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생선원장 무각 스님
“마음 작용할 때 살아 있음 느껴… 돌멩이·꽃 한 송이도 일체지 깨닫게 해!”
우연히 펼쳐 본 불서 허무에 내린 ‘빛’
공부와 담 쌓고 살다가 동국대 진학·출가 단행
증득기미 없자 계단 닦기 3000배 중 ‘나와 부처 하나’
쥐 무덤서 솟은 파란 불꽃 생사불이·영원찰나 ‘통찰’
법문에 푹 젖고 사유하며 선어록 속, 선지 잡아라!
‘내가 부처’ 콱 믿고 정진하면 ‘견성’ 확실
참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공생선원장 무각 스님은 “늘 법문에 젖어 있으면
자기 안의 세포들이 법에 젖어 있게 된다”며
“중생심이 나오는 순간 보살심으로 바꾸어가다 보면
‘나’라는 이 물건이 한순간에 중생에서 보살로 바뀐다.”고 전했다.
‘좌(坐)는 몸도 마음도 그 자리에 앉는 것,
선(禪)은 마음을 조절해서 잘 쓸 수 있는 작용!’
한 문장에 한 호흡 가다듬을 때가 있다.
좀 더 깊은 사유 속으로 초대하기 때문이다.
무각(無覺) 스님의 저서 ‘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에서 본
저 한 문장을 마주했을 때 그러했다.
‘좌(坐)는 일상생활에서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경계를 보면서,
그 많은 현상이 다 공한 것이고 연기에 의해서 인연하여
잠시 일어나는 것임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어야 제대로 앉는 것입니다.’
무작정 앉는 게 아니다.
연기와 공(空)의 이치를 통찰 내지는명료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번뇌를 동반한 경계가 휘몰아쳐 오는 건 당연한 거였다.
좌복 위에 앉는 순간, 모든 망상을 떨쳐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스르르 풀어진다.
갯바위 치며 일었던 물거품이 제 스스로 사라지듯,
앉는 순간 일었던 번뇌도 제 스스로 사라질 터였다.
‘선(禪)은 본성의 청정한 자리에서 (번뇌망상·분별에) 동요되지 않고
원만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며, 마음 경계를 그대로 들여다보고
적멸한 가운데 그 마음을 조절해서 지혜롭게 잘 쓸 수 있는 작용을 말합니다.’
다소 난해하게 들린다면 무각 스님의 ‘용광로 비유’에 눈을 돌려봄직하다.
‘녹슬고 부러진 삽이나 괭이를 다시 사용하려면
그것들이 나온 원래의 자리 용광로에 집어넣어야 한다.
뜨거운 화염 속에서 삽, 괭이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본래의 밝은 광명으로 화하여 대장장이의 의지에 따라 칼, 톱, 낫의 새 이름을 얻어 나온다.
모든 번뇌망상, 가환우환, 병고액난은 업식이다.
이 또한 본래·실상의 자리에 밀어 넣는다. 이것을 좌(坐)라 한다.
선정 속에서 분노, 질투, 욕망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또한 본래 밝은 광명으로 화하여 수행자의 원력에 따라
용서, 배려, 무소유 등의 새 이름을 얻어 발현한다. 이것이 선(禪)이다.’
좌(坐)에 밀어 넣은 분노가 선정을 거쳐 자비로 나오면 그것이 선(禪)인 것이다.
그러기에 ‘좌(坐)는 몸도 마음도 그 자리에 앉는 것,
선(禪)은 마음을 조절해서 잘 쓸 수 있는 작용!’이라 했을 터다.
‘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 전편에 흐르는 건 ‘신심(信心)’이었다.
무엇을, 왜 믿어야만 하는가? 그 의문을 들고 서울 쌍문동에 자리한 공생선원으로 향했다.
전남 무안에서 4형제의 둘째로 태어났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만큼 공부를 잘 했던 형제들과 달리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더랬다.
인천으로 건너 와 직장을 다녔지만 삶의 목표가 설정돼 있지 않았던
청년의 가슴엔 세월이 흐를수록 허무만 쌓여갔다.
어느 날, 인천의 한 작은 불교서점에서 불서를 집어 들었다.
책이 가슴을 요동치게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훗날 무각 스님은 “먹구름 사이로 내려오는 한 줄기 빛을 보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그 직후부터 손에 잡히는 대로 불서를 독파해 갔다.
100여 권을 읽어가던 중 동국대 불교대학 진학 원력을 세웠다.
열정을 다해 거머쥔 결과물은
한의대에 진학하라는 부모의 권유를 물리쳐야 할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혜거(현 서울 금강선원장) 스님과 은사 인연을 맺으며 출가했다.
