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 거사의 오도송
忽聞鐘聲何處來(홀연종성하처래) : 홀연히도 들리나니 종소리는 어디서 오나
廖廖長天是吾家(료료장천시오가) : 까마득한 하늘이라 내 집안이 분명허이
一口呑盡三千界(일구탄진삼천계) : 한 입으로 삼천계를 고스란히 삼켰더니
水水山山各自明(수수산산각자명) : 물은 물! 뫼는 뫼! 스스로가 밝더구나
이 오도송을
쓰신 분은 “김기추 거사님”인데요.
거사님이라면 가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도를 깨친 분들을 말하지요.
중국에서 “방거사”, 인도에는 “유마거사”,
우리나라에서는 “부설거사”가 있었지요.
이 거사님의
오도송을 보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오도송은 해석을 하지 않는데요, 제가 이해를 돕고자 약간 해석해서 올립니다.
忽聞鐘聲何處來(홀연종성하처래) : 홀연히도 들리나니 종소리는 어디서 오나
이 거사님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마음이 열리였는가 봅니다.
홀연히는 갑자기라는 말입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마음이 열리어서 보니
廖廖長天是吾家(료료장천시오가) : 까마득한 하늘이라 내 집안이 분명허이.
경허 스님은
누군가 “콧구멍이 없는 소가 무엇인지요” 하는 말에 마음이 열리었지요.
경허 스님의 오도송과 거사님의 오도송을 보면 앞부분이 비슷하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경허스님
忽聞人語無鼻空(홀문인어무비공) : 홀연히 콧구멍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문득 깨달았구나
백봉거사
忽聞鐘聲何處來(홀연종성하처래) : 홀연히도 들리나니 종소리는 어디서 오나
廖廖長天是吾家(료료장천시오가) : 까마득한 하늘이라 내 집안이 분명허이.
두 분의 오도송을 보니
1절과 2절의 부분이 비슷하지요.
그것은 어떤 인연에 의해서 에고가 깨지면서 본래의 마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경허 스님은
콧구멍이 없다는 물음에 마음이 드러났고,
백봉거사님은 오디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마음이 드러난 것이지요.
여러분도 자기 자신을 찾으면서
계속 나는 누구인가? “참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에 매달리게 되면
위에 두 분처럼 어느 인연에 의해서 순식간에 마음이 열리면서 본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을 보겠습니다.
一口呑盡三千界(일구탄진삼천계) : 한 입으로 삼천계를 고스란히 삼켰더니
한 입은
바로 여러분의 본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본성 참나가 우주만물을 다 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작은 것(몸) 속에 들어(참나)있는 것이
거대하고 풍요로운 것(우주)을 다 담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일이라고 하였지요.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말씀과 백봉거사, 경허스님의 말씀이 비슷하지요.
그것은 누구든지 자기의 본성을 보면, 그 본성은 모두가 다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지막 부분
경허스님
六月燕巖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서
野人無事太平歌(야인무사태평가) : 농부가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도다
백봉거사
水水山山各自明(수수산산각자명) : 물은 물, 뫼는 뫼! 스스로가 밝더구나
마음이 드러나고 보니
그 본성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경허 스님은 농부들이 부르는 태평가가 본래자리인(야인무사) 본성의 소리라는 것이고
백봉 거사님은
본성의 자리 즉 분별이 없는 본성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인 모습, 물은 물, 산은 산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깨닫고 보시면 이러한 광경을 반드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론으로 배워서는 절대로 저런 자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에고가 깨지고, 여러분의 본성이 드러나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오도송을 해석해서 올리는 이유는
여러분도 저런 것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고,
그 희망으로서 모두가 깨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