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29일 오후 2시.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운 바그다드발 서울행 KAL 858기가 버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승객은 대부분 중동 건설현장에서 수년 동안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건설 노동자들이었다. 정부는 즉각 현지조사에 나서는 한편, 국가안전기획부를 통해 언론에 ‘북한 테러설’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이틀 뒤인 12월1일 바레인을 탈출하려던 폭파범 용의자 중 한명인 김현희(일본명 하치야 마유미·당시 24살)가 생포됐고, 공범인 김승일(하치야 신이치)은 독약 앰플을 깨물어 자살했다. 당시 한국에선 대통령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6월항쟁’으로 고조된 민주화 열기로 군정 종식과 민주적 정권교체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나 KAL기 폭파사건은 이런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버렸다. 안기부는 대선 하루 전인 12월15일 김현희를 서울로 압송했다. 절묘한(!) 시점에 이뤄진 이 압송작전은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고, 다음날 치러진 대선에서는 ‘12·12 및 5·18의 주역’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현희에 대한 조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수사를 주도한 안기부는 1988년 1월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김정일이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 공작원 김현희에게 친필지령을 내려 KAL 858기를 폭파시킨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김현희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뒤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으나, 정부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살려두는 것이 정치·외교적으로 효용 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 한달 만에 김현희를 특별사면했다.
이 사건은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 때부터 여러 가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김현희의 신분에 대한 의혹이다. 안기부는 김현희가 당시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 김원석의 딸이라고 발표했으나, 북한 당국은 곧바로 “앙골라에는 북한 무역대표부가 없을 뿐 아니라 수산대표라는 직책도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일본 언론들도 “당시 앙골라에는 김원석이라는 북한 외교관이 없었다”고 확인했다.
안기부는 또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거로 김현희의 어릴 적 사진을 몇장 공개했지만 사진 속의 김현희와 실제 김현희의 귀 모습이 크게 다를 뿐 아니라(귀 모습은 성장해도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사진 속의 주인공임을 주장하는 북한 여성이 나타나는 등 안기부 발표의 신빙성을 뒤흔드는 증거가 속속 나왔다. 국정원은 김원석 의혹에 대해 지난 2001년 “김현희의 진술을 그대로 발표한 것으로서 사실 확인은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일본 언론들의 집요한 추적도 안기부를 괴롭혔다. 일본의 자유기고가 노다 미네오는 자신의 저서 <김현희는 가짜다>에서 “안기부가 발표한 대로 김현희의 행적을 답사한 결과 무려 80군데가 사실과 다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김현희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묵었다는 한 호텔방의 진위 여부다. 안기부는 김현희가 암파클링 호텔 603호에서 묵었다고 발표했지만 노다의 확인 결과 322호에 머문 것으로 확인됐고, 603호는 그 호텔에 아예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은 2001년 이 부분에 대한 수사발표가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조작 의혹들
- 이해할수 없는 정부당국의 대응
115명의 탑승자가 공중으로 증발해 버렸다. 비행기 잔해나 유해 어느것도 발견되지 못했다. 허나 황급히 수사를 종결 해버렸다.
- 엉뚱한 수색작업
KAL858기가 최종으로 교신한 지점은 어디스 서쪽 403Km지점이다. 허나 정부당국은 어디스 해역에 국한된 수색작업만을 펼쳤다.
- 사고 발생 10일만에 현지 조사단 철수
소련 미사일에 격추되어 추락한 KAL007기의 경우 1년여에 걸쳐 현지조사가 이루어졌다. 반면 이 사건의 경우 단 10일이 전부였다.
- 블랙박스 미확보
수중에서 블랙박스를 찾기 위해선 블랙박스 발신음을 추적할수 있는 수중공명위치탐지기가 필요하다. 물론 이거 없이 탐사작업을 하였다. 찾을 의욕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
- 김현희의 대선전날 압송
대선 바로 전날에 김현희는 한국으로 압송되었다. 이른바 북풍.
- 가족의 동의없는 사망처리
민법상 실종유예기간은 2년 재해.사고의 경우 1년이다. 이 기간이 지나기 전에 정부에선 일괄적으로 실종자 사망선고를 강행하였다.
이상이 한국 현대사 최대의 미스테리 사건인 김현희 KAL기 폭파 사건입니다.
최근 국정원 자체 과거사 진상위원회에선 조작의혹을 부인했습니다.
허나 유족 그 어느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핵심키를 쥔 김현희는 前 안기부 소속 직원과 결혼하여 일본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신분조작과 성형수술로 존재 자체를 아예 지워버렸죠.
일본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남한과 북한의 공동 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97년 대선직전 총풍사건이 있었단 것을 감안할때 전혀 무리한 가정이 아니지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 사건.
뭔가 찝찝한 냄새를 풍기지 않나요?
출 처 : 다음(아고라)
글쓴이 : sinceisawu
첫댓글 김현희 가짜설은 아직도 진행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