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 성공 및 실패요인
■ 춘천지구전투 아군 승리요인
북한군 공격징후를 사단자체의 수색정찰대를 운용, 사전 탐지하여 외출, 외박 제한 등 경계태세를 강화하였으며, 보병 및 포병진지를 사전준비 완료하였다. 또한, 간부교육을 철저히 하여 능력을 향상시켰고, 지형분석을 통한 포병 화력계획을 실질적으로 수립하였으며(예상접근로), 공비토벌 작전간의 전투경험을 축적하여 전투력을 강화한 점 등 전투준비에 철저하였다. 그리고, 7연대 2대대 특공대의 역도하 등 공세적인 방어행동과 소양강, 원창고개, 큰말고개 등 지형을 적절히 이용한 점 등을 둘 수 있다.
- 전투준비태세면 : 적극적인 정보수집 활동을 통해 적의 공격기도를 파악하고, 진지강화, 교육훈련, 경계태세를 유지하여 적의 기습공격으로부터 효과적인 초기작전 수행 가능
※ 철조망의 위력 : 미 제2사단 23연대가 '51년 2월 중공군 2월공세시 지평리전투 사례 →방어수단 통합/협조 사례
- 지형활용면 : 상대적 전투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방자의 잇점인 지형의 적절한 이용을 통해 적이 불리한 지형에서 전투하도록 강요
- 북한강, 소양강 등의 하천장애물을 이용한 방어진지 편성
- 원창고개, 큰말고개 등의 애로지역을 이용 적 진출 저지
- 도하가능지점 사전 판단 : 포병화력 집중운용, 역도하공격 등 적 격멸 가능(※ 춘천 정면 소양강에는 도섭 가능한 지점이 3개소 있었음 : 우두리 동쪽 내두리여울, 할미여울, 원진나루)
- 공세적 방어면 : 방어시 적의 약점을 발견하여 적극적인 공세행동으로 북한군에 대해 기습공격, 많은 피해를 줌으로써 심리적 마비를 달성하여 북한군의 오판 유도에 기여
- 제7연대 2대대는 소양강 남안 진지를 점령후 특공대 30여 명으로 도하준비중에 있는 적을 역도하하여 기습공격
- 옥산포로 철수한 57밀리 대전차포 중대 심일 소위는 적SU-76자주포를 근접 유인하여 휘발유병과 수류탄으로 2대 파괴
- 가래모기 지역에 집결한 적 1개 연대에 포병화력 집중으로 적 괴멸, 도주하는 적을 보병이 추격
- 큰말고개에서 제19연대 육탄 11용사가 전차 및 자주포 10대를 노획 및 파괴→이는 제19연대가 평소 대전차육탄공격훈련을 해 온 결과로 분석됨 ※ 참고 : 이후에도 제19연대는 대전차공격에서 많은 전과를 올리게 됨.지연작전간 제6사단이 문경부근에서 적 전차 매복습격작전
※ 전투에서 인간심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손자도 {孫子兵法} 전과정을 통해 이를 강조하여 설명했음. 예를 들어 第 7. 軍爭(군쟁)편에서『 三軍(삼군)은 可奪氣(가탈기)며 將軍(장군)은 可奪心(가탈심)』이라하여 "적부대는 사기를 빼앗아야 하며 적장수는 심리를 빼앗아야 함"이라고 했음. 또한 {李衛公問對(이위공문대)}에 의하면 "공격은 상대방의 城(성)이나 陳(진)을 치는데 그치지 말고, 상대방의 마음을 치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음. 결국 공격이든 방어작전이든간에 과감한 전투행동이 적들의 氣(心)에 영향을 주어 전투 회피심리 및 도피행동을 유발케하고 진지를 포기하고 철수하게 함.
