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고개
3년 전 겨울에 들머리에서부터 혼란스런 산행을 하다 눈밭에서 고생하며 매봉산에 간신히 오르고, 시간이 늦어 칠절봉은 생각도 못한 채 용대리 자연휴양림으로 허겁지겁 내려온 적이 있었다.
항상 어디에서 어떻게 틀렸었는지 궁굼하기도 했었고 또 진부령에서 향로봉까지 잇지 못했던 백두대간을 칠절봉부터 진부령까지 일부나마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사다리 합동산행에 참가한다.
썩어도준치님의 소형 버스로 설악생수공장을 지나고 정자문으로 꺾어져서 어두원과 서피동으로 갈라지는 도로 삼거리에서 서피동 방향인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전에는 돌밭이었던 황토 길이 포장이 되어있지만 얼마 안 가 개사육하는 농가에서 포장 도로는 끝이 난다.
하루에 차량 통행도 몇대 밖에 없는 이런 오지에 번듯한 포장 도로를 만들어 놓으면 결국은 자연만 망가질덴데 왜 자꾸 길을 내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임도를 꾸불꾸불 올라가면 아름드리 적송들이 많이 보이고,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 안내판이 서있는 말고개로 올라서니 도로는 계곡으로 돌아 내려가고 앞에는 마루금과 동 떨어진 961.9봉이 우뚝 서있다.
▲ 말고개
- 1160봉
참호들이 파여있고 군 진지들이 어지러운 능선을 올라가면 황량한 산길이 이어지고, 양양과 고성 쪽에서 한창 산불을 일으키고있는 봄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며 ,박무는 뿌옇게 끼어있어 시야가 좋지않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3년 전에는 961.9봉에서 이어지는 뚜렷한 능선을 보고는, 말고개까지 오르지도 못한 채 잘못해서 지능선으로 들어왔다고 착각을 하고, 계곡으로 내려가 급 사면을 타고 헬기장으로 되어있는 961.9봉을 올라서 쌓인 눈을 뚫으며 매봉산까지 힙겹게 갔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하기는 상세 지도도 없이 개념도 한장 달랑 들고 덜컥 눈에 들어오는 높은 능선만 마루금으로 착각하고 엉뚱한 산행을 한 격이니 생각할수록 쓴 웃음만 나온다.
3년 동안 마음에 품고있었던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고 낙엽 길을 따라가면 잔나무들이 많이 쓰러져있고 백두대간이라 쓰인 표지기들도 두엇 걸려있다.
봉우리를 왼쪽으로 길게 우회하는 완만한 길을 따라가다 눈 녹은 물이 퀄퀄 흘러내리는 계곡이 가까이 보여 사면을 치고 883봉을 우회해서 다시 능선으로 붙는다.
마른 낙엽 위로 흐릿한 족적이 이어지고 급 사면을 힘겹게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나뭇가지사이로 뾰족한 매봉산과 건너편의 마산이 간간이 모습을 보여준다.
961.9봉으로 능선이 갈라지는 1160m쯤 되는 삼거리봉에 오르니 큰 참호만 파여있고 군인들의 행군로인지 올라온 쪽으로는 흰색 끈으로 막혀있으며 가야할 1246봉이 앞에 높게 솟아있다.
▲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매봉산
- 1246봉
잡목 가지들을 헤치며 잔설이 많이 쌓여있는 능선을 따라가면 암릉들이 자주 나타나고, 왼쪽으로 서화면 천도리일대와 대암산이 희미하게 보이며, 오른쪽으로는 남교리 너머로 울퉁불퉁한 안산과 서북능의 거대한 산괴가 하늘금을 긋는다.
흰색 앙증 맞은 노루귀들을 보며 바위 지대들을 넘고 오래된 헬기장을 지나 암봉으로 되어있는 1246봉에 오르니 오랜만에 매봉산 쪽으로 시야가 트이고, 저항령에서 황철봉을 지나 미시령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와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정강이까지 빠지는 습설을 참다 못해 뒤늦게 스펫츠를 하고, 가파른 낙엽 길을 내려가 안부를 넘어 잡목만 들어찬 완만해진 능선을 이어간다.
낮은 봉들을 넘고 동쪽으로 꺾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면 아직도 키를 넘는 지저분한 잔설이 쌓여있어 지나간 겨울의 폭설을 묵묵히 이야기해 준다.
