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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양토홍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홍인화
이오당(二吾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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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오현(太白五賢)의 표상(表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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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 놀란다. 그 정자의 규모가 작은데 놀라고 그 명성과 의의가 큰 데 더 놀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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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지정 문화재 자료 156호로 지정된 이오당은 서기 1679년(숙종5)에 건립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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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공(貞敏公)의 선대(先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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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당의 정민공(흡 恰)은 박사공파 1세조 계용(啓庸)으로부터 댓수를 계산(計算)하면 13대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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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先祖) 3대 청환 혁혁(淸宦 赫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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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공 조부(덕서 德瑞),증조(억 億),고조(징 ), 삼대(三代)가 문과급제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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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名門)의 조모 문화유씨(祖母 文化柳氏) |
문화유씨 가계도 |
통계공 가문 9리파(九利派)는 진주강문 130만 후손 중 가장 많은 후손을 거느리는 최대 문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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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ㆍ학덕(節義ㆍ學德) 높은 현사(賢士)로 추앙(推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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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공 흡 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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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함경도 덕원부 관사에서 출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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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공 배위 청송심씨(靑松沈氏)도 명가(名家)의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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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공 배위 청송심씨 친정 가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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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공 배위(청송심씨)의 친정은 세종의 부마 순의청성위(심안의 沈安義)의 형 절도사 심안인(沈安仁) 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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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臥仙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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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慶北 奉化郡 春陽面 鶴山里) 골띠 마을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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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오현 제위(太白五賢 諸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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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옹(抱翁) 문절공 정양(文節公 鄭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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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에 태어나 1668년에 몰했다. 자는 안숙(晏叔),호는 포옹(抱翁)ㆍ김장생 문인이다. 1618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강화도로 피난했다. 1661년 장령을 거쳐 시강원 진선에 이르렀다. 증이조판서. 시호는 문절(文節). 학덕으로 태백오현(太白五賢)의 칭을 듣고 사덕사에 배향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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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금당 정민공 심장제(覺今堂. 貞敏公 深長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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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금당 심장세는 명종의 장인 심강(沈鋼)의 증손이며 서인의 영수 심의겸의 손자이다. 1594년에 태어나 1660년에 몰했다. 자는 덕조(德祖). 호는 각금당(覺今堂). 1624년 이괄의 난 때 포의로 임금을 호종하여 금부도사가 되었으며, 1637년 정묘호란 때 왕을 호종하여 부사가 되었다. 학문과 덕행으로 절의를 지켜 태백오현의 1인으로 불리워졌다. 증이조판서. 시호 정민(貞敏). 사덕사에 배향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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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곡 개절공 홍우정(杜谷 介節公 洪宇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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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곡 홍우정은 형조판서 홍가신(洪可臣)의 손자이며 이조판서 홍우원(洪宇遠 )과 청백리 홍우량(洪宇亮 )의 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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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우당 정민공 홍석(遜愚堂 貞敏公 洪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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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우당 홍석은 증조ㆍ고조 양대 영의정에 증조부가 대제학을 지낸 명문(名門) 출신이다. 1604년에 태어나 1680년에 몰했다. 자는 군서(君敍),호는 손우당(遜愚堂)이다. 김집과 김상헌에게 글을 배웠다. 김수항ㆍ송시열의 천거로 참봉이 되고 주부와 용담현령을 거쳐 세자익위사어에 이르렀다. 사림의 중망이 컸으며 절의를 지켜 태백오현의 일인으로 일컬어진다. 증이조판서,시호 정민(貞敏). 사덕사에 제향되었다. 문집과 예기유회,일성록ㆍ이기록ㆍ예총요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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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오현 후예(後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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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오현을 이야기 할 때는 정민공 형제를 함께 이야기 하였다. 정민공(貞敏公)과 도은공(陶隱公 각 恪)은 형제가 기거(起居)를 똑같이 하여 남들에게 형제가 일체(一體)로 보였다. 그래서 법전문중의 후손은 정민공만을 이야기 하지 않고 형제 후손을 하나로 이야기 했다. 손우당 홍석(遜愚堂 洪錫) 후손은 역시 글 잘하는 선비들이 많이 있었으나 과환은 미미하다. 현대인물로 판사ㆍ국회의원 홍승만,신문사 논설위원 홍철화,금성방직 사장 홍재선,한국페인트 사장 홍승달이 있다. '만산고택(晩産古宅)의 어제와 오늘'에 이어 나가는 새 연재물 '봉화정자 奉化亭子'는 정구(貞求) 종무처장이 기획 편집하고 정기 正基 종보 편집위원이 글을 지었으며 사진 자료등은 만산고택 주인(主人)인 백기 百基 현종이 제공하였다. 특히 새 연재물 봉화정자는 중앙종회 원로고문이신 면희(冕熙,전고려대 교수 및 영남대 학장) 박사의 감수 監修 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