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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 장; 의료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치료사로서의 여성;
백문은 불여일견. 그러나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실이다. ~ 토마스 플라 ~
랠프 월드 에머슨은 “사람의 가장 큰 재산은 건강이다.”라고 말했다. 많은 여성이 이 귀중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여성은 유사 이래로 차를 끓이고, 약을 조합하고, 습포치료를 하고, 부러진 뼈를 이어주고, 근육을 마시지해 주고, 상처를 씻어주고, 진정제나 흥분제를 제조했고, 식사 내용을 생각해서 상차림을 했으며, --그와 같은 자연계에 관한 지식을 이용해서는 친구나 친척의 병을 치료해 왔다.
그와 같은 여성적인 치료 재능을 서구사회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간과해 왔고 과소평가해 왔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여성이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모든 부문의 주된 전력이 되고 있다. 그런 일에서 여성들은 훌륭한 천부의 자질을 활용하고 있다. 타고난 감정표현의 풍부함, 공감하는 힘,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성질, 인내심, 그리고 마치 외과의사의 수술 메스와 같은 세밀한 것을 교묘히 다루는 여성 특유의 신체적인 능력 등이 여성들의 무기이다.
몇 가지 의학계의 경향이 여성들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하이테크 의료를 피하고 싶다는 환자가 해마다 붇고 있다. 그들은 환자와 한 몸이 되어서 귀를 기울여주는 지난날의 전문가가 돌봐주던 의료를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원시시대로부터 전해온 여성의 힘이다. 더 나아가 전통적인 서양의료를 예방 의료와 대체의료로 보완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의학 영역 안에서도 오래 전부터 여성의 영역이었다. 또한 인국의 노령화에 따라 ‘간호사가 딸린 주택’을 위시해 중년을 위한 헬스센터에 이르기까지 의료보건시설의 확충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와 같은 시설에도 여성이 갖는 기능과 간호나 돌봄이 필요하다.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직업에 남성은 크게 공헌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중병환자의 치료에 불가결인 시설의 태반은 남성이 이룩해 왔으며, 지금도 조작하고 있다. 병원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것도 대체로 남성이다. 남성들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쓸 데 없는 고통이나 비참에서 구해 온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사람을 치유한다는 일에 새로운 자세를 들여오고 있다. 여성 쪽이 환자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다. 다른 전문가와 팀을 짜고서 일을 하는 것도 남성보다 여성 쪽이 많다. 여성들은 질병의 증상뿐만이 아닌, 전인적인 치료를 하는 경향이 있다. 또, 전통적인 서구의료와 대체의료 또는 ‘보완적인’ 치료를 합하려고 하는 쪽도 역시 여성 쪽이다.
여성은 이제부터는 더욱 더 많이 의료전문직에 참여할 것이며, 서구적인 개념과 치료수속을 한 층 풍부하게 해 줄 것이다.
여성은 전통적인 치료사;(여성은 타고난 의사)
어느 의미로는 지금 서구의 여성이 되찾으려는 역할을 우리의 조상인 전통사회의 여성들은 한시도 손을 놓지 않았다.
전통사회에서는 셔먼(Sherman)이 되는 것도, 마술이나 정령의 영역과의 접촉(신과의 교접)으로 사람을 치유하는 것도 남성 쪽이 많았다. 하지만 일상적인 병의 간호를 하는 것은 여성이었다. 이를테면 에콰도르 남부의 고지대 선주민 사라그로 족의 어머니들은 가족의 신체적인 문제, 곧 아픔의 86%까지를 치유한다. 소녀들은 12세가 되면 사람의 몸의 증상을 살피고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여 어머니를 도와 약을 조제하고 간병까지 한다. 그러나 이 사라그로의 소년들은 치유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
여러 가지 의미로 서구화된 현대의 타이완에서도 사정은 별반 변하지 않았다. 질병의 93%는 우선 가정에서 치료를 한다. 물론 여성의 손으로.
인류학자는 전통사회의 모친이나 조모들은 질병의 진단자요, 치료사이며, 육체적 건강의 첫째 제공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자가 전문가에게 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 고칠 수도 없고, 가정에서도 고칠 수 없다고 할 경우에 한한다.
전통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성에게는 타고난 치유력이 갖춰져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동남아시아 스리란카의 신하리 족은 여성이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아스타니아’, 곧 ‘터치(touch,접촉)’의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남미 재마이카에서는 남성 셔먼이 여성이 갖는 공감하는 힘이나 치유력의 후광을 얻기 위해 여성의 의복을 입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유럽 사회에서도 옛날에는 자주 여성에게는 천부의 치유력이 갖춰져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만 불행하게도 그들을 마녀 취급을 하긴 했지만.
19세기의 한 시기 서구에서 여성이 지닌 치유의 재능이 널리 칭송 받은 일이 있었다. 19세기 중엽 러시아를 상대로 해서 오스만터키제국과 프랑스, 영국이 저지른 비참한 크리미아 전쟁에서 영국 여성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전설적 존재가 되었다. 리튼 스트레이너가 그의 저서 ‘엘리자베스왕조의 걸물 전’에서 나이팅게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그의 동정심은 죽어가는 사람의 고뇌를 덜게 해주고,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사람에게는 잊어버렸던 생명의 매력을 되새기도록 했다. 남성들 간에는 그녀를 향한 정열적인 우상숭배가 번졌다. 남성들은 지나가는 그녀의 그림자에 대고 입맞춤을 했다.”
미국 남북전쟁 시 북군을 위해 간호부를 조직한 클라라 버튼도 ‘전장의 천사’ 라는 칭송을 받았다.
미국은 잠시 동안 여의사 육성의 우두머리를 차지하였다. 확대해 가는 도시에 남성이아 여성이 쇄도해 들어왔다. 1870년대, 의료서비스 전문직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여 수많은 의학부가 여학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전반에 여성을 수용하고 있던 많은 의료시설이 재정난으로 폐쇄되고, 의료세계에서 여성의 역할이 축소했다. 몇 개 여자대학이 폐교를 하고, 친척에 대한 우대를 금하는 새로운 규정이 배우자와 더불어 남녀공학 대학에 입학하려는 여성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제2차 대전 후 가정에 머물러 육아에 전념하는 것이 고학력 여성들 사이에서도 유행했다. 의학을 추구하는 미국인 여성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그 결과 1950년에는 여의사의 비율이 1900년보다 낮았다. 그러나 그 후 수십 년에 페미니스트운동이 일어나, 차별철폐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많은 여성들의 단호한 의지가 교육계에 회오리를 일으켰다. 여성들이 대학에, 그리고 사람을 치유하는 여러 가지 직업에 몰려 들이닥쳤다.
