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퀀스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연극은 막(Act)과 장(Scine), 즉 몇 막 몇 장 식으로 구성된다. 막이란 스토리 전체에서 가장 큰 내용의 단락을 구분할 때 쓰는 개념이다. 문학에서는 막 대신 장(章 Chapter)을 사용하는데, 연극의 장은 장면(Scine)을 뜻하고 문학의 장은 연극의 막 개념과 동일하다. 한편으로, 문학이나 연극 보다 출발이 늦은 영화의 시나리오는 연극의 막과 문학의 장을 혼용해서 사용한다.
연극의 장(Scine)과 영화의 씬(Scine, 장면)은 동일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사건, 혹은 과정을 말한다. 그런데 연극의 장은 영화의 씬에 비해 공간적 이동 제약이 있기 때문에 한 공간이 등장하면 그 안에 사건이 반드시 존재하게 되고, 그 자체로 이야기의 소단락이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반면에 영화는 연극에 비해 공간이동이 자유롭다. 특히 현대영화는 다양한 영화적 기법과 몽타주와 같은 이미지를 통한 이야기 전달 방법이 있어 씬 자체만으로 이야기의 소단락을 구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연유로 영화는 씬의 상위 개념인 시퀀스라는 용어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시퀀스(sequence)란 몇 개의 씬이 모여 만들어진 일련의 화면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몇 개의 씬이 모여야 시퀀스가 되는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롱테이크(하나의 쇼트가 장시간 진행되는 것)를 사용할 경우 하나의 쇼트는 하나의 시퀀스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을 시퀀스쇼트(쁠랑 세캉스)라고 한다.
다시 정리하면, 한 편의 영화는 최소 단위인 컷과 컷이 모여 씬을 이루고, 다시 씬과 씬이 모여 시퀀스를, 또 시퀀스와 시퀀스는 마지막으로 장(혹은 막)을 이룬다. 여기서 쇼트(Shot)란 카메라의 셔터가 한번 눌렸다가 꺼질 때까지의 단위를 말하는데, 이렇게 촬영된 쇼트는 편집실에서 컷(cut)으로 바뀐다. 따라서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최소 단위는 모두 컷이다. 다음으로 씬(scine, 장면)은 컷과 컷이 모여 만들어진 단위를 뜻하며, 공간과 시간이 달라질 때 씬이 바뀐다고 한다. 씬의 상위개념인 시퀀스(sequence)는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나는 독립적인 구성단위로써 장소, 행동, 시간의 연속성을 가진 몇 개의 씬으로 구성된다. 대개 영화는 연극처럼 세 개의 막(문학은 Chapter)으로 이뤄져있고, 하나의 막은 2~3개의 시퀀스로 구성된다.
2. <밀양>의 파이널 시퀀스 구성
<밀양>의 마지막 시퀀스는 다섯 개의 장면(씬)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장면 : 신애의 퇴원. 둘째 장면 : 종찬과 함께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장원에 들른다. 셋째 장면 :.머리를 자르다말고 뛰쳐나온 신애가 종찬에게 푸념한다. 네째 장면 : 집으로 가기 전에 신애는 근처 가게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다섯째 장면 : 신애가 집마당에서 머리를 자른다. 그렇다면 이 다섯 장면을 하나의 시퀀스로 묶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신애가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장원에 간 것은 그동안의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미장원에서 유괴범의 딸을 우연히 만남으로써, 살인범을 용서하는지 안 하는지를 유추할 수 있고, 이러한 일련의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영화 전체를 마무리하는 파이널 시퀀스 기능 하기 때문이다.
첫째 장면 : 퇴원
신애는 종찬과 함께 온 동생과 퇴원 수속을 끝내고 병원을 나선다. 종찬은 신애의 퇴원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건내준다. 신애의 동생과 헤어진 두 사람은 미장원으로 향한다. 여기까지의 과정만으로도 이미 두 사람의 사이가 어느정도 친밀해졌음을 짐작 할 수 있다.
둘째 장면 : 미장원
신애는 귀가하기 전에 종찬과 함께 미장원에 들른다. 아직 어린아들의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듯 수척한 기색이고, 무표정한 모습만으로는 그녀가 신을 받아들였는지, 유괴범을 용서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미장원에서 신애는 보조미용사로 일하고 있는 유괴범의 딸을 우연히 만난다. 처음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다 시선이 마주친다. 신애가 먼저 말을 건낸다. “잘 있었어? 학교는 어떻게 하구?” 딸이 대답한다. “학교는 때려쳤어요. 그러구 미장원일을 배우게 됐어요” 신애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듣는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갑자기 신애가 벌떡 일어나 미장원 밖으로 뛰쳐나간다.
