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월호 8주기를 기억하기 위해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단원고416기억교실, 416민주시민교육원 총 두 곳에 방문했어요
몇 년 전에 안산시에 설치된 416 합동분양소에 가서 추모하고 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은 민주시민교육 자체연수 팀을 꾸려 1박 2일로
합동분양소와 광화문 세월호 416광장에 방문했습니다
유가족 어머니와 아버지 및 보호자분들과 대화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었습니다
이후 교단에서 계기교육을 진행해 오다가 문득,
8주기를 좀더 뜻깊게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416민주시민교육원은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많이 멀었지만, 작년에 개관하고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해서
이번 8주기를 맞아 방문하게 되었어요
기억교실 앞 공간에는 이렇게 세월호와 함께 하는 고래 동상을 볼 수 있어요
세월호의 상징인 노란 리본 이런 작품 하나에도 눈물이 글썽했어요
꼭 기억해야겠다는 다짐 ...
곳곳에서는 세월호와 관련한 여러 작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반 시민분들이나 학생들의 작품도 꽤나 있었습니다
사월홀 안에서는 학생들의 이름이 담긴 노래와 함께 영상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날 것 같아 영상을 다 보진 못 했어요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는 416단원고기억교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이렇게 노란 리본과 수많은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꽃이 그려져 있는 작품도 볼 수 있었습니다
416민주시민교육원 416기억교실 꼭 기억하겠습니다
2층, 3층은 단원고 기억교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교실은 아이들과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편지와 메모들이 쌓였다고 해요
그래서 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사용했던 교실, 책상, 의자, 창문 등을 그대로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 1층에서는 이렇게 세월호 참사를 추모할 수 있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본인이 필요한 정도에 따라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반 아이들에게 나눠줄 리본과 스티커를 개수만큼 가지고 왔습니다
416민주시민교육원 1층에서는 '그날을 쓰다'라는 책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사건 당시에 있었던 유가족, 잠수부 등
여러 관련자분들이 이야기들을 직접 쓰셨고
그 글들을 모아 엮어 만든 책입니다
416민주시민교육원 및 단원고 기억교실을 다 돌아본 후,
근처에 위치한 단원고로 향합니다
기억교실 직원분께서 단원고도 걸어서 갈 수 있다고
한번 방문해 보라고 하셔서 걸어가봤어요
단원고 곳곳에서 세월호 참사 8주기를 기리는 문구와 팻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라 모든 아픔을 다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 함께 기억하고 행동하겠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공감했던 416민주시민교육원
장거리를 달려 갔다왔지만, 정말 많이 배우고 깨달었던 안산시 단원구 기억교실
앞으로도 잊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하겠습니다
연대하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오가는 청해진 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맹골수도)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중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영구 실종된 대한민국의 대형 참사이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역사에 지우기 힘든 아픈 상처로 기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진정한 안전 대한민국을 만든다면
새로운 역사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막중한 책임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하나로 단합해서 위기를
극복한 저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좌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2014년 05월 19일 세월호참사 대국민 담화)
이 사건은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던 한국의 안전 관리 실태와
혼란스러운 사회의 극치 를 보여준 비극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참사로 인해 당시 출범 2년차였던 박근혜 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사회계,
정치계는 모두 엄청난 후폭풍과 침체, 그리고 공황에 시달렸다.
이후 언론, 정계, 경제계, 교육계 그리고 문화계에서 수많은 갈등을
야기한 증폭제 역할을 하는 사건이 되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큰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을 가진 사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하였으며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던 대형 참사였다.
이 참사로 피해 학생이 집중된 경기도 안산시와 저라남도 진도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으며 국민들의 사회적 충격이 매우 컸던 국가 대형 참사 였다.
이 사고 이후 대한민국은 갈등과 분열 등 엄청난 후폭풍이 닥쳤고
대한민국 현대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고였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대한 민국의 해난사고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냈고,
502명이 사망한 삼풍 백화점 붕괴와
269명이 사망한 창경고 침몰사고와 362명이 사망한 남영호침몰사고와
292명이 사망한 서해훼리호침몰사고 이후 5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재난 사고이다.
20세기에 일어난 위의 사건들과 달리 21세기에 일어난
대형 참사이기에 국민들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
이 사고는 전 국민들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결정적으로 깨닫게 했다.
대한민국의 수학여행 사건 사고 중에서는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한 학교의 학년 전체가 참사를 당한 것 또한 최초이다.
이전까지 최대의 참사는 1970년 경서중학교 학생 45명이
사망한 모산수학여행 였다.
태안사설 해병대 캠프탐사 일어난 지 약 9개월 만에 또 다시
학교 단체 캠프에서 사고가 나면서, 태안 때부터 거론되던
수학여행 규제 강화 및 중단이 이 사고를 통해 현실화되었고,
2014년 한 해 동안은 수학여행 및 학교 단체 여행이 금지되거나 자제되는 분위기가 생겼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 서해훼리호침몰사고 , 남영호 침몰사고 같은
대형 재난의 경우 불특정 다수가 피해자인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참사는 안산시 단원고에 있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및
교직원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도중에 발생하면서 사망자의 90%가
같은 학교 소속, 83%가 미성년자였다.
단원고의 주소지인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 현장인 전라남도 진도군은
이 사고 때문에 특별 재난지역으로 지정되었다.
2008년 선박연령 규제 완화로 일본에서는 운항이 금지된 노후
선박인 세월호의 수입 운항 사주인 유병언 일가의 부도덕한 경영,
선사인 청해진 해운의 의 부실한 선박 관리와 안전교육, 이를 방치한 승무원들,
이준석 선장과 항해사의 판단 착오와 늑장 대응, 그리고 그로
인한 시간 지체, 가만히 있으랴 는 비상식적 안내 방송 그리고
정부와 관료의 선진적이지 못한 대처 등 총체적 난국 이었던 최악의 해난 사고이다.
사고 당일, 세월호에는 차량 150여 대와 승무원 29명, 화물 기사
33명을 포함해 총 476명이 탑승해 있었다.
이 중에는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전에 발표된 해운사의 브리핑에서는 탑승자가 477명이라 했지만,
오후 브리핑에서 승선권과 탑승자 명부를 조회한 결과 462명으로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후 23시경 해운사는 475명으로 총 인원수를 정정하였다.
이번엔 CCTV로 탑승자를 일일이 헤아렸다고.
그러다가 4월 18일 오후 10시경에는 476명으로 정정되었다.
외국인은 중국인 2명을 포함하여 총 5명이 탑승했으며,
필린핀 가수 2명은 구조되었으나 중국인 2명과
러시아 출신 학생은 4월21일 수색 작업에서 발견되었다
러시아 출신 학생은 단원고에 재학주이던 유학생인데
주니어 수영선수 출신으로 수영에 아주 능숙했다고 한다
객실에서 대기하라 는 방송이 반복되면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소위 '말 잘듣는 학생들(승객들)'이 죽는
결과가 되어 안타까움과 공분이 더 컸다.
이 방송은 누가, 왜 했는지, 이후 탈출지시는 왜 안했는지 등등이
핵심 쟁점중 하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은 재난사고에서 방송이나
담당자의 말을 불신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오세아 노스호 침몰사고 처럼 선장이 튀었음에도 승객이 전원 구조된
사례를 본 사건과 견주어 보려는 시각도 있으나, 사건의 경위 차이가
상당한 시점에서 섣부른 추측 및 비판은 삼가야만 한다.
첫댓글 8년 지났으면 20대군요
고인의 명목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