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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안기부 직원 공운영 씨가 보관했던 정치인/경제인들에 대한 도청 테이프 사건으로 나라가 어수선하다. 이 일을 지켜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FBI 전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 국장이 그 사람이다.
후버는 FBI 국장 중 가장 장수한 기록을 갖고 있다. 1924년부터 그가 사망한 해인 1972년도까지 48년 동안이나 FBI 수장으로 있었다. 무려 반세기를 미국 최고의 치안 일선에서 지휘봉을 휘둘렀으니 엄청난 장수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인지라 대통령보다 더 강력했던 권한을 가졌던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던 사람이다. 어떻게 그런 장수를 할 수 있었을까?
미국 대통령을 손아귀에 쥐었던 J. Edgar Hoover 전 FBI 국장
후버 국장이 48년의 최장수 FBI 국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도청으로 X-파일 사건을 일으킨 공운영 씨의 수법을 보면 이해가 쉽다.
FBI 국장의 인사권과 해임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다. 때문에 대통령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게 장수할 수 있는 것이다. 후버는 그런 방법을 썼는데, 후버가 대통령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각종 정보망을 이용해 대통령의 약점을 모두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운영 씨가 X-파일이 담긴 도청 테이프를 갖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즉 엄청난 폭발력의 정치인/경제인의 비리를 미끼로 자신의 직장에 대한 장수보험을 들고자 했던 것이다. 거기에 돈벌이도 덤으로 더 하려했다. DJ 정권 아래서 국정원 수장으로 있으며 국가의 최고 기밀사항을 좌우지했던 천용택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을 정도니 약점을 이용한 정적(政敵)이나 타인 기선 잡기에 대한 효력이 어느 정도였는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후버 국장은 이런 식으로 정적의 입, 팔, 다리를 잡아놓은 데 도통 했던 사람이다. 협박(?)의 주 상대는 미국 대통령들. 오직 그들만이 후버 자신을 FBI 국장직에서 해직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어서 후버 국장은 그들을 상대로 대담한 협박을 했던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미국 역사는 기억한다.
후버가 FBI 국장 자리를 장기 집권(?)하는 동안 미국 대통령은 8번이나 바뀌었다. 이들 8명의 대통령은 얼마든지 자신의 최고 권력을 이용하여 FBI 국장을 해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상관인 대통령들은 감히 그런 일을 엄두내지 못했다. 후버 국장을 건들음으로 인하여 있을 수 있는 역효과는 상상할 수 없어서다. 이들 역대 대통령들은 만약 자기들의 약점이 후버의 입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면 자기들 정치생명은 끝날 것으로 보았다. 때문에 그들은 후버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다.
후버와 함께 행정부를 이끈 대통령들은 다음과 같다:
1) 칼빈 쿨리지 (Calvin Coolidge), 30대 대통령, 재임기간 1923-1929.
2) 허버트 후버 (Herbert Clark Hoover), 31대, 1929-1933.
3)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Delano Roosevelt), 32대, 1933-1945.
4) 해리 트루먼 (Harry Truman), 33대, 1945-1953.
5) 드아잇 아이젠하워 (Dwight David Eisenhower), 34대, 1953-1961.
6) 존 케네디 (John Fitzgerald Kennedy), 35대, 1961-1963.
7) 린든 존슨 (Lyndon Baines Johnson), 36대, 1993-1969.
8) 리처드 닉슨 (Richard Milhous Nixon), 37대, 1969-1974.
이들의 8명 대통령들 중 첫 번째 칼빈 쿨드리지만 빼놓고 나머지 7명 대통령들은 후버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후버 FBI 국장에게 맡겨진 주임무는 국내 치안, 그러나 당시 미국 내에 공산주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던 지라 공산주의 동조자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도 그의 또 다른 주임무로 등장했다. 하지만 후버는 그런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다름 아닌 정치인들의 뒤를 파헤치는 일이었다. 약점 캐내는 것을 말한다. 특히 대선에 하려하거나 출마를 이미 했고, 또 국회에서 제일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과거 비리는 후버 국장이 제일 탐냈던 정보다.
