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지기 11월호에 민들레국수집 기사가 실렸습니다.
"VIP 손님만 받는 환대의 집"
(2016년 11월호 말씀지기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내 인생의 책
VIP만 받는 환대의 집을 운영하는
서영남 대표
서영남 베드로(62)는 2003년부터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 '민들레 국수집'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자립을 돕는 '민들레 희망센터', 어려운 이웃이 치료받을 수 있는 '민들레 진료소', 방과 후 갈 곳 없는 어린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민들레 꿈 공부방.민들레책들레' 등도 함께 운영해 나가고 있다. 주님의 뜻에 따라 가장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서영남 씨를 만났다.
김혜원 글/ 장제민 편집/ 서영남 사진 제공
가톨릭출판사 창립 1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의 가톨릭 명사들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내 인생의 책)을 소개하며, 그들의 신앙과 삶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봅니다.
민들레 국수집 서영남 대표를 인터뷰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하나둘 연락이 왔다. 대개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민들레 국수집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 네가 가는 김에 전해 줘."
가톨릭출판사 사장 홍성학 신부는 직원 미사 봉헌금을 모아 둔 돈을 건네며 필리핀 민들레 국수집 운영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아는 작가님은 쌀을 사다 줄 것을 부탁했고, 한 친구는 그 자리에서 지갑을 열더니 민들레 국수집에 필요한 물품을 사다 주라고 했다.
인천광역시 동구 화수동에 있는 민들레 국수집에서 만난 서영남 대표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이 일은 제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하신답니다."
장을 보러 가면 상인이 서 대표에게 콩나물을 한 웅큼이라도 더 주려 하고, 동네 이웃들은 김장 김치를 넉넉하게 담았다며 가져온다고 했다.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어김없이 채워진다고 했다. 그렇게 주변에서 도움을 받아 민들레 국수집은 VIP들을 모시며 오늘도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서 대표는 이곳에 오는 손님들을 VIP라 부른다. '하느님이 보내주신 최고의 손님'이라는 뜻이다.) 또한 재작년에는 필리핀에 민들레 국수집을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서영남 대표에게 내 인생의 책에 대해 물었다. 그가 고른 책은 인터뷰 때마다 언급하던 도로시 데이의 자서전 (잣대는 사랑) (분도출판사, 1991년)이었다.
(잣대는 사랑)은 '하느님의 종' 도로시 데이의 전기입니다. 이 책을 언제 접하셨나요? 이 책을 '내 인생의 책'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980년 후반, 그땐 제가 수도원에 있을 때입니다. 당시 한현 선생이 (참사람되어)라는 회지를 우편료만 받고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는데, 거기에 소개가 되어 도로시 데이를 알게 되었지요. 이후 분도출판사에서 낸 (잣대는 사랑)을 일고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 그리고 가톨릭 일꾼 단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930년 세계 대공황 때, 도로시 데이는 '환대의 집'을 만들어 누구든 와서 식사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잠을 잘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곳은 병자, 가난한 이, 실직자, 노인, 고아 등 모두에게 열려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로시 데이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당신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노라고 격려했지요. '환대의 집'에서 환대를 받고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지만 그곳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구성원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환대의 집'을 지금까지도 운영하고 있지요. 민들레 국수집은 이런 '환대의 집'을 모델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많은 분이 이 책을 읽고 어려운 사람을 어떻게 돕는지를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무엇을 줄 때는 절대 생색을 내지 않습니다. 저는 도움은 이렇게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족이 아니면 생색을 내면서 줍니다. 그건 폭력과도 같은 일입니다. 주는 방식이 잘못되면 상대방을 거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주면 그 사람도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무엇을 줄 때 한 손으로 주느냐, 두 손으로 주느냐에 따라 상대편을 거지로 만들지, 아니면 살릴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그저 미소를 짓는다 해도 두 손으로 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원래 수사로 살고 계시다 환속하셔서 민들레 국수집을 내셨는데요. 그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22살에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47살에 나왔습니다. 저는 지금도 수도 생활은 천국에서의 삶을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 틈에서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에 보따리 하나만 싸들고 거리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 역시 노숙인들은 일도 안 하고 게으르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당시 교도소에 있는 형제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동인천역을 자주 왔다갔다 하게 되었고, 노숙인들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길에서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고 저분들을 모셔다가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료 급식소 대신 식당으로 모시고 싶어서 음식점을 내는 절차를 밟고, 조리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처음에는 국수에 김치를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국숫집을 열었는데 오시는 VIP들이 국수만 먹으면 배가 너무 금세 꺼진다고 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밥집으로 바꿨습니다. 이름을 그대로 둔 까닭은 언젠가 우리 VIP들이 먹을 게 많아져서 국수만 먹어도 괜찮습니다 하고 말하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인터뷰 중 쉬는 시간에 서 대표의 아내 베로니카 자매가 빳빳한 천원짜리 지폐를 봉투에 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민들레 국수집에 오시는 손님들이 책을 읽고 소감을 발표하면 장려금을 지급한다고 했다. 서 대표는 책도 읽고 말하는 연습도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며 또 이 돈 3천 원이면 밖에서 잠을 지새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득 걱정이 되었다. 하루에 700-800여 명이 와서 식사를 하는데, 정부의 지원 없이 일반인들의 도움만으로 꾸려 가는 이곳이 과연 운영이 될까 하는 걱정. 경기가 어려운 요즘 후원금이 줄어들기라도 하면 민들레 국수집은 문을 닫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재정의 어려움은 없을까? 서 대표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그분께서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미래는 하느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전 그럴 능력이 없어요. 돈은 아슬아슬할 정도로만 있으면 됩니다. 약간 모자란 듯 그렇게 사는 것이 스릴 만점입니다. 또 부족하다 싶으면 알아서 다 채워 주실 것입니다."
