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다시 '빌라 작업실'로...
멕시코에서 돌아와 초반에 반짝, 그 평론가와 연결된 몇 차례의 바깥나들이는 있었다.
그래서 빈털터리 떠돌이나 다름없던 생활에 다소 도움이 돼 준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썩 나아진 건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화가로서 작업할 공간마저 없는 고전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전 스페인에서 돌아와 일정 기간 머물면서 부인들 유화 수업을 지도하면서 인야의 작업까지 할 수 있었던 '00 빌라' 부인회와 연락이 닿았는데, 2층에 있는 작업방이 아직도 비어있다며... 와서 그림을 그려도 된다며 반겨주어, 인야는 다시 그 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들과의 좋았던 관계가 이런 식으로도 연결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건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걸, 인야는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방이 없어 당장 음식을 해 먹을 수는 없지만,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간단히 라면 정도는 끓여 먹을 수 있고, 소파거나 마룻바닥에 깔려 있는 양탄자를 이용해서 잠을 잘 수도 있어서, 옷가지 조금하고 테라코타를 위한 흙을 챙겨가지고 그 방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다시 혼자만의 생활이 시작됐고, 자신의 작업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니, 확실히 작업 의욕도 솟는 기