J. Edgar Hoover 빌딩. FBI 본부다. 워싱턴 소재.
정치인 다음의 주요 타깃은 언론사 사주, 그리고 영향력 있는 언론인들이었다. 후버는 이들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언론 포화로 어느 순식간에 개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리를 파악한 후버는 언론사 사주들의 사생활을 하나하나 다 깨어 파악하고 있었고 또 그들의 일일생활 행동거지 체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때 언론으로부터 가끔 “동성연애자”라는 기사로 그를 괴롭힐 때 언론사 사주들에 은근한 협박을 가했다. 그런 식의 기사를 써내면 그들의 복잡한 사생활 문제를 거론하며 세상에 폭로하겠다는 압력을 가한다. 그 후 그런 기사는 더 이상 신문에 나오지 않는다. 적어도 후버가 살아있을 때는 그랬다. (1991년도에 올리버 스톤이 감독하고 케빈 코스터가 주연한 “JFK"영화에는 후버 국장을 동성연애자로 묘사했다. 사실 후버는 항상 남자 보좌관과 가까이 지내고 있어서 그런 오해 살 수 있었고, 또 그 오해는 사실일 수도 있다. 다만 세계 최고의 수사기관장이었던지라 그의 사생활은 그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군부와 중앙정보부(CIA)와의 갈등/알력도 그려진 영화 JFK
대통령이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언변 실력, 행정부를 끌어갈 수 있는 능력, 입법부와 사법부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융화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에 있어서 총의 실탄과 같은 정치자금을 어떻게 잘 끌어 모을 수 있나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실탄이 있어야만 되던 안 되던 정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치자금은 경제인들로부터 나온다. 기업을 굴리며 많은 돈을 좌우지 할 수 있어서 가능하다. 때문에 이들의 약점도 캐놓지 않으면 후버 국장 자신에게 불리한 대권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다는 계산을 한다. 후버는 이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는 방책으로 이들의 비리도 조사한다. 필요할 때 써먹기 위해서다.
물론 후버는 아무에게나 이런 협박 가하지 않았다. 자기 이미지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오직 자신의 정적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사람에게만 ‘협박’을 은근슬쩍 써먹었다. 때문에 살아생전 후버가 공공의 적으로 비춰진 바 없다. 아니 오히려 그가 죽은 후 그를 찬양하는 단체가 생길 정도였다. 지금의 '노사모' 비슷한 '후버사모'가 있었다. 한국의 김형욱이나 이후락과 같은 파렴치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후버가 1972년도 세상을 달리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기행이 조금씩 밝혀진다. 그리고 그의 도 넘은 월권행위는 미국인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정치권도 국민의 생각에 동감하게 된다.
이에 국회는 다시는 후버 국장과 같은 절대 권력자가 나오지 않도록 FBI 국장의 임기를 제한할 수 있는 준(準)입법을 제정한다. 1970년대 말 국회는 후버 레거시(legacy)를 거울삼아 FBI 국장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한다. 이런 이유로 대통령도 FBI 국장을 함부로 해임하지 못하는 틀이 마련되는데 이 조치는 구속력이 없는 안(案)이었다. 그러나 국회는 국회에서 발동시킨 안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들 생각은 어리석었다. 1993년7월20일 클린턴 대통령은 FBI 국장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해임을 한다. 상대는 당시 FBI 국장이었던 William S. Sessions. 해임통보는 93년7월19일애 보내고, 다음 날 7월20일부터 직위해제가 유효하다는 내용이다.
미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으로부터 FBI 국장 직에서 해임당한 William S. Sessions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있었던 FBI 국장에 해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유는 “무능”이었다. 하지만 속 내막은 달랐다.
우선 클린턴이 William Sessions를 해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해임해도 어떤 보복조치가 따르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 William Sessions 국장은 클린턴을 견제할 만한 약점(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비리)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대통령이 그를 해고한다 해도 클린턴 대통령은 별 문제 없이 후임자를 고르고 또 FBI를 거의 대통령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후버가 국장 자리에 있었다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용이 약간 다른 길로 빠지는데 그럼 클린턴은 왜 갑자기 FBI 국장을 해고하여 국회를 무시했을까 하는 내용을 알아보자.
William Sessions 국장이 7월20일자로 해고당하기 하루 전, 7월19일, 힐러리 클린턴의 숨겨진 애인이었던 빈스 포스터가 죽었다. 공원에서 자살한 모습으로 20일 발견되었는데, 그의 시체가 발견되기 체 24시간도 되기 전 클린턴은 FBI 국장을 해임시켜 FBI가 그 수사에 개입하는 것을 원천적 봉쇄조치를 취했다. 국장 해임은 FBI에 대한 일종의 으름장으로 FBI 부국장이나 그 누구도 그 사건의 내막을 캐지 말라는 뜻이 담긴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FBI는 살인사건(혹은 자살사건) 현장에도 가보지 못했다.
