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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종사법어 제11 교훈편 34장
대산 종사, ‘심훈(心訓)’을 내리시니「정당한 이유 없이 선을 하지 않는 자와 계문을 범하는 자와 일을 하지 않는 자는 대종사의 정신에 위배될 뿐 아니라 대도 정법 회상을 파괴하는 좀이 되고 마군이 되나니 어찌 두렵게 이 밥을 먹고 이 옷을 입고 이 집에서 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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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재가에게는 해당이 안 되지요? 출가에만 해당 되어요? 이럴 때만 구분이 없대. 권리 주장할 때는 구분이 없대. 우리 원불교 교법은 출재가를 전무출신과 거진출진이라고 (구분해서)표현을 했지만 사실은 똑 같다. 단지 정신육신물질 면에서, 출가는 물질보다는 정신육신으로 바치는 것이고, 재가는 정신 보다는 육신과 물질을 더 바치는 그런 내용일 뿐이지 공부하는 데 있어서 무슨 차이가 있나요? 출가가 기도하면 기도발이 더 잘 받나요? 반대도 마찬가지에요. 이번에 출가위 법훈자들 보세요. 난 놀랬어. 출가보다 재가가 더 많아요. 법훈 받는 것이. 희한한 교단입니다. 얼마든지 재가도 하기만 한다면.
솔직히 출가보다 재가가 더 쉬운 것 같지만 그것은 보통급들 생각이에요. 보통급이 생각할 때는 출가가 어렵다고 생각해. 상전급만 되어도 재가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제 말 이해되세요? 사회생활 하고 가정 꾸리면서 법 공부 제대로 한다? 출가는 환경 자체가 공부가 되게 되어버려요. 그런데 재가는 얼마든지 합리화 할 수 있거든요. 출가가 공부하기 위한 환경은 좋으나 공부심만 있다면 재가가 더 좋을 수 있다. 왜? 경계가 훨씬 많아요. 그런데 재가들이 대부분 경계에 무너져요. 우리 6,7단 봐요. 청년회 때 같으면 법당 꽉 채우고도 남을 텐데 지금 몇태기 밖에 없어요. 경계에 다 떨어져 버리고. 애기가 어째요, 직장이 어째요, 밤근무 했어요... 누가 몰라요? 막상 청년 때 물어보면 출가가 힘들어서 출가를 못하겠대. 에라이 속없는 녀석들. 저는 출가이지만 출가가 훨씬 쉽다는 것을 압니다. 재가는 얼마나 어려운지. 잘만 챙기면 재가가 빨리 출가위에 올라갈 수 있고 교화의 역량도 더 크게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출가자는 경계가 별로 없어, 사실은. 여러분들은 얼마나 많아요? 먹고 살아야지, 자식들 키워야지. 피곤해 죽겠는데 교당에 오면 교무님은 단장해라 회장해라, 청소해라, 김장해라. 어떤 교당 교도가 그랬대요. ‘교무님 우리 아무것도 시키지 마세요, 피곤해 죽겠어요.’ 철딱서니 없는 교도가 참 많아. 교무님은 혼자인데.
어떠세요, 재가가 좋으세요? 제가 강연을 나가면서 삼삼회 식구들에게 물어봤어요. 삼삼회 회원들은 거의 법호를 받으셨고 출가위나 항마위입니다.
제가 물어봤지. 다음 생에 출가 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어요. 몇 명 안 드시는거에요. 그냥 넘어가겠어요? 이유를 물어봤지. 이 법이 그렇게 좋고 항마 출가까지 가신 분들이 왜 안하시냐고. 제가 놀랐는데 왜 안한 줄 아세요?
여러분들에게도 물어봐야겠네요. 내가 진즉 알았으면 출가 했을 텐데 내가 늦게 알아서 하고 싶어도 못 했다 하는 사람? 강성태씨가 나이 70이 되어 출가하고 싶다고 받아 주냐고 저에게 그러시기에 ‘놀 거 다 놀고 올란다고?’ 그랬거든. 자, 손 한번 들어볼까요? 지금 든다고 바로 된다는 것도 아니고. 눈 다 감고 나만 알게요. 나는 내생에 한번 출가 하고 싶다, 손 들어봐요.
