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봐 하니 전부 알꺼 같구먼.................... 배나무도 하나 찍으라니까............ 왼쪽상단 사진의 둥근 물체가 우물뚜껑인것 같네 그려, 가까이 보이는 2층집이 수진네 집인것 같고.... 헌데 옛날엔 매우 보기 드문 두집이 붙어 있었지 ..... 수진네하고 단씨성을 가진집하고... 안보이는 오른쪽에 애선네집이 있고,, 지금은 애선이 촌이 살던가... 미영네집 오르는 길이 그길하고 우물쪽으로 내려오는 계단형의 길이 또 있었을 텐데..... ............. 수고 많았네.................
^^ 울 동네도 이젠 하나 둘...사람들도 느낌도...예전 같지가 않아.^^애선네 집..이젠 그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구. 수진네 집은 어느 서울 사람이 와서 장식으로 아주 단정하게 꾸며 가며 부인과 둘이 알콩콩 살고 있구.. 우리가 변해가는 만큼 동네도 사람들도 하나 둘....그 옛 모습이 그리움으로만 남겨가고 있어서 ..흐르는 세월앞에 묵묵한 침묵만을 던져 보아야 하네. ^^
우리도 어릴적에 고추농사를 얼마나 많이 했나하면 ........ 이쪽밭에 익은 고추를 따면 저쪽밭이 익어 오고,,,저쪽을 따노라면 다시 저쪽.......... 당시 내가 빨강색 남방을 겨 입었는데 새파란 고추밭에 빨간옷이 앉아 있으니 동네 아줌시들 왈 나보고 이쁘다나 ..............허참.......... 그 아줌시들 지금은 꼬부랑 할머니가 돼부렀쥐....
그리고 3학년 때는 학급조회라는게 있었는데 일주에 두번 정도..... 그냥 학급회의 비슷하면서 이주일의 노래라는게 있었는데 황선생님이 노래에는 꽝이라 매주 바뀌는 노래를 가르쳐 주기위해 당시 1학년 선생님이던 이경희 선생님과 교무실 건너서 바로옆반의 2학년을 담임하셨던 교감선생님인 이상면 션생님이 오셔서 가르치곤 하셨지. ...............당시의 노래들은 음악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노래들로서 경쾌하고 흥겨운 노래 투셩이 였어..... 근데 그노래들중 대여섯곡 정도는 지금도 조금씩 부를수 있을것도 같네.......... 맨처음 배운 이주일의 노래는 이렇게 부르는게야........."아침을 노래하자 ......... 저녁을 노래하자
포근한 잠이오는. 노래로 자라나고 노래로 사귀면 우리의 앞날은 무지개 꽃동산"................ 이렇게. 용란의 기억은 1학년때 쪼끄만게 1분단 앞쪽에 앉았는거 하고 6학년때 주번이라는게 있었지 않았나? 중고등학교로 말하면 규율부 같은거.... 그건 각 리별로 조가 짜여져 있었는데 월곶리가 주번일때는 내가 주번장을 항시 했는데 그것 땜에 학교도 일찍 나와야 했고 아침에 국기계양도 저녁 국기하강도 여러번 내가 했고 .............그때 내주위에 뭔 가스나가 쭐레쭐레 맴도는게 보였는데 그게 용란이 였네 그려.......ㅎㅎㅎㅎㅎ 미안 ,
당시 주번이 하는일이 지각하는 아이들 혼좀 내는거 하고 매일저녁 1학년부터 각반을 돌면서 청소상태를 점검하고 일지에 기록하는것도 있었는데 6-2반인 자네들반은 유일한 여자반이라 부끄러워서 들어가지 못하고 창밖에서 대충 훑어보고 양호라고 기록한것 같네. 그리고 마지막 토요일엔 전교어린이회의가 1학년1반에서 이루어 졌는데(1학년은 빨리 하교하니까 항시 교실이 비어 있어서 ) 그때 한주동안 정해 졌던 생활목표가 얼마나 잘이루어 졌는지 못이루어 졌다면 이유는 무었인지 이런것들을 주번장이 발표하곤 했었네..........지금와서 생각하면 아련히 떠오르는 어릴적 추억이지............ 헌데 중요한건 내가 치매가 오기전에 모든
기록을 남기고 싶은데 시간이 별로 없네, 이미 공개된 1학년기록도 업그레이드를 시키고 2학년기록도 상당히 써놓았는데 정리가 어렵네......... 6학년때는 거의 1년간의 기록인 일기장이 고이 보관되어 있기 땜시 도움이 많이 될꺼 같은데.......... 야! 들아 근데 이런애기 자꾸하면 희소가치도 떨어질 뿐더러 .......나쁜점도 있을꺼 같은디....?