이런 조치가 있었기에 빈스 포스터의 사인(死因)은 “자살”로 금방 결론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정황을 보면 자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만한 특별한 정황적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살아 그동안 지속해 왔던 힐러리와의 밀애 관계를 지속하고자 했던 게 빈스 포스터였을 것이라는 게 정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또 자살할 때 사용했다는 총도 1913년도 제작된 리벌버 구형이고 너무 오래 전에 알 수 없는 이름으로 등록된 총인데 빈스 포스터가 그런 총을 어디서 구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클린턴 대통령은 “타살” 아닌 “자살”로 수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여 빈스 포스터는 “자살자”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됐다.
재차 말하지만 만일 후버가 FBI 국장으로 있었으면 클린턴이 행한 그런 해임은 상상할 수 없고, 또 대통령이 압력을 가한다고 FBI가 해야 할 책무를 저버리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대통령이 압력을 가하여 후버를 해임하려 했다면 후버는 너죽고 나도 함께 죽자는 식으로 클린턴에 대한 비리를 세상에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가했을 것이다. 순진(?)했던 William Sessions 국장은 후버가 행했던 보험성 정보수집력 부재로 국장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후버 국장은 정치인 외에도 헐리우드 연예인들도 감시했다. 대부분 정치인들과 관여한 연예인이다. 이런 일은 케네디 행정부 때부터 특별히 활성화되었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케네디 대통령이 당시 최고의 미모 여배우 마릴린 몬로를 좋아했고, 또 그녀를 만나며 가끔 은밀한 정을 통하는 사실을 알고부터다.
후버 국장은 이런 정보를 이용하여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는 근거로 삼았다. 때마침 케네디 대통령의 친동생 로버트 케네디(RFK)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고 조직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후버는 긴장했고, 또 국장직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강박감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언젠가는 케네디 대통령이 자신을 쫓아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서니 후버는 방어선을 구축한다. 그 방어 전략은 케네디와 헐리우드 여배우들과의 관계를 세상에 노출시키는 것으로 가닥을 잡는다.
사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대통령도 우습게 보는 FBI 국장을 눈엣가시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범죄조직과의 전쟁에서 무능함을 보인다는 이유로 FBI의 무력화를 노렸다. 이것은 후버 국장 개인에 대한 도전과 다름없었다. 때문에 후버는 케네디 약점을 더 깊이 조사하게 되며 그 와중 대통령 동생 로버트 케네디도 마릴린 몬로와의 은밀한 통정을 나눈다는 정보를 포착한다. 후버는 즉각 이런 사실을 이용하여 자기 보호본능을 발휘하고 대응책 착수에 들어간다.
후버는 케네디 대통령에게 전화한다. 소련이 대통령 각하를 헐리우드 여배우와의 관계를 이용해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말을 흘린다. (마침 1962년도 쿠바 미사일 사건으로 소련은 대외적으로 체면을 한참 구긴 상태라 소련은 케네디를 증오하는 면이 많았다.) 그러면서 대통령에게 마릴린 몬로와의 통정 관계를 슬며시 거론하면서 조심하지 않으면 크게 다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실을 소련도 알고 있지만 자신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대통령은 경거망동을 삼가고 조심하라는 뜻이 담긴 메시지 전갈과 같았다. 이 통화는 내용 깊이가 너무 교묘하여 케네디도 후버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하여 케네디는 후버를 무시하지 못 할 상대로 인정하고 후버 제거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만약 후버가 대통령에게 ‘당신의 여자관계 다 알고 있으니 날 함부로 건들지 마시오!’ 라는 식으로 대통령을 협박을 했다면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문제는 의외로 복잡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후버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점잖은 방법으로 상대를 녹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
공운영이 이번 도청 사건을 터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마 후버 FBI 국장의 장수 비결을 어느 정도 알고 모방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하여 안기부/국정원 시절 주요 정치/경제 및 여타 인사들에 대한 도청을 하며 남긴 녹음기록을 따로 보관하여 협박을 통한 방법으로 자신의 직책을 보존하려 했던 것 같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통하지 않았던 이유는 애초 상대를 잘못 택한 것 같다. 천용택 같이 단순한 전 국정원장에게는 먹혀들었지만, 그래도 기업 세계화의 선봉장으로써 갈고 닦아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최고의 실력이 있는 삼성은 그런 공갈협박에 넘어가지 않았다. 삼성 내에 있는 법조 팀은 한국 최고의 로우펌인 “김 엔 장”을 능가하는 국내외파 변호사들로 포진됐다. 이들의 법적 및 사회 파장에 대한 판단력은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판단력과 하늘과 땅 차이를 낸다. 때문에 그런 협박을 얼렁뚱땅 돈으로 한번 해결했다간 언제까지 질질 끌려 다닐지 모른다는 결론 아래 비록 그런 일이 세상에 밝혀질 지라도 법적 대응을 통해 정면 돌파 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된 것 같다.