여성의 의료분야 진출;
미국여성들은 이제는 그와 같은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각오를 다지고 있다. 1995년 미국의 등록간호사와 유자격 임상간호사의 95%를 여성이 점하였다. 90년대 중간에 가서는 언어치료사, 프로 치료사, 영양사의 90%이상이 여성이었다. 리학요법사(理學療法士)의 75%, 약제사 36%가 여성이어서, 80년대의 23%에 비해 엄청난 증가이다. 건강진단에 종사하는 자의 36%가 여성이어서 이것도 1980년의 12%의 3배이다. 그에 더해 재가간호에 종사하는 자의 79%가 여성이다.
여성은 보다 보수가 높고 권위가 있는 분야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여성치과의사가 1960년엔 불과 1% 미만 이었으나 90년에는 15.4%로 불어나고, 95년에는 의학부 학생의 37%가 여성이었다. 90년 검안사의 14%가 여성인데, 10년 전인 80년에는 8%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 주목할 것은 1960년 미국에서 여의사가 불과 5.5%였는데 79년에서 90년 사이에 무려 310%로 증가한 것이다. 1990년에는 여의사가 25.5%를 점하게 되고, 90년대 중간에는 의학생의 45%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여성은 사람의 몸을 고치는 전문직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하고 피할 수 없는 진출을 하고 있다. 이것 역시 1백만 년 전에 그들이 종사하고 있었던 직업으로 되돌아 간 셈이다. 여성들에게는 천부의 재능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감정표현력이라는 위대한 재능이다. 우선 여성이 가지고 태어난 훌륭하고 눈부신 ‘마음’의 특징을 알아보자.
여성의 뛰어난 감정표현력;
감정은 뇌를 움직이는 용광로이다. 뇌 안에 있는 화학물질의 충동으로 사람은 물에 빠진 아이를 구조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일에 만족감을 느낀다. 분노, 자랑, 신앙심, 부러움, 애국심, 억울함, 환희. 이와 같은 감정들은 강력하고 때로는 압도적인 파도가 되어 뇌에 범람하여 모든 생각을 물들인다. 감정은 부단히 들락날락한다. 피아노의 한정된 건반에서 무한한 멜로디를 연주해 내듯 감정을 낳는 기본적인 뇌내화학물질(腦內化學物質)에는 무한한 조합 성이 있어서 미묘하게 서로 다른 슬픔이나 미움, 혐오, 공포, 불안, 기쁨 등을 쏟아낸다.
남성이나 여성은 믿기지 않을 만큼 온갖 감정을 갖고 있다. 남녀가 다 같이 격하게, 또는 집요하게 느낀다. 그러나 그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은 특히 여성이 더 많은 혜택을 입었다. 여성이 감정적이란 것은 세계적 현상인 것 같다. 남녀 간 어느 쪽이 더 감정적인가라는 조사를 22개의 사회에서 실시한 갤럽의 세론조사담당자는 “온 세계의 사회에서 남성보다도 여성에게 더 알맞다고 의견일치를 본 것이 바로 이 항목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인 88%가 여성 쪽이 감정적이라고 생각하며, 프랑스인 74%, 중국인 72%도 그렇게 생각한다.
남성은 항상 격한 감정을 표현한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여성보다는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고 개방적이지도 않다. 우울한 상태가 되면 남성은 농담으로 흘려보내고, 술을 마시거나, 그냥 침묵을 지키거나 하기 일쑤다.
여성은 불안이나 두려움, 슬픔을 더 많이 입 밖으로 내뱉는다.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감정을 ‘내재화’한다. 감정을 자기 자신의 안에다 감춘다. 실제로 남성은 감정을 억제하는 높은 능력을 갖고 있다. 나는 이것을 ‘감정봉쇄’라고 말한다.
여성의 공감능력;
옛날부터 시인, 극작가, 철학자들이 다분히 경멸을 보태고서 여성은 감정적이라고 지적해 왔다. 그와 같은 경멸은 오늘도 잘 나타난다. 예를 들면, 1995년 프로디지라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해 14,070명 미국인의 의견을 물은 조사에서 대상이 된 남성 65%가 여성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답했다. 여서인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많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연극이나 오페라, 영화, 퍼레이드, 교회의식, 감동적인 인간적 장면 같은 것에 쉽게 마음이 움직인다. 무언가가 뇌 속에서 일어나,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만다.여성의 감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턱대고 넘쳐난다. 그래도 이 여성의 감정표현은 인류의 가장 훌륭한 자질을 진화시킨 자연선택의 부산물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 자질이란 공감, 즉 타자의 감정을 내 것인 양 체험하는 힘이다.
공감이나 감정적 민감성, 자애로움, 애정 등에 관한 100개 남짓한 테스트에서, 여자 어린이로부터 80세 노부인까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득점을 보이고 있다. 소녀들은 인형을 가슴에 안고 귀여워하며, 인간의 모조품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다. 놀 때에도 소녀들은 소년들보다 더 서로를 배려한다. 심리학자는 이런 것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통해, 항상 여성 쪽이 자비와 사랑이 있는 성이라고 알려지고 있으며, 남성보다 훨씬 더 유약자나 병자, 약자에 대한 친밀한 간호에 종사해 왔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여성이 지나치게 자기희생적이라고 생각해 여성을 ‘도덕적 마조히스트’라고 말했다. 남성 쪽이 용감하고 지적이라고 완고하게 주장한 찰스 다윈조차도 공감하는 힘은 여성 쪽이 우세하다고 인정했다. 그는 여성이 남성과 다른 점이 “조로 훨씬 부드럽고 이기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썼다.
온ㄹ날 과학자들은 여성의 감정적 표현과 공감의 깊이에 있는 생물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1996년 국립정신위생연구소의 정신과의사 마크 조지와 그의 동료가 남녀 각 10명을 뇌의 화상진단장치(畵像診斷裝置)에 걸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이별, 질병, 직업상의 좌절 등 슬픈 일을 회상해 줄 것을 요구했다. 피험자가 과거와 현재의 괴롭고 슬픈 체험을 기억해 내고 있는 동안 조지는 뇌의 감정과 사고의 중추 활동을 기록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슬픈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여성의 뇌가 남성의 8 곱절이나 격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깊이 슬픔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의 뇌가 잘 통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신경학자 안 오만과 존 모리스, 레이 드란 등이 발견한 결과이다.