오메나 ....놀라워버라 아니 그 옛날 그 기억들을 다 어찌 안데요 정말 놀라워서리..... 난..국민학교 6년을 오직 2반 한것 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고.. 엄마가 아침이면 누룽지 싸 주셔서 학교 끝나고 오는 길에 빨간 가방 뚜껑을 열어 그 맛을 보노라면 세상에....이런 꿀맛이 또 있을까나아 한가지 더...학교에서 주는 노란 옥수수 빵 한 조각......와 그 맛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네... 그 옥수수빵... 지금이라도 한 조각 먹을 수만 있다면......얼마나 좋을까 ^^
어이 용란 그때 상황을 내가 소상하고 실히 기억하고 있네. 당시 첫 동네모임이 인찬네 사랑방에서 있었고...........두번째로 모임이 자네집 사랑방에서 있었는데...........(당시는 사회인들 신분).... 너네집 대문을 들어 서려니 누군가가 컴컴한 대문간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어.........그게 바로 넌데,미디 사이즈의 치마에 검은 스타킹 차림이었고, 나에게 눈인사를 하더라고
그날은 우리들 끼리만 놀려고 마련한 자리였었는데(80년 2월) 영례와 정병이가 실한 상태 때문이었는지 그쪽동네 친구들이(선환,정병등등...) 우리 모임이 있다는 걸 알고 왔더라고......그래서 분위기가 쫌 어수선해 졌는데 .....나와 모연이가 나서서 한시간쯤 지났을라나 이제그만 돌아가 라고 했던것 같애......... 인찬네 집에서 놀때는 약간의 술에 노래까지 해가면서 놀았는데, 자네집에선 조용히 놀았었네. 그밖에 남친들 끼리만의 자리는 더많이 있었고...........
그런데 말일세. 내가 입대후 첫휴가를 나오던날 고성당 감나무 밑에서 명숙과 자네와 내가 어떻게 마주치게 됬는지 참으로 신기한 일도 있었지............ 그때 로또를 샀다면 분명히 이었을 건데.......... 근데 두 가시나가 뭔 흉을 보고 있었냐 ..................
용란이가 매사에 관심이 없으니 기억에 없을 수 밖에.....어떻게 딱한번의 그모임을 못 기억하다니...ㅉㅉㅉㅉ 인찬네서 놀때는 그 아버님이 합석을 하셔서 놀았고,야참으로 국수를 얻어 먹었는데 좀 시끄럽게 놀았던 것 같애서 용관이가 모두의 연락책 노릇을 하며 여기선 조용히 놀아야 한다고 약간의 경고도 있었고........그래서...자네집에서도 야참으로 국순지 수제빈지 비슷한것을 얻어 먹기는 했네......그날 선익이하고 유은이가 무신 사정이 있다고 먼저 자리를 떻고........ 이상 주의자인 모연이의 연설을 주로 들으며 좌우지간 조용히 놀았지.............. 당시 문남이는 모임에 일체 참석하는 일이 없기로 유명했고,
호호호`````~~~ 씹는 다는 그뜻 나는 최근에 알았네. ... 우리집에서 전부 모여서 송편만들던 일은 기억하냐?................송편속의 간이 잘못 됐는지 맞이 없긴 했지만.... 그때 내가 송편을 빚는 실력을 기억이나 할지................그때는 내가 제대후 직후이니까 83년9월 추석 바로전날이 확실하거덩? 계산하면 날짜 까지 나올수 있겠지...여기서 솔직히 밝히면 기억력이란거 별거 아니란다. .....사건과 사건을 연결지어서 기억하면 날짜까지도 거의 확실한 기억을 할수 있슴.
우리쪽 야그만 늘어 놓으니 미영이가 샘나것당........... 미영네는 70년대 말인가 이른봄에 못자리를 하러 간적이 있고, 집안 구석구석이 매우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았네. 또 그무렵 언젠가 미영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테레비가 고장난것을 수리해 주러 간적이 있었는데 겨울 이었네. 앞에 미닫이 문이 달린 나무케이스 형의 당시유행하던 삼성아니면 대한전선 제품인걸로 기억 되네.19"형 흑백 tv...........그 어머니 딸자랑이 보통이 아니시 더라고..............."우리 미영이가 효성 그룹의 모회사엘 다니는데 요번에 무슨실적이 좋아서 손목시계를 보너스로 받아 왔다나? 그리고 너무 좋은 회사에 다니고.......... 아! 그러세여....?"
