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소유’서 ‘거주’로] 싸고 질좋은 땅 확보가 제1과제

[권경욱]

[주택 ‘소유’서 ‘거주’로] ①싸고 질좋은 땅 확보가 제1과제

파이낸셜뉴스 2007-02-01 17:27:00

'임대주택 260만가구 공급'을 내용으로 하는 '1·31 대책' 발표로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임대주택 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연평균 공급량이 수도권 연간 총공급량과 맞먹는 26만가구에 달해 정부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서민들의 주거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이 중 5만호는 30평 전후의 중형 아파트란 점에서 주택의 개념을 '소유'에서 '거주'로 바꿔놓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대책은 어디까지나 밑그림일 뿐이다. 워낙 난제가 많아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할지는 미지수란 얘기다. 본지는 정부 대책의 성공에 필요한 과제들을 5번의 시리즈를 통해 심층 분석한다.


“그린벨트가 일부 풀린다는 소문에 땅값이 계속 오르고 있어요. 얼마 전까지 평당 70만∼80만원에 거래됐는데 조만간 100만원선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송추유원지 인근에 있는 H공인 관계자는 “은평뉴타운과 155만평 규모의 경기 삼송국민임대단지 조성 발표로 이 지역 땅값이 오르는 추세”라며 “2017년까지 임대주택 260만가구를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1·31 대책과 맞물리면서 그린벨트가 갑자기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260만가구 임대주택 건설을 뒷받침할 공공택지 확보방안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규모의 물량을 소화하기에는 총 2000만평 이상의 공공택지가 필요한데 서울·수도권에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택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나 군사보호구역, 보존녹지 등이 풀릴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돌고 있다. 이런 토지규제를 풀지 않고서는 사실상 땅을 확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싸고 좋은 땅 확보가 문제다

정부의 공공부문 임대주택 확대정책의 성공여부는 싸고 좋은 입지의 땅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갖춘 땅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내집마련정보사 함영진 팀장은 “정부가 공공택지 확보에 발벗고 나서겠지만 입지여건이 좋고 임대주택단지를 지을 만한 대규모 땅이 많지 않다”며 “정부가 싸고 좋은 입지를 갖춘 택지확보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자칫 임대주택건설사업이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서울·수도권 그린벨트와 군사보호구역 등을 해제해 택지를 확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주택공사 관계자는 “그린벨트와 보존녹지, 군사시설보호구역 등은 면밀하게 따져 풀 수 있는 것은 풀어서 임대주택단지로 활용해야 한다”고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는 “당장 내년부터 5만가구씩 건설해 나가려면 현재 비축해 놓은 토지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따라서 토지규제를 해제해 땅을 확보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수도권 그린벨트는 2002년에 경기도 소하·청계 등 11지구 232만7000평이 해제돼 4만7221가구의 임대주택이 건설됐고 이후 2004년에도 남양주 별내, 고양삼송 등 15개지구 820만평이 해제돼 현재 14만6000가구의 임대주택 건설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눈독 들이는 그린벨트·국공유지

현재 그린벨트는 전국토의 5.4%인 5397㎢이며 이 중 29%가 수도권에 있다. 대표적인 지역이 경기도 하남시와 서울 내곡동·세곡동,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등이다.

경기도 하남지역은 강남을 대체하는 신도시 후보지로도 거론되는 지역이다. 서울과의 접근성도 좋고 그린벨트 역시 전체 면적의 92.8%인 2000여만평에 달한다. 일부를 해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서울 강남에 마지막으로 남은 노른자위 땅인 세곡동 그린벨트도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 SH공사가 이미 해제된 세곡동 그린벨트에 3만여가구의 아파트를 지었고 앞으로도 국민임대단지로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청계산 주변 그린벨트(과천∼의왕지역), 성남시와 광주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성 인근도 유력후보지로 거론되는 곳이다.

70만평에 달하는 알짜 땅인 서울공항도 장기적으로는 국민임대단지로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군사보호구역은 서울 북부에 집중돼 있다. 경기도 파주지역의 경우 군사보호구역을 해제하면 상당한 택지를 확보할 수 있고 의정부와 동두천 미군기지 이전부지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환경단체·지역주민 반발 등 현안 많아

서울·수도권의 허파역할을 하고 있는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할 경우 환경단체의 반발이 예상된다.

환경운동연합 지찬혁 국토정책 담당은 “10만평 이상 개발한다면 그린벨트를 해제해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기 때문에 수도권 그린벨트는 이미 훼손될 대로 된 상태”라며 “정부가 서민주거 안정도 좋지만 삶의 질 제고 차원에서 그린벨트 해제 문제는 신중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린벨트를 풀어서 임대주택을 짓더라도 녹지비율을 높여 조성한다면 다소나마 나은 주거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대주택이 어느 곳에 들어서느냐도 중요하다. 살고 싶은 지역, 여건이 좋은 지역에 들어서지 않는다면 기피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특히 임대주택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지역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도 큰 문제다.

정부가 주택을 지으면서 소셜믹스(Social Mix)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분양과 임대주택 입주민들의 분쟁은 그치지 않는 등 사회문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사는 허현씨는 “주변에 임대주택이 들어선다면 누가 좋아하겠느냐. 당장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할게 뻔하고 들어선다 해도 정다운 이웃으로는 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땅값 급등·투기 등 부작용 우려

그린벨트와 군사보호구역이 해제된다면 땅값 급등과 투기바람으로 홍역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세곡동과 내곡동, 경기도 하남시 등에 있는 그린벨트의 경우 요지라는 점에서 현재도 평당 수백만원에 달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대책으로 집값이 하락할 조짐을 보이자 복부인들이 다시 등장, 경기도 과천 재건축아파트를 입도선매하고 있는 등 여전히 시장이 불안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의 그린벨트가 대규모로 해제된다면 인근지역 땅값 상승은 불문가지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부사장은 “그린벨트나 군사보호구역 등 토지규제를 풀기에 앞서 정부가 땅값 급등과 투기바람 차단을 위한 조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