그들은 피험자를 뇌의 화상진단장치에 걸어, 이번에는 화를 내고 있는 얼굴을 찍은 슬라이드를 보게 했다. 슬라이드를 본 피험자가 그것이 화를 낸 표정임을 인식하면, 좌반구의 편도핵(扁桃核)이 활성화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는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짧은 시간만큼 슬라이드를 보였더니, 우반구의 편도핵이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연구자들은 우반구 편도핵은 무의식의 감정을 낳으나, 좌반구 편도핵은 뇌가 감정적 반응을 파악하고 의식적인 기분으로 전환할 때에 활동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우반구 편도핵은 좌반구 편도핵과 직접적으로는 결합하고 있지 않다. 연결은 돼 있어도 네트워크는 외돌고 있다. 여성의 뇌 쪽이 잘 통합돼 있어서 우반구와 좌반구의 편도핵의 연결이 강한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무의식 감정도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울한 겨울, 가슴이 설레는 봄;
마크 조지는 여성이 남성보다 깊은 감정을 더 잘 체험한다는 것을 보고한 심리학자들 중 한 사람이다. 나는 아직 그의 의견에 찬성하느냐를 결정하지 않았다. 슬픈 일을 생각할 때 여성의 뇌가 활발해 진다. 그러나 뇌의 활동범위가 넓다 해서 감정이 깊다든가 복잡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건 어렵다. 그러나 여성 쪽이 항상 자신의 감정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여성 쪽이 남성보다 배나 울증을 느낀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돼 있다.
그러한 통계의 의미에 대해 정신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뉘어져 있다. 여성 쪽이 고통을 솔직히 인정하고서 도움을 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성 쪽이 직업 경력의 막힘이나 사회적인 괴로움을 경험하는 일이 많고, 그 때문에 우울해 진다는 사람들도 있다. 또는 우울증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 자체 때문에 여성 쪽이 남성보다 더 많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그에 따르면 보건문제 전문가가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중독, 살인, 홈리스 등도 우울이라고 뜻매김을 한다면 오히려 남성 쪽이 여성보다 많아질 것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론은 있을망정,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한국, 레바논, 뉴질랜드, 아메리카 등 10수 개 나라에서 행한 조사에서 고전적인 정의에 따른 병적 우울 상태 증상을 나타내는 것은 남성보다 여성 쪽이 더 많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그것도 특히 봄에 많이 나타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T. S. 엘리오트는 썼다. 정신병원 입원환자가 가장 많이 붇는 달이 2월, 3월, 4월로, 대부분의 환자가 여성이다. 또한 봄이 되면 마음이 산란해 지는 증상도 여성이 더 많다. 여성 쪽이 빛과 어둠의 계절적인 병화에 민감하다. 요컨대 여성 쪽이 밝은 기분이나 부정적인 기분이나 (분노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에서 남성보다 더 신하게, 그리고 빈번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감정의 발현은 유아기에 시작한다. 심리학자 마틴 호프만이 행한 고전적 실험에서 생후 1개월 영아에게 동물 울음소리나 단조로운 컴퓨터 합성 언어, 다른 영아의 슬픈 울음소리 등 여러 가지 음을 들려주었다. 다른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모든 영아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에도 여아들이 더 심했다.
“쨈을 즐기는 것처럼 감정도 즐기는 편이 더 건강하다.”라고 G. 체스터튼이 쓰고 있다. 아마도 이것에 대부분 여성은 찬성할 것이다. 여성은 곧잘 감정을 표현할 뿐 아니라 정확히 나타낸다. 기쁨이건 혐오나 공포이건, 놀라움이건 여성 쪽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비언어적인 신호, 특히 표정으로 정확히 나타내는 데에 뛰어나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얼굴이 남성보다 표정이 풍부하다.
자연은 여성이 공감하고, 그것을 나타내게끔, 그리고도 그것을 빈번히, 명확하게 표현하도록 창조한 것이다.
공감하는 힘의 변화;
왜 여성이, 어떻게 해서 감정표현이 풍부해지고 공감하는 능력을 진화시켜 왔을까? 상상하기 그다지 어렵지 않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유아를 돌보는 미국 어머니들은 적어도 1분간에 한 번은 아이의 울음이나 환성에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기뻐서 꿀꿀거리는 소리를 내면 엄마도 같이 소리를 낸다. 따로 아이의 흉내를 내는 게 아니고, 엄마가 네 기분을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엄마는 아이의 감정을 긍정하고 자신의 감정을 아이의 감정에 맞춰준다. 이것을 ‘잠정적 동조’라 한다.
원시시대 여성도 어린 것들의 기분을 긍정하고 맞춰 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몸이 아픈, 또는 불행한 아이를 보면 자기 자신도 마음이 언짢아지는 어머니는 그 아이의 원기를 회복시키려고 여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그런 엄마의 아이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아이와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어머니는 적응력이 높은 아이를 길러냈을 것이다. 그 아이 자신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그렇게 해서 슬픔이나 불쌍히 여김, 공감, 동정과 같은 자비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높은 여성으로 선택돼 왔다.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건강한 어머니는 아이를 안거나, 눈여겨보거나, 말을 걸거나, 마음을 쓰면서 아이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아이에 대해 완전히 잊은 일은 없다는 여성이 많다.
모든 여성이 높은 공감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남성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는 생각도 아니다. 다만 이 세상 어디서나, 어느 문화권에서도 어린이를 돌보는 것은 여성 쪽이 훨씬 많다. 옛날부터 그랬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영장류의 거의 다가 암컷이 새끼를 돌보고 있다.
어린이가 쑥쑥 자라도록 여성은 풍부한 감정을 지니고 있고, 공감을 나타낼 힘을 진화시켜 온 것이다.