세째 장면 : 미장원 밖
종찬에게 신애가 푸념한다. “아니, 하필 이런데로 데려왔어요?” 영문을 모르는 종찬은 의아한 표정이다. “미장원이 보이길래 들어온게 아입니꺼. 내사 신애씨가 들어오니 따라들어왔구마요” 그런 종찬으로서는 신애의 느닷없는 행동과 푸념이 황당할뿐이다.
넷째 장면 : 집 근처 가게
언젠가 인테리어를 권유했던 가게 아줌마를 만난다. 아줌마가 먼저 반갑게 말을 건낸다. “병원에 있더니 살이 많이쪘네. 이제 괜찮노”. 그러면서 아줌마는 신애의 조언대로 가게 인테리어를 했다고 자랑한다. 신애는 따라 웃는다. 그러나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다. 순간 신애의 머리를 본 아줌마가 깜짝 놀란다. “머리가 왜 이렇노” 머리를 자르다 마음에 안 들어 나왔다고 하자 “너 미쳤나” 라고 말하던 아줌마가 얼른 입을 가린다. 엉겹결에 나온 말이지만, 이미 신애를 미친여자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섯째 장면 : 집 마당
집에 들어서자 가위와 거울을 들고 마당가에 앉는 신애. 거울을 보며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이 떨어진다. 초라한 마당 귀퉁이. 거울에 비친 신애. 신애의 뒷모습이 번갈아 카메라로 비춰준다. 잠시 후 종찬이 들어서더니 거울을 들어준다. 다시 머리를 자르는 신애. 카메라는 계속해서 머리카락이 떨어진 마당을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햇빛이 한줌 스쳐간다. 다시 카메라는 패닝과 틸트업 다운으로 마당가, 신애, 종찬, 그리고 머리카락을 차례로 훓어간다. 이 부분은 전체 영화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인데, 이창동 감독은 롱테이크 씬으로 처리한다. 대략 3분여에 이르는 롱테이크 장면은 관객 스스로가 화면을 해석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흔히 ‘길게찍기’, ‘오래찍기’ 등으로 번역되는 롱테이크란 ‘긴 테이크’, 즉 카메라가 작동을 멈추지 않고 상당히 오랜 시간을 계속 촬영한 장면이 편집에 의한 조작 없이 영화에 포함된 경우를 가리킨다. 90분 정도의 영화는 평균 6백에서 7백개의 쇼트를 가지기 때문에 한 쇼트의 평균길이가 8~9초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상업영화는 이 수준을 지키지만 감독에 따라 몇 분 단위로 길이를 따져야 할 만큼 비정상적으로 긴 롱테이크를 사용하기도 한다.
통상 5초정도면 스크린이나 영상에서 정보를 획득하기 때문에 영상이 커트 없이 지속될 경우 지루함을 느낀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는 다시 롱테이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스크린에 몰입하게 된다. 즉 정서적 몰입이 아닌 이성적 몰입을 통해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 대표적 예가 6분여간 지속되는 <희생>의 도입부인데, 감독은 관객이 이미지나 줄거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영화를 체험하는 존재, 재해독하는 존재로 이끌어 가기위해 이 장면을 롱테이크로 찍은 거다.
롱테이크 장면을 통해 관객은 여러가지 상황들을 취사선택하며 미루워 짐작 할 수 있고, 보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킬수도 있다. 반면에 롱테이크는 시각적 불만족에서 오는 지루함이라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도 롱테이크의 순기능에 매력을 느끼는 연출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맞는 타이밍과 길이로 그 절제된 사실감의 보존을 위해 이 방법을 선호하는 것이다.
리얼리스트 이창동의 영화들은 소설가출신답게 서사적 구성이 탄탄하다. 스토리 전개나 플롯은 치밀하고 사실적이어서 마치 촘촘히 짠 옷감을 연상케 한다. 리얼리즘 영화들이 흔히 그렇듯 이창동 역시 되도록 비유적인 화면을 배제하고 스토리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시적인 비유를 특징으로 하는 타르코코프스키 스타일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시퀀스는 시적화면 이상으로 은유적, 비유적인 요소가 많고 그만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특히 마지막 3분간의 롱테이크 씬 경우, 관객들은 연출자에 의한 일방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카메라가 포착하는 장면 하나하나를 주목하며 능동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