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의 회상: 두만강에서 중앙아까지 ⑥
모든 것이 상품, 자릿세와 탱화사진
1990년대 초는 중국의 개혁개방이 본격화되고 경제체제가 사회주의에서 시장사회주의체제로 전환되어 본격적으로 작동되는 시기인데, 여름 어느 날 나는 도문의 두만강 변에 있었다. 조선족 자치주인 연변의 큰 도시 중의 하나인 도문에서 우리 동포들의 생활은 나의 과거를 회상시키며 가슴이 벅찼다. 건너편 북녘 땅을 바라볼 수 있고 북한 동포들의 중국 나들이도 여기저기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생경한 광경을 담아보고자 카메라가 바빠졌다. 그런데 전에 왔을 때는 안 그랬는데 한국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두만강 철교를 배경으로 건너편과 나들이 모습을 찍으려 하는데 사진 찍기 좋은 곳에 포토 존을 만들어 놓고 자릿세를 받고 있었다. 찍기만 해도 자릿세, 찍어주면 찍사세, 인화하면 바가지 . . . 중국 사람들에게는 엄격하지 않지만 한국인에게는 엄격하고 우리는 봉이었다. 항의 아닌 항의를 해보았다. 물론 우리말이 다 통하니까 대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돌아온 대답은 “남조선이란 자본주의 국가에서 왔으면서 자본주의의 기본도 모르느냐”는 힐난일 뿐이다. 참 자본주의 사고방식을 재빨리 도입한 것인가? 아니면 개방 전 사회주의시절에도 이러한 자본주의적 관행이 있었는지? 오기가 작동하여 사진 찍는 곳 옆에서 찍으려니 피차 심기가 불편했다. 다음에 갔을 때는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한 곳이 몇 군데 더 생기었더라.
비단 이러한 자본주의 학습은 중국에서만 경험한 것이 아니고, 몽골에서의 경험은 더 재미있었다. 울랄바탈에서 우선 전통시장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어야 했다. 큰 돈은 아니지만 거래를 하든 않든 시장 입장료를 내어야 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5일장 입장세는 상상도 못했던 나에게는 시장 입장료는 충격이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환전상인데 돈을 바꾸려면 환율이 들쭉날쭉 이었다. 돈이 적다고 하면 한 웅큼 더 집어주니 나 원 참. . . 그도 그럴 것이 환전을 하여 현지 돈을 쓰마보면 아무리 써도 줄지 않으니 참. 그 동안 국영가격으로 상품이 거래되었으니 만큼 물가가 싸엇섰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현상은 사회주의군 개혁개방시기에는 어느 나라든지 비일비재했었다. 러시아도 그랬고, 베트남도 그랬고, 중앙아시아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었다.
몽골에서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박물관에서 커다란 탱화(幀畵)를 보고 가이드에게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어보니 괜챦다고 하여 찍었다. 찍고 나니 관리인이 와서 물어본다. 어는 부처를 찍었느냐는 것이다. 탱화에는 큰 부처님이 있고 그 주위에 여러 스님, 보살 들이 많이 있는데 어디를 찍었느냐는 질문에 당화하였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큰 부처를 찍었으면 값이 비싸다는 것이다. 참 기가 막혀서 . . . 아니 사진을 찍으면 큰 부처는 물론 주위의 인물들이 다 찍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어느 것을 찍었느냐고 재차 묻는다. 대답이야 큰 부처님을 안 찍었다고 하여 싼 값을 내었다.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한 행위가 양심이었을까? 주는 대로 받는 것이 부처님의 설법이었을까? 어색한 자본주의의 일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