하... 오머나 그런적이 있었수 ^^ 난 정말 처음으로 들어보네요.^^ 울 엄마가 내 야그를..그렇게나... 하긴 그 때는 뭔 행사다하여 효성물산에서 이것 저것을 자주 주었었지... 그런데 시계 받은 기억은 나도 모르네. 아뭏든 물질이 귀한 시절이다보니 뭔가를 주면 자랑을 아니할 수 가 없는게 엄마 맘이겠지..^^* 그 회사를 결혼 하고도 1년을 더 다닌 나에겐 정말 좋은 회사였다오.^^텔비...나도 오락가락.....어디 회사였는지는 둘 중에 하나일건데 말야... 정한 텔비 모습을 말하고 있구만.. 정말로 놀라워서리...그런데 그런 기술자였단 말이요 ^^ 울 엄마한테까지 그 소문이...
기억력이 예전부터 그리좋지는 않지만 추석전날 황명숙과 자네집에 가서 송편빚어 먹었던 기억은 난다 맛과 모양보다는 상황이 넘 거운 상황이었던걸로만 기억한다글구 예전부터 전자제품수리하는데는 일각연이 있었지 라디오 TV가 고장 나면 우리부모님도 언제나 자네부터 초청을 했지 그 소문이 미영네 동네에도 통했는가 보구나 그보다 강화 전지역에 통했겠지 대단한 솜씨야 송편솜씨까지 포함
용란아 너무한다, 강화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통했다고 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실제로 그랬었다니까? 정말이라니까?............증거 필요해??????............그리고 어쩔수 없이 우리 셋이만 놀고 있으니 흉을 보더라도 우리끼리만 보는게 좋겠네. .......그런데 두친구의 관상을 보면 말이여..............
'이름없는 새'란 싯귀는 .............그러니까 80년대 초중반에 대학가요제에서 손현희란 친구가 부른 노래인데 당시 직장동료인 어떤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자기 친구 모친이 돌아가셨는데 (결혼 식장에서 축가를 부르듯) 장례식장에서 축가는 아니겠으나 공식 석상에서 누가 이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좋은것 같더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얼마 안되어 우리모친이 (87년1월)세상을 떠났는데 목이 메인다는게 이런 거구나를 경험케 되더라고, 자네들도 경험자 겠지만...... 울움에 지치게 되면 울고 싶어도 울음이 나오질 않고 참말로 목이 메이더라고, 기운도 지치고...... 그때 혼자 나즈막히 이름없는새를 불러 보았는데 정말로 느낌이 괜찮은것 같더라고,.....그래서 거기에 그노래를 올려 놓게 된거라네.................이제 모든걸 알겠는가?..................... 미영 아버님하곤 일도 같이 해보고..... 집 마당 아래에 있는 우물이 보통 우물은 아니지 않는가?..........대월닷컴에 1학년때의 기억을 더듬을 적에 그 우물 이야기도 있는데..........
1977년도를 자네들은 기억을 못하겠지만 수십년만에 전국적으로 최악의 가뭄현상이 있던해 였는데..........어느 정도냐 하면 7월의 중간을 넘고 있는데 논에 모내기는 커녕 못자리가 전부 말라죽은 거였지.........동네 사람들이 전부 할일없이 때아닌 농한기를 맞이 했던거야...........그해는 나도 집에서 놀던때라 동네 선배들과 연구를 하여 논에 우물을 파는 기계를 제작하여 이동네 저동네 일을 다녔거덩? ..........근데 그일이 노가다중 상노가다 여서 아무도 엄두를 못내는 그런 일이었네..............얼마나 힘이 들었냐 하면 아침에 일어나면 목은 움직일수 있는데 몸이 말을 안듣는것이여 글쎄. 하체가 마비된 것처럼.............