별 다른 특징이 없는 1122봉을 넘고 매봉산이 마주 보이는 바람 없는 능선에 자리를 잡어, 배승호님이 무겁게 지고오신 막걸리와 맥주를 섞어 시원한 폭탄주를 한잔씩 돌리고 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 노루귀
- 매봉산
매봉산이 바로 앞에 보여서인지 다들 산행이 너무 일찍 끝나면 어쩌나하는 터무니없는 걱정들을 하며 키 낮은 산죽 지대를 따라 널찍한 안부로 내려가면 남교리의 당정 곡에서 올라오는 일반 등로와 만나고 많은 표지기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낙엽더미 틈으로 노오랗게 고개를 들고있는 복수초들을 감상하며 가파르게 이어지는 미끄러운 산길을 천천히 올라가니 처음으로 이정표가 나타나고, 바위 지대들을 따라 매봉산(1271.1m)에 올라가면 억새밭에 삼각점(설악21/1987재설)이 놓여있으며 몸을 휘청이게하는 강풍이 불어온다.
정상은 사위가 확 트여서 안산에서 귀청을 지나 중청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과 황철봉에서 미시령을 지나 신선봉과 마산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이 장쾌하게 펼쳐지지만 박무때문인지 너무나 흐릿해서 아쉽고, 칠절봉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줄기는 몇년을 기다려왔던 산객을 들뜨게한다.
동쪽으로 용대휴양림 길을 버리고 최근에는 올라온 사람이 없었는지 발자국 하나 없는 눈밭을 뚫고 북쪽 능선으로 들어가니 잔설은 점점 많아 무릎까지 빠진다.
휴양림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능선을 찾아 들어가면 칠절봉으로 이어져 올라가는 능선이 잘 보이고 향로봉으로 향하는 미답의 백두대간은 어서오라 손짓하 듯 눈앞에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 복수초
▲ 매봉산 정상
▲ 매봉산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
- 칠절봉
양양 쪽에서 일어난 큰 산불의 연기라도 보일까 두리번거리며 눈밭을 헤쳐나가면 오래된 헬기장이 나오고 잠시 후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하산로를 지나니 작은 이정판이 서있다.
군사보호구역 임을 알리듯 글씨가 지워진 오래된 경고판을 확인하고 질퍽거리며 눈 녹은 물이 줄줄 흐르는 능선을 지나 점차 북동 쪽으로 꺾어지는 능선을 따라간다.
큰 벙커들이 있고 군사 시설물들이 있는 전위 봉을 넘어 진흙이 쩍쩍 달라붙는 억새 밭을 지나 칠절봉(1172.2m)에 오르니 군 시설물과 글씨 없는 삼각점이 있으며 거센 바람에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다.
사방으로 막힘이 없는 정상에 서면 남쪽 백두대간의 종착점인 향로봉이 앞에 우뚝 서 있고, 왼쪽으로 대암산이 우람하며, 북녘 산봉 너머로 금강산의 삐죽삐죽 솟은 연릉이 보여 감탄사를 자아낸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칠절봉에 서서 미친듯이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있다 내친 김에 향로봉까지 가고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진부령이 있는 동쪽 능선으로 꺾어져 내려간다.
▲ 전위봉에서 바라본 칠절봉
▲ 칠절봉 정상
▲ 칠절봉 정상
▲ 칠절봉에서 바라본 향로봉
▲ 칠절봉에서 바라본 매봉산
- 진부령
잠시 후 눈 덮인 군사 도로를 내려가다 왼쪽으로 휘도는 도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이어지는 널찍한 산길을 올라가면 어느 틈에 군사 지역을 왔었는지 대간꾼들의 표지기들이 간혹 걸려있다.
바람 부는 봉우리에 올라 수북하게 눈이 쌓인 적적한 산길을 따라가니 시멘트 전주들이 부러져 넘어가 있고 참호들이 곳곳에 있으며 뜻 모르는 군사 용어들도 보인다.
밑으로 가깝게 지나가는 군사 도로를 바라보며 잡목들이 걸기적거리는 돌밭 길을 내려가 모 사병의 추모비를 지나서 다시 군사 도로로 떨어진다.
한동안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알프스스키장을 품고있는 마산이 정면에 서 있고 진부령으로 올라오는 꾸불꾸불한 46번 국도가 내려다 보인다.
왼쪽으로 낮게 이어지는 대간의 마루금을 바라보며 군사 도로를 휘적휘적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군 부대가 보이고 도로 입구에 바이케이트와 군 초소가 있어 왼쪽 집 사이로 슬쩍 빠져나오니 바로 진부령(529m) 고갯마루이다.
전적비와 낯익은 표시석을 구경하고 몇년 전 백두대간을 마치고 기념 파티를 열었던 부흥식당으로 내려가니 다시 찾은 진부령에는 눈을 뜰수도 없는 모래 바람이 휘몰아친다.
첫댓글 가고싶던 곳인데 시간이 안맞아 못갔습니다. 언제 따로 다녀와야 겠습니다. 이시간이면 빗속에 대청 울트라마라톤 뒤고 계시겠네요. "화이팅"입니다.
진부령...백두대간을 완주하고 진부령에서 기념촬영한 곳인데..다시 가고 싶은 곳 입니다...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