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는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도심에 있는 엑스포 공원에서 거의 20일에 걸쳐 음악 공연을 하고 있다. 올해에도 7월 하순부터 저녁마다 공연을 시작하여, 밤 11시까지 야외 영화 상영까지 하더니 이제는 닷새에 걸친 ‘음악대향연’을 시작했다.
속초시는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행사를 매년 벌이는가. 지역 경기를 위해 관광객 유치를 위한다고 하겠지. 하지만 일부러 이 공연을 보러 속초에 피서 왔다는 이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고, 세 시간 이상 씩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공연에 열광하고는 밤새 거리를 누비는 동네 청소년들은 많이 보았다.
그런데 이 공연장 가까이에 사는 내게는 이 음악 대향연이 폭력이다. 엑스포 공연장에 서서 둘러 보라. 가까이에, 아주 가까이에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많은 이들이 속초시민으로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다. 아주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촌각을 다투며 공부하는 이도 있을 테고, 독서를 즐기는 이도 있을 테고, 병마와 싸우는 이도 있고, 아기를 돌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다양하고 자잘한 삶들이 이어지고 있는 주택가에서 이런 대규모 공연을 해마다 그것도 닷새 동안 펼친다는 것은 그야말로 폭력이고 횡포이다.
7월에는 밤 11시에 고음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곳에 가서 이벤트사 담당자에게 항의를 하였다. 그들 역시 주택가 근처에서 그와 같은 행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몰상식한 발상인지 충분히 이해한다고 한다. 아마 다른 시였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을 이 속초시는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은 해마다 이 ‘대한민국 음악 대향연’ 공연을 하는 시기를 휴가 기간으로 잡는다. 집안이 울릴 정도로 시끄러운 음악 소리는 리허설을 하는지 낮부터 집안을 울리기 시작하여, 밤 10시가 되어야 끝이 난다. 무더운 여름날에도 소음에 지쳐서 창문이라는 창문은 틈새 없이 모두 닫아 버린다. 그리고 이틀 정도는 아예 속초를 떠났다가 오곤 했다.
어제는 개학을 앞두고 숙제가 밀린 아이를 데리고 아예 평생교육정보관으로 피신을 갔다가 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공연장의 스피커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닫고 선풍기 바람에 의존하여 정숙하게 공부를 하고 있는 그곳의 사람들을 보다 보니 속초시에 대한 반감이 더욱 거세졌다.
속초시는 그 공연에 해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겠지. 아까운 우리들의 혈세를 외부 공연팀에 아낌없이 퍼부어 주면서 속초시민의 문화적인 질을 높인다는 엉뚱한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시립도서관 하나 없는 속초시가 여름 내내 아파트 즐비한 공원에서 겁도 없이 소음 횡포나 부리다니. 도대체 언제까지 이 무더운 여름날 낮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시끄러운 소음을 참아 줘야 하는 것인가. 속초시민의 자격으로 ‘안락하게 생활할 권리’도 있음을 외쳐 본다. 속초시가 진정 편안하고 살기 좋은 속초를 건설할 의지가 있다면, 이런 조양동의 아파트 밀집 지역에는 그딴 공연이 아니라 작은 도서관을 지어 줘야 한다. 아직까지 속초시에 도교육청 관할 도서관만 있지 시립도서관은 없다. 지금까지 몇 해 동안 이 공연에 쏟아 부운 돈을 합치면 시립도서관 정도는 짓고도 남았겠다.
앞으로는 구태의연하게 이와 같은 소음으로 인근 주택가의 생활권을 침해 하는 몰상식한 짓은 제발 그만 두기 바란다. 혹시 넘치는 예산 쓸 데가 없다면 마을마다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데에 그 아까운 돈을 써라. 혹시 속초경제를 위한다면 학생들 무상급식하는 데에 써라. 혹시 음악 애호가 시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연을 해마다 개최할 거라면, 그 예산 규모를 분명히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라. 설악산이나 종합 운동장이나 해수욕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분명 시민의 ‘조용히 살 권리’는 보장해야 한다. 인근 주민을 음악을 음악이 아니라 소음으로 듣는 불쌍한 시민으로 만들지 말아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