※ 참고 : 방어작전측면에서 아군 성공요인 분석
■ 춘천지구전투 북한군 실패요인
- 계획면
- 전투력의 분산운용(춘천 정면 : 2개 사단 SU-76자주포 배속, 홍천 정면 : 제7사단 독립 전차연대 배속)(주 : 제2군단의 주공은 제2사단이었고, 제2군단에 주어진 결정적 목표는 춘천이었다. 또한 제2사단은 춘천을 점령후 가평을 경유하여 수원까지 약 150km에 달하는 장거리를 대우회기동해야 하는 부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전차연대를 조공인 제12사단에 배치한 것은 춘천 축선의 모진교를 아군이 파괴하지 않을리 없다고 판단했고, 모진교 남쪽 600미터 지점에 기계화부대가 도섭이 가능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화천-춘천-가평-서울에 이르는 도로는 모진교를 통과해야만 춘천에 이를 수 있고, 단차선 도로인해 기계화부대의 운용이 용이하지 않았던 반면에, 인제-홍천에 이르는 도로는 2차선 도로로서 홍천까지 깊숙히 기동할 수 있는 도로가 종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어 독립전차연대를 주공사단이 아닌 조공의 제12사단 지역에 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 정보판단 미흡 : 지형의 오판(모진교 파괴로 전차통행 불가할 것으로 오판)으로 홍천 정면에 전차투입(주 : 제2군단 공병부장 주영복 증언에 의하면, "당시 제2사단은 소양강 도하에 대한 준비도 능력도 없는 상태였다. 사단 공병부장(이갑녕 중좌), 사단공병대대장(조윤순 중좌) 등은 1주일전 화천 남쪽에 진출하여 38도선 정찰과 국군이 설치한 장애물 해체에 신경을 썼을 뿐 38도선 이남에 위치한 소양강에 대해서는 그러한 큰 강이 있는 지도 몰라 도상연습조차 제대로 하지 않을 정도로 소련 고문관의 계획에 따를 뿐이었다. 만약 인민군 총참모부가 계획을 세웠다면 공병부는 지형연구는 물론이고 도하보장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소련 군사고문관에 의존했기 때문에 엄청난 난관에 부딪치고 있었다."라고 했다.)
- 원거리 포위 기동계획(작전수행 부대의 능력 미고려) 포위 기동 부대의 전투력 보강 미흡
- 예비대 전투력의 열세 및 운용계획 미흡
따라서 주공축선의 전투력을 강화하고, 사전에 침투부대 운용을 통해 모진교를 확보하는 계획을 세우거나, 면밀하게 지형분석을 실시하여 도섭 가능지점 등을 판단했어야 했다. 실제로 북한군은 38도선을 넘어 서울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하천의 교량에는 주민으로 가장한 유격대를 사전에 침투시켜 아군이 폭파하지 못하도록 했다. 만일 지형적인 조건에 의해 춘천축선에 전투력을 집중시킬 수 없었다면 제2사단을 조공으로 춘천 정면의 아 제7연대를 견제하고, 제12사단을 주공으로 하여 홍천으로 종심깊게 기동시켜 춘천지역의 한국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포위기동계획을 수립하였다면 북한군 제2군단의 목표달성은 더욱 용이하였을 것이다.(출처 : 전종순, '춘천전투의 재조명(군사평론 제349호, 2000년), p.195)
※ 전투력운용은 무궁무진한 것으로 마치 물이 흐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전차연대가 최초 홍천축선으로 투입되었다고 해서 계속 홍천-원주지역으로 운용할 것이다 라고 판단해서는 안됨. 춘천(1단계 목표)을 확보시까지는 도로망이 양호한 홍천축선에서 운용을 하고, 이후에는 제2사단으로 배속전환하여 서울동남방으로 투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라즈바예프보고서에 의하면 홍천축선에 투입된 부대는 전차연대가 아니라 603모터사이클연대로써, 이 부대는 홍천을 돌파후 수원쪽으로 이동하여 제6사단과 같이 호남지역으로 이동했다. 이 보고서의 내용대로라면 기동력이 양호한 부대를 홍천지역에 운용한 것은 기동공간이 양호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