내가 교무한 보람이 있네요. 1/3은 넘게 들었네요. 삼삼회 보다도 낫네요. 내가 교무 잘 살았네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삼삼회 식구들에게 왜 내생에 출가 안하실거냐 물었더니 교무님들이 너무 고생해서 안 한대요. 저는 되게 충격이었어요. 예전에 제기동 교당 얘기 들었거든요. 교무님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또 제가 모신 밀타원님은 처마 밑에 솥이나 뭘 달아놔요. 그리고 평소에는 감춰놓아요. 교도 없을 때 밥 해 드시고 딱 닫아놓으세요. 종종 쌀이 없어 굶어요. 그런데 교도들은 철딱서니 없어서 계속 받을 생각밖에 안 해요. 그래서 밀양교당 짓고 그러셨거든요. 그 이야기 듣는데 어우... 제가 광주교당에서 모신 연타원님은 겨울에도 부채질을 해요. 제가 왜 부채질을 하세요? 여쭤봤더니 ‘나 더워 죽겠다야. 원래 안 그랬는데.’ 그러세요. 더 들어보니 어디 교당에 사실 때 하도 없어서 겨울에 보일러를 한 번도 땐 적이 없대. 그래서 체질이 바꿔버렸다 그러셔요. 그렇게 고생하셔서 교당 하나씩 짓고 그랬거든요. 속 모르는 사람은 원불교 돈 많다고 그러지만.
저는 어떻게 보면 고생을 안했나 봐요. 다 내생에 출가 할란다고 하는 것 보면. 제가 청년들 꼬시는 방법이 이거거든요.
대종사님께서도 금강산 다녀오셔서 감각감상이나 심신작용 말씀하셨잖아요? 저도 미국 애리조나 갔다 와서 법회를 볼 때 그랬어요. 사막에 보니까 나무들이 못 사는데 나무가 사는 길이 두 가지가 있더라. 하나는 굴러다녀. 아침이슬을 살짝 먹어요. 그렇게 사는 나무가 있고 또 하나는 뿌리를 땅속에 박는데 긴 것은 27m까지 박는대요. 길게 뻗어서 버티는 거예요. 비가 안 와도. 그래서 제가 그걸 신심의 뿌리라고 빗대어서 어떤 경계가 와도 신심만 있으면 된다고 했었는데 제가 그 때 청년법회에서 그 말을 왜 한 줄 아세요?
내가 이제 와서 (그 법회의 의도를) 말하네. 너희도 출가하면 이렇게 (미국)갈 수 있다. 교무하면 너희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예전 교무님들은 안 쓰고 안 먹고 고생한 것으로 교당이 하나씩 세워져 갔어요.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사셨어요. 지금은 그렇게 살면 애들이 (출가하러)안 나와요. 우리 청년들은 겁나게 부자인 줄 알아요. 나 어디가 찢어지지가 않아도 별거 아닌데. 그런데 그렇게 해야 교화가 되어요. 시대가 달라졌어. 나는 최대한 그거 안 보여줘요. ‘야, 나 해외에 다녀온 곳이 20개국이 넘는다.’ 그럼 이 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 교무하면 저렇게 해외에도 가나 보구나. 하나의 당근이었지. 거기에 속아가지고 스무 명이 넘게 나왔잖아?(웃음) 나중에 어떤 놈이 그래요. ‘아이고 교무님 속았어요!’ 이제 느그 집이야 인마. 헛소리 하지 마, 그랬지.(웃음)
그래서 어떻게 보면 대종사님의 뛰어난 교법과 깨침이 있었지만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초기의 그 제자들이 얼마나 애쓰고 살았는가. 그 중에 사실은, 제가 보면 남자 교무보다 솔직히 여자 교무님들이 얼마나 애쓰셨는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재가교도들. 손님재가 해가지고는 원불교 다니기 어려워요. 말이 재가지만 솔직히 신심 있고 돈이 있는 교도들에게는 온갖 교무들이 다 몰려들어요. 아직 신심의 뿌리가 안 내린 교도들은 그걸 다 차단해 버려요. 옛날에 태전약품 오철환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따님이 국회의원도 하고 그러셨죠? 서울에 계실 때 당신 자식들은 보일러를 제대로 못 때줘요. 그런데 교무님들이 엄청나게 찾아와요. 한 번도 교무님을 빈 손으로 돌려보내신 적이 없어요. 당신은 아껴도.
