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는 아버지 홍봉한의 청지기 성윤우의 딸 `성덕임` 을 궁녀로 거두어 직접 길렀다고 한다. 덕임이 입궁한 해는 마침 사도세자가 죽은 임오년이었다. 덕임이 임오화변 이전에 입궁 했는지 이후에 입궁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혜경궁은 남편을 잃은 상황에서 덕임을 친히 길렀다는 점은 혜경궁이 덕임을 얼마나 아꼈는지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덕임'이라는 궁녀는 훗날 정조의 후궁이 되는 의빈 성씨다. 정조시대를 다룬 이산 이라는 TV사극에서는 도화서에서 일하는 성송연 이라는 인물로 등장했지만, 이름은 드라마를 위해 각색된 것이며 본명은 `성덕임` 이 맞다.
정조가 직접 지은 어제의빈묘지명(御製宜嬪墓誌銘)에 따르면 1766년, 당시 세손이던 15살의 정조는 의빈에게 승은을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의빈이 울면서 효의왕후(당시는 세손빈)가 아직 아이를 낳고 기르지 못하여 감히 승은을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며 죽음을 맹세했다고 한다. 궁녀가 승은을 거부하는 일은 죽음으로서 죄값을 치러야 할 큰 죄였다. 하지만 정조는 의빈의 뜻을 받아들이고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1776년 정조는 즉위했는데 중전인 효의왕후에게서 후사가 없자, 1778년 왕대비인 정순왕후는 정조에게 후사를 위해 후궁을 간택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원빈 홍씨[홍국영의 여동생]와 화빈 윤씨가 간택 후궁으로 입궁했으나 원빈은 1년만에 급작스럽게 사망했고, 화빈 역시 후사가 없었다. 그러자 정조는 의빈에게 처음 승은을 내리려다 거절당한지 15년 만에 다시 의빈에게 승은을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의빈은 또 사양했다. 이에 정조는 의빈의 시종[궁녀들은 윗전을 모시느라 바빠서 정작 자신들의 의식주나 청소 등은 무수리 등 시종에게 맡겼다고 한다]을 크게 꾸짖고 벌을 내리고서야 의빈은 마침내 정조의 승은을 받아들였다.
정조는 일개 궁녀였던 의빈에게 2차례나 거절당하는 걸 감수하면서까지도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렸다. 정조의 입장에서는 신분상 자신이 원하는 여자는 강제로라도 후궁으로 삼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의빈이 자신을 기다리게 만든 점에 대해서는 끝내 벌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의빈에 대한 사랑이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의빈은 정조가 평생 동안 유일하게 자의적으로 선택한 여인이 되었다.
첫댓글 혹시나 헷갈리지 않으시길 ....
승은 (承恩)
[명사]
1 . 신하가 임금에게서 특별한 은혜를 받음.
2 . 여자가 임금의 총애(寵愛)를 받아 임금을 밤에 모심.
성은 (聖恩)
[명사]
1 . 임금의 큰 은혜.
- 성은에 감읍하다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