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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들을 들고 오니까 오래된 내가 있어야지" 황학동 시장에서 44년째 오디오 수리하는 '황금전자' 황옥현 대표 들고 나는 사람 많은 시장에서 그가 끝까지 떠나지 못했던 이유들
글 김민아 제4회 손바닥문확상 당선자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서울 황학동에 놀러갔다. 온갖 진기한 것들이 널브러진 시 장 속 인파에 섞여 있다보면 한나절이 훌쩍 가곤 했다. '오디오계의 맥가이버'로 불려 "황(黃)색의 학( 鶴)이 날아든다고 해서 붙 여진 이름인데 '도깨비시장' '벼룩시장'으로도 불렸어. 속된 말로 아기엄마만 처녀로 못 만 들어줄 뿐 뭐든 다 된다고 해서 '만물시장이 라고도 했지." '황금전자' 황옥현(73) 대표는 '만물의 유래를 설명하며 웃었다. 명함에는 대표라고 나와 있지만 임직원을 통틀어도 딱 한명, 바로 그자신이다. 반 평도 안될 공간 의 중앙에는 40kg 매킨토시를 올려놔도 끄 떡없는 조그만 작업대가 있고 사방에는 그 가 필요로 하는 부품들이 매달려 있다. .그가 10살 되던 해에 한국전쟁이 일어났
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봇집 메고 피란 다니 며인생의 고달품을 몸으로 배웠다. 밀린 수 업료를 달랄까봐 졸업식에 못 가서 중학교 졸업장도 없다. 공부는 그걸로 끝인가 싶어 는데 학교에서 뭘 만들든 1등을 하던 그의 솜씨를 눈여겨봐온 큰매부가 대전에 전신(전 자)학원이 생겼으니 가보라고 권했다. 그 일 이 오늘까지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학 원 졸업 뒤 전파사에 취직했으나 전파사 사 장님은 대전에선 더 가르칠 게 없다며 얼마 뒤 그를 서울로 돌려보냈다. 1957년, 그의 나이 16살 때의 일이다.
아시아백화점에서 '호마이카 전축'과 '티크 전축' 진공관을 조립하는 걸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소니∙나쇼날 .파나소닉 모두 일본 제품이고, 한국 전자제품은 하나도 없던 시 절이야. 얼마안 가 금성에서 전기 말고 '맛데 리(배터리) 쓰는 라디오가 나왔지만 사람들 은 여전히 소니 라디오를 최고로 좋아했어. 손으로 하나하나 땜질하고, 구리선은한 바
퀴 두 바퀴 입으로 세가며 감아 하루에 7~8 대의 전축을 조립했다. "월부 전축이라고 진 공관에 불 들어오는 거. 아마 모를 거야.:" 1969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44년째 그는 황학동에 있다. 그는 후시 한곳에 뿌리박 힌나무가 아닐까. "기술자라 그런지 나는 이 곳이 좋아. 다들 고물을 들고 오니까 오래된 나는 이곳에 있어야지. (웃음) 게다가 충청 도 태생에 A형이야. '집식구"아내)는 0형이 라 성질이 좀 급해서, 나한테 말 느리고 답답 하다고 그래.'
그런 그를 시장 사람들은 '오디오계의 맥 가이버'라고 부른다. 그렇대도 고치지 못하 는 것이 있지 않을까. "부속을 못 구하거나, 호환되는 부속이 없으면 못 고치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 부속이나 빼서 쓰라고 놓고 가는 이들도 있어. 요새 이베이(eBay)나구 라파 쪽에서 들어오는 건 못 보던 것도 많아. 늘신기한 세계야"
'약전' 하던 사람들이 '강전'으로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수입이 빤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느 때인가 월남에 간 기술자 들이 돈을 벌어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었다. 전쟁터니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그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백(돈)을 써야 한다고 했다. 돈 벌려고 가는 건데 돈을 쓰라고? "지금이 야 잘못 쓰면 큰일 나지만. 옛날엔 큰 '백'하 나만 있으면 어디든 다 취직됐지. 난 빈털터 리여서 결국 못 갔어." 거뒤 먹일 식구가 명이 나 되기에 돈이 그토록 절박했을까. "자녀를 물어보면 여자 들에 딸 셋 그랬어. 상대방이 '알맞게 낳으셨네요' 하다가 곧 그게 무슨듯 인지 다시 물었지. (웃음) 당시는 딸 많이 으면 말도 못 꺼냈어. 근데 키워보니 딸이좋 아. 덕분에 아들도 다섯이나 생겼고 그애들 이각각 아이를 둘씩 남아서 손주가 모두연 이야. 집안 행사라도 치르면 우리 집엔 총 22