- 실시면
- 작전수행면 : 제1군단의 협조된 공격 미흡(시·공간적 측면/Tempo측면)
- 제1군단의 Tempo가 제2군단에 비해 빨랐으므로 북한군의 계획대로 한수 이북에서 한국군 주력을 유인하여 섬멸 하는데 실패 ※ 실제로 서부지역의 북한군 진출속도가 빨라 한국군의 후방에 위치하고 있던 전 병력들이 전방에 미증원 (제3사단 23연대의 경우 미처 전방에 투입되지 못함으로써 제8사단의 철수로 인하여 발생한 공백을 메꿀 수 있었고, 제3사단 재창설의 근간 마련)
- 북한군 제2군단이 한국군 퇴로를 차단하기 전에 주력부대인 제1군단이 지나치게 빠르게 진출하여 시간적인 포위달성 불가 (한국군들에게 철수하여 재편성할 수 있는 기회 제공)
※ 그렇다면 북한군은 어떻게 작전했어야 하는가?→ 전선사에서 제1군단과 제2군단의 작전진행 속도 통제
- 예비대 운용면 : 북한군은 그들의 선제타격계획대로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돌파구를 형성할 수 있는 최초 돌파력(타격력)과 형성된 돌파구를 통하여 전과확대할 수 있는 종심전투력(종심기동력)이 필요했다. 최초 돌파에는 성공하였으나 형성된 돌파구를 확장하면서 종심깊게 작전적 포위를 달성하기 위한 종심전투력으로서의 예비전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 1949년 초부터 인민군의 확장과 국민 총동원을 위해 군 징집제도를 자원입대에서 공개 징집제도(강제 징집)로 전환하였고, 17∼50세까지의 전 북한 주민에게 기본 군사훈련 실시
- 1949년 10월부터 3개 민청훈련소를 설치하여 17∼30세까지의 청장년을 강제로 징집, 민청훈련소 예하의 지방 청년훈련소에서 신병훈련 실시
- 당시 제2군단 예비인 제15사단은 제3민청훈련소가 1950년 6월중순에 사단 편성을 완료하여 빨치산파 박성철 사단장 임명
- 신편 3개 사단(제10, 13, 15사단)은 3개 보병연대와 포병연대 및 지원부대로 구성, 타 전투사단들과 편제는 동일하나 장비와 병력수, 훈련면에서 전력이 떨어지는 예비사단 수준으로 7월이후 참전(장준익 저, 『북한 인민군대사』, pp.118∼119)으로 예비대 투입 불가
※ 註 : 3개 사단의 창설시기에 대해 한국전쟁사에는 3월, 미국에서 발간된 북한 인민군의 역사(History of Nothe Korean Army)에는 6월로 기록
- 작전지도 측면 : 작전의 융통성 결여, 지휘통제능력 미흡
- 경적의식 : 전술원칙을 무시한 공격
- "해방전쟁"을 한다는 정치적 의미에서 도시점령을 중요시한 북한군의 인식 : 북한은 도시해방에 상당한 의미를 두고 전쟁을 치렀다. 서울 뿐만 아니라 대전(2일), 광주 점령후에도 바로 부산으로 직행하지 않고 목포, 여수, 순천으로 각 1개 연대를 투입시켜 각 도시를 점령한 바 있다.※ 참고 : 전기 포착관련 주요사례
- 상황변화에 무관하게 최초 계획대로 진행 : 주영복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군 제2사단이 6월 26일부터 소양강 도하에 계속 실패하자 제2사단 내부에선 봉의산 아래의 교량 점령을 보류하고 사단 주력을 가평쪽으로 우회시켜 소양강 하류에서 도하하든가, 죽엽산 남쪽으로 진출하여 소양강 상류에서 도하후 춘천을 배후로부터 공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의 작전계획이 지상이며 어길 수 없다고 하여 소양교를 향하여 정면공격을 되풀이 하는 무모함으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출처 : 전종순, '춘천전투의 재조명(군사평론 제349호, 2000년), p.196)