공감을 일으키는 화학;
유대인의 속담에 “하느님이 모든 곳에 가거나 있을 수가 없어서 자신을 대신할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자연이 어머니를 만들었다. 여성의 자비와 사랑은 어느 종류의 영장류에게도 공통인 여러 가지 화학물질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를테면 모든 포유류는 출산 시 에스트로겐 수준이 높아지고 어미다운 행동의 방아쇠 구실을 한다. 어미는 갓 난 새끼에게 볼을 대고 비비며, 운반하고, 보호하기 시작한다.
기본적인 뇌내화학물질인 오키시토신도 자애와 관계가 있다. 남녀 공히 이 뇌하수체 호르몬을 갖고 있으나, 포유류 암컷에 특히 많으며 특히 출산 시 증대한다. 오키시토신 분비가 높아지면 진통이 시작하고, 젖이 나오려 한다. 동시에 오키시토신에 의해 에미는 새끼의 모습이나 소리, 냄새 등에 비상하고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어린 새끼를 받아서 핥아주고, 몸을 따스하게 해 주고 젖을 빨릴 준비가 된다.
포유류의 육아에 관련된 특정의 유전자조차도 있다. fosB라는 유전자가 없는 암컷 쥐는 새끼를 모아서 안고 젖을 먹이고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행동을 못한다. 새끼는 굶주리고 얼어 죽는다. Mest라는 유전자도 쥐의 모성적 행동을 촉진시키는 것 같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에우리피데스가 말했다. 이 위대한 시인은 어머니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육아라는 일을 위해 어머니라는 훌륭한 기구를 조성했다. 하나, 공감하는 여성의 힘은 육아 이외의 장소에서도 활용된다. 그것이 현대의 직장이다.
직장에서의 감정;
진화론 창시자 찰스 다윈은 상대방에게 공감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자애를 베푸는 암컷의 감정은 당연히 새끼에 대해서 뿐 아니라 ‘동료 생물에게도 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 여성 대다수는 여성 쪽이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자애심이 풍부하다는 것이나, 여성의 공감하는 힘이 자연으로부터 발하고 있다는 것이나, 그 공감이 동료 간에도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등을 단호히 부정해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와 같은 회의파는 그와 같은 여성적 자질을 인정하면 여성이 감정적으로 나약해져서 힘든 일을 견디는 강인함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전에는 그녀들의 그와 같은 두려움에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비즈니스맨의 태반은 지나치게 여성적인 감정을 보면 경계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자세가 바뀌고 있다. 고용자나 관리자가 다 같이 몹시 힘든 작업을 여성이 효율적으로 해내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중요한 것은 협력적 팀워크 정신이나 동료와 고객에 대한 공감이 풍부한 자세를 높이 평가하는 관리자가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것이나 모두 여성이 공급할 수 있는 자질이다.
여성의 감정표현력과 공감하는 힘은 의료 분야에서 각별히 중요성을 띄게 되었다. 보다 친절한 간호를 요구하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환자에 대해 사려 깊은 태도를 할 수 있는 인재가 요망되고 있다. 대학의 의학부는 환자와 어떻게 교류하느냐, 어떻게 귀를 기울이느냐를 학생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즉, 관심과 공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라는 것이다. 여성의 태반은 원래 그와 같은 재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여성이 존래 가지고 있는 감정표현력과 공감하는 힘도, 또 다른 하나의 자질이 없다면, 간병의 장소에서나 사무실에서나 거의 현실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그 자질은 인내력이다.
여성은 인내력이 강하다;
어느 연령층 여성이라도 남성보다는 인내력이라는 선물을 더 받고 있다. 평균적으로 미국의 소녀들이 소년들보다 관심 지속시간이 길다. 서녀들은 작은 일에 충분한 시간을 내어서 일단 시작한 일은 관철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사무실에서도 인내력이 강하다. 지식시장에 투자할 때조차도 여성 쪽이 참을성이 높다.
이 인내라는 여성의 자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1996년 갤럽이 실시한 젠더(성)에 대한 조사에서 22개 사회의 남녀에게 남성과 여성의 어느 편이 더 인내력이 강하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었는데, 여성이 강하다는 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암컷이 인내력이 강하다는 경향은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침팬지에서도 나타난다. 암컷인 나미침팬지는 나무 열매를 쪼개든가 벌레를 모은다던가 하는 단조롭고 일손이 많이 가는 일에서 수컷의 3곱 가까운 시간을 소비한다.
포유류는 모두 수컷보다는 암컷이 육아에 힘을 쏟는다. 새끼를 키우는 데에는 끈기와 관용,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침팬지이건 쥐이건, 여우이건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인간의 여성도 다른 포유류의 암컷들과 같이 이 자질을 나누어 갖고 있는 것 같다.
진화 과정에서 인내가 자연선택의 길을 걸은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을까. 인내와는 대극선 상에 있는 충동성은 포유류의 뇌에 있는 기본적인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낮은 수준인 것과 관련이 있다. 남성의 경우 적어도 감정과 관계가 있는 뇌의 영역의 하나로서 세로토닌의 수용기의 수가 여성보다 적다. 여성 쪽이 인내에 필요한 생리기구가 발달한 것 같다. “인내가 있으면 힘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은 18세기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바크가 기술한 것이다. 인내 그 자체가 힘이라고 보태도 좋을 것 같다. 여성의 걸출한 끈기는 여러 직장에서 힘이 될 것이다. 특히 의료분야에서 그렇다.
여성의 뛰어난 손놀림의 능력:
공감, 인내. 그 밖에도 사람을 치유하는 직업에 진출함에 유리한, 또 하나의 여성 특유의 육체적인 자질이 있으니, 그것은 세밀한 작업에 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첫째 여성의 손가락이 가늘고 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상 여성의 손놀림이 뛰어나다는 것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하고도 관련이 있다. 세밀한 작업을 하는 능력은 월경 주기 중 에스트로겐이 절정에 달할 때에 높다. 이를테면 에스트로겐 분비가 많을 때엔 여성은 핀을 구멍에 넣는 따위 작업 능력이 높아진다. 폐경 후 여성이라도 에스트로겐 보완주사를 맞으면 세밀한 작업 능률이 오른다.