증득(證得)의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을 때 수행자는 사선(死線)에 선 것이나 다름없다.
좌복에서 내려 와 경전도 덮은 채 법당 오르는 계단만 닦았다.
6개월을 닦으니 묵은 때로 보이지도 않던 진유(眞鍮)가 제 색을 온전히 드러냈다.
그때, 법당에서 3천배를 올리다가 알았다.
‘절하는 사람과 절 받는 부처는 둘이 아니다!’
그 후로는 흔들림 없는 정진을 이어갔다.
무각 스님 지도아래 재가불자들이 정진하고 있다.
조계사에서 소임을 보며 참선반을 열어 재가불자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2000)
10여명에 불과했던 참가자는 금세 450명으로 불어나는 것을 보고
“간화선 대중화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불자들의 요청에 경전·어록을 강의하다 보니 보시금도 손에 쥘 수 있었는데
‘돈은 짐’이라는 생각에 수중에 들어 온 보시금은 도반에게 주든 기부를 하든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당장 떨쳐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이러한 사실을 안 은사 혜거 스님이 일렀다.
“보시금도 정재이니 잘 간직하게!”
서울 도봉구 시내를 거닐던 중 새 건물을 지어 분양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모아 둔 보시금이 계약금과 딱 일치했다.
그 공간에 공생선원(共生禪院)이 들어섰다.(2002)
참선지도는 물론 경전과 선어록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선불교대학도 열었다.(2018)
공생선원에서는 선불교대학도 열어 놓았다.
단도직입으로 여쭈었다. 무엇을 믿는지를.
무각 스님은 ‘종경록’에 새겨진 영명연수(永明延壽)의 일언을 전했다.
‘종경(宗鏡·참마음)에 어떻게 믿어 들어가는가?(此宗鏡中, 如何信入)/
한마음은 부동하여 모든 법에 머물지 않는다.(不動一心, 不住諸法)/
주관과 객관이 없음으로 증득하여(無能所之證)/
지혜와 앎도 사라진 마음이 되면(亡智解之心)/
이것이 곧 믿음 없는 믿음이고(則是無信之信)/
들어감이 없는 들어감이라 한다.(不入之入)’
“참마음(一心)의 본체는 텅 비어 고요하기에 부동(不動)이고,
참마음의 작용은 본래 청정하여 찰나 찰나에 머물지 않기에 부주(不住)입니다.
앞의 두 구절 (不動一心, 不住諸法)을 확연히 믿고 정진하면
반드시 능소(주관·객관)마저 사라져 증득합니다.
그 다음엔 백척간두진일보 하듯 지혜와 앎도 없애버려야 합니다.
다가오는 일체경계를 둘이 아니게(不二法) 낱낱이 보았다고 해도
‘깨달았다’는 그 마음 또한 허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믿음 없는 믿음이 참다운 믿음이고 들어감 없는 들어감이 참다운 들어감입니다.”
‘그대 삶이 경전이다’ ‘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는 선의 나침반이라 할 만하다.
무각 스님의 저서 ‘그대 삶이 경전이다’의 머리말이
‘참마음의 본체는 텅 비어 고요하기에 부동하다’와 맥이 닿는다.
‘현대인의 삶은 마치 이리 저리 몰려다니는 태풍과 같습니다.
그 태풍을 몰고 다니는 것은 바람의 끝자락이 아니라
고요하고 적막한 태풍의 눈인 것처럼
자기 삶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주인공도 시공간에 닫혀 있는 몸과 마음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뿌리 곧 부처성품(佛性)임을 선(禪)은 절실하게 가르쳐줍니다.’
그렇다면 움직이지 않고 머물지 않는 일심(一心)은 불성(佛性)이다.
“내가 부처임을 믿어야 합니다. 나와 부처가 둘이 아님을 굳게 믿고 정진하면
‘견성(見性)’의 순간은 반드시 맞이합니다. 근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습관과 고정관념 등이 만들어내는 업의 두터움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두텁습니다.
제 소견으로 견성은 수행·공부의 시작입니다.”
돈오돈수보다는 돈오점수에 무게를 둔 일언이다.
고우, 무비, 지안, 통광, 설우, 혜거 스님 등 내로라하는 선지식이 참여한
경전연구회를 7년 넘게 이끌었던 공력을 토대 삼아
‘선요’ ‘임제록’ ‘금강경 삼가해’‘능엄경’ ‘화엄경’ 등의 선어록과 경전을 강의해 오고 있다.
“‘새 꽃은 옛 가지를 의지하여 나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어록의 한 문장에는 선지식의 지혜가 꽉 들어 차 있습니다.
