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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대 '베끼기 엥까'에서부터 시작된 일본음악의 흐름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수많은 변모와 변혁을 거듭해오며 세기말을 향해 달려왔던 90년대. 이러한 10년이라는 기간이 있었기에 현 시대의 J-POP씬은 형성되었다. 밀레니엄을 맞아 jj Park이 90년대를 뒤돌아보며 기획한 2회연속 'jj의 90년대 J-POP 총결산' 풀 가동. 스타트!!
현재의 J-POP씬은 과거 10년 동안의 일본 음악산업이 낳은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기말을 향해 지금까지 끊임없는 변모와 변혁을 거듭하며 달려왔던 90년대의 J-POP.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그 장대하고 화려했던 10년간의 무대가 막을 내리는 밀레니엄 시대가 다가온다. 이에 jj Park에서는 10년의 기간을 '90∼95', '96∼99'라는 2단계 기획으로 나누어 90년대 J-POP을 총결산해보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우선 그 첫 번째로 90년도에서 95년도까지의 J-POP을 알아보자.
제 1탄 : 90∼95년 [始り]
◆ 아이돌의 쇠퇴와 함께 밴드 붐을 조성하며 저물어갔던
80년대
마쯔다 세이꼬(松田聖子)를 필두로 아이돌 스타가 J-POP씬을 주름잡던 80년대 초. 하지만 음악을 듣는 대중들의
인구가 서서히 늘어가면서 씬은 아이돌 이외의 장르에게도 조금씩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86년 그룹 BOOWY의 앨범이 록 밴드 최초의
밀리온 셀러를 기록하면서 씬에는 엄청난 밴드 붐이 일어났고 당시 이 붐을 타고 만들어진 프로그램 [いかすバンド天國(그룹을 부활시키는
천국)]등에서는 수많은 신인밴드들이 배출되기도 했다.
이 시점부터 J-POP씬은 다가올 90년대부터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고
90년대 서두를 장식할 대부분의 밴드가 탄생 또는 자리를 잡는다.
◆90∼92년도
이 시기에는 80년대 말부터 도래되었던 밴드
붐과 함께 J-POP씬에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타이 업(tie up) 마케팅 전략이 수많은 음반들의 밀리온 히트를 양성한다. 이 때부터 현
일본음반 시장의 초석이 그 형태를 갖추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타이 업 - 아티스트의 곡이 CM이나 드라마 등에 기용되는 것
ex)
타이 업의 시초 격인 B.B.グィ-ンズ(비비 퀸즈)의 [おどるポンポコリン(춤추는 퐁포코링)]은 90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만화
[ちびまる子ちゃん(치비마루꼬쨩)]의 주제곡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1)밴드 붐의 최고조(90)
90년도에 들어서면서 밴드 붐은 그 절정을 이룬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각 방송사에서는 각종 '록 콘테스트'와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 방송을 통해 또한 수많은 그룹사운드가 배출되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90년도는 역사상 가장 활발한 밴드
시장이 이루어졌던 한 해가 된다.
이 시대 활동하던 그룹들로는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있는 氷室京介(히무로 쿄스께)와 布袋寅泰(호테이
토모야스) 등이 속해있던 BOOWY, 일본 역사상 최고의 여성밴드로서 수많은 기록을 갱신해왔던 PRINCESS PRINCESS, 지금까지
20년간 끊임없는 인기를 과시하며 부동의 정상 아티스트로서 군림하고있는 Southern All Stars, 향후 J-POP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되는 X(-JAPAN),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LINDBERG, レベッカ(레벳카)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도 86년 록 밴드 최초의 밀리온 셀러를 기록하며 밴드 붐의 도화선에 불을 당겼던 BOOWY와 지금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하며 매년 발매하는 음반마다 차트 상위권을 기록해오는 Southern All Stars, 그리고 후대의 J-POP씬에 '비주얼 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기며 90년대 말 대부분의 후배 록 그룹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X(-JAPAN) 등은 당시도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지만, 현
J-POP씬에 까지 그 활동과 영향력이 이어질 정도로 관록과 실력을 겸비한 전설적인 그룹으로 남고 있다.
한편, 90년도의 이와 같은
엄청난 밴드 붐에도 불구하고 씬에는 80년대부터 그 생명력을 꾸준히 이어오며 끊임없이 그 지지도를 잃지 않던 소수의 아이돌 가수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느 덧 중견가수로서 아직도 꾸준한 활동을 하고있는 中森明菜(나까모리 아끼나)와 工藤靜香(쿠도 시즈까), 今井美樹(이마이 미끼),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渡ナベ美里(와타나베 미사또), 우리 나라 음악팬들에게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는 여성 듀오 Wink등이 그러했다. 이와 같이
몇몇의 아이돌 가수들을 제외하고는 록 그룹들이 음반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던 90년도였지만 이 해에는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이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록도 아니고 아이돌 사운드도 아닌 어린아이들을 겨냥한 우스꽝스러운 개그송(?)
B.B.グィ-ンズ(비비 퀸즈)의 [おどるポンポコリン]이 모든 장르를 제치고 90년도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는 영예를 안은 일이었다.