운동능력을 세밀히 컨트롤하는 능력은 여성의 뇌구조와도 관계가 있을 성 싶다. 여성의 경우 팔이나 손의 복잡한 움직임을 지배하는 영역은 뇌의 좌반구의 앞쪽, 전신의 근육의 움직임을 지령하는 중추부분인 운동야(運動野)에 가까이 있다. 남성이라면 같은 영역이 좌반구의 훨씬 뒤쪽에 있다. 심리학자는 이 위치관계 덕분에 여성 쪽이 세밀하게, 정확하게 손을 움직일 수 있지 아니한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성의 세밀한 작업 능력이 진화의 역사의 멀고 먼 옛날에 발달한 것은 틀림이 없다. 침팬지는 흰개미를 ‘낚을’ 때, 뛰어난 움직임을 나타낸다. 첫째로 가늘고 긴 나뭇가지를 흰개미 집에 쑤셔 넣는다. 다음에는 그 작은 가늘고 긴 나뭇가지를 배배 틀어 꾀이면서 개미가 떼지어 그 가지를 공격하게끔 유도한다. 그와 같은 인내가 요구되는 세세한 작업은 암컷 쪽이 수컷의 3곱이나 더 잘 해낸다. 침팬지나 오란 우탄의 암컷은 잎이나 잔가지를 수컷보다 더 잘 다룬다. 또 암컷 영장류 쪽이 새끼의 털 손질에 시간을 들이고, 잎사귀나 벌레, 먼지 따위를 새끼의 털에서 찾아 뽑아 내어준다.
사람도 서로서로 상대방의 옷입새 마무리를 해 준다. 슈퍼마켓의 입구에서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중 앞 사람의 윗도리에 실밥이 붙어 있는 것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떼 주겠다는 생각을 눌러버릴 수 있었을까? 남성과 여성 중 어떤 쪽이 더 남의 옷에 관심을 갖는가를 연구한 것은 아마 아직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 쪽이 어린 아이의 옷 입히는 데 애를 써 왔기 때문에 사회적인 옷 입음새에 신경을 서로 써 주는 것도 여성 쪽이 많을 것이다.
나무 위에서 살던 우리 조상의 여성은 오랜 동안 침팬지들처럼 만지거나 꼬집거나 하면서 털 손짓을 해 온 결과 아주 작은 물건을 잘 다루게 되었을 갓일까. 지상으로 내려온 원시시대 여성은 몇 시간이나, 몇 십 년에 걸쳐 아주 작은 종자나 딸기 종류를 모아 애기를 깨끗하게 돌보면서, 친구들의 옷매무새를 돕는 것으로 이 세밀한 작업능력을 구축해 왔을 것인가?
세밀한 작업에 적합한 여성 특유의 뇌구조가 존재하며, 에스트로겐과 세밀한 작업능력이 관련된 것으로 미루어 여성은 수백만 년 동안에 꾸준히 세세한 것들을 다루어 왔음이 틀림없다. 이전에는 그 능력을 가지고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고 돌봐 왔다. 지금은 그 능력을 복잡한 외과수술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남성은 엔지니어가 적성:
남성은 대체적으로 세밀한 작업이 서툴다. 남성에게 네크리스(necklace)를 좀 달아달라고 부탁해 보면 알 것이다. 아마 5분쯤은 악전고투를 할 것이다. “남자는 교량을 건축하거나 사막에 철도를 건설하거나 하지만, 옷에 단추를 다는 따위 일과 격투해서 성공하리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저널리스트인 헤이우드 브라운은 말한다. 이 결론에도 일말의 진실이 있을 것 같다. 남성은 대체로 세밀하고 정확한 일이 아닌, 체력을 요하는 어려운 작업에 적성이다.
봄이 되어서 제 아버지가 저에게 야구를 보고 하신 말에 따른다면 ‘공굴리기’, 곧 야구의 계절이 시작되면 남성의 체질적 특질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게 된다. 평균적으로 남성은 던진다, 받는다, 찬다, 달린다, 뛴다와 같은 ‘큰’ 신체운동이 제격이다. 그와 같은 기술은 남성 특유의 뇌구조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연결돼 있다. 아마 수백만 년이나 사냥감을 뒤쫓아 몸을 숨기도 가까이 가서 포위하고서 살해해 언 경험에서 생겼을 것이리라.
그와 같은 남성의 운동능력이 오늘의 직장에서 압도적으로 성공하려고 하는 데스크워크에서는 어떻게 유리할까. 상상하기가 어렵다, 의사나 치과의, 사람의 병을 고치는 직업에는 별로 유익하지 않는 것은 확실할 것이다. 예외적으로 손재주가 있는 남성만이, 이를테면 외과의로서 성공한다. 그러나 21세기의 의료계에서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뺄 수 없는 능력이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것은 뛰어난 공간적 인식력이다. 일발적으로 공간적 능력과 기계적인 재능은 남성 쪽이 훨씬 우수하다.
사내아이들은 일찌감치 공간적 능력을 발휘한다. 여아보다 남아가 텔러비전 화면에 점멸하는 빛을 잘 쫓아갈 수 있다. 남아는 움직이는 물체의 궤도를 예상하는 데 능하다. 자동차나 블록, 열차 등, 움직이거나 쌓거나 하면서 노는 장난감을 즐긴다. 게임센터에 모여서 일렉트로닉스의 먹잇감을 공격하면서 논다. 컴퓨터에 관해 말하자면 여아들도 잘 사용하지만, 홀랑 빠져드는 쪽은 사내아이다. 10세쯤 되면 종이를 오려서 만드는 패턴을 예상하거나 같은 물체를 다소간 각도를 바꿔서 그린 그림을 골라내는 것 따위는 대체적으로 사내아이가 더 나은 것 같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뇌에 테스토스테론이 넘치게 되면 기하나 기계적인 제도나, 그 밖의 공간적 작업에서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성보다 앞서기 시작한다.
13세에서 22세까지의 15만 명 이상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33년간에 걸쳐 행하여진 조사에서는 과학, 수학, 기계적 추론, 공학 등에서 톱 5%에서 10%의 성적을 따는 것은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았다.
남성의 공간적 자질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뚜렷하다. 일본과 그 밖의 수 개 국 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와 있다. 공간적 능력은 남성의 상표이다.
테스토스테론과 공간적인 능력;
과학자는 공간적 능력이 우수한 뇌구조가 태아 때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태내에서 좌우 비대칭인 남성의 뇌를 만들도록 공간적인 능력을 낳는다. 다음은 신체의 테스토스테론의 수준이 남성의 뛰어난 공간적 인식능력을 계속 지탱해 준다.
