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인천 창간호 기고
턴키방식으로 실패한 인천 지역사 발간
이 원 규
최근 인천시가 턴키베이스(Turn key base)로 발주하여 출간한 인천 지역사 관련 서적들이 내용이 부실하여 오피니언 리더들은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고 있다. 책을 구해 들여다보니 적게는 2천만 원, 많게는 억대가 넘는 세금을 써 가며 어떻게 이런 책을 만들었는지 안타깝다.
턴키베이스란 발주자가 제시한 기본계획과 방침에 따라 설계와 시공을 일괄하여 입찰하는 공사 계약 방법을 일컫는 용어이다. 각 부분을 여러 계약자에게 나눠 발주할 경우 서로 어긋나고 전체 프로젝트가 지연될 수 있는데 턴키방식은 그것을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공개경쟁 입찰이라 청탁과 정실이 개입되지 않고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래서 말 많고 탈 많은 관급공사에 유효한 방법이다.
이번 문제는 그 편의성만 주목한 나머지 지역사 도서 발간에 그 방식을 적용했다는 데 있다. 여러 책들 중 가장 크게 지목되는 것은『인천상수도 100년』과『인천으로 통하였느냐』이다. 둘 다 호사스런 장정과 두툼한 볼룸 때문에 좋은 책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체제와 내용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전자는 마치 자료와 사실증거를 담은 백서(白書) 같고, 후자는 관광안내서 같다. 필진을 들여다보면 전공학자나 전문가가 아니고 인천과도 무관한 생소한 이름들이다. 그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지 몰라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이 뻔히 보인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어서 경종을 울리고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두 책의 제작 경위는 이렇다. 송현 배수지가 만들어져 인천 사람들이 수돗물을 먹기 시작한 지 100년이 되었다. 인천시는 몇 가지 행사를 기획하며 수돗물과 함께 이어 온 인천시민의 생활변천사를 책으로 발간하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졸속 단순한 발상이 그것을 그르쳤다. 실패할 게 뻔한 일이었다.
인천상수도사업본부장과 부장급 간부들로 구성된 4인 편찬위원회를 만들었으나 그것이 인천 역사의 일부라는 점은 간과해 버렸다. 건물이나 도로 공사 하듯이 턴키방식 입찰공고를 내면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응할 것이고 그들의 제안서를 받아 평가하고 낙점해서 한꺼번에 맡겨버리면 좋은 책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결국 인천과는 전혀 무관한 서울의 사사(社史) 전문출판사인 J사가 눈치 빠르게 응찰해 턴키 사업권을 따냈다. 서울과 부산 체신청의 100년사와 서울 상수도 100년사를 제작한 경력이 있어 큰 점수를 얻은 듯하다.
J사가 제작한 두 도시의 체신청사와 서울 상수도사는 평가가 어떤지 몰라도 인천 상수도사는 인천인의 생활사를 통찰하는 눈도, 인천 근대사에 대한 안목도 부족해 보인다. 역사서가 모두 그렇지만 지역사 저술은 지식과 자료의 전달이 전부가 아니다. 이번 책의 경우 인천의 물 역사가 오늘 인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가 말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료 나열과 그것을 설명한 느낌을 준다. 물로 비유해 표현한다면 살아 있는 미네랄워터가 아니라 끓인 뒤의 죽은 물 같다. 행문도 주술관계가 어긋나고 엉성하기 짝이 없다. 책 뒤에 실린 자문위원회 명단에 인천의 지역사 전문가들 이름이 박혀 있으나 이미 일방통행을 한 터라 실제 자문은 할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인천으로 통하였느냐』는 세계 도시축전을 겨냥하고 인천을 관광지로 부각시키기 위해 인천시와 인천관광공사가 턴키방식으로 입찰공고를 낸 것이다. 인천에서 오랫동안 인쇄업을 해온 S사가 사업권을 따냈는데 안목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납득할 수 없는 필진을 내세웠고 뒤늦게 깨달아 인천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려 한 모양인데 이미 늦어 도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표지에는 인천광역시가 이 책을 만들었다는 발간 주체 표시도 없다.
전자는 인천의 역사 전문가들을 무시하고 나간 데 그르친 원인이 있고, 후자는 인천의 업자가 수주했으나 안목이 부족하고 안이하게 제작에 나선 데 그 원인이 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인천에서 지역사 전문가를 찾아 충분한 자문을 구하고 신중하게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나갔어야 했다.
시사편찬위원회 체제를 이용했다면 훨씬 좋은 책이 됐을 것이다. 인천은 2002년 시사(市史)를 발간했고 시사편찬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살려 놓았다. 역사자료관에는 시사 발간에 사용한 수많은 관련 자료가 정리되어 있고 두 분의 전문위원도 있다. 그리고 7년 전 시사를 집필한 전문가들이 연계를 맺고 있다.
지역사 발간에 턴키방식을 사용한 건 무리한 일이었다. 결국 그 책들의 필자들이 집필진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인천의 전문가들을 찾아와 거꾸로 묻고 매달리는 난센스가 벌어진 것이다. 행정 규정상 턴키방식을 선택해야 했다면 반드시 인천시가 승인하는 편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체제와 필진을 구성한다는 조건을 달았어야 할 일이었다. 유사한 책을 내려는 기관은 이번 일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