제가 교무 해보니까 제일 하기싫은 소리가 돈 얘기예요. 진짜 하기싫어.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말할 때가 있겠지? 왜? 불사를 위해서. 교무님들은 조금 믿는 교도님들 있으면 막 찾아가요. 흑석동에 공사 하지요? 얼마 전에 경인교구 했지요? 지금 완도에도 있지요? 보스턴, 모스크바 뭐 한다고 온갖 교무님들이 교도를 쑤셔요. 일반인이 볼 때 돈에 혈안 된 사람들같이 교무님들이 그래요. 아직은 우리가 정말 초기교단이라 그래요. 그런데 나는 순서를 좀 잡았으면 좋겠어요. 대산종사님께서 그러셨어요. 야, 공부를 먼저 해라. 그러면 교화가 된다. 교화가 되면, 그러면 사업이 절로 된다. 사업이 되면 돈은 나오는 거지. 불사 사업만 아니라 돈도 된다. 그런데 돈을 찾고, 찾고, 찾으면 교화도 안 되고 공부도 안 되면 그게 되겠느냐, 순서가 맞겠느냐.
삼학공부로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가 취사 이야기를 했죠? 취사를 잘 하려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실은 삼학이 서로 맞물려야 해요. 솥의 세 발과 같다 그러셨지요.
취사를 강조한 불교의 종파는 율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제대로 취사가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제대로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삼학을 이렇게도 표현 합니다. 계문을 지키는 것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저번에 경산님께서 해주신 ‘중도’가 바로 이거예요. 원만한 중도. 그런데 더 들어갔더니 마음을 밝혀야해. 이것이 연구지요. 마음을 밝혀서 혜문이 열려야지요. 원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란 두 가지 지혜입니다. 하나는 일에 대한 지혜요, 하나는 이치에 대한 지혜입니다. 이치에 대한 지혜는 신기하게도 비워야 밝아집니다. 일에 대한 지혜는 많은 경험과 연구와 지식을 통해서 밝아집니다. 이게 달라요. 원불교에 들어와서 머리 좋고 일 잘하는 분들이 비우는 공부를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확실히 성리 공부로 들어가서 지식과 함께 지혜가 밝아져야 하는데 어중띠게 일만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세월이 확실히 되었나 봐요. 10년차 까지는 자기가 선택합니다. 원불교에서 인사는 자기가 선택 안 하는 것 같지요? 예를 들어 교당에 살 것이냐, 기관으로 갈 것이냐. 특별한 몇몇 빼고는 대체적으로는 자기가 선택합니다. 그것을 어느 정도 수용해 줍니다. 공적이라 하더라도 본인의 의사를 가능하면 존중해 줍니다. 10년차 까지는 보내줍니다. 여건도 있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본인의 의지입니다. 그런데 딱 20년 되니까 어떻게 되는 줄 아셔요? 20년이 지나면 다 드러납니다. 뭐가 드러나느냐. 이 사람이 진실 하느냐, 신심이, 공심이 어느 정도냐가 드러납니다. 그러면 10년차까지 자기가 선택했다면 20년 차부터는 위에서 선택합니다. 간부가 되든지 수위단원이 되든지. 그리고 교도님들도 아세요. 스승이라는 대우를 받는 사람이 있고 ‘그 교무님 쫒아내 주세요.’ 하고 교도들이 총부를 찾아오기도 해요. 그게 무슨 소리냐.
20년 되면 다 드러나요. 주변의 교무들도 다 알게 되고 교도들도 알게 되고... 다 알게 돼요. 재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신심, 공심이 중요한 것이죠. 저 출가식 한 지가 이십 몇 년 되었거든? 원불교 들어온 지는 30년이 되었어요. 아 이거구나 하고 최근에 확인한 거예요. 이 친구, 공심 알아주거든요. 이 친구, 알뜰한 것 알아주거든요? 그러니 큰일을 맡아서 하는구나.