테스토스테론과 공간적 능력 관계를 나타내는 예는 많다. 건강한 고령 남성이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으면 공간적 능력이 향상한다. 여성이라면 월경 전후에 에스트로겐의 수준이 저하하고 테스토스테론의 활동을 상쇄할 수 없게 되면, 주차장에서 차를 찾는 따위의 공간적 능력이 높아진다, 에스트로겐 보충요법을 받고 있는 중년여성은 복약을 멈추고 몸 안의 테스토스테론이 충분히 활동하고 있을 때 쪽이 공간적 작업을 더 잘 된다. 테스토스테론과 남성의 공간적 능력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너무 많거나 너무 적어도 공간적 능력은 저해된다. 더욱이 에스트로겐도 공간적 능력에 큰 작용을 한다. 그래도 테스토스테론은 여러 공간적 능력과 관련일 갖고 있으며, 이 호르몬은 남성 쪽이 훨씬 많다.
100만 년 전 남성은 공간적 능력으로 야생동물을 쫓았다. 1만 년 전 남성은 하늘을 날르는 새를 활로 쏘았다. 과거 수백 년간 남성은 공간적 능력과 기계적인 재능으로 세계를 전화선으로 연결하고, 라디오나 TV로 삶에 활력을 넣고, 달 표면을 걸었다. 남성은 앞으로도 복잡한 컴퓨터나 하이테크 의료기기를 설계하고 조작할 것이다.
남성은 기술능력이 뛰어나고, 서열에 미련을 갖기 때문에 남성 의사는 가장 권위가 높은 전문 의료의 최고봉의 일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병원, 보건시설, 의료보험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건 남성이다. 1995년 현재 의학부장이나 각 과의 톱 95%는 남성이었다. 금후도 남성은 많은 의학 분야를 통해 금전적인 보수의 많은 지위를 보존해 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사고방식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하고 있다. 이전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질병과 회복을 생각하자는 경향이다. 공감하는 힘과 인내, 손재주의 뛰어남, 대인관계의 재주, 뛰어난 언어능력, 전체적인 맥락을 배려한 사물에 대한 관찰력을 갖는 자질을 갖춘 여성이 사람을 치유하는 직업의 여러 분야에서 힘 있는 존재감을 획득할 것이다. 그리고서 사람을 치유하는 기술에 변화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그와 같은 경향은 이미 시작되었다.
어떻게 치유하는가? 여의사가 선택하는 방법;
‘효율적 의료경영(Managed Care)'의 압력이 걸려 있지 않은 경우에는 1시간당 환자수가 여의사 쪽이 적다.1992년 여의사는 평균 1주간에 97명의 환자를 진찰했으나 남의사는 117명이었다. 여의사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의 환자에게 시간을 들이는 것을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의사와 환자 간 서로 말을 하거나 듣거나 하는 시간이 전체적 치료 과정에 불가결이라는 생각이다.
진료하는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에서도 그와 같은 젠더(성)의 차이가 보인다. 여의사 쪽은 환자에게 잘 말을 걸어 많이 질문도 하고 답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상대가 남성이건 여성이건 환자와 보내는 시간이 길다. 환자와의 관계에 대해 의사들에게 조언하고 있는 컨설턴트인 이번느 마트 폭스는 “남자의사에게는 될 수 있는 한 환자와의 긴밀한 관계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여의사 쪽이 훨씬 낫습니다.”라고 말한다.
누구나가 의사에게 자애로운 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남성들 중에는 문제만 해결해 준다면 됐다고 하며 진찰실을 찾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의사라는 전문가에게 감정적인 유대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남녀가 여의사에게서 진찰을 받은 편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여성이 주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돌봄이 좋은 것이다.
남녀불문하고 환자는 중대한 수술을 해야 할 때에는 반드시 자비로운 접촉을 구한다. 캐리포르니아 대학 로산젤스 학교의 전 임상의학 교수이며 외과의인 수잔 러브는 수술실에서 마취가 시작될 때엔 항상 환자의 손을 잡는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그리고선, 내가 수술을 한 남성 환자들은 전원이 여성 환자들과 똑 같이 당장 내 손을 힘 있게 쥐어 줍니다요.”
1994년의 세론조사에서는 의학생은 남성 의사보다 여의사 쪽이 ‘더 섬세하고 사려 깊고 헌신적이다’라고 답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 의학부 교수 앤서니 코마로프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남성의사는 곧잘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취하나, 여성은 그 보다는 병을 고치려는 치료사가 된다.”
여성에게 있는 치유의 재능 일부는, 귀 기울이고, 말을 걸고, 접촉하고, 공감하고, 가엽게 여기는 힘이다. 그것들은 역사의 심부로부터 여성에게 전해 온 능력이다.
당연히 여성은 의학 분야에서도 다른 경력을 선택한다. 그녀들의 선택은 진화 과정에서 이어받은 유산과 치료에 대한 자세를 반영하고 있다.
여성은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가정의 등, 전문성은 낮으나, 직접적이고 충분한 치료가 요구되는 분야에 이끌린다. 남성은 어느 편인가 하면, 심장외과, 심장학, 방사선과, 마취학, 병리학 등 하이테크 전문분에를 선호한다. 공간적 능력과 미캐니컬한 능력이 요구되며, 환자와의 관계는 짧고 얕은 영역이다.
또한 남성보다 여성이 팀을 짜고 하는 치료에 관심이 높다. 의료 현장의 변하에 따라 홀로 개업하던 의사들도 그룹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병원이나 보건시설에서 일하고 그룹 치료에 참가하는 율은 여성이 2배나 높다. 자기 혼자만으로 치료를 하는 것은 남성이 많다. 이것 역시 평등한 동아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여성의 천성에서 온 것일는지 모른다.
여의사가 팀워크에 의한 치료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대체로 질병의 좁은 증상 뿐 아니라
환자 그 자체의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시는 바와 같이 여성은 어떤 문제에 관해서도 넓은 문맥(맥락)에 따른 접근방법을 쓰는 데 대해, 남성은 구획화(區劃化)하고 일시에 하나의 요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여성 쪽이 치료에 있어 총합적인 방식을 갖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간호 실천자;
여성 팀의 선구자 중 하나가 고도의 훈련을 받은 4명의 간호원이 1997년 뉴욕에서 시작한 ‘초기의료시설’일 것이다.