명이 모이게 돼, 사람들이 부러워하지. 1970년대만 해도 '전기로 밥 먹는 사람이 좀됐지만 80년대 초반부터 떨어져나가기 시 작했다. 그때 집의 얼마나 지어됐는지 '약전 약한 전기. 전파시) 하던 사람들이 돈이 되 는강전(전압이 센 일, 건물 전기배선)으로 대부분 돌아섰다고 했다. 돈이 절박했다면 서왜돈 벌리는 강전에 합류하지 않았을까. '정규 학원을 나온 게 억율해서이기도 했지 만이곳을뜨기도
날부터 시어 기도 쉽지 않았어. 황학동은 옛 사업을 하다가 망한 사람들이 들어 왔어, 여기 오면 밥은 먹고 살았으니까. 들어 와서돈 좀 벌면 나갔다가 까먹으면 또들어 와. 그런 사람들을 늘 받아주는 곳이지. 삼 일아파트가 협리는 바람에 지금은 노점이없 버텼지만 그맨 불 게 많아서 뭐 하나 고치러 오면 한 바퀴만 들고 오쇼 하고 그 안에다 고치났어. 그 코스가 8시간은 걸렸는데 단 금은한바퀴들 데가 없어서 30분도 안 걸
려." 인터뷰 중에도 손님들이 들락거렸다. 단 골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램프가 고장 났는데 어디로 가면 잘하나요. 그렇게들 인 터넷에 올리는 모양이야. 경상도, 전라도어 디서든 와. 옛날엔 무거운 앰프를 들고 전남 목포에서 올라와 여관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찾아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은 택배로 물건만 오고 가. 세상 참 좋아졌어." 그러면서 천장에 매달린 두툼한 택배 마음 을 가리킨다. "믿고 소개해줬으니 100%살 려 보낼 수밖에 없는데 그게 소문이 나서 또 오는 모양이야. 엄밀히 말하면 단골은 없지. 다시 고장 나기 전까지는 안 오니까." 그렇다 면 온라인 홍보에 좀더 공을 들여보는 건 어 떨까 하니 금세 고개를 가로짓는다. "인터넷 에 떠들썩하기에 가봤더니 그런 것도 못 고 치더라. 그러면 어떡해? 젊은이들 속도를 내 가 따라갈 수도 없고, 쓰기 시작하면 내 나 이를 고려해주지는 않을 지 아냐 (웃음)"
항금전자 황옥현 대표는 소리만 들어도 기기를 아는 점은 이률이 대견하다면서도 "너무 소리물 캐면 즐거움이 사라 진다"고 했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소리만 들어도 기기를 안다며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면서도 한편으론 아쉽다고 했다. "아. 저건 마란츠 몇 번 소리야. 어쩌고저쩌고해. 근데 소리를 너무 개면 즐거움이 사라져. 진열용으로 앞 일굴' 종은 손 품으로 쓰는 사람도 있어. 옛 날엔 전축을 가지면 부자였잖아. 그 집 앞에 서음악 소리 크계 나면 좋다고 서서 듣다 가 고 했으니까. 요즘 그러면 시끄럽다고 신고 들어가겠지만
라디오 전화 노래대회 도전 취미
황대표는 안경은커녕 돋보기도 안 쓴다. 케이블 피복 하나를 손톱으로 벗겨내더니다 발에서 머리카락 한 올 정도의 선한가닥을 쑥 뽑아낸다. (내게도 해보라고 할까봐 잠시 떨었다.) ":눈과 귀가 밝은 편이고 건강도 괜삼 아서 평생 병원에 안 갔어. 이제 가려니 엉뚱 한 소리 들을까 걱정이야" 술은 반주로 즐기 지만 담배는 못 배있다. 총각 때 흰와이셔츠 에 까만 바지를 즐겨 입었는데 셔츠 주머니 에 담배 꽃는 게 싫어서였다. 버스와 지하철 만 타고 두 정거장 정도는 걸어다닌다. 택시 도 타지 않는다. 하루 세끼를 천천히 먹고 간 식은 안 먹는다(100살까지 건강하게 사는 법' 같은 책의 일부를 옮겨놓은 게 아니다!). 늘신나는 봉짝을 틀어놓고 일하는 그의 취 미는 인터넷 장기와 라디오 전화 노래대회 도전하기다. "노래경연은 월말 결선까지 올 라간 적 있이. 노래를 좀 해. 내가." 말끝마다 미소를 마침표로 붙이는 그에게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지 물으니 "80살, 너무 욕심내 나?"라고 되묻는다. '미즈 김인 제가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황 대표님, 욕심은 그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21
64호 20130610 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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