우리 교도님들도 마찬가지거든요. 보통급 때 도망 가버린 사람, 특신급에 머문 사람, 상전급에 멈춘 사람, 또 항마위에 올라가고. 마치 교무님이 준 것 같지만 결국은... 원근친소에 따라서 준 것 같은가요? 교무가 그런 거 하면 완전히 지도력을 잃어버린 것이에요. 그래서 법위나 이런 것도 알고 보면 머리 좋고 학벌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사람이 서원이 확실한가. 그리고 신심이 확실하고 공심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거꾸로 말할게요. 왜 공심을 강조하느냐? 막상 공심 안 내더라고요. 공심을 낸다는 것은 즉, 나를 비우라는 얘기거든?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라, 때로는 니가 다른 사람보다 고생해야 한다, 그것을 수용해야 하거든. 그게 공심이야. 그런데 결정적일 때 빠져요. 대종사님이 ‘너희들 다 복 받고 싶지? 다 복을 원하는구나? 그런데 왜 지을 때를 당해서는 안 해버리느냐?’ 그러셨거든요. 당해서는 안 한대. 그냥 안 하는 건 아니에요. 반드시 이유가 있지. 아기, 건강, 집 사정 온갖 사정을 대면서 결국 그것을 피하더라. 나 이제 총부 내려가면 우리 집에 한 달에 한 번인가 오려나 모르겠네. 그러면 저도 총부에 전화 해야겠네? 나도 가정이 있으니 못 내려가겠네요. 하고요. 구체적으로 딸들이 아직... 온갖 얘기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가임에도 불구하고, 출가도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것. 출가는 부모 없고 형제 없어요? 다 있어요. 재가는 사정이 없어요? 일주일 내내 놀다가 한번 오는 건가요? 다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종사님 법에 대한 신념과 공부에 대한 재미로, 또 자기가 성장하기 위한 확신을 가지고 하는 것이잖습니까?
제가 무슨 말 하려고 이렇게 길게 얘기한 줄 아셔요? 진짜 내생에도 잘 살고 이생에도 잘 사시려거든 좀 사를 놓아주세요. 사(私), 개인 핑계대지 말라고요. 알았지, 호겸이? 애기 핑계대고 늦지 말고, 이놈아. 그런 짓 하지 말란 말이에요. 너만 애기 키우냐?
아시잖아요. 이 대종사님 법이 얼마나 좋고 합리적인지. 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한 몸, 내 목숨 바칠 만하다. 나는 영생에 이 길로 살고 싶다. 저는 대종사님 법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실 대부분 그런 생각 하시잖아요. 제가 뭐 얼마나 따뜻하게 해 드려서 교당 나오시는 것 아니잖아요? 대종사님 법이 좋아 나오신 것 아니에요? 그러면 좋다고만 하고 맴도는 게 아니라 내 생활 속에 한번 씩 써보자. 그럼 어떻게 되느냐, 신기하다니까? 딱딱 자기에게 선물이 와. 한 만큼 선물이 와요. 자신감이 붙어요. 자신감이 붙으면 어떻게 되느냐. 야, 가자 교당. 교화 할 수 있습니다. 왜 교화를 못 하느냐?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자신감이 없느냐. 대종사님 법을 확실히 써먹는데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맞나요?
*안암교당을 떠나며 당부말씀
나는 다음에 오신 교무님은 걱정이 안 돼. 왜냐면 내가 정을 별로 안 줬거든. 금방 잊어버릴 거예요. 금방 잊어버려요. 내가 나를 잊어버릴 사람으로 확실히 준비하고 있어요. 바로 잊어버릴 사람. 참 내 마음이 이상하대? 바로 잊어버리면 서운하려나 좋으려나. 그럼에도 바로 잊어버릴 사람으로 해줘야지? 저는 우리 준산 회장님 말씀을 받들려고 해요. ‘10년 전 교무님으로 보내주세요. 이 교당은 미래에 청소년 교화를 할 교당으로 하고 싶습니다. 우리 일반도 일반이지만 젊은 교무님이 오셔서 이 원불교 미래를 밝게 해 나가는 그런 교무님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시더라고요. 얼마나 멋있어요, 준산님? 박수 한번 쳐 주세요. 아무나 회장하는 것 아니에요.
