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전통 마을도 이제는 시장거리를 방불케 하고, 우르르 몰려 왔다
몰려가는 스쳐 가는 길이라 배산임수, 비보림, 음양의 조화, 풍수 등의
마을의 가옥배치는 느끼기는커녕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대문이 열린 집은 지짐 냄새 동동주 향만 짙고 꼭 들리고픈 고택은 빗
장을 채워 출입을 원천봉쇄 하기에 이제는 하회, 양동, 한개, 남사 마을은
우리에게는 큰 매력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섣부른 판단으로 하병수 가옥을 방문하는 사람은 초가의
아늑함, 포근함, 정겨움 보다 하병수 어르신의 인간미 넘치는 정, 고택
사랑, 초가를 보존하려는 열정에 절로 고개 숙이게 된다.
행랑채는 사라지고, 사랑채는 최근에 지어져 장독대 곁에 낮게 담장을
쌓아 안채를 독립 공간으로 조성한 쪽문을 밀치고 들어가면 안마당에
잔디를 깔고 징검다리 마냥 두 갈래 길에 돌을 깔아 놓았다.
우리네 살림집 초가가 보통 3칸 인 것에 비해 이집은 작은 방, 대청, 부엌
의 4칸 구조이며 방 앞에는 쪽마루를 대청 뒤쪽은 문을 내어 뒤란의 모습도
담을 수 있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우리가 들리자 안채에서 할머님이 나오시며 정갈하기 그지 없는데도 “에구
청소도 안하고 엉망인데“ 하시며 비를 잡고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모어시고
인기척을 느낀 사랑채에서는 하병수 어른이 젊은이에 버금갈 정도의 멋진
패션으로 안마당에 나오셔서 이집의 내력부터 소상히 설명을 해주신다.
하병수 어른의 17대 조부가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옥사하시고 그분의 아들이 영천에서 고향인 진주로 가시다가 일문이 많은
이곳에 세거하게 되었다며 가옥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대청 근처로 가셔서
대청 설명을 하신다.
일반적으로 한옥의 대청은 우물마루인데 비해 이 집은 상부만 갈무리하고 하부
목재는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였고,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 삿갓천정인 드러난
서까래 위에 대나무 산자를 엮고 그 위에 흙 대신 갈대로 마무리한 것이며 방
위에는 갈대 대신 보온과 습기 방지를 위해 흙으로 마무리 한 이 지역에서도
특이한 가옥구조이다.
신나게 설명에 열중인 팔순이 지난 어르신께 슬며시 음료수를 드려도 마실 생각
조차 않으시기에 숨을 돌리도록 일행에게 잠시 내가 사족을 보탠다.
우리 전통 한옥에서는 좌향하는 방향에 따라 부엌의 위치가 틀린다.
남, 북향의 집은 서쪽, 동,서향의 집은 북쪽에 두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도모하기
위해서인데 이집은 부엌이 동쪽에 있어 이상하며 서쪽이 부실해 보이는 것이
흠이라고 말하자 하병수 어르신이 서쪽에는 본래 곳간 등이 있었으며 마을의
다른 집은 부엌이 모두 서쪽인데 울집만 동쪽인 까닭은 모르신다며 우리에게
보여줄게 있다며 황급히 사랑채로 향하신다.
할머니의 정갈한 살림살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독대. 곳간이 있던 자리에
아기자기 가꾸어 놓은 채마밭,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위해 처마 끝까지 높게 쌓아
둔 장작개비가 마치 유년의 내 고향 집에 온듯하다.
잠시 후 돌아오신 할아버지는 금동제 수저 한 벌을 보여주시며 집의 가보라고
말씀하신다. 본디 두벌이었는데 화왕산에서 굿을 한 후 1벌은 도난 당했지만
어디에 있는 줄은 알고 계신단다.
-. 어디긴 어디여 국립박물관에 있지
-. 어떻게 국립박물관의 수저가 어르신의 것이라고 확신하십니까?
-. 그게 말이여 다 증거가 있지 우리 집의 젓가락 길이가 맞지 않아 근데
박물관의 것도 마찬가지인데 두 짝을 맞추면 기가 막히게 길이가 같거든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도 합리적인 조사가 선행되어 분명 금슬 좋은 부부가 사용
하였을 수저의 짝을 찾길 바라며 “어르신 저 억새 지붕을 10년마다 바꾼다는데
어르신이 손수 2번은 더 바꾸셔야지요!!! “ 라며 인사드리고 발길을 옮기는 뒤로
들리는 한숨 섞인 어르신의 말씀이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지붕을 갈기도 힘들지만, 갈 사람도 없고 내가 내일을 모르는데 ... ”
2002.10.23 나문답 경상도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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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산 물은물(산행)
창녕 / 하병수 어르신의 안채 사랑
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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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0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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