그때에 우리가 4인조 였는데 논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농한기를 즐기시던 미영 아버님이 하루종일 우리일을 구경하곤 하셨지............. 우물이 관을 땅에 박은 것처럼 생겼다하여 '관정'이라 불렀는데 시추봉을 뚤어서 성공하면 5만원의 댓가를 받았는데 성공하기가 1주일 정도는 걸렸던것 같은데 실패하면 한푼도 못받는 거였지..........ㅋㅋㅋㅋ 당시 완벽하게 성공 한곳이 두개 였는데, 그중 한곳이 우리논에서 였고, 30년이 다되는 지금도 물이 콸콸 ?아지고 있다네.........위치가 어디냐 하면 1년후배 은님네 집앞에서..........라고 하면 미영이 밖에는 모를것 같아서... 은이 동생 철이네 음식점(?)앞에서 정남쪽으로
약 200미터 전방에 논 가운데에 전봇대가 서있는데 가까이 가보면 땅속으로 파이프가 박혀 있는데 그게 그당시 작품이니 두사람 혹시 지나칠일 있으면 가서 물맛이 얼마나 좋은지 맛을 보고 소감을 올리도록. 그게 땅속으로 50미터를 암반층을 뚤고 내려 간건데 그 바위를 뚤을 때 내입에서 진짜로 개거품이 흐른 것이었다네.........커다란 바위층 밑에는 호수처럼 물이 고여 있다고 하더라고 그위치를 찾기위해 돌팔이 지질전문가들이(우리 자신) 무려 10여개의 시추공을 뚤고 마지막에 찾은 건데 너무 힘이 들어서 선배2사람은 옆에서 누워 잠들어 버렸고 내동생은 힘을 다하여, 비실거렸고, 마지막 나까지 손을 놓으면 그 시추공은
영원히 없을 거 였는데 옆에 잠든 선배들이 자기 논 아니라고 잠든것도 얄미웠고, 결정적인것은 이 구멍마져 포기하면 더이상 뚤을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고 이왕 개거품을 흘렸으니 내몸이 부서질때 까지 하겠다는 생각으로 덤벼드니 내동생도 내얼굴을 보더니 죽을 힘을 다하는듯 하더라고......... 구경하시던 미영 아버님도 가망 없어 보인 다는 생각에 자리를 뜨셨고............. 50Kg 정도되는 시추봉을 약 2초에 한번씩 들어 올려서 깊은 땅속의 바위를 찍어서 뚤는 작업인데 이곳에서 실패하면 더이상 안하겠다는 각오로 뚫기를 몇시간.........갑자기 이상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지..........시추봉에는 항시 물을 공급해야 하는데
충분했던 물이 언제부턴가 줄고 있었어.... 물이 없으면 시추봉이 막히기 때문에 자는 선배를 깨웠지 물이 부족하니 저집에 가서 (현재 철이가 사는집) 물좀 빨리 떠오라고 ...........그래도 물이 계속 주는게 아닌가?........ 아직까지 이런 현상을 보지를 못했는데 ..........그러는 동안 바위층은 뚤어져 버렸고, 뛰어 다니며 채워 붓던 물은 바위층밑의 호수로 들어가 버렸다는걸 우리는 잠시후 알게 됐지.........양수기를 이용해 물을 끌어 올리자 엄청난 물이 쏫아져 나왔고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와서 축하 해 줬고 물맛도 기가 막히게 좋았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날은 혼신의 힘을 모두 소진한 그렇게 기쁜날이었고..............드디어 다음 작업..........그게 뭐냐면........미영 부친 말쌈이 "우리 마당아래 우물이 보통 우물이 아닌데 그것마저 말라 버렸네, 그러니 자네들이 그 우물속에 들어가서 우물 밑바닥을 조금만 뚤어 주게 제발 부탁이네"..............이튿날 아침 모든 장비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거기를 갔었네. 나는 어제너무 힘들어서 선배중 한분이 (대월3회졸업) 밧줄을 타고 이미 말라버린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서 작업시작.....................뙤약볕의 한여름인데 이따금씩 위를 처다보며, 야! 추워서 못하겠다!!!!!!!!!! 당시 5-6미터정도를 뚤었는데 물이 좀더 나오는 것 같기
도 했고 좁은 우물안 공간이라 교대 작업도 불가능 했고, ................너무 어려 웠네............. 그일은 그날 하루로 끝을 낼수 밖에 없었는데 수고비는 주시더라고........... 미영님아 ! ......자네는 이런일을 알기나 하는가?.......... 여하튼 그때의 일 덕분에 나는 돌파리 지질학자가 돼 버렸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진을 봐 하니 전부 알꺼 같구먼.................... 배나무도 하나 찍으라니까............ 왼쪽상단 사진의 둥근 물체가 우물뚜껑인것 같네 그려, 가까이 보이는 2층집이 수진네 집인것 같고.... 헌데 옛날엔 매우 보기 드문 두집이 붙어 있었지 ..... 수진네하고 단씨성을 가진집하고... 안보이는 오른쪽에 애선네집이 있고,, 지금은 애선이 촌이 살던가... 미영네집 오르는 길이 그길하고 우물쪽으로 내려오는 계단형의 길이 또 있었을 텐데..... ............. 수고 많았네.................
