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파주아버지학교 지도목사님 : 2011.11.12
이러한 초능력의 소유자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초인(超人)이 눈의 초점을 모아 눈빛을 보내면 사람들은 꼼짝없이 초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초인은 자신의 이 초능력을 이용하여 사람도 죽이고 나쁜 짓을 거침없이 행합니다.
그런데 초인의 이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입니다.
예외의 경우가 있긴 있습니다. 어른으로서는 단 한 사람, 규남이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규남이는 어린아이처럼 착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졌기에 악한 기운이 덮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무시무시한 초능력자도 결국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규남이에게는 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흥행에서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막을 내린 영화, <초능력자>의 스토리입니다.
우연히 보게 된 그 영화에서 주인공 이름이 내 이름과 같아 호감이 갔고(ㅋㅋㅋ),
영화평이야 어떻든, 내가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영역이 무엇인지 배웠다는 것입니다.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이 말싸움하면 무식한 사람이 이깁니다.
어른과 아이들이 말싸움하고 고집부리면 어른이 아이들의 똥고집에 손들고 맙니다.
우는 아이들은 눈치가 없습니다. 엄마는 결국 자기 체면때문에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권모술수가 판치는 세상에서, 눈치가 백단 정도 돼야 그래도 밥이라도 먹고 사는 세상에서,
순수함은 아주 나약하고 어리숙해 보여 싸움에 이길 확률이 극히 적어 보입니다.
패자가 되어 도태될 것같은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잘 지켜오던 순수함을 버리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의 상황에 대해 순수를 버리고 타협의 길을 가다가 결국 '영원한 패자'로 끝나버립니다.
나를 짓눌러 억압해 오는 악한 류의 초능력에서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영화속 규남이처럼 순수해지면 됩니다.
사실 이럴 때 답답한 건 상대방들입니다. 일반 상식 기준에서 통하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이니까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거의 다 자신이 남보다 훨씬 더 똑똑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야 일이 풀린다고 생각하는데 규남이는 움직이지 않으니 답답하다는 거지요.
그런데 규남이는 지금의 방식이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자연의 질서 안에서 단순하게 움직이면 좋은데,
그걸 벗어나 인간의 능력과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행하려 할 때 도저히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은 불편할 것 없습니다. 오히려 불편한 건 어른입니다.
어린이의 순수를 잃어버린 어른들이 동심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불편하더라도 자기의 옷을 벗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개 초능력은 선한 목적이기보다 악한 목적으로 많이 쓰여집니다.
초능력을 이용하여 상대를 제압하고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과시해야 합니다.
꽤 오래 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전국 무속인 대회>가 열려 호기심에서 구경을 갔습니다.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졌는데, 귀신을 부르는 영매의 역할은 신기하지만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그 귀신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런 면에서는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음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허튼 소리로 들릴 테니까요.
특별히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높은 사다리 위에서 작두타기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초능력 부분보다 차력 부분에 속합니다.
어떤 영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고 순전히 자기 힘만으로 움직이는 차력사들에게 이런 부분은 기본이니까요.
길바닥에 숯불 피워 놓거나 또는 깨진 유리조각 깔아 놓고 그 위를 뛰어 지나간 다음에도 발바닥이 멀쩡한 일도
차력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보통 일반인들 역시 행할 수 있는 능력이니까요.
이른바 초능력 경지의 일들에 있어 무속인과 차력사가 보여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무속인은 자신이 벌이는 놀라운 능력을 자신만의 능력으로 말하고 신비스런 베일로 포장하는 데 반해,
차력사는 아무런 비밀(?) 없이 인체의 기능을 잘 이해하여 정신력만 집중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드러내놓고 사람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과학적입니다.
어떤 때 사람들이 나를 보고 답답하다고 합니다.
풍부한 인생 경험과 굉장히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분이기 때문에 융통성이 많을 것 같은데
의외로 전혀 융통성이 없다고 비난하듯 얼굴을 돌리기도 합니다.
뭔가 막혀도 꽉 막혀서 전혀 소통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안 된다고 합니다.
솔직히 답답하기는 나도 매일반입니다.
그런데 난 이 상황이 불편할 것 같은데 오히려 편하기도 합니다.
내 나름대로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내 나름의 소신 때문이겠지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은 참 답답한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는 초능력 한 방이면 로마 군대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왕의 자리에 등극하여
천하를 호령하며 예수 왕국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어찌 그리 초라하고 무능력한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을 수 있느냐 말입니다.
도대체 십자가 죽음 위에서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가 하면,
하늘의 아버지를 원망하듯 왜 버렸느냐고 외치는 그의 절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초능력의 기적을 보여주기를 원할 때마다 그분은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살려내 구원하기' 위한 목적의 상황일 때만 기적의 초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셋째 하늘에까지 다녀온 영적 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물게 하기 위해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는 말로 자신의 약함을 자랑(?) 합니다.
초능력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초능력은 어떻게 쓰여져야 합니까?
실제 초능력자라 할지라도 그 초능력이 자신의 욕심으로 쓰여질 때 수많은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아무리 학식이 많은 박사라도, 아무리 힘이 강한 권력자라도 그리고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이라도
어리석게 자기 욕심에 묶여 초능력을 부리기 원합니다. 더 높이, 더 강하게, 더 많이 위대해지기 위해...
그리고 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 욕심을 채워 줄 초능력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망합니다.
혹시 내 주위에 어떤 초능력자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가 내게 초능력을 행사해 돈도 많이 벌게 해주고 더 강한 힘으로 행복하게 해준다고 꼬드깁니까?
- 절대 속아넘어가지 마십시오!
행여 누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 큰 표적과 기사를 행한다고 하며 자신의 초능력을 믿고 따르라고 설득합니까?
- 절대 따라가면 안 됩니다!
마지막 때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고
성경에 기록(마 24:24)된 말씀을 통해 주님이 친히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초능력은 자기를 부풀려 큰 나무라고 하면서도 잎만 무성할 뿐인 그런 나무가 아니라,
비록 작지만 그 가지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는 나무라야 합니다.
이러한 초능력의 소유자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뒤틀리고 거스른 악한 세대에서 악한 흐름에 휩싸이지 않고 자기를 지켜낼 수 있으며,
자신이 있는 곳에서 겸손한 자세로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이 원하고 이 시대가 원하는 진짜 초능력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영화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의 규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Abraham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