이 곡은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어린이 만화 [ちびまる子ちゃん(치비마루꼬쨩)]의 주제가로 사용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이는 92년도부터 씬에
불어닥칠 타이 업 붐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2)J-POP씬에 출현하기 시작한 타이 업 바람(91-92)
MTV가 음악산업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국과는 달리 음반의 이렇다 할 PR방법이 없던 일본에서는 91년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おどるポンポコリン]을 발판으로 본격적으로 타이 업을 이용한 마케팅 시대가 막을 올린다.
이렇게 시작된 타이 업
붐과 함께 얼마 안 있어 드라마 [동경 러브스토리]의 주제가인 小田和正(오다 카즈마사)의 [ラブ·ストリ-は突然に(러브스토리는 갑자기)]가 판매고
250만장을 넘기는 대 히트를 기록했고, 이 방식은 그대로 CHAGE&ASKA의 [SAY YES]가 물려받으면서 2곡은 91년도 최고의
히트곡 순위를 나란히 차지한다.
92년도에 들어서면서 이와 같은 타이 업 바람은 식을 줄 모르는 그 열기를 더해간다. 라이브에서부터 그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며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에 있어서는 당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米米CLUB은 인기 드라마의 주제곡 [君がいるだけで(당신이
있는 것만으로)]로 276만장이라고 하는 빅 히트를 기록. 전년의 小田和正(오다 카즈마사)를 뛰어넘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다.
이와 같은
타이 업 바람은 90년도 가뜩이나 열악한 음반업계 상황하에서 마땅한 PR방법을 갖지 못하던 B'z, TUBE, TMN, Dreams Come
True, マキ原敬之(마끼하라 노리유끼), 浜田省吾(하마다 쇼오고) 등 대다수의 실력파 아티스트들이 재 부활 또는 빛을 발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사운드만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야했던 타이 업 방식에 있어 이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 외에도 댄스의
불모지였던 일본에서 최초의 대중성을 겸비한 댄스그룹 ZOO 역시 바로 이 시기에 탄생했는데 이것은 J-POP씬에 도래할 앞으로의 폭넓은 다양성을
예견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신호탄이었다.
이와 같이 새롭게 불기 시작한 타이 업 바람과 함께 이 시기를 시작으로 현 음반 시장의 전형은
그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 분위기는 93년에도 이어져 이러한 타이 업 마케팅을 100% 활용한 거대한 레이블이 그 시대를 주름잡는 또
하나의 J-POP 역사가 그 막을 연다.
jj의 90년대 J-POP 총결산!! ****제 1탄 : 90∼95년
◆ 93∼95년도
90∼92년도와는 달리 이 시기부터의 J-POP씬은 엄청난 스피드로 그 변모를 거듭한다.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는 발빠른 움직임 속에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개념의 장르들이 출현하고 그 장르들이 그 시대에 결실을 맺으며 최고의 권좌를
차지하는 양상을 보인다.
1)'빙 사운드'의 J-POP시장 석권(93)
드라마나 CM등에 사용된 곡들이 히트를 기록하는 경향은 93년에 들어와서도 계속된다. 단, 93년에는 이러한 타이
업 마케팅 전략을 최대한 활용하는 'Being Music Fantasy'라고 하는 기획사의 이름이 J-POP씬에 새롭게 대두되기 시작한다. 이
기획사는 철저한 타이 업 마케팅과 함께 소속 가수들을 드라마나 CM 이외에는 브라운관에 전혀 드러내지 않으므로 아티스트들을 좀더 음악에 전념할
수 있게 하고, 팬들에게 궁금증과 갈증을 유발시켜 음반 판매율을 높이는 일거양득의 전략을 사용하였다.
심지어 이 기획사 소속의
大黑摩季(오오구로 마끼)와 같은 가수는 당시 "과연 실제 존재하는 인물일까"하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이 기획사의 또 한가지 특징은
기획사 소속의 모든 아티스트와 작사·작곡·편곡가 들이 이 기획사의 핵심인물이자 가수겸 프로듀서인 纖田哲郞(오다 테쯔로)를 필두로 패밀리적인
친밀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부분 가수들의 음악적 색깔까지도 확고히 정립된 사운드를 표방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코무로
패밀리'나 60년대 팝 시장의 '모타운 레코드'와 같은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여하튼 이러한 'Being Music Fantasy'의
방식은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93년 한해 동안 대부분의 히트곡들은 이 기획사의 아티스트들인 B'z, ZARD, WANDS,
DEEN, T-BOLAN, 大黑摩季 등이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빙 계열 아티스트들의 독주에도 불구하고시대의 흐름에
상관없이 CHAGE&ASKA와 Southern All Stars, Dreams Come True, 관록의 여가수 松任谷由實(마쯔토야
유미) 등의 실력파 아티스트들은 (현재까지도 그렇지만) 80년대 말부터 이어온 여전한 그들의 저력을 보여주며 꾸준한 인기를 과시한다.