어록을 연다는 건 선지식과의 즉석만남을 의미합니다.
평상심(平常心), 무(無), 일심(一心), 무위진인(無位眞人)과 마주하는 순간
마조, 조주, 영명, 임제 스님이 표출한 선지(禪旨)를 거머쥐는 기회를 잡은 겁니다.
천 년 전의 선지식은 늘 우리 곁에 서 계십니다.”
선어록 속의 행간을 초심자가 간파할 리 없다. 하여 법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늘 법문에 젖어 있으면 자기 안의 세포들이 법에 젖어 있게 됩니다.
그러면 중생심이 나올 틈이 없습니다. 중생심이 나오는 순간 보살심으로 바꿔 버리고,
나오면 바꿔 버리고, 계속 그러면 ‘나’라는 이 물건이 한순간에 중생에서 보살로 바뀝니다.
녹음된 법문을 공부의 방편으로 써도 좋습니다.
차를 타거나 걸으면서도 들으셔야 합니다. 한 구절 읽고 가슴으로 깊이 생각해 보세요.
이게 참구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버스 안이나 전철 안이나 복잡한 거리가 모두 선방이 됩니다.”
법문을 듣고 사유하는 것도 참구라는 뜻일 터다. 하나로 꿰어진다.
문사수(聞思修)를 말함이다. 일례로 연기 법문을 듣고, 연기를 사유하고,
연기로 경계(번뇌망상)를 보고 물리치면 될 일이다.
‘내가 부처!’임을 꽉 믿고 말이다. 연기의 칸에 공(空), 무심, 끽다거,
사성제, 무상·무아 등 그 어느 것을 채워 넣어도 변함은 없다.
스승의 지도와 자신의 정진력 등에 따라 선택할 뿐이다.
그렇다면 정진은 끊어지지 않는다. 무각 스님의 당부처럼
“마음공부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쉼 없이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젖어 들어”갈 수 있다.
무각 스님은 미국 오하이오 웰링턴의 한 토굴에서 보낸 2년 반의 기억을 떠올렸다.
부처님을 향해 머리를 둔 쥐 한 마리가 법당 좌복에 죽어 있었는데,
미소마저 머금은 듯해 학생들은 ‘하프 스마일링’이라고 했다.
쥐를 묻어주며 한 생각이 일었다.
“무명의 껍데기를 벗어 버렸구나. 웃으면서!”
그날 밤, ‘쥐도 자유자재로 몸을 벗는데 내 수행력은 지금 어떠한가?’라는
사념에 이끌려 도량을 서성였다. 쥐 무덤가에서 물었다.
“너는 지금 어디 있는가?”
그 순간 쥐 무덤에서 새파란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죽지 않았구나!’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 개 한 마리도 나의 스승입니다.
일체지(一切智)를 깨우치게 합니다”
‘그대 삶이 경전이다’는 야부 스님의 ‘금강경’을 역해한 책인데
이 한 대목에 이끌려 그대로 독파했다고 한다.
‘시(時)여, 시(時)여! 청풍명월은 항상 서로 따르고
도화는 붉고 배꽃은 희며 장미가 붉음을 봄바람에게 물으니 스스로 알지 못하도다.’
“시간에 관한 선지가 물씬 풍기는 명구입니다.
봄바람은 무심하여 너는 붉게 피어라, 너는 하얗게 피어라 하지 않음에도
꽃들은 성품에 따라 제 색을 띠고 피어납니다.
우리의 마음도 보리심이 일면 한 생각 성품 따라 자비로 작용하여 붉게 피어나고,
불이(不二)로 작용하여 노랗게 피어나고, 공생(共生)으로 작용하여 하얗게 피어납니다.
모든 경계에 따라 천차만별로 꽃을 피워내는 겁니다.
마음이 작용할 때(時)만이 생생히 살아 있는 겁니다. 이것을 일러 시간이라 합니다.”
과거·현재·미래를 함축한
‘지금’ 당신은 어떤 꽃을 피워내겠느냐는 물음으로 다가온다.
공생선원의 선풍이 깊고 청아하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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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각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에서 다년간 해외포교에 매진했다.
조계사에서 참선을 지도한 후 서울 쌍문동에 공생선원과
선불교대학을 열어 선의 진수를 전하고 있다.
경전연구회를 7년 넘게 이끌었으며 조계종 포교원의
‘간화선 입문프로그램 교재’ 편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조계종 포교원 포교부장을 역임한 무각 스님은
현재 공생선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그대 삶이 경전이다-선으로 본 금강경’(불광),
‘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호미) 등이 있다.
2021년 12월 15일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