益山
삼국유사에 전하는 4구체 향가, “선화공주는(善花公主主隱) 은밀히 사귀어 두고(他密只嫁良置古) 서동방을(薯童房乙) 밤에 몰래 안고 가다(夜矣 夗[卯]乙抱遣去如).”라는 서동요(薯童謠)의 古都 익산(益山). 일찍이 마를 파는 서동(薯童)이 나무꾼과 선녀처럼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은 일화는 익산을 먼 과거로 되돌려 놓는다. 왕이 죽고 왕궁터에는 오층석탑만 남았으며 무왕이 선화공주를 위해 세운 미륵사에는 현재, 일제의 잔재인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남은 석벽으로 새로 조성된 서탑과 동탑이 미륵산(용화산) 아래에 서 있다.
익산(益山)의 옛 지명이 마한 시대에는 금마(金馬), 삼국시대에는 익주(益州) 그리고 얼마전까지 이리(裡里)라고 불렸다. 전라북도의 전주, 군산, 김제가 그러듯이 근현대에 들어와 남한 정치사에서 홀대를 받고 경제적 발전에서 뒤처진 백제의 땅이 이곳이다. 더군다나 익산은 지금 인구가 30만 밑으로 줄어들어 원광대 학생들에게 주소를 이전하면 선물로 처절하게 방어를 하고 있다고 한다.
너른 만경 평야는 일제강점기 끝없는 수탈지역이었으며 금강은 함열을 지나 서천과 경계를 이루며 '탁류'의 고향 군산으로 흘러간다.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찬란했던 백제 문화재와 왕궁 그리고 절터가 산재한 익산이다.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때에는 고 이주일과 하춘화의 일화가 지금도 회자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정학적으로 넓은 들판을 가진 익산은 사라진 왕궁과 불타버린 절과 도굴되고 찢긴 왕릉이 옛 도읍지의 번성을 밤이면 애타게 부르고 있다. 남쪽으로는 만경강이 숨죽여 흐르고 언제나 다시 더없이 풍요로운 益山이 되려는지 지나는 사람에게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첫댓글 신라시대에 황룡사 9층 목탑이 있다면 백제에는
미륵사 탑이 있는데 그나마 복원 작업을 하니 다행이네>
그나저나 미둔은 익산으로 이사간다는 풍설(?)이 돌던데...
네. 형님! 2년 약정인데 저도 잘 모르지만 이곳저곳 배우려고 합니다. 갈 곳이 너무 많아 죄송합니다.
1년 살이도 좋고 각 고장 ,고을마다 살며, 또 다니며
우리 향토의 푸근하고 구수한 인정을 느끼며 사는 것도 멋진 인생이 될거야!
네. 이번 기회에 호남을 배우려고 합니다. 어제는 내소사에 갔지요. 조용하고 멋지고 즐겁습니다. 내려오시면 연락주세요. 형님.
소래사의 "설선당" 과 "무설당"
내소사의 두 법당이군요. 얼마전에 애들 엄마와 갔다왔습니다. 큰형님 안녕하신가요.
그저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미둔작가의 여행기 잘 보고 있습니다. 건행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