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980 | | | | | 충북 제천 한수 덕산 | | | | |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과 덕산면 경계를 이루는 월악산(1,093m)은 중부권 등산인들에게 꽤나 잘 알려진 산이다. 이 산은 무너져 내릴 듯이 곧추 솟아 있다는 뜻으로 '와락산'으로 불리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산악인들로부터 '충북의 알프스' 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암골미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월악산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천시에 속하지만, 중부권에서 접근하려면 제천보다는 충주에서 찾아가는 것이 한층 수월하다. 충주에서 약 20km 거리에 불과하지만, 제천에서는 약 50km에 달하기 때문이다.
▶ 지당터 - 중봉 - 월악2교 코스 한수면소재지인 송계리 지당터에서 동쪽으로 뻗어오른 능선으로 중봉(980m)까지 오른 다음, 중봉에서 북릉을 타고 보덕암을 경유해 월악2교로 내려서는 코스다. 중봉을 보덕암에서 오르지 않고 송계리 2구에서 직등올 올라가는 코스 월악산국립공원 공원관리사무소 앞에서 월악산을 올려다보면 왼쪽 가장 낮은 암봉이 하봉이고, 하봉에서 오른쪽으로 더 높아 보이는 암봉이 중봉이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 봉우리가 최고봉이자 이곳 주민들이 '영봉' 이라 부르는 월악산 정상이다.
남제천농협 한수지소 앞에서 중봉 방향으로 30m 거리인 한수면사무소 정문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굽어지는 골목길이 있다. 이 골목 안으로 발길을 옮기면 지당터매표소가 나타난다. 지당터매표소를 지나면 곧이어 한글이네 민박집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굽어도는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감나무를 지나자마자 다시 왼쪽으로 꺾여 중봉을 마주보며 올라간다. 7~8분 거리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콩밭이 나타나면 왼쪽 숲속으로 들어가 지당터 삼거리까지 전진한다. 중봉 산행은 이 삼거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 숲속으로 발길을 옮기면 벌써 세속의 번뇌를 씻는 기분이다. 월악산의 여느 기존 등산로와는 달리 아직 찾는 이들이 드물어 사람을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너무나 깊은 정적이 감동기 때문이다. 조용하기 이를 데 없는 숲길은 굴밤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두릅나무 등 무수한 잡목들이 어둡도록 하늘을 뒤덮고 싸리와 억새와 칡덩굴이 갈길을 더디게 한다. 이토록 무성한 숲길을 따라 20분 가량 올라가면 숲 아래로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급경사 바위가 나타나면 좌우로 굽돌기도 하면서 6~7분 거리에 이르면, 노송 사이로 송계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를 밟는다.
전망바위에서 잠시 다리쉼한 다음, 계속 이어지는 바위지대를 올라간다. 세미클라이밍 장소가 두 곳이나 나타나는 바윗길로 40분 가량 올라가면 노송 사이로 영봉 서쪽 수직절벽이 올려다보이는 두번째 전망바위에 닿는다. 두번째 전망바위부터는 두손으로 기어야 할 정도로 급경사 길이다. 급경사 길을 허우적거리며 10분 가량 올라가면 병풍을 친듯 곧추 올려다보이는 중봉 절벽 아래에 닿는다. 절벽 아래에서 왼족이나 오른쪽 모두 흐릿한 길이 있다. 왼쪽 급경사길을 따라 약 100m 거리에 이르면 최근에 매놓은 흰색 밧줄이 나타난다. 이 밧줄을 잡고 오른 다음, 왼쪽으로 2~3분 거리에 이르면 중봉 정상이다.
중봉 아래에서 절벽 오른쪽으로 움직여도 중봉에 오를 수 있다. 절벽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약 80m 거리에 이르면 왼쪽으로 침니형태 바위가 나타난다. 높이가 7~8m쯤 된다. 여기에는 길이 8~9m에 직경 2인치의 낡은 밧줄과 흰색 밧줄이 있다. 잡기 좋도록 중간에 매듭을 많이 해놓은 밧줄을 잡고 바위를 오르면 곧이어 영봉쪽에서 중봉으로 이어지는 기존등산로에 닿는다. 기존 등산로를 따라 5~6분 거리에 이르면 중봉 정상이다. 영봉 정상은 여기서 40분 거리다. 중봉에 오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우선 북서쪽 아래로 펼쳐지는 전망이 일품이다. 호수 위에 가로놓인 월악교와 송계로 들어오는 첫번째 다리인 월악1교, 월악2교가 한낱 성냥개비처럼 보이고, 은빛 물비늘을 이룬 충주호수면을 내리깔고 높고 낮은 산들이 멀리, 그리고 가까이 병풍처럼 두른 조망에는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여기서 서쪽으로는 수리봉이 마주보이고, 그 아래로는 느긋한 평화속에 송계 마을이 잠겨 있다. 남쪽으로는 영봉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월악산 정상이 주흘산, 월항삼봉, 북바위산, 용마봉, 박쥐봉을 거느리며 시야에 와닿는다.
중봉에서 하산은 북릉을 탄다. 일명 쪽두리바위롤 불리는 작은 암봉을 지나 200m 거리에 이르면 동쪽 방향으로 내려서는 철계단이 있다. 철계단을 내려서면 곧 통천문이다. 계속 급경사 바윗길로 150m쯤 내려서면 하봉 남쪽 아래에 닿는다. 여기서 산길은 왼쪽으로 내려서다가 약 50m 거리에서 15m 높이의 급경사 철사다리를 내려선 다음, 하봉 서쪽 수직절벽 아래를 횡단해 이어진다. 수직절벽 아래를 횡단하는 길로 발길을 옮겨 20분 거리에 이르면 하봉 북쪽을 벗어나 노송속 오솔길이 나타난다. 이 오솔길을 따라 35분 가량 내려서면 보덕암이다. 보덕암은 신라 때 사찰이라고 전해진다. 보덕암에서 북서쪽 공터에 이른 다음, 왼쪽 길을 따라 약 100m 내려서면 보덕굴에 닿는다. 입구 폭 10m에 높이 2m, 길이 40m인 보덕굴은 석회암굴로 옛날 단양 고수동굴과 굴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보덕굴 옆에 자라고 있는 모감주나무(천연기념물 제138호)도 볼거리다. 다시 보덕암으로 되돌아나온 삼거리에 이른 다음, 서쪽 계곡으로 내려선다. 충주호가 생기기 전 탄지리에서 보덕암을 다니던 길이었다는 이 계곡길은 짧기는 하지만, 태고적 자연미가 그대로여서 좋은 곳이다. 계곡길을 따라 염소막 앞을 지나 25분 거리에 이르면 월악2교 앞 통나무집이다.
▶ 영봉 - 중봉 - 보덕암 영봉 정상에서는 달리 이어지는 길이 없으므로 무조건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야 한다. 쇠사다리 길을 15분쯤 조심스레 내려가면 오를 때 지난 중봉쪽(보덕암쪽) 삼거리가 나온다. 내려가면서 쇠사다리를 지나 계속 가로질러 나아가면 이윽고 영봉 북서쪽의 능선 위로 올라선다. 그후 10여 분 더 가면 중봉 정상이다. 주등산로에서 왼쪽의 높은 곳으로 조금 올라가면 중봉 정상이다. 중봉에서는 하봉과 그 너머로 펼쳐진 충주호가 어울린 풍치가 압권. 다만 영봉 정상과 달리 주변에 울타리 시설이 돼 있지 않으므로 발길을 조심한다. 중봉 이후 하봉 전 안부로 이어진 길은 고도감이 상당한 암릉길로서, 굵고 든든한 와이어로프가 가설돼 있다. 하봉 전 안부에서 길은 왼쪽의 가파른 협곡으로 이어진다. 몸이 쏟아질듯 가파른 쇠사다리, 쇠난간 길이 이어진다. 중간중간 바위면에는 파란색 페인트로 화살표시가 돼 있다. 협곡 하산이 끝난 뒤에는 하봉 서사면 기슭을 따라 곧게 가로지른다. 설악산 공룡릉을 아는 이는 1,275m봉 가로지름길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하봉 암부를 벗어난 직후 "<- 영봉 2.5km, 보덕암 1.5km ->" 팻말이 선 능선으로 올라선다. 그후부터 노송이 우거져 풍치가 좋은 완경사 능선이 이어진다. 겹겹 주름을 가진 바위벽이 있는 능선 끝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서는 3분여 더 내려간 다음 쇠줄 난간이 쳐진 바위 틈새로 길이 이어진다. 그 뒤 산비탈을 서쪽으로 가로질러 나아가면 보덕암(043-651-6386)이다. 보덕암에서도 저 아래 쑥갓(혹은 숫갓) 마을까지는 1시간 가까이 걸어 내려가야 한다. 보덕암 아래 200m 지점의 공터까지는 승용차도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다. | | | | | | | | | | 새창으로 등산지도보기 | | | | | ○ 송계리 한수면사무소 - 지당터 삼거리 - 중봉 서릉 - 중봉 정상 - 족두리바위 - 통천문 - 보덕암 - 월악2교 ( 약 8km, 6시간 )
| | | | | 밝은 달… 거대한 암반, 여성을 상징하는 ‘陰山’ [문화일보] “월악산 난간머리 희미한 저 달아/ 천년사직 한이 서린 일천삼백리 너는 아느냐/ 아바마마 그리움을 마애불에 심어놓고/ 떠나신 우리 님을/ 월악산아 월악산아 말 좀 해다오/ 그 님의 소식을// 금강산 천리 먼 길 흘러가는 저 구름아/ 마의태자 덕주공주 한 많은 사연 너는 아느냐/ 하늘도 부끄러워 짚신에 삿갓 쓰고/ 걸어온 하늘재를/ 월악산아 월악산아 말 좀 해다오/ 그 님의 소식을”(가요 ‘월악산’·주현미 노래)
표성흠 시인은 “월악산 미륵리와 덕주골에는/ 슬픈 이야기 있다(…)/ 도처에 마의태자 이야기 많아도 여기만큼 슬프진 않아”라고 읊었지만, 오히려 주현미의 애절한 대중가요 ‘월악산’이 더 애간장을 녹인다. 충북 제천시·충주시·단양군과 경북 문경시에 걸쳐 있어 우리 반도의 중원(中原)에 해당하고 산형지세 역시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는 월악산(月岳山)은 그로 인해 민초들의 비원을 담은 전설뿐 아니라 수많은 역사적 상흔이 구비구비 서린 땅이다.
송계계곡 코스 타고 능선에 올라 바라본 영봉. 월악산의 최고봉은 영봉(靈峰·1097m)이다. 신령스러운 봉우리를 뜻하는 영봉은 한반도의 산에서 백두산과 월악산에 두 개뿐이다. 그것도 심상하지 않다. 월악산이란 이름은 “영봉에 걸린 달”에서 생겨났다고 전한다. 암벽 높이가 150m, 둘레가 4㎞나 되는 거대한 암반인 영봉에 걸린 달을 보면 그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왔을 법도 하다. 휘영청 밝은 ‘달(月)’과 어우러진 ‘바위’는 음기(陰氣) 곧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월악산은 마치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역사의 슬픔을 보듬고 앉아 있다.
◆역사의 한이 서린 산 삼국시대에 이곳을 차지하는 나라가 우두머리가 된다고 해서 월형산(月兄山)이라고도 했고,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에 궁궐을 짓다가 무산돼 ‘와락산’이라고 했다는 전설 등은 한강 수계를 끼고 있는 월악산 부근이 요충지였음을 말해준다.
월악산 미륵리와 덕주골에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이 서려 있다. 마의태자 일행이 신라 재건운동을 벌일 것을 두려워한 고려의 호족들이 마의태자는 미륵사에, 덕주공주는 북쪽 40리 밖 월악산 덕주사에 볼모로 가두었고, 미륵리 미륵불과 덕주골 덕주사의 마애불이 마주보고 서 있는 이유는 둘이 서로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영봉에서 바라본 충주호. 고려 몽고침략 때에도 월악산 부근은 치열한 격전지였고, 조선 말 동학농민운동 때도 전봉준의 스승인 서장옥이 녹두장군의 죽음 이후에 나머지 농민군을 이끌고 월악산에 웅거하며 다음을 도모하다 잔패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은 해방 후 월악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소백산맥을 타고 활동했던 빨치산에까지 이어졌다. 남부군사령관인 이현상의 죽음 이후 북쪽으로 이동하던 마지막 잔당들이 산화한 곳이 월악산이다. 월악산 서쪽의 송계계곡에는 구한말 명성황후가 별궁을 짓다가 일본 낭인에 시해되면서 중단됐다는 별궁터가 남아있다. 현대에 와서도 충주댐 건설로 이 주변지역이 침수되면서 조상의 뼈가 묻힌 고향 땅을 떠나야 했던 주민들의 한이 서려 있기도 하다. 참으로 수없는 사연을 영봉은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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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시원한송계 계곡물에 잠수하러갑니다
이런~~월악산 다녀오느라 1등을 쭈리님한테 빼겼네요.ㅎㅎ
저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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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임순이도 함께 했으면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