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분으로 뽑은 면에 새콤달콤매콤한 회무침을 얹고 고춧가루 양념(다대기)으로 비벼먹는 함흥냉면.
이 함흥냉면엔 오장동이라는 지명이 붙어야 제 맛이 난다. 아예 오장동 하면 함흥냉면이 자동 연상될 정도다.
그런데 그 넓은 서울 오장동에 있는 냉면집은 달랑 세 집뿐이다.
이 세 집이 오장동을 아예 함흥냉면의 메카로 만든 것이다.
왜? 실제로 함흥냉면의 출생지는 함흥이 아니라 오장동이기 때문이다.
함흥에는 없는 함흥냉면을 시작한 오장동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함흥냉면은 오장동냉면이 된 것이다.
오장동의 냉면 이야기를 57년부터 이곳에서 냉면을 만들어온 신창면옥의 맹강호(66세) 사장에게서 들어봤다.
함흥냉면, 함흥에 없고 서울 오장동에 있다
'신창면옥' 회냉면이 쫀득하면서도 촉촉한 것은 면발을 그릇에 담기 전 초벌 비빔을 하기 때문이다.
국간장에 쇠고기 간 것을 넣고 끓이다가 마늘 등의 양념을 하고 물과 섞어 만든 '맛난이'가 그 비법인데
그 황금비율은 아직 아들도 모른다.
1952년 서울 오장동 중구청 사거리에 '흥남집'이라는 냉면집이 문을 열었다.
그 이듬해엔 그 옆에 오장동 함흥냉면이 생겼고, 80년에 '신창면옥'이 문을 열면서 지금의 오장동냉면 거리가 확립됐다.
이 세 집이 만드는 냉면은 '함흥냉면'.
함경도에서 즐겨 먹던 가재미 회국수를 변용해 만든 오장동식 버전이 바로 함흥냉면이 된 것이다.
신창면옥의 맹강호 사장은 14세 때부터 '오장동 함흥냉면'에서 냉면 기술을 익혔다.
지금 이전 세대들은 모두 유명을 달리해 현재 오장동 냉면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맹 사장뿐이다.
그의 냉면 역사는 애당초 함경도 버전의 회국수가 아닌 오장동에서 태어난 함흥냉면부터 시작된다.
원래 함경도 회국수는 감자전분으로 만들었다. 개마고원의 고랭지에서 자란 감자를 써야만 국수 면발이 제대로 만들어진다는 것.
"그런데 6.25전쟁 후 남한에서는 그런 감자를 구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제주도와 해안지방에서 자란 고구마 전분을 쓰게 됐어요."
꾸미(회)도 달라졌다. "함경도에서는 가재미('가자미'의 북한어) 흔해 가재미 회를 썼지만
남한에서는 공급이 원활치 못해 홍어로 대치하게 됐죠. 씹는 맛은 훨씬 쫄깃해요.
그런데 국산 홍어는 너무 비싸 쓸 수가 없어 지금은 칠레 등지에서 수입한 홍어를 쓰고 있죠."
그러다 회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기를 올리기 시작한 게 비빔냉면이란다.
그리고 오장동에서 시작한 함흥냉면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조금씩 변형돼 지금의 함흥냉면이 됐다는 것이다.
원조 다툼 없는 '원조' 세 곳, 전국 손님 모신다
장충동 족발 골목, 신당동 떡볶이 골목 등 맛골목에 가면 '원조' 간판이 몇 집은 붙어 있다.
한데 오장동엔 원조가 따로 없다. 처음 생긴 냉면집이 52, 53년에 비슷한 때 생겼고,
제일 늦게 문을 연 신창면옥도 오장동 1세대 주방장인 맹강호 사장이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오장동'이라는 지명이 원조를 대신하는 셈이다.
흥남집과 신창면옥의 원래 상호도 오장동 흥남집, 오장동 신창면옥이다.
60년 전통이니 경쟁도 있을 법 한데 맹 사장은 '신안의 천일염을 공동 구매하는 등 형님, 아우하며 서로 스스럼없이 지낸다'고 했다.
오장동 냉면집은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집이 아니다.
'전쟁 직후 동대문'을지로,청계천에 터를 잡았던 실향민과 그들의 자식, 손자가 주 고객'이라는 게 맹 사장의 말이다.
그래서 쉬는 날도 의논을 해 서로 달리 한다. "먼 데서부터 찾아오는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세 집이 의논해 두 집은 쉬더라도 한 집은 영업을 해서 이곳을 찾아온 손님에게 오장동 함흥냉면을 꼭 대접하죠."
자웅을 겨룰 수 없는 3강 체제가 확립되다 보니 경쟁보다는 협력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세 집 육수 맛 제각각 , 입맛 따라 발길 간다
세 집 냉면 맛은 개성이 뚜렷하다. 이 때문에 가족끼리, 친구끼리 함께 멀리서부터 찾아 온 손님 중에는 각자 입맛대로
세 집으로 흩어져 식사를 한 후 다시 모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다대기와 홍어 양념 맛도 다르지만 가장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육수다. 함흥냉면에는 꼭 육수가 따른다.
뜨거운 육수가 매운 맛을 내는 캅사이신 성분을 빨리 없애주기 때문이다.
냉면을 먹기 전, 냉면을 먹으면서 중간중간, 그리고 냉면을 거의 다 먹었을 때 그릇에 육수를 부어
물냉면처럼 후루룩 마시는 게 함흥냉면 육수 먹기의 정석이다.
다대기는 식초,겨자,설탕을 넣고 취향대로 매운 맛을 요리할 수 있지만 육수는 다르다.
이 때문에 세 집 모두 개성 있는 육수를 내놓고 있다. 흥남집의 육수는 말간 쌀뜨물 같은 색인데 마늘,생강 맛이 강하다.
홍어회와 묘하게 어울린다.
오장동 함흥냉면집의 육수는 진한 우동국물처럼 간장 색깔이 난다.
맛도 처음에는 간장 맛부터 느껴지는데 조금 지나면 매운 맛과 어울려 달착지근한 여운을 남긴다.
신창면옥의 육수는 진하게 우려낸 고기 육수 특유의 탁한 색을 띤다. 첫맛은 살짝 짠듯하지만 뒷맛은 고소하다.
TIP 오장동 냉면집 세 곳, 맛만큼 실내 장식도 큰 차이
오장동을 오랜만에 찾는 어르신들은 간혹 단골 냉면집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가 있다.
이때 어르신들은 종종 인테리어를 확인하는 것으로 집을 찾는다.
나란히 선 함흥냉면집 세 곳의 실내 테이블 구성이 오래전부터 확연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창면옥은 1층에 의자용 테이블이, 2층에 방석용 테이블이 있다.
오장동 함흥냉면집은 1, 2층 모두 방석용 테이블만 있다. 흥남집은 신창면옥과 테이블 구성은 같은데 실내가 좁다.
첫댓글 지는 오장동 냉면은로 던데....갠적으론 을지면옥이 좀 괜찮은듯...백제갈비의 봉피양냉면이 최고라더군요...다만 단가가 11000량이라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