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왕건 - 훈요 10조
얼마전 태조 왕건(王建)의 릉을 북한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아니 그동안 왕건릉도 몰랐다는 말인가? 그런데, 역시 우리 역사의 기틀을 다진 어느 일본학자가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우습기까지 합니다. 일본에서는 역사학 교수되기가 쉬운가 봅니다.
"...북한지방에서 고려 시대 초기로 추정되는 릉을 찾았다. 그 규모가 큰 것을 보니, 왕건릉으로 생각된다.. 조사해보니, 고려 초기로 보이는 물건들이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고려 태조 왕건릉이 확실해보인다..."
일부 우리 학계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일본 학자의 주장에 힘없이 그것은 고려태조 왕건릉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역시 고려태조 왕건의 릉임을 증명하는 어떠한 비석이나 지석은 없습니다. 희한하게도 일본학자들이 발견한 릉은 모두 지석도 비석도 릉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잘도 주인을 찾아냅니다.. 어떻게 그들은 우리의 감추어진 유적을 이렇게도 잘 알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made in japan의 역사입니다. 아마 신통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려태조 왕건릉은 "대륙의 사천성(四川省) 성도"에 있습니다. 성도는 삼국지게임을 많이 하신 분은 유비의 촉의 수도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유비와 왕건이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은 아닙니다. 우선, 삼국지게임도 일제(made in japan)입니다. 저도 삼국지게임은 좋아하지만, 여기에서 경계할 것은 삼국지란 화족의 국수주의적인 소설로 화족 삼국이 멸망한 후 천 년후에 쓰여진 소설입니다. 물론, 성도가 유비의 촉한의 수도였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삼국지란 소설은 몽골의 식민지배로 자존심이 구겨진 그들이 민족적 긍지를 찾고자 만든 그들의 국수주의 소설인 것입니다. 그것을 일본인들이 역사게임으로 만들었으니, 그것을 보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는 초라하다고 여깁니다. 우리의 생활에는 일제가 너무도 많이 자리잡아 어느 것이 일본 것인지도 잘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훈요십조를 봅시다.
왕건의 훈요 10조
1. 대업은 제불호위에 이하여야 하므로, 사원을 보호 감독할 것. 2. 사원의 창설은 도선의 설에 따라 함부로 짓지 말것. 3. 왕위 계승은 적자, 적손을 원칙으로 하되, 마땅하지 아니할 때는 형제 상속도 가함. 4.거란과 같은 야만국의 풍속을 본받지 말것. 5.서경은 길지이니 중시할 것. 6.연등과팔관은 주신을 함부로 가감치 말것. 7.간언을 받아들이고, 참언을 물리칠 것이며, 부역을 고르게 하여 민심을 얻을 것. "8.차현(車峴)이남의 인물은 조정에 등용하지 말것." 9.관리의 녹은 그 직무에 따라 제정하되 함부로 증감치 말것. 10.경사를 널리 읽어 옛일을 거울로 삼을 것..
이것은 왕건이 유훈으로 남긴 것입니다. 그런데, 8항을 보면 차현이남의 인물을 등용하지 말라고했는데, 현 역사하계는 이것을 지금의 반도의 "차령산맥"으로 해석합니다.(고개를 산맥으로 억지를 부립니다.) 이 역시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혹자는 왕건시대부터 지금의 전라도를 차별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일본인과 그 제자들이 우리를 분열시키기 위해서 만든 말입니다. 우선, 왕건의 맞수 견훤은 내분으로 왕건에게 투항하여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견훤에게 양주(楊州)를 식읍으로 주고, 그를 상부(尙父)라 하여 우대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왕건의 제2부인인 장화황후 오씨는 나주사람으로 왕건의 나주공략에 큰 공헌을 합니다. 고려시대의 나주를 현 사학계는 지금의 전라도 나주라고 주장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주와 청주인"편을 보세요. 장화황후에게서 난 태자 무는 후에 2대 황제 혜종이 되기 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왕건이 존경하였던(이유는 어쨋던간에)견훤과 심지어 자신의 부인이 고향이자, 태자의 고향인 지금의 전라도 인물을 등용하지 말라고,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니.. 이것은 과연 사람을 대 놓고 욕하는 셈이 되며, 과연 이러한 훈요10조가 후대에 전해질 수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훈요십조를 받들은 인물은 지금의 역사대로라면 차현이남의 인물인 제2대 혜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역사학계는 고려시대의 나주가 지금의 전라도 나주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나주와 청주인) 우리 역사의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대륙에는 차현이 아직도 있으며, 차현남쪽은 당시의 "왜"지방을 이르는 말입니다(지금의 광동성일대). 이것을 반도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즉, 나주와 차현이남은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인 것입니다. 물론, 반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지금 대룩의 "사천성(四川省) 성도"에 가면 크게 태조왕건릉인 "영릉(英陵)"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마 일간신문에 나오는 중국관광코스를 봐도 나옵니다.. 그럼 한자(漢字)가 다르겠지? 아닙니다. 우리 사학계야 한자(漢字)가 다른 글자가 발견되어도 그것이라고 우깁니다만(예를 들어 포석정등), 글자도 같습니다.
어, 그러면 왕건릉이 왜 여기에 있지? 그럼 고려가 대륙에 진출했었나? 아닙니다. 대륙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대륙에 있던 나라입니다. 상고사학회에서 그곳을 다녀와 사진을 실었는데, 아직 책을 사지 못해서 사진을 못 올리고 있습니다... 이중재님이 저술한 "상고사의 새발견"이라는 책의 뒤를 보십시요. 사진이 실려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왜 가르치지 않고 숨기려고만 하는지..그 후손들은 왕건릉을 보고도 그 것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일반 국민은 그러한 사실을 보면, 당황을 하게 됩니다. 배우지 않았던 사실이라..
허약하게만 알려졌던 고려, 해외에서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고려(COREA)", 그것은 변방의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는 나라의 이름이 아니라, 중심에 자리잡았던 초강대국의 역사입니다. 고려, 우리 역사의 초강대국의 역사를 아무 초라하게 만든 후손들이 각성해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