^^ 울 동네도 이젠 하나 둘...사람들도 느낌도...예전 같지가 않아.^^애선네 집..이젠 그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구. 수진네 집은 어느 서울 사람이 와서 장식으로 아주 단정하게 꾸며 가며 부인과 둘이 알콩콩 살고 있구.. 우리가 변해가는 만큼 동네도 사람들도 하나 둘....그 옛 모습이 그리움으로만 남겨가고 있어서 ..흐르는 세월앞에 묵묵한 침묵만을 던져 보아야 하네. ^^
우리도 어릴적에 고추농사를 얼마나 많이 했나하면 ........ 이쪽밭에 익은 고추를 따면 저쪽밭이 익어 오고,,,저쪽을 따노라면 다시 저쪽.......... 당시 내가 빨강색 남방을 겨 입었는데 새파란 고추밭에 빨간옷이 앉아 있으니 동네 아줌시들 왈 나보고 이쁘다나 ..............허참.......... 그 아줌시들 지금은 꼬부랑 할머니가 돼부렀쥐....
지금도 사시사철 변함없는 물맛으로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는 저기 위...저 우물 옛날에 우리동네 사람 거의가 빨래터로도 이용하는 너무나 귀중한 물이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엔 넘 시원하여 손이 시릴 정도의 참 좋은 물...저 우물에서 빨래를 한 번쯤 안해본 아줌마는 없지 싶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전용 농업 용수로 물걱정은 끝 ^^ 저 우물만 있으면 왠만한 가뭄은 걱정을 안 하고 살은 우리집... 혜택받은 감사한 집이다.^^*()..
나도 이번에 물에 대한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는데 덕유산 계곡물을 마을 간이상수도로 마음껏 이용하고 있었는데..... 공짜로....근데 극심한 가뭄과 이상추위로 계곡물이 얼더붙어 버린 거 있지. 그래서 마침 집터에 있던 대형관정에 펌프를 새로 연결하고 집까지 관을 묻는 대수로공사가 있었다네....미영집 앞에 있는 저런 우물은 정말 소중한 건데.....나도 저기는 자주 가 보았는데^*
어~~~~ 나없는 사이에 다녀들 갔구먼................... 그런 일들이 있었다네..............앞으로 내생애에 두번다시 없을 일들이..............그런데 미영 부친 께선 '胤'자 '鎭'자 인걸로 아는데 얼핏 보면 새봉자 같더라고? 내기억이 맞나?...................
..마자 마자 ^^ 울 아부지 한자 이름까지 그렇게 정하게 알고 있다니 정말로 한자 실력도 대단하였구만 그 때에도.^^ 부처님 같으신 아부지라고 난 늘 말하는데 그 착한 아부지가 실은 박현숙 아부지 때문에 슬픈 병고에 시리시다가 가신거네.ㅠ 그 이유로 현숙이 아부진 동네에서 못 살고 스스로 이사하여 지금은 텅빈 집만 남기고...좋지않은 사람으로 우리 동네 사람들 머리에서 그렇게...
아-------------- 그런 일들이 있었구먼. 그 동네가 나의 평소 느낌을 밝히 자면............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데.........몇몇 양반들은 암투적인 경계를 하며 사는게 보이 더라고. 특히 방학때가 되면 난 마땅히 놀러갈 동네가 없어서 그곳으로 많이도 놀러 갔었는데.......... 잠깐 스치듯 살아가는 인생여정인데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ㅎㅎㅎㅎㅎ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거? ?
첫댓글^^ 친구님들! 이 글을 다시 보면서...나는 너무나 감탄. 감사...를 한답니다. ^^ 우리 지민 친구님께서 이러한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그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 더불어 지질학자님이시구...^^^ 그런데..요즘 통 안 나타나셔서...너무나 아쉬움~~! ㅠㅠㅠ
이 댓글...난... 너무나 소중합니다... _()_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
우리친구님들... 보시고 씩~ ^^ 웃고... 그냥 나가지 말고...한 자 적어...적선을~~! ^*~~
첫댓글 ^^ 친구님들!
이 글을 다시 보면서...나는 너무나 감탄. 감사...를 한답니다. ^^
우리 지민 친구님께서 이러한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그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
더불어 지질학자님이시구...^^^ 그런데..요즘 통 안 나타나셔서...너무나 아쉬움~~! ㅠㅠㅠ
이 댓글...난... 너무나 소중합니다... _()_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
우리친구님들... 보시고 씩~ ^^ 웃고...
그냥 나가지 말고...한 자 적어...적선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