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초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 하나가 터졌다. 프로야구 KIA의 내년도 1차 지명 신인인 광주진흥고 투수 정영일(18)이 국내 잔류를 거부하고 100만 달러(추정)의 계약금에 미국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었다.
이를 계기로 1994년 박찬호의 LA 다저스 입단 이후 아마 유망주들이 대거 해외로 유출되면서 야구계의 해묵은 논란거리로 자리 잡은 ‘국내 잔류와 해외 진출’의 득과 실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1983년생 동갑내기로 고교 시절 최고 투수를 다투다 한국과 미국 프로야구로 행보가 엇갈린 김진우(KIA)와 류제국(시카고 컵스)의 사례를 통해 두 갈래 길의 장단점을 짚어본다.
▲우열 못가린 고교 ‘빅 2’5년 전인 2001년 고교 야구에는 두 명의 거물 투수가 있었다. 광주진흥고 김진우와 덕수정보고 류제국. 둘 다 190㎝가 넘는 당당한 체구에 150㎞대 강속구를 뿌려대며 한국과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표적이 됐다.
두 투수가 상대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고교 2학년 때인 2000년 봉황대기 대회에서 김진우는 류제국과 선발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고 MVP와 우수투수상을 거머쥐었다. 2001년에는 류제국이 청룡기 대회 경기고와의 준결승에서 20탈삼진을 기록한 뒤 진흥고와 결승전에서도 8회 구원 등판한 김진우를 누르고 역시 MVP의 영예를 안았다.
장군 멍군을 주고 받은 두 투수는 한국과 미국 구단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김진우는 당시 역대 최고 타이인 7억원의 계약금에 KIA에 입단했고. 류제국은 계약금 160만 달러에 컵스 유니폼을 입었다.
▲시련과 좌절 그리고 결실무대는 달랐지만 두 투수가 프로에 적응한 과정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데뷔 첫 해인 2002년 12승을 따낸 김진우는 2003년 본의 아니게 폭력 사건에 연루되며 심한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시련 속에서도 2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올리며 2004년 역대 프로 3년차 중 처음으로 억대 연봉(1억원)에 진입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올 시즌에도 어깨 부상을 겪으면서도 10승 4패를 기록하며 팀내에서는 물론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2001년 루키 리그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한 류제국 역시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2003년 훈련 도중 장난 삼아 새를 공으로 맞혔는데 마침 그 새가 미국의 천연기념물 격인 희귀종 물수리여서 주변의 비난을 뒤집어써야 했다. 힘겹게 더블 A로 올라온 뒤에는 팔꿈치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해 2004시즌 뒤 40인 보호 선수 명단에 제외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고진감래. 미국 진출 6년째인 올해 5월 14일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5월 29일 애틀랜타전에 선발 출장해 1⅓이닝 6실점한 뒤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으나 8월 말과 9월 초에 빅리그로 재승격돼 팀의 중간 계투로 뛰고 있다. 메이저리그 8경기에서 아직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7.50을 기록 중이나 언젠가는 선발진의 한 자리를 꿰찰 만한 투수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누가 더 많이 벌었나그렇다면 누가 더 이득을 보았을까. 미국 마이너리거의 경우 연봉이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는데다 계약금의 40%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야구 선수의 세율이 3% 정도이므로 소득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김진우는 계약금 7억원에 5년간 연봉(2000만-5000만-1억-7500만-8000만원)을 합해 세금을 빼고 약 10억원을 벌었다.
반면 류제국은 입단 계약금이 160만 달러(약 15억 2000만원·이하 1달러=950원)였다.
류제국은 지난해까지 대부분의 마이너리거들처럼 매년 5만~10만 달러 정도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빅리그에 처음 진입한 올 시즌 연봉은 33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활동 기간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스플릿 계약이어서 실수령액과는 차이가 있다.
결국 평균 연봉을 10만 달러로 가정한다면 계약금 포함 6년간 총액은 220만 달러(약 20억 9000만원)가 된다. 그 중 세금을 40%로 적용시킨다면 실제 수입은 12억 5400만원 정도로 계산된다.
류제국이 김진우보다는 2억원가량 더 번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 누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것인가는 가늠하기 어렵다. 김진우는 큰 부상만 없다면 2009시즌 뒤 해외 진출 자격. 2011시즌 뒤 28세의 나이에 FA(프리 에이전트) 자격을 획득하게 돼 대박을 노릴 수 있다.
류제국의 경우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경우 수백억원의 거액을 벌어들일 수 있으나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또 김진우가 병역 면제를 받은 데 반해 류제국은 아직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이 부담스럽다.
▲실리냐 명예냐그러나 야구 선수로서 세계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명예와 자부심이 있기 마련이다. 김진우가 “기회가 된다면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국내 잔류와 해외 진출의 문제는 결국 안전을 택해 실리를 취하느냐. 아니면 모험을 통해 명예를 좇느냐의 선택으로 요약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