이
중에서도 CHAGE&ASKA와 같은 경우는 놀랍게도 모든 빙 계열 아티스트들을 제치고 93년 한해 최고의 히트곡 [YAH YAH
YAH]를 낳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2)장르의 과도기적 한해(94)
모던한 소프트 록 중심의 빙 사운드가 씬을 독주하던 93년 한해. 이들의 영향력은 94년에 들어와서도 꾸준히 지속되지만 이 시기는 95년도부터 불어닥칠 다양한 장르의 개념이 그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장르의 과도기적 한해를 보내게된다.
◈ 컬리지 록
록이라고는 하지만 그룹 스타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던 빙 계열의 음악과는 달리 이 시기에는
전형적인 대학가 록 그룹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이른바 컬리지 록 밴드 Mr.Children이 씬에 혜성같이 등장한다. 모던한 소프트 록에 질려
어느덧 복고풍 그룹 사운드에 목말라하던 대중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순식간에 그들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Mr.Children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고 결국 이들은 94년 한해 최고의 히트 싱글 [innocent world]를 낳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게다가 이 영예의 타이틀은 다음 해에 그들이 일으킬 'Mr.Children 신드롬'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점에 주목을
해야한다.
◈ 코무로 테쯔야
지금은 마치 하나의 장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코무로 패밀리'. 하지만 이 시기는
지금에 비한다면 小室哲哉(코무로 테쯔야)라는 그의 이름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힙합 문화가 일본에 침투하기 시작했던
94년. 그 문화적 갭을 줄이는데 가장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댄스 그룹 trf의 출현으로 프로듀서 코무로의 이름은 세간에 급속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록이 모든 음악의 뿌리였던 당시까지의 J-POP씬에 연주가 아닌 퍼포먼스 위주의 그룹인 trf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었고
이들의 인기 또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었다.
이 외에도 小室哲哉(코무로 테쯔야)는 당대에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던 댄스 곡
篠原凉子(시노하라 료오꼬)with t.komuro의 [戀しさと せつなさと 心强さと(사랑스러움과 애절함과 강인함)]의 프로듀스로도 활약하며 또
한번 세간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춤과 노래'라는 확고한 컨셉으로 小室哲哉(코무로 테쯔야)는 앞으로 다가올 '코무로 시대'의 기반을
이렇게 조금씩 다져가기 시작한다.
◈ 신진세력
J-POP 다양성의 시작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는 또한 솔로로서 외로이
자기들만의 영역을 구축하면서 씬에 새롭게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아티스트들이 있었다.
싱어 송라이터로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실력파
아티스트로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여성가수 廣瀨香美(히로세 코오미)와 마찬가지 싱어송 라이터로서 가수로 데뷔했지만 잘생긴 얼굴 덕분에 배우로 먼저
이름을 날리게됐던 福山雅治(후쿠야마 마사하루), 80년대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밴드 チェッカ-ズ(체카-즈)의 해체와 함께 솔로데뷔 했던
藤井フミヤ(후지 후미야)등이 그러했다.
3)복고의 바람(95)
다양한 장르, 수많은 아티스트들과의 접전 속에서 94년도 최고 히트곡을 내며 당당히 한해를 마감했던
Mr.Children의 인기는 95년에 들어오면서 한층 그 열기를 더해간다.
이러한 그들의 인기는 95년 한해 동안 밀리온 싱글을 무려
4곡이나 탄생시키는 엄청난 기록을 수립하게된다.
이 중에서도 [シ-ソ-ゲ-ム(시소게임)]같은 작품의 히트는 Non-tie up으로 이루어낸
쾌거로 더욱 주목을 받았는데 타이 업이 이젠 음반 마케팅에 전형이 되어 버린 당시로서는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다.
94년 이러한
Mr.Children이라는 그룹 하나의 출현으로 당시 J-POP씬에는 전반적인 복고풍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인디 시절 라이브 하우스 등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Mr.Children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던 그룹 SPITZ 또한 이와 같은 복고 바람을 타고 컬리지 록의 또 하나의 디바로
자리매김을 하게된다.
이 시대를 주도하며 컬리지 록의 쌍두마차로 불리던 이 두 그룹 이외에도 Mr.Children의 프로듀스를 맡고있던
小林武史(코바야시 타케시)가 직접 참여한 MY LITTLE LOVER 또한 복고 사운드를 표방한 팝 밴드로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게된다.
95년 한해 이와 같은 J-POP씬의 전반적인 복고바람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B'z와 ZARD등이 빙 계열의 자존심을 지키며
꾸준한 강세를 보였고, 89년 데뷔이래 단 한번의 슬럼프 없이 확고한 지지기반을 굳혀온 Dreams Come True는 이 시대 최고의 히트곡
[Love Love Love]를 탄생시키며 시대의 흐름에 상관없는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다.
하지만 이 시기 무엇보다도 주시해야 할 점은
trf의 성공에 힘입어 시작된 코무로의 본격적인 움직임이었다. 코무로의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은 trf뿐만 아니라 당시 가수도 아닌 코미디언과 함께
만들었던 프로젝트 그룹 H Jungle With T의 [Wow War Tonight]을 95년 싱글 랭킹 2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것은 다음 해부터 엄청나게 불어닥칠 '코무로 신드롬'의 도래를 알리는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사건에 불과했다.
출처: 일본어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