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도(黃龍圖) 이야기🐉
<청용(靑龍)의 해를 맞이하면서>
🐉 🪷🦎 🐉 🪷🦎🐉 🪷🦎🐉 🪷🦎🐉
용(龍)은 신비(神祕)의 구슬
여의주(如意珠)를 가지고 있어서
천변만화(千變萬化)의
능력(能力)으로
몸의 크기와 형태(形態)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이동(移動) 할 수 있으며,
날씨와 물, 구름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能力)을 가진 상상(想像)의
동물(動物)이며,
이러한 다양(多樣)한
능력( 能力)때문인지
용(龍)은 인간 생활(人間 生活)의
여러 방면(方面)에서
다양(多樣)한 의미(意味)와
모습(模襲)을 가진 존재(存在)로
반영(反映)되었다.
우선(于先),
언어(言語)에 사용(使用)된
용(龍)을 살펴보면
용(龍)은 전통적(傳統的)으로
고귀(高貴)하고 신비(神祕)로운
존재(存在)로 비유(比喩)되어
왕(王)의 얼굴을 용안(龍顔),
왕(王)이 앉는 의자(椅子)를
용상(龍床),
왕(王)의 옷을
용포(龍袍)라고 하는데
왕(王)을 용(龍)에 비유(比喩)하는
이유(理由)는
용(龍)에게 인간(人間)과
국가(國家)를 보호(保護)하고
다스리는 신비(神祕)한
능력(能力)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종(世宗) 때
조선 왕조(朝鮮王朝)의 뿌리와
정당성(正當性)을 밝히고
역대 군주(歷代 君主)를
칭송(稱頌)한
한 글 서사시(敍事詩)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는
제목(題目)을 붙인 이유(理由)도
용(龍)이 가진 이 같은
고귀(高貴)함 때문이다.
또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중국(中國) 양(梁) 나라에
장승요(張僧繇)라는
유명(有名)한 화백(畵伯)이
안락사 라는 절의 벽에 그려진
용(龍)에 눈동자를 그려 넣자
즉시(卽時) 그림 속 화룡(畵龍)이
실제 용(實際 龍)이 되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由來)된 표현(表現)으로,
일에 있어
가장 중요(重要)한 부분(部分)을
마무리 지어 완성(完成)시키는 것을
의미(意味)할 때 쓰인다.
용(龍)은 상징적(象徵的)인
의미(意味)뿐 아니라
그 외형(外形)에 있어서도
다양(多樣)한데
청룡(靑龍), 흑룡(黑龍), 황룡(黃龍),
백룡(白龍) 등이 그것이며
용(龍)을 그릴 때도
격식(格式)이 있어서
왕(王)과 왕비(王妃)의
예장(禮裝)에는
발톱이 다섯 개인
오조룡(五爪龍)을,
왕세자(王世子)와 세자빈(世子嬪)은
사조룡(四爪龍)을,
왕세손(王世孫)은 삼조룡(三爪龍)을
수놓은 보를 착용(着用)해서
발톱의 수로 위계(位階)를
표현(表現)하기도 하였다.
청룡(靑龍)이
사악(邪惡)한 잡귀(雜鬼)를 내 쫓는
벽사(辟邪)의 의미(意味)를
담고 있으며
흑룡(黑龍)이 가뭄이 들 때
기우제(祈雨祭)를 올려
비(雨)를 구(求)했던
대상(對象)이라면,
황룡(黃龍)은
백룡(白龍)과 함께 임금,
황제(皇帝)를 상징(象徵)하였고
민간(民間)에서는
용륜오복(龍輪五福)의
의미(意味)를 담아
복(福)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발톱의 수를 네 개나 세 개인
(黃龍圖)를 그려 새해에
까치호랑이 그림 등과 함께
길상적 의미(吉祥的 意味)로
사용(使用)하였다.
용(龍)이
부정적(否定的)인 언어(言語)에
사용(使用)되기도 하는데
용(龍) 잡는 기술(技術)이라는 뜻의
도룡술(屠龍術)이 그러하다.
도룡술(屠龍術)은
옛날 주평만이라는 사람이
용(龍) 잡는 기술(技術)을 배웠으나
세상(世上)에서
써먹을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표현(表現)으로
배우는 것은 좋으나
무조건(無條件) 배우는 것 보다는
쓸모나 가치(價値)가 있을 때
배워야 한다는
교훈(敎訓)을 담고 있다.
따라서 쓸모가 없는
기술(技術)을 말할 때
도룡술(屠龍術)이라는
표현(表現)이 쓰인다.
( 조선민화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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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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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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