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의 책은 어렵기로 유명하다. 그의 <율리시즈>에 보면 갖은 인물이 나온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을 깨닫게 된다. 즉 세상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내 마음이 깨끗하면, 세상은 맑게 보인다. 반대로 내 마음이 혼탁하면, 인생은 힘들고 짜증스러운 일의 연속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라는 단어가 있다. 세상 모든 것은 내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아마 원효 스님의 해골 바가지 물 이야기도 같은 내용이겠다. 의상 스님과 함께 명나라로 공부를 하러 가는 도중 동굴에서 어두운 밤을 보내게 된다. 이때 원효 스님이 목이 말라 주변의 바가지에 담긴 물을 시원하게 마셨다. 그런데 아침에 깨어나서 보니, 그것은 해골에 담긴 것이었다. 스님은 토하고 난 후, 내 마음 속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까지 나에게 세상은 흐린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이때까지 세상을 회피하고 산 것 같다. 부모님이 모든 것을 돌봐줘 그렇게 살 수 있었다. 대신 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생명력이 없었다. 이것은 대학에 오고 나서 실체를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드니 세상을 마냥 피하고 살 수 없게 되었다. 조금씩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지고, 전공 공부도 잘해야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세상과 갈등을 빚게 된 것 같다. “청년의 고민이야 예부터 유명한 이야기지. 청춘은 고뇌하는 것이니까. 방황이 젊음의 본질이므로.” 구본형 선생님의 이 말을 그때는 몰랐다.
아무튼, 대학생이 되니 좋아하는 여자도 생기게 되고, 수행해야 하는 역할도 늘어났다. 문제는 난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첫 만남에서 “저 그 쪽 좋아하는데요.”라는 말을 던진 식이었다. 또 야간 대학을 다녀 밤에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밤새 피시방에서 게임이나 채팅을 하며 세월을 낭비했다.
다행인지 대학 저학년 때는 모든 것이 재밌었다. 가발을 쓰던 나는, 학교 외의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모자를 쓰고 나갔다. 열등감 가득하던 난 이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났다. 문제는 이런 관계에서 난 진실하지 못하고, 항상 도망가는 식이었다. 좋아했던 여자에게도 금방 변심을 했고, 야간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난 밝힐 수 없었다.
아마 이때부터 세상은 내게 조금씩 좌절을 주고, 어려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긍정적으로만 보이던 세상이, 조금씩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고 나는 그 상황을 피했다. 이것이 심해지니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는 사회공포증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갑자기 너무 어려운 단계의 만남을 추구했다. 여기서 어머니가 개입하고 간섭하면서 난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세상은 나에게 피해를 주고, 난 사람을 적대하게 되었다. 온전히 긍정하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때부터는 계속 부정적으로만 세상이 비췄다.
이제는 그때의 나를 이해하게 됐다. 내 마음이 약했기에, 그 아픔을 수용할 수 없어 현실을 왜곡한 것이다. 난 이 정도가 심해, 한마디로 고집도 너무 세서 더 심하게 앓은 것이다. 세상은 원래부터 있는 그대로 정상이었다. 그런데 상처를 받으니, 온통 가시밭길처럼 느껴졌다. 너무 힘겨운 삶의 연속이었지만, 다행히 요즘은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다.
세상은 내 마음의 반영이라는 것을 나는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래서 이제는 함부로 남을 재단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좋은 쪽으로 바라보려 한다. 심리학에서 긍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사람은 회복 탄력성도 높고, 자존감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아픈 경험을 했기에, 즉 고통을 겪었기에 나의 병도 낫게 된 것 같다. 세상은 원래 완벽한 것이 맞았다.
김신웅 행복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