목이 아프다, 배가 아프다, 놀이터에서 살을 베이거나 긁혔다, 부엌에서 다쳤다, 천식 발작이 일어났다는 등 사소한 질병이나 만성 질환을 의사와 같이 치료하고, 보다 복잡한 증상 환자는 전문의나 병원에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 자격을 갖는 간호사들은 대부분의 의사들보다도 더 긴 시간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본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많은 간호사가 그러듯이 그녀들도 테크놀로지 우선인 남성의사가 추천하는 고비용 치료보다는 식사나 운동 지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현재의 경제정세 하에서는 그와 같은 간호사 팀의 의료시설이 점점 더 불어날 것이다. 의료나 간호의 제공자, 특히 보건시설이나 병원으로부터 독립된 간호사 사업을 비용절감, 효율향상의 한 방법으로 보고 있다. ‘고령자용 의료보장제도(메디케어, Medicare)’도 저소득자. ‘신체장해자 의료보조제도(메디케이드, Medicade)’도 민간보험회사까지도, 통상적으로는 의사가 지배하고 있는 영역에까지 사업을 확대하려고 하는 간호사들을 지원하려고 나서고 있다. 현재 25개 이상의 주가 고도의 훈련을 받은 간호사가 의사의 감독 없이 일부분 의료 활동을 인정하고 있다. 일리노이 주를 제외한 그들 주에서는 간호사가 여러 가지 약을 처방할 수가 있다.
세계의 전통적 사회에서 여성의 전문기능이었던 간호가 서서히 그 구실을 넓혀가고 있다. 그와 같은 경향이 미국 의료분야에서 여성의 세력을 더욱 더 강하게 할 것은 틀림없다. 실상 일부 인구통계학자는 미국에서는 머지 않아 의사가 넘쳐나게 되면서 고도의 기능을 몸에 익힌, 존경받는 간호사의 수가 부족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환자 그 자체를 치유한다;
사람을 치유하는 전문가들은 이제 겨유 질병의 사회적, 심리적 요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사회적인 고립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장병이나 암, 울병, 그 밖의 병과 고독과를 관련시키는 연구는 수백 개나 있다. 경험이나 감정을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상대가 없는 고령 남녀는, 상대가 있는 사람에 비해 갑절이나 병에 걸리기 쉽다. 또, 사회적 고립은 끽연이나 비만, 운동부족과 마찬가지로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연구도 있다. 이를테면 캘리포르니아 주에서 10년에 걸쳐 행한 조사에서 사회적 접촉이 빈약한 사람들은 충분히 사회에 참여해 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3배나 사망률이 높았다.
그와 같은 지적을 받고 노년학자나 그 밖의 의사들은 놁음이나 질병을 늦추는 방법으로서 환자에게 충분한 사회참가를 권하게 되었다.
의료관련의 그 분야에서 많은 일이 발생할 것 같다. 세계의 태반에서 고령화가 진행하고 있다. 선진국은 어느 나라나 신생아의 수가 줄고 있으며, 수명은 길어지고 있다. 2015년이면 세계 인구의 대략 2할이 65세 이상이 될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고령자는 자택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정치가는 이 방대한 유권자 층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화란, 스칸디나비아, 아메리카 등은 그런 점에서 앞서 가고 있으며 허약자나 고령자에게 주택과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제공하는 서비스 중에는 운동이나 댄스, 극 보이기, 24시간체제의 간호 등이 포함돼 있다.
‘간호 딸린 주택’이 앞날의 유행이다. 10년 전에는 병자나 고령자에게 주택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전체 매상액이 연간 13억 달러였다. 현재는 85억 달러에 달한다. 2020년에는 재택간호서비스가 200억 달러 산업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런 서비스는 건강관리 뿐 아니라 고객의 사회적인 필요와 게인적 필요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건강복지센터’도 번성하고 있다. 이들 시설은 최신식 운동설비, 식사에 관한 도움말, 모든 연령층에 맞춘 치료를 행하는 의료전문가 등을 갖추고 있다. 목적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고 건강하고 힘찬 인생이다. 인구퐁계학자의 보고에 따르자면 그와 같은 시설 대부분은 병원이나 그 밖의 보건개호사업자에 의해 운영될 것이란다. 창조력이 있는 기업가는 식사 개선 지도와 운동을, 명상이나 정신적 실천을 조합한 라이프스타일 센터를 설립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와 같은 의료관계의 사회적 필요성은 모두를 제공할 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대다수가 여성이 아니겠는가?! 여성들은 공감과 친절한 간호, 질병과 건강에 대한 총합적인 것에 대한 관점을 허약자, 병자, 그리고 병을 예방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다.
보완적 의료(대체의료를 대신해 쓰이는 용어)의 등장;
여성의 관심과 치료의 기술에 맞는 현재의 여러 가지 흐름 속에서도 특히 넓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대체의료에 대한 사람들의 자세의 변화이다.
‘세계 최고의 의사는 닥터 다이어트(Diet,식사), 닥터 콰이어트(Quiet,조용), 닥터 메리맨(Merryman,기쁨)이다.’라고 조나탄 스위프트는 말하고 있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미국인이 날로 붇고 있다. 전 세계의 셔먼(Sherman)이 적어도 3만 년부터 알고 있던 것을 이제야 겨우 이해하게 되었다---곧 마음과 몸이 하나라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서구의 의사들이 비인간적이며 조급하게 서둘고, 높은 수준의 기술만을 중시하고, 고액의 치료비를 받으며, 환자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의 엔진의 고장 난 부분을 고치는 것과 같은 의료행위를 해 왔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환자가 대체의료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고 있다.
몸에 열이 나거나하면 병원에 가기보다는 약초를 찾고, 머리가 아플 때에도 약초에 의존하는 따위다. 이렇게 미국인 다수가 질병이나 그 밖의 신체적인 문제를 종래의 의료와는 다른 방법으로 치료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테면 ‘호메오파시(동종/유사 요법, homeopathy)’,
‘네이츄로파시(자연요법, naturopathy)’, 침술, ‘바이오피드백(생체 자기제어. biofeedback)’,
명상, 자기최면, ‘비쥬얼라이제이션(심상 요법, visualization)’, ‘아로마세라피(방향 요법,aromatherapy)’, ‘리플렉솔로지(반사 요법,reflecthology)’, ‘카이로프랙틱(척주 지압 교정 요법, chiropractic)’, 정골 요법, 유기식품 등등.1996년 미국인은 140억 달러를 비근대의료에 지출했다. 1989년에 비해69%나 신장했다.
