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 사순 제3주간 금요일 / 큰 계명 / 구도자 법정스님
[ 오늘의 1분묵상 ]
"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마르코 12장 28절ㄱㄷ ㅡ 34절 >
오늘 복음은
어느 율법 학자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 첫째는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도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미사 참례를 열심히 하는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몸짓이 되겠지만
그만큼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한 몸이 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더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이 가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실현되고 있는지
항상 자신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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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약의 십계명을 대신하는
아주 핵심적 말씀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온 마음과 몸과 뜻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란 것이지요.
하느님은 누구나 할 수 있으므로
하라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두 행위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징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말씀도
결국은 하나로 축약될 수 있습니다.
이 땅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이자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일이란 것이지요.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신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 안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 서 있는곳이 하늘이오,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머물 수 있는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렇게 얘기해도 좋을 것입니다.
"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노라" 고.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주님, 내 사랑의 사랑 때문에
황송하옵게도 당신이 죽으셨으니,
주님, 당신 사랑의 사랑 때문에
당신 사랑을 위해 나도 죽을 수 있도록
꿀과 같은 당신 사랑에
내 마음 달게 해 주시고
불과 같은 당신 사랑에
내 마음 뜨겁게 해 주시어
당신 사랑의 크신 힘으로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에서
나의 마음을 빼내어
차지하소서.
아멘.
"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The second is this: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ere is no other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구도자 법정스님
한국 가톨릭계의 거목이신
'고 김수환 추기경'님 떠난지 1년만에
한국 불교계의 큰 스님이신
'법정 스님'께서 입적하셨습니다.
'간디'는
생전에 물레와 밥그릇 정도만을 가지고
'무소유'의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간디'를 숭앙하며 닮고자 하셨고,
저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맑고 청아한 삶을 존경했었는데..
법정 스님은 집착과 소유에 대한
섬광같은 깨달음을 설파하며..
평생을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도의 길'을 걷는 불자로써
몸소 실천하며 세상을 보는 혜안을
향기로운 바람소리, 맑은 언어로 감동을 주셨지요
그의 글들은 대부분 짤막하여
일상내지 세속 잡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이 편린들을 통해
새로이 발견하는 불교의 현대적 모습입니다.
그를 통해 나타나는 불교는
'공수래 공수거'의 허무가 아니고,
함께 참여하고 괴로워하며 비판하고
사랑받는 친근한 불자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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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인류는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서,
이 순간에도 조금 더 많은 것을
자기 혼자만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서로간에 다투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극단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만큼 인류를 가장 강하게
유혹하는 욕망은 소유욕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자신은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가지기를 간절히 갈망하구요.
법정 스님은
사랑했던 난초 두 그루에도
소유로 인해 불안감과 집착을 느끼셨다지요.
그토록 애지중지 자식같았던 난초를
친구에게 주었을 때야 비로소
소유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듯한 해방감과
홀가분함을 느꼈다고 하십니다.
'무소유'를 읽으면서도
나 역시 물질만능주의적 사상에
젖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라는
그 무소유의 역리를 잘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山房 생활'을 통해서
'법정스님'의 행동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무소유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를 느낄 수 있게됨을 감사하지요.
그가 소유를 꺼려한 이유는
소유를 하게되면 생겨나는 소유 관념이
그의 마음을 흐리게
함에 있었을 것입니다.
소유함으로써 그 소유물에 집착하여 일생을
소유욕의 노예가 되느니, 무소유 함으로써
소유와 같은 외부의 환경에 집착하기보다는,
인격을 수양하는 것을 큰 미덕으로 여겼던 것이지요.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태어나서
빈손으로 떠남을 몸소 보여주시게 되었네요.
님 떠나는 길 부처님께서 반겨 주시느라
그토록 황홀하게 함박눈이 나비되여 춤을추었나 봅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합장합니다.
" ㅡ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ㅡ " 이 해인
2010 . 3 . 12 .( 금 )
山房에서..
베드로 아저씨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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