급진적 사회주의자가 열심한 가톨릭 신자가 되기까지 사람들은 도로시 데이의 삶을 바오로 사도의 '회심'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대표님에게도 도로시 데이와 같은 회심의 시기가 있었는지요?
수도원에 살 때 저는 철이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참사위원이 되고, 그게 대단한 줄 알았지요.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문득 '수도자인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직을 내려 놓고 교도소에 있는 형제들을 면회하러 다니기 시작했지요. 돌이켜 보면, 그땐 수도 생활을 잘하는 게 제 인생의 전부였어요. 예수님이 목적지가 되어야 했고, 수도 생활은 그 길로 가는 방편이 되어야 했는데 너무 오만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버려진 돌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쓸모없던 돌이었던 제가 일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요.
도로시 데이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일을 하며 헌신하였지만 수없이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대표님의 경우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지금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 발만 내딛으면 죽을 것 같지요? 그게 아닙니다. 한 발만 더 내딛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저는 욕심을 안 부리고, 공동선을 위해서 산다면 사는 데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힘든 일은 까짓 내가 하고, 쉬운 일은 포기하면 올바른 선택이 됩니다. 이건 저희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어머니는 쌍둥이셨는데 쌍둥이 언니와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합니다. 내가 더 가지려고 하면 싸움이 나지만 덜 가지려고 하면 그럴 일이 없다고 항상 가르쳐 주셨죠.
도로시 데이는 아빌라의 데레사, 리지외의 데레사 등 여러 성인을 언급하며 그분들처럼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대표님도 존경하는 성인이 있나요?
저는 성모님, 하느님의 종 도로시 데이,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다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를 존경합니다. 모두 공감 능력이 뛰어난 분이셨죠. 저는 그 점을 본받고 싶습니다. 좀 더 부드러워지고, 자비로워지고 싶거든요. 때때로 '난 왜 이리 인정머리가 없나.' 하고 반성합니다. 예전에는 인내심이 참 부족했습니다. 제 기대가 어그러지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며 화를 냈죠. 하지만 민들레 국수집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오시는 단골손님이 계신데 그분을 보며 반성합니다. 예전만 해도 다른 사람이 나랑 무슨 상관이냐 그러셨는데 요즘은 민들레국수집 청소는 물론 동네 청소도 맡아 하십니다. 그런 걸 보면 속더라도 끝까지 믿어 주고, 속아 주는 걸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믿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이 변하니까요.
도로시 데이의 꿈은 환대의 집이 없어지는 것이었고, 서영남 대표의 꿈은 노숙인들이 먹을 것이 풍부해져 국수를 즐겨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서영남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잘 살다가 사업 실패 등으로 노숙자가 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는 우리가 모두 한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부터가 세상 사람들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진짜 형제자매로 생각한다면 제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먼저 해야지요.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참조)"
작은 빛이 하나둘 모여 세상을 밝히는 큰 빛이 되는듯
이런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분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민들레 공동체를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
민들레 국수집과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날들이 즐겁습니다. 민들레 사랑을 힘차게 응원하겠습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감사의 의미와 사랑을 조금씩 조금씩 느끼고 갑니다.
제 마음도 사랑의 마음을 널리 널리 전하겠습니다. 민들레 수사님 늘 감사드립니다.
검소하고 소박하며 겸손한 민들레 국수집을 만들어오신
서영남 대표님의 마음은 사랑과 기쁨, 희망으로 넘쳐납니다.
앞으로도 화이팅하세요!!
사랑을 나누고 희망을 나누는 일^^ 늘 기도로 응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