이제 갈 때 되니까 다 말해야지. 내가 처음에 오니까 어느 일반교도님이 그래요. 교무님은 왜 청년들에게만 에너지를 쏟느냐, 그러더라고. 그건 아니었는데.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래서 종원교우에게 고마워요. 우리 송종원 교우가 ‘뉴스를 만듭시다.’ 그래요. 뉴스를 만들어서 보여주니까 교도님들이 ‘교무님이 노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바쁘게 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아시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제 입으로 ‘나 안 놀아요!’ 못 하잖아요? 그걸 보시고는 그런 불만이 많이 잠재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교무가 훈련 가자고 하니까 많이 버티시다가 또 서서히 가시고. 처음에는 많이 버텼어. 내가 질 줄 알지? 나는 대종사님 법으로는 안 져. 사실은 그런 것들을 다 이해해 주시고.
우리 회장님도 그런 소리를 들으실 텐데 다른 교당 교도님들이 우리를 부러워해요. 젊은이들이 있다. 또 하나는 제가 고마운 것 중 하나가 우리 일반 교도님들이 젊은이들에게 기운을 밀어주신다. ‘교무님이 왜 우리는 신경 안 써.’ 이렇게 안 해주시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5년이나 10년이 지나면 그 때 있는 우리 교당은 (젊은이들이 많은)피라미드 구조가 되고 참 대우를 받겠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원남교당이 건축 도감도가 들어갔거든요? 강남은 강남교당 한남교당, 여기가 주축이 될 것 같고. 강북도 원남교당 그리고 앞으로 여기 안암교당이,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10년만 지나면 우리 반타원님 계실랑가 몰라도 상당히 탄탄한 교당으로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맞죠?
항상 저는 고마운 마음이에요. 우리가 계문을 통해서 우리 교법 전체를 봐 보았고 실지 생활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 법을 만난 기쁨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신심, 공심이더라. 아무리 한 때 잘해도 신심 공심이 흔들린 사람은 못한 것 같아요. 원불교는 기업으로 말하면 원지천님 회사와 같아요. 조그마한데 탄탄하다고 할까. 정기 훈련과 상시 훈련을 통해서 교단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으시고 종교인들 모임 속에서 맹신도 아니고 장엄신앙도 아니고 제대로 영육을 쌍전해 나가는 분들이 원불교 교도들이다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왕이면 여기 오셨으니까 맴돌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할 때는 같이 하시는 게 좋겠다. 이 세상에 가장 괜찮은 공동체가 있다면 저는 우리 안암교당이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총부도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밥만 먹는, 법회만 보는 공동체가 아니라 정말 대종사님 법을 통해서 서로 자리이타가 되고 함께 서로 수행도 격려해주고 신앙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대종사님은 초창기에 익산에다 신앙, 수행, 도덕 공동체를 세웠던 것입니다. 간단해요. 공심이 있으면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것 챙겨먹는 것하고 공으로 조금씩 합력하면 자기가 직접 챙기는 것보다는 몇 배나 더 효과가 더 있는 것이 공의 세계에요. 영화 한편 볼 때 혼자 백 억 내고 보실 거에요? 여러 사람이 하니까 백억 짜리 영화를 만원 주고 보잖아요. 그러듯이 이 공동체가 내가 조금만 합력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있다.
그래서 회장님이 주인 아니라 다 주인이다. 저는 간사 때 제가 종법사인 줄 알았어요. 내 마음에서는 그랬어요. 모르는 사람은 건방지다 할지 모르지만. 나는 주인이다 생각했다는 말이에요. 우리 교도님들도 안암교당 주인은 누구에요? 교무 아니에요. 저 가잖아요. 어떻게 주인이 가? 바로 교도이다. 한분 한분 주인으로 한다면 낙원공동체는 간단해 버립니다. 조금씩만 내놔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문화를 갉아먹지 말고, 나 하나쯤이야, 이거 아니고. 조금조금이라도 합력해낸다면. 제가 왜 노인같이 말하고 있는 줄 아세요? 겁나게 잘 되기 바라는 마음 아니겠어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은혜롭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