미국인 3명 중 하나가 어떤 종류인가의 대체 요법을 이용하고 있다. 또 약 40%가 허브(약초, herb)가 암을 포함한 각종 중병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의 자세에 호응하여 현대서양의학 제공자나 지원자들은 조금씩 겸허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의학부의 약 반수가 지금까지는 경멸하고 있던 호메오파시, 침술, 마사지 등에 관한 의론을 교과에 채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다나 캐란 등 대기업은 종업원 건강보험 대상에 비주류파 의료를 인정하고 있다. 옥스퍼드 헬스 플랜 등 보험회사 몇 군데는 침술이나 카이로프랙틱 등 일부 대체의료 치료비에도 보험금을 지불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의사 중 약 60%가 환자에게 대체요법 치료자를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에 까지 변화가 왔다. 지금은 ‘대체의료’ 대신 ‘보완적 의료’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이와 같은 종전과는 다른 치료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힘으로 일어설 것을 촉진하고 힘을 보탠다. 어찌 되던 간에 이제 비타민제나 허브 티, 유기식품, 병에 넣은 음료수 등을 마음대로 거리의 가게에서 살 수 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요가를 하기도 한다. 자택으로 불러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건강 관계 서적을 사고, 집회에 참가하고, 건강식품점이나 인터넷으로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 대체의료에 관해서는 현재 100 이상의 사이트가 있다.
물론 현대서양의료는 심장을 이식하고, 뇌의 화상진단을 행하고, 확실한 효능이 있는 의약품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환자가 병에 걸리게 되는 원인에 대한 잘못된 일상적 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 회복을 방해하는 수술 후의 울 상태를 완화할 수 있는가? 보완적 의료를 추천하고 권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인은 현대의료와 대체의료를 조합해서 병과 싸우는 세계의 전통적인 사회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있다. 현대서양의학의 하나님인 하이테크과학이 자연을 활용한 가정요법이라는 옛 애인과 손을 잡게 되었다. 이 가정요법은 여성의 특기다. 보완적 요법이 성행함에 따라 여성은 치유의 기술 분야에서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여 번영을 누릴 것이 확실하다.
조산부의 부활;
옛날부터 저해 온 조산부업도 지난날의 존경이 되찾아 오고 있다. 식민지시대 미국에서는 조산부가 널리 활약했다. 1900년에는 신생아의 반을 조산부의 손으로 받아내었다. 그러다가 표준적인 의료수준이 오르면서 조산부가 밀려났다. 비합법화 된 주도 생겼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조산부를 다시 인정하는 주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이다. 일부 병원이나 의학부에서는 조산부를 위한 과정을 두고 훈련을 행하고 있다. 산과 훈련을 받아 미국간호사. 조산부 칼리지 자격을 획득한 유자격 등록간호부가 간호부 겸 조산부로 일하는 대체출산 센터를 갖추고 있는 곳도 있다.
지금도 남부 농촌지대, 아파라티아 지방, 그리고 서남부에서는 자주 자격도 없고 정규 교육도 받지 않은 여성이 전통적인 조산부로 활동하고 있다. 교육을 받기는 했어도 자격은 받지 않은 조산부도 붇고 있다. 즉, 합법적이건 비합법적이건 미국 전역에서 여성들이 그 원시시대 이래의 여성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텐 아메리카의 태반에서는 지금도 마을의 조산부가 모든 신생아의 출산에 입회하고 있다.
뉴메키시코 대학의 인류학자 웬다 트레바산은 조산부는 여성의 가장 오래 된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따르면 우리들의 조상 여성은 이 특수한 직업을 갖게 된 것은 인간다운 뇌가 형성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라서 약 200만 년 전쯤이라고 한다. 진화 과정에서 한 사건이 이 여성의 직업을 발달시키게 되었다고 말한다.
먼저 우리 조상이 두 발로 일어서 걷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 획기적인 변화로 인간의 골반이 오늘과 같이 옆으로 폭이 넓어지고 앞뒤가 좁은 모양이 됐다는 것이다. 척추의 말단도 굽고 여성의 산도는 더욱 좁아졌다. 150만 년 전 인간의 뇌가 더욱 발달하면서 영아의 머리가 커지면서 좁혀 진 산도를 술술 빠져나오기가 어려워졌다. 그 때문에 영아가 미숙한 채 태어나야 했으며 형편없이 조산 상태로 태어나게 되었다.
다시 더 뇌가 커지고 두 발 보행에 편의하도록 골반이 변화함으로써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을 때 타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100만 년 전에는 이 중요한 기술을 가진 조산부가 등장했을 것이라고 트레바산은 생각하고 있다.
조산부의 일은 어려웠다. 인간의 신생아는 산도에서 회전하면서 태어난다. 더구나 거의 대부분이 머리부터 자궁을 빠져 나온다. 그래서 특히 초산인 산모는 탯줄이 휘감기지 않도록, 또 얼굴부터 지면에 떨어지지 않도록 누군가의 손으로 도와주어야 했다.
21세기의 셔먼;
모든 형태의 초기의료 분야에 여성이 대량 진출하는 것은 환자에게는 전체적인 의료비라는 측면에서도 환영할 일이다. 파트리샤 브라우스가 ‘아메리칸 데모그래픽’ 잡지에 이런 글을 쓰고 있다. “현재의 추세라면 여의사의 증가로 의료비가 낮아지고,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초기 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증가하고, 의료관행 자체가 변화할 것이다.”
확실히 여성은 사람을 치유하는 기술에 공감과 인내와 정확한 기술, 대인관계 기술, 팀워크 치료에 대한 관심, 질병 뿐 아니라 환자 그 자신의 치료를 겨냥하는 경향, 환자를 사회적. 심리적 필요를 갖는 인간으로 대하는 태도 등을 총동원해 왔다..
그와 같은 여성다운 치유의 자세는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초원에서 우리의 조상이 걸어 다녔던 멀고 먼 그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전통적 사회에서는 이전부터 여성들이 치유의 힘을 활용해 왔다. 머지않아 현대의 서양의학의 많은 분야에서도 여성들이 중요한 자리를 점하게 될 것이다.
틀림없이 수많은 여성이 히포크라테스의 후계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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