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에 세번째로 등장하는 중요한 여인은 홀본땅에서 만난 계루부의 여인 소서노이다. 부여를 탈출하여 홀본땅에 도착한 주몽은 얼마지나지 않아 왕위에 오르는데,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혈혈단신으로 낯선 땅에서 짧은 시간에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때 주몽을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소서노였다. 소서노에 관해서는 그녀가 홀본 부여 왕의 둘째 딸이었다는 얘기와 계루부 권력자의 딸로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이를 가진 미망인 이었다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소서노가 훗날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고구려 땅을 떠나 남쪽에 백제라는 나라를 세운 것으로 봐서는 그 두사람이 주몽의 아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이미 한번 결혼했다가 처가에 돌아와 살고 있던 미망인이었을 것이다. 주몽이 이 소서노라는 여인과 결혼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홀본부여의 왕위에까지 오르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낯선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에 이른 주몽의 능력도 뛰어난 것이지만 비범한 인물을 알아보고 남편으로 맞이한 소서노의 혜안도 대단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는 여러 부족들의 힘겨루기를 와중에 소노부가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소서노는 주몽을 이용하여 정권을 계루부 쪽으로 빼앗아 온다 낯선 땅에서 온 주용이 단숨에 왕위에 오르고 그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왕권을 유지한 것을 보면 소서노의 도움이 막대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유류가 부러진 칼 조각을 듣고 고구려 땅으로 찾아오자 소서노는 주몽의 친자인 유류와 자신의 친자식인 비류. 온조 두 아들 간의 왕위 계승 다툼에 말려들고 만다. 주몽은 자신의 핏줄이자 첫아들인 유류를 태자로 삼고자 하였지만 비류나 온조를 태자로 책봉하고자 한다. 온갖 불만과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서로와 신하들은 주몽은 유류를 태자에 책봉하고, 비류와 온조를 비롯한 토착 세력들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불만으로 소서노도 깊은 고민에 빠진다. 지아비를 따르자니 비류와 온조 두아들의 앞날이 험난해 질것이고 아들을 따르자니 이제막 기틀을 다진 고구려라는 나라가 분열로 치달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딜레마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비록 여자의 몸이었지만 소서노는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하고 소노부가 쥐고 있던 권력을 재주로 가져올 정도로 대단히 큰 상장을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해 고민하던 소서노는 '지아비와 아들' 이라는 가진 사람이었다 두갈래 길에서 서로간에 원한을 할 수 있는 지혜로운 결정을 내린다. 비류와 온조에게 고구려를 떠라 남쪽의 새로운 땅을 개혁하도록 한 것이다. 이미 고구려도 주름의 손아귀에 넘어가 버렸고 유류는 주몽의 친자이자 장남이므로 그가 유류에게 정권을 넘기는 것을 말릴 반영이 사실상 없었다 그렇다고 두 아들들을 고구려 땅에 남아 있도록 하면 그들은 아무런 기회도 잡지 못하고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소서노의 권유에 따라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 땅을 떠나 남으로 내려가 비록 백제와 온조 백제를 건국하고 두 나라의 시조가 된다. 소서노의 현영하고 지혜로운 판단이 고구려 왕실을 지키고 백제라는 또하나의 걸출한 국가를 탄생하도록 한 것이다. 만일 그 상황에서 소서노가 현명하게 처신 못하고 한쪽 편을 들었다면 아직 초창기에 불과했던 고구려 조정에 폭풍이 몰아쳤거나 고구려나 백제중 한나라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살아 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구려 역사에서 눈여겨 봐야할 네번째 여인을 고구려의 6대 왕인 태조왕의 모친이다. 태조왕은 5대 모본왕이 폭정으로 정권을 잃자 불과 일곱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너무 나이가 어리다 보니 제대로 정사를 돌볼 수 없었다 이에 부여 출신의 모친이 수렴청정하게 되었다 그녀는 어린 태조왕 뒤에서 국사를 돌보며 고구려를 강한 나라로 키워나간다. 태조왕 시절에 고구려는 일시적으로 세력을 크게 확장하여 고조선의 옛땅을 거의 회복하기도 했는데 이는 태조왕보다. 모친의 힘이 더욱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태조왕의 첫번째 영토확장 전쟁은 즉위한지 불과 두 해 후인 서기 55년에 일어났다. 요서 지역을 공략하여 현재의 베이징 근처까지 진출한 후 10개의 성을 쌓고 몸한의 침략에 대비하였으며 이듬해에는 동옥저를 복속하여 동쪽 국정을 현재의 동해까지 확장하였다. 아무리 왕이라고는 하나 아홉살의 어린 나이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큰일을 해낸것인데 이는 분명 수렴청정한 모친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비록 여인의 몸으로 왕위에 오를수는 없었지만 혼란한 주변정세를 파악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