- 전선사령부
- 6월 26일 군사위원회 조직 / 7월 5일 전선사령부 조직 (사령관 김책, 참모장 강건)
- 전방작전 책임 : 김책, 후방업무 : 최용건 담당
- 소련 군사고문단의 철수시기와 전선사령부의 조직시기 일치
- 전선사령부와 군단과의 관계
- 군단 편성은 남침 개시 불과 2주전 편성(6월 10일)
- 6월 25일 남침 직전까지 민족 보위성이 각 사단을 직접 통제(주 : 당시 북한군 제2군단 참모장 최린 소장의 증언에 의하면 "하루에 몇 km씩 진격할 것인가에 대한 일정까지 짜놓고 있었다. 우리 군단은 48시간 내에 춘천 및 홍천을 점령한 다음 서울 동쪽으로 기동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만사가 순조로히 진행되는 듯 하였는데 도로가 험한데다가 국방군의 저항이 의외로 완강하였다. 따라서 계획과 실천의 일치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상부에서는 시간마다 나를 불러 왜 예정대로 침공을 못하는가라고 독촉이 이만 저만 심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실토하였다.(출처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제3권("춘천-홍천전투", p.262), 1970년.))
- 당시 군단의 기능은 작전지휘에 국한 전투지원 및 근무지도 기능은 미보유
- 군단은 하나의 전투사령소의 역할 수행 즉 군단장이 광범위한 권한과 책임을 지고 일종의 전선군 또는 집단군, 사령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에는 민족보위성, 7월 5일 이후에는 전선사령부의 보조지휘소로서 상부로부터 하달된 명령, 지시를 충실히 집행할 책임만 지고 있었음.
- 소결론 : 자은리까지 진출한 북한군 제7사단을 제2군단장이 2개 연대와 전차 10대를 역행군시킨 것은 제2군단장의 의도라기 보다는 춘천이라는 지역을 확보함으로써 정치적/군사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했던 최고사령관의 작전지도 때문인 것으로 추정
- 결과 : 제2군단장, 양개 사단장 경질, 제7사단 명칭이 제12사단으로 개칭
【보충1】보병 제6사단이 열세한 병력과 장비로 지형을 효과적으로 잘 이용하여 성공적인 방어를 실시 하였으나,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도 있음
가. 지휘관의 빈번한 교체에 대하여 : 제2연대 1대대장은 개전 당일에 3번 교체되었음, 이로 인해 상하간 일체감이 없어져 지휘상의 불리를 자초
※ 개전 당시 대대장이었던 김병진 소령을 전쟁발발 2시간 만에 박노규 중령으로 교대시켰고, 또한 이날 23:00에 보병학교(피교육중)에서 돌아온 김주형 소령으로 하여금 대대를 지휘케 하여 그 다음날 06:00에 있을 반격전을 지휘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상·하간에 생소감이 생기고 지휘상의 불리를 자초하였다. 예를 들면 당시 참전하였던 동 대대 장병들은 "시간마다 대대장이 바뀌었다."고 술회하고 소대장/중대장들도 면담에서 "누가 대대를 지휘하는지 대대장의 관등성명을 아는 자가 없었다."고 입증하고 있다. 때문에 도강중에 말을 바꿔타는 격이 되어서는 아니되며 일단 지휘관으로 선정한 이상은 유고시 또는 어느 일정기간 동안의 능력 평가 결과에 따라 조치하여야 할 일이다.
나. 전투원의 급식에 관하여
ㅇ 소부대 단위 독립취사할 수 있는 기구의 준비와 취사훈련이 안되었음.
* 3∼4끼니씩 결식으로 사기 저하
ㅇ 통신 및 연락이 끊겨 부대 소재를 파악치 못해 보급 추진 불가
ㅇ 지휘관의 무관심, 행정요원 실전투입
※ {孫子兵法} 第 10. 地形(지형)에 『 視卒如영兒故(시졸여영아고)로 可與之赴深谿(가여지부심계)하고 視卒如愛子故(시졸여애자고)로 可與之俱死 (가여지구사)』하여 "병사 돌보기를 어린아이 돌보듯이 한 까닭에 가히 함께 깊은 골짜기로 진격할 수 있으며, 병사 사랑하기를 자식 사랑하듯이 한 까닭에 가히 생사를 같이 할 수 있음"라고 했고, 아울러 손자는 임무수행을 위한 기강확립도 강조했는데 결국 이와같은 상태가 五事중에서 道(단합)의 상태라 할 것임.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대장이었던 롬멜은 솔선수범으로 중대를 지휘했다. 그 결과 1915년 5월 아르곤느 참호전을 치를 때 포탄 파편상으로 다리가 절단되어 후송중인 병사가 " 중대장님, 그렇게 슬퍼하지 마십시오. 목발을 짚고서라도 곧 중대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중대를 지휘했었다. (참고 사례 : 전쟁 초기 제1사단 13연대장 김익렬 중령의 지휘통솔의 일화)
다. 예비대 운용 문제 : 북한군 제2군단이 홍천방면의 북한군 제7사단을 춘천방면으로 전용하는 시기에 아 제6사단은 예비인 제 19연대를 춘천정면에서 홍천정면으로 전환하여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투입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상황으로 덜 중요한 지역에 투입, 전장 적정 파악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함.
※ 주(아군 병력 유병화 초래) : ① 25일 제19연대 3대대 금산리 일대 배치, 26일 제19연대 2대대는 우두산에, 제19연대 1대대는 소양강 남안에 배치하였으나, 26일까지 접적이 없었음. 단, 우두산의 2대대의 경우는 제7연대 1대대가 26일 15:00시경 소양강 남안진지로 철수 할 당시 엄호임무 수행 ② 인접 제7사단과 30km 간격이 발생하자 육군본부에서는 26일 가평일대에 제8연대를 투입하여 배치하였으나, 그날 밤 다시 서울로 이동함으로써 혼란을 초래
라. 기타 : 소양교 거부 미실시(방송오보의 영향→반격시 아군 이용 고려)
【보충2】북한군 주공집단이 한강변 일원까지 확보 후 축제분위기로 이틀간 허송. 당시 추격으로 전환하여 지휘체계가 완전 와해되다시피한 국군주력을 강타할 결정적인 승리기회 포착 실패
가. 당시 상황 : 북한군은 도하장비가 부족하였으나, 경부선∼경인 상행선 철교 사용은 가능했음.
나. 북한군의 서울 탈취후 3일간 지체 이유는? (클릭하면 관련 논문을 볼 수 있음)
1) 남침계획의 차질 초래 : 북한군 제2군단 우회기동 실패, 수도권내의 국군 주력 협공불가, 제1군단은 조공의 서울 동남방 진출을 기다림
2) 정략적 견지 '남한에서의 민중봉기'(박헌영의 주장)
3) 정세판단에 시간 소요
4) 6월 25일 ∼ 28일 지속적 전투로 재편성(정비) 시간 필요
5) 도하장비 없음 : 소련에 4개 set 신청 → 1개 set만 지원
6) 서울 탈취 축하연(제4사단 : 서울사단 칭호, 105 전차여단 → 사단 승격) : 북한은 도시해방에 상당한 의미를 두고 전쟁을 치렀다. 서울 뿐만 아니라 대전(2일), 광주 점령후에도 바로 부산으로 직행하지 않고 목포, 여수, 순천으로 각 1개 연대를 투입시켜 각 도시를 점령한 바 있다.※ 참고 : 전기 포착관련 주요사례
7) 한강 방어선이 견고하리라 판단 → 정밀 도하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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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6사단 청성 전우회 휴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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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원주(84.07.11~8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