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 ”. 참으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자세와 신앙 고백에 대한 시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원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그 느낌을 말입니다.
다윗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지금 가장 위험하고 불안한 환경에 처해 있는 다윗의 환경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다윗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는 내 개인의 안전에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생을 유지해 나가는 것도 나의 궁극 적인 관심사는 아닙니다. 지금 이 어려운 곤경으로부터 탈출하는 것과 나를 대적해 반역한 아들에게 적개심을 두는 것도 아닙니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나 자신보다, 내 생명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현세상은 이 심오한 사실, 즉 삶은 지나쳐 버리며 일시적이라는 것을 잊기 위하여 최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서신의 저자는 놀라운 방법으로 이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히13:14).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세상은 향상 우리로 하여금 신문, 책, 간행물, 오락 등을 통해 이 땅의 삶에 집중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이 삶에 항상 우리의 주목을 집중시키려고 합니다. 죄에 빠져 있는 인류의 가장 큰 오류가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존재와 삶을 유지해 나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가장 중요한 젓이 아닙니다. 설사 가장 좋을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그들의 존재를 유지해 나가는 데에 우선권을 두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두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삶이 결코 완전한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정직하게 말합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서 온전한 만족을 결코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흥미가 있었고, 마음이 끌린 적도 있었고, 도움도 받았고, 재미도 있었습니다만 내 안에서 보다더 큰 하늘, 하나님의 생기, 어떤 갈망, 친밀한 감정을 위한 부르짖음을 느낍니다”.
그것뿐 아니라,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그 속에는 실속이 없으며 공허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의 향락은, 그 자랑과 뽑냄과 함께 모두 사라지네!”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세상의 향락에 넋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이것들이 그들에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 안에 부패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는” 세상입니다(마6:19). 그것도 최상의 상태에서 말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 세상이 바로 이렇다는 것과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공허함을 그리스도인들은 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항상 변화되며 바뀐다는 것을 압니다. - 로이드 존스, 『하나님 앞에 사는 즐거움』, pp 135-138 |
출처: 청교도의 길 원문보기 글쓴이: 강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