사실 그런 일에 한번 끌려 다니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이용당한다. 또 그 이용당했던 자체의 일이 나중에 더 큰 부메랑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때문에 삼성이 이른 매를 먼저 맞고 문제를 수습은 시간을 벌어가면서 천천히 해도 크게 손해 볼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 결정은 백번 옳아 협박범 공운영과 윌리엄 박은 그 역효과로 자신들은 구속되었다.
비록 협박범들이 구속되었지만 이 일로 삼성이 받은 타격은 적지 않다. 사실 엄청나다. 하지만 절대 공갈협박범에 끌려 다니지 않는 전례를 남겨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미리 차단시킨 효과는 크다.
솔직히 말해 대선 때 그 어떤 이해집단이 다름대로 원했던 대선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쑥덕공론을 하지 않았나? 삼성을 비난하는 참여연대도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별 짓 다했다. 그 중 김대업 같은 세기의 사기꾼의 말을 진짜라 말했고, 또 나중에 김대업이 헛소문 퍼트린 죄로 구속되었을 때도 거기에 대한 비난 소리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삼성 건만 터지면 굶주린 하이에나 같이 삼성 흠집 내기에 난리다. 마치 자기들에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성인군자들인냥...
그 어떤 단체가 노무현을 밀었던, 이회창을 밀었던, 또 그 전 대선에서도 김대중을 밀었던 이회창을 밀었던, 그 누구도 자기들이 원하는 후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게 당시에 있었던 진짜 상황이었다면 그들은 왜 왜 유독 삼성 인사들이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한 말을 놓고 죽일 놈이 되어야 하는지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고 말도 안 되는 억지는 부리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물론 삼성에서 특정 후보를 밀기 위해서 지원책을 말하고 돈을 준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다른 단체나 기업에서도 다 그렇게 했다. 다만 들통 나지 않은 것뿐이다. 공운영과 윌리엄 박이 삼성에 협박한 것은 삼성의 재력과 또 사회 인지도가 높아 그들을 협박하여 최고의 협박대금을 받아내기 위함이었다. 다른 정치인이나 기업이 깨끗해서 협박하지 않아서 안한 게 아니다. 때문에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다른 X-파일도 밝혀져야 하고, 또 그런 불법도청을 한 것은 엄연히 법을 어긴 것이니 도청에 가담한 국정원 요원은 마땅한 처벌이 받아야 한다.
공운영의 죄질은 가볍지 않다. 불법 도청자료를 이용하여 남을 협박하고, 또 거기에 돈까지 우려내려 했으니 중형이 마땅하다.
협박으로 돈을 벌어보려다 결국 자기 몸만 만신창이 되고..
홍석현 주미대사도 그가 잘못한 것은 자기가 누울 자리가 어딘지도 잘 구분하지 못하고 발 뻗고 누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렇게 노무현 당선을 방해했던 주범(?) 중 한사람인데, 왜 노무현이 제시한 주미대사 자리를 덥석 받아 그 자리에 벌떡 누웠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그 공직 자리를 기반으로 UN 총장 및 대권 야망까지의 꿈을 꿨다고 하는데, 이것은 줏대 없고 분수도 모르는 모자란 사람의 단면을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만일 공운영이 FBI 전 후버 국장과 같이 능숙한 협박을 통하여 자신의 직책에 대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고, 또 돈까지 더 긁어낼 수 있었다면 더 큰 문제로 비화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곪은 곳의 고름은 짜낼 수 없었을 것이고, 또 그 고름진 곳은 앞으로도 계속 몰래 덮어 둘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X-파일 사건은 정치와 행정권의 쇄신을 위해 잘 터진 일로 생각된다. 때문에 사건 자체를 그리 나쁘게만 볼 수 없다. 그 고름이 떠진 자리에 깨끗한 새 살이 돋아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그렇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