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친구들과의 술자리에는 어김없이 옛날 어릴 적 맛보았던 먹거리들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는다.
밤새도록 약한 불에 곤 붕어졸임......
아, 그 검붉은 무가 맛있었지....붕어뼈가 삭아서 사그작사그작 씹히는 그 맛!......
살얼음이 덮여있는 동치미 국물.....연탄가스에 중독, 정신이 오락가락했어도 그 동치미 국물 한 그릇이면 정신이 번쩍 들곤했지.......
아, 어디가서 식혜 좀 먹어봤으면......
도대체 어딜 가야 집장맛을 볼 수 있으려나........
그런데 이 불가능한 먹거리들이 한꺼번에 눈앞에 나타나는 기적이 그저께 일어났다.
화창한(?)한 초겨울날이었던 그저께 6일, 광양 백운산 자락에 자리잡은 동기생의 저택에 또 다시 남녀 동창생들이 모였다.
그런데 60대 초반의 이 할머니 동창생들이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먹거리들을 장만해 왔는데.......
집주인 동기생의 부인이 직접 담근 막걸리, 메밀을 제주산 화산석 맷돌에 직접 갈아서 쑨 메밀묵, 전라도의 홍어와 돼지수육, 한치회 등은 미안하게도 할머니 동창생들의 솜씨에 빛을 잃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일단 테이블 끄트머리 생수병에 담긴 노란 액체가 호박으로 빚은 감주......담그는 과정이야 우리 남정네들은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 그 달콤한 맛을 어찌 보통 단술에 비기랴..... 그러나 이게 문제가 아니고,
부장검사를 사위로 둔 할머니 동창생이 집장을 만들어와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사실은 고향에 올해 89이 되시는 숙모님만이 이 집장 담그는 법을 알고는 계시지만 차마 집장 담그는 방법을 물어보지는 못하고 속을 태우는 중이었다. 숙모님 성품에 조카가 집장 담그는 법을 물어본다 싶으면 즉시로 90도 구부러진 허리를 이끌고 집장을 담그실 숙모님이시기에 차마 물어보지를 못하고 이제는 살아서 집장맛을 보는 것은 힘들겠구나 하고 포기상태였는데 팔팔한(?) 여자 동창생이 집장을 만들어왔으니 그 감격이 어느정도였겠는가....
아쉽게도 모임의 성격상 집장찌개로 승화시키지는 못하였고 막장용으로만 쓰여진 집장이지만 맛은 정말로 오랜만에 향수어린 감회를 안겨다 주었다. 인간의 혓바닥 기억력 저장력도 대단하다 싶다. 내가 하도 집장 집장! 하니까 남은 집장을 싸가져오는 영광(?)도 누리게 되었다. 뒤에 특별히 집장을 담가서 내한테 주겠다는 여자동창생.....나는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하나....벌써부터 고민이다.
서울 사람들은 흡사 씹어서 토해놓은 것 같다고 질겁을 한다는 이 식혜.....동해안으로 가면 가자미 식혜가 유명하다지만 경상도 내륙지방에선 각종 생선이나 독특한 재료를 넣어서 삭힌 밥이다. 그 새콤달콤함 맛이란!!! 그런데 이것도 살아서 맛보기 힘든 메뉴 중의 하나였는데 이날 여자 동창생들이 떠억 만들어왔것다? 거어다가 가죽자반까지......그러고 보니 가죽자반 사진을 못찍었네? 먹는데 정신이 팔려가꼬.....이 사진도 한참 먹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서 촬영한 거라 보기가 영 지저분하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식혜 하면 캔에 담긴 감주를 떠올릴 것이고 가죽자반하면 먹거리인지 신발인지 구분을 못할 것이다. 가죽나무 새순에 찹쌀가루와 고추장에 버무려 바짝 말린 가죽자반......설명을 해도 알 길이 없을 것 같다.
사실 초대한 동기생 부인의 솜씨와 정성도 예사로운 경지가 아니었다. 홍어....광양땅에서 구하기 어려운 가오리 홍어에다 정성들여 갓 삶아 내 온 돼지 수육, 한치회...... 무엇보다도 메밀을 직접 갈아서 쑨 메밀묵, 그러나 어쩌끄나, 집장과 식혜 가죽자반 호박단술, 그리고 개똥쑥에 우려낸 시원한 물, 고향 땅콩을 투입한 시루떡.....앞에 빛을 잃고 말았으니.... 빛을 잃은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집주인이 홈 바에 마련한 와인파티.....고급와인에다 올리브와 훈제치즈 안주를 준비하여 손님맞을 채비를 마쳤건만 정작 손님들은 식혜와 집장 맛에 넋이 빠져 홈 바에 나타날 기미가 안 보인다. 프랑스산 와인이 국산 막걸리에게 패배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동창생들이란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함께 한 삶의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몇 십년을 함께한 직장동료와는 비교가 안된다. 밤이 깊어지니 영하로 내려가는 백운산 자락의 12월......장작불이 타는 난로앞에서 모처럼 추억의 먹거리를 나누고 향수에 젖은 얼굴들을 미주하니 노변 정담이 어찌 없을소냐...... 세세콜콜한 옛날 얘깃거리들이 쏟아져 겨울밤을 꼴딱 새고 보니 어느 덧 새벽, 동녘하늘에 별들이 새하얗게 쏟아지고 있었다.......추억을 반추하는 삶이란 이래서 아름답다.
첫댓글 고향에 온 듯한 느낌입니다. 젊은 날 같이한 급우들과 평생 온기를 나누는 모습이 저를 훈훈하게 합니다.
홍어합에 막걸리 비도 오시는데 우예 래야 될꼬 저녁 판소리 모임에서 한잔 하입시더 ^^
밖에는
오날
온천장 700비어 집에서 뵙겠습니다
아이쿠! 이런.... 요즈음 손녀를 재우는 것이 제 소관이라 8시까지 달달이와 콤콤이 동화책 읽어주느라 700비어에 갈 여가가 없었습니다.
할베예 손녀사랑에 푹 빠진것이 보이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