라도가 괜히 좋겠나, 다 저런 푸근한 입성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거지.
미륵사지 9층석탑의 해체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제각각의 돌모양으로 어쯤 그렇게 멋진 석탑을 낳았는지 예술가들의 심미안은 언제나 존경스럽다.
그런 예술가를 이렇게 표현하게 만들었던 그 시절의 신앙심도, 미륵으로 천년이후를 설계하려던 그 시절의 왕들도
모두다 존경스럽기만 하다.
하늘과의 거리가 아쉽다.
저 구름아이는 분명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중이었는데...
군산에서 부안으로 가는 직선의 세계최장 거리 새만금을 달린다.
만경강과 금강을 따와서 새로운 글로벌 명품을 뜻하는 새만금이라 이름하였는데
그 길이에 감탄하다가도 어딘지 허전해지는 건 뭘까? 새만금 길이 열리고 벌써 두번째 찾아오는 길이
그래도 반가운지 우리는 새만금에 관련한 무수한 세월을 이야기를 하려한다. 그런데...
33km얘기를 하려면 그 공사의 숨은 비화가 세계최대라는 길이에 함께 매몰될것 같고,
이 곳이 동북아 물류중심지로 떠오를 부지라는 얘기도 좋겠으나 조금 귀찮고,
청정생태환경, 녹색성장이란 거창한 얘기는 그렇잖아도 광고로 써놓았기에...
그저...단지 이곳을 성장시키느라 수장된 갯벌의 이야기만 들려줄 뿐.
그리고 서해의 낙조를 보자고 이야기할 뿐.
무작정 나섰으니 선유도 가는 배시간도 알지 않았다.
우리는 새만금 덕에(?) 육지가 된 야미도에서 표를 끊으려 했으나, 야속하게도 오늘 가는 배는 모두 다 매진됐다고 한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쩌면 다음 산행으로 오리라는 굳은 예감을 믿는 듯,
이제 어디로 갈까를 정하려 야미도를 한바퀴 돌아본다. 야미도가 그저 섬이었으면 더 예뻤을 것 같단 생각을 하였지만
의논은 하지 않고 바다만 바라보고 걸을 뿐. 볕이 없는 섬에서 둘레를 한바퀴 걸으니 햇살이 아주 따갑다.
새만금 남은 거리를 달려갔다 다시 돌아와 새만금 회센타에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계획일뿐.
우리는 새만금을 돌아가려는 건 바보나 하는 짓 같다는 무언의 합의하에
그저 발길 닿는대로 갈 요량이란듯 가만, 잠자코, 잠시 후의 행로에 신경을 꺼버린다.
아빠엄마의 모자도 우산도 다 뺏아 저희들이 가지고 논다.
우리는 이미 다 태웠다고 그닥 신경쓰지 않는다.
이럴 땐 마음이 늙은 어미같다.
저멀리 하얀것이 이렇게 멀쩡한 가로등이지 말고
내가 생각한 대로 하이얀 분수대 물기둥이길...제발...
새만금 바닷길을 통과하니 그만 부안이 나와버린다.
채석강이나 변산반도 나머지를 볼겸 부안으로 가버릴까.
그것도 좋지.
그리하여 찾아간 부안군, 벌써 세번째.
내변산 산행으로 한번, 의령문협 문학기행으로 한번.
두번이나 간 내소사는 나를 위해 참고 대신 아이들에게 기생 매창을 얘기하고 허균을 들려준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미처 걷게 하진 못했지만, 어른으로 살아갈 동안 설마하니 내소사 갈 일 없겠냐 싶어 두눈 딱 감는다.
곰소를 찾아 젓갈을 두리번거렸으나, 이 역시 곰소젓갈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있어 차라리 부안으로 가다가 사자 한다.
모항은 언제나 내게 숨은 마음의 휴가지였다.
이 자그마한 어촌마을 모래사장을 몇번이라도 왔다갔다하며 모항을 마음에 담고
어쩌다 넌지시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이 아직도 모항에 사는지 소식이라도 들을려나 싶었지만,
아이들 배시계가 시위를 하는 성화에 그냥 눈도장만 찍고 나선다.
모항 막걸리집 안주는 사람씹는 맛이라던 그 시인의 마을.
이 곳도 지금 그 번다한 펜션으로 내 기대치를 배반하고 말았지만,
섬마을이 어떠했을지는 눈감고도 훤할만큼 아기자기하고 어여뻤다.
그 바닷가 저무는 시간에 약간의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서해로 떠난다는 큰 구도만 세워놓았을 때부터 조개구이가 첫 목록이었다.
우리는 모항에서 빠져나와 격포를 찾아갔다. 곰소가는 길에 이미 격포 여기저기에 써붙인 조개구이 간판을 보았기에,
또 격포에서 자야 내일 아침 채석강을 쉽게 보겠기에 제법 그럴싸하게 머리를 굴렸다.
변산반도 횟집에서 조개구이는 아이들 입맛을 당장에 사로잡았고
이어 나온 매운탕은 포식의 추억 목록에 1등으로 올라앉을 만큼 대단한 맛이었다.
우린 식탐을 바닥내며 밥공기를 축내었고 아들은 급기야, "아, 행복하다"헀다.
다음날 채석강...
그 옛날 파도가 만들어준 돌의 물결을 바라본다.
아마 오래 잊지 않으려 이 곳에 관해 소문을 만들어 낼것 같다.
틀림없이 깊이 사랑할 것 같다.
맨발로 걷기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
채.석.강.
가족들을 저만큼 내버려두고 혼자 깊숙한 곳까지
그러니까 채석강의 DMZ까지 걸어보았다.
나는 바다의 라인이 정말 체질에 맞나보다. 산도 사랑하게 되었지만
바다에 오면 세포가 알아서 나를 맡기는게 느껴진다.
새들이 무더기로 살고있는 곳이었다.
그래봤자 약간만 외진 곳이었지만
돌바닥의 문양도 파도가 깎은 자국도 확연히 다른 곳이었다.
혼자 걷자니 파도소리가 아주 들을만했다.
바다새들은 숱한 말을 나누었지만 그 모든 말들이 내 귀에는,
'인간여자 하나가 우리 마을을 침입한다. 모두 방어하라...'뭐 이런 말들 같았다.
'내 발소리는 저 파도소리에 안들리겠지' 생각하며 저들의 라인으로 나란히 걸어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새들은 어떡하든 신비로운 울음으로 떠들기만 했지 저들의 둥지에서 떠나지는 않았다.
새들은 정말 마을사람들만큼 많이 살았다.
채석강을 바라보니 바람소리도 함께 들렸다.
파도소리 듣는 곳에 바람도 함께 듣기문제 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루를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듯 굴지만 그것은 자연에서 쉴 줄 몰라서 하는 말 같았다.
저 파도를 듣고 깨끗한 바다의 화석위에 가만히 누워 듣는 방법을 익히지 못해서
뭔가에 떠밀리듯 스스로 만들어낸 시간의 제목에 나를 맡기는 것을,
그것을 즐겨 사용하는 것 같았다. 쉬었다 가렴, 하는 길손도 없는 세상의 변두리에
파도가 깎고 다듬은 이 엄숙한 세월의 증거앞에서도 사람들의 시간은 변질되는 기적도 못부렸다.
나는 그런 죄를 또 안고 채석강 돌아보며...떠나온다.
거기 자꾸만 미련이 서성였다는 걸 나만 정확히 알았다.
부안은 드라마의 명소. 우리가 누구나 다 아는 드라마들이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선전한다.
아이들 배고프단 소리도 귀머거리처럼 무시하며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로 잠시의 허기를 채우게하고
"미루나무 꼭대기에 소머즈 빤스가 걸려있네~" 노래나 가르쳐준다.
언젠가 어느 시골로 더 들어가 살면 미루나무나 있었음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세트장에서 간신히 허기를 참다가 이번엔 휴가의 마지막 먹거리로 우리는 서해식 젓갈밥상을 받았다.
간장게장을 무한리필한다는 곳에 동네 젓갈가게 아저씨한테 소개받고(관광차와 협상하는 그런 가게가 아니어서 안심하고)
그 집의 가정식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는데 반찬들이 모두 깔끔했다.
간장게장을 두사발이나 리필받고 밥공기도 모두 두그릇씩 비운다.
아주 '굶긴 보람'이 있게끔 먹어주는데는 선수들이 되었다.
이제 부지런히 돌아오는 길이 펼쳐져 있었다.
수첩에 우리들이 묵었던 방이며 음식들의 가격표들이 채워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것들을 두번다시 안쳐다보다가 해가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되리란 걸.
그럴 때 우리들은 오늘의 이 휴가얘길 옮기며 그 여름의 휴가를 채워가게 될 것이다.
돌아올 때는 남편의 긴 장거리 운전에 무한 감사하며 느긋하게 구름감상이나 하였다.
정읍으로 안내하는 내비를 따라 고부들판을 쳐다보니 초록바다가 넘실대는 멋진 풍경도 보았다.
소나무에 걸린 조각구름의 예술작품도 감상했다. 하지만 모두 마음에서만 샘솟는 감상으로 남겼다.
아이들 학원시간에 맞추어 도착한다고 약속을 했고 자꾸만 어린 아이처럼 사진찍자고 조를 수도 없는 노릇.
정읍에서 광주방면으로 화순 곡성을 거치니 문득 화순에 있는 운주사도 오고싶었음을 깨닫는다.
어느 가을비 내리는 날, 가을 휴가는 운주사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