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길동무 청계천 걷기를 다녀와서!
오늘은 인터넷 카페 아름다운길동무"에서
모임을 낮 열두시에 갖는다는 서울지하철 종각역 지하와 연결되어있는 에슐리라는
요식업소에 찾아가서 만나고 싶었던 님들과 정답고 즐겁게 서로의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 환담(歡談)을 나누다가 15시에 그 곳을 나와 청계천광장에서 진입하는
청계천(淸溪川) 수변(水邊)길을 걷다가 3가에서 종로3가에 있는 국일관 12층
노래방에 가서 여흥(餘興)을 즐기다가 귀가하였습니다...
2018 무술년에 고희(古稀)를 맞이한 사람의 소회(所懷)
2018년1월15일 현재 1949년생의 연치(年齒)가 서양 사람들의 년령(年齡)
으로 치면 2019년에 맞이하게 되고 저의 경우도 6월30일 이 후가 70세
인데 애먼살을 먹은 우리나라의 년령으로 치면 노구 취급을 받는 고희
(古稀)라는 년륜이라고 하니 과녁을 향해가는 살 같은 세월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좋은 세월이면 팔순까지는 무난하게 살 수
있을 것이고 장수(長壽)할 팔자이면 산수(傘壽)가 가고 미수(未壽)를 지나 망구
(望九)의 생을 누릴수도 있을 터인데 노인의 건강은 장담(壯談)을 못할 일이니
지금부터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인간 생명의 칠십노구로 치부한다면 가운데도 꼭
대기도 눈두덩 위도 입동 후의 마른 풀섶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것처럼 백발(白髮)이
되니 체력이 떨어져 산행동호회의 공지된 산행도 산세의 호불호(好不好)를 가리게
되어 등산 횟수가 줄어들 것이고 길동무동호회의 둘레길 걷기도 전만 못 할것
이란 생각을 하게되니 외로움이 엄습(掩襲)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섭니다.
종각역(Jonggak Station, 鐘閣驛)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에 있는 지하철역이다.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과 종로3가역 사이에 있다. 1974년 8월 15일
개업했다. 역명은 인근에 보신각이 있어 붙여졌다. 역 주변에 광화문
, 광화문역, 안국역, 광화문우체국, 국세청, 미국대사관, 보신각, 서울
기독청년회(YMCA), 서울시소방방재본부, 예금보험공사, 외교통상부
여권·이주·영사과, 조계사, 종로구청, 종로소방서, 한국관광공사, 한국
산업은행 등이 있다. 서울교통공사 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지하 55(종로1가 20-3)에 있다.
보신각(普信閣)
서울 종로구 종로 2가
서울보신각종을 걸어 놓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이다. 조선시대
한양(漢陽)에 종을 처음 건 것은 1398년(태조 7)으로, 광주(廣州)에서 주조한
종을 청운교(靑雲橋) 서쪽 종루에 걸었다. 1413년(태종 13)에 종루를 통운교
(通雲橋:종로 네거리)로 옮기고 1458년(세조 4)에는 새로 대종(大鐘)을 주조
하여 달았으나 임진왜란으로 종루는 소실되고 종도 파괴되었다. 그후 1619년
(광해군 11)에 종각을 다시 짓고 종을 걸었는데 이때 세운 종각은 임진왜란
전의 2층 종루가 아니고 1층 종각이었으며 여기에 건 종은 명례동(明澧洞)
고개에 있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이 종은 본래 원각사종으로 세조 때에 주조한 것인데 1536년(중종 31)에 남대문
안으로 옮겨놓았다가 1597년(선조 30)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전한 것이다. 그후 조선 후기까지 4차례나 화재와 중건이
있다가 1895년(고종 32)에 종각에 '보신각'이란 현액(懸額)이 걸린 이후 종도
보신각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6·25전쟁으로 종각이 파손된 것을 1953년
중건하였다가 1980년 다시 2층 종루로 복원하였다.
출처: (두산백과)
청계천(淸溪川)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와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
길이 10.84 km, 유역면적 59.83㎢이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
(開川)'이었다.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 청계천은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물난리를 일으켰고, 평시에는 오수가 괴어 매우 불결하였는데,
제3대 태종이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벌여 처음으로 치수사업을 시작하였다. 그후 영조
때에는 준설·양안석축(兩岸石築)·유로변경 등 본격적인 개천사업을 시행하였다. 이
공사로서 내의 흐름이 비로소 직선화하였다. 순조·고종 때에도 준설공사는 계속
되었는데 이 개천에 놓인 다리는 수표교(水標橋)·오간수교(五間水橋)·광교(廣橋)·
영미교(永尾橋)·관수교(觀水橋) 등 모두 24개가 있었다. 국권피탈 후 일제강점기 초
(이때에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는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이루어졌다.
8·15광복 후에도 청계천의 유지관리에 힘써 왔고, 1958년 6월부터 복개공사에 착수,
1960년 4월에 1단계로 광교∼주교(舟橋) 1∼4가 간을 완공하여 너비 50m의 간선도로
를 만들었다. 1967년~1976년 청계고가도로를 건설, 상류에서 성동구 사근동까지 5.4
km 구간은 복개되었으나 중랑천 합류 지점까지의 2.4km 구간은 복개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청계천 주변의 복개도로와 고가도로의 안전문제가 제기되자, 1994년~1999년의
5년에 걸쳐 남산 1호 터널에서부터 청계천4가에 이르는 길이 2,030m의 상판과 다리
기둥, 들보를 보수하였다. 2002년 청계천4가에서 성동구 마장동 사이에 이르는 길이
3,834m의 상판을 교체하는 보수를 마쳤다. 2003년 7월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 구간은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성동구 신답철교로 구간으로 5.8km에
이른다. 2005년 10월 1일 2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청계천 위에 놓여진 총 22개의 다리
를 중심으로 정조반차도를 비롯한 역사적 자료를 복원한 도심 속 하천으로 개통하였다.
주요 다리로는 모전교·광통교·장통교·버들다리·두물다리 등이 있다.
그 겨울의 찻집 - 조용필
바람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 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
아름다운 죄 사랑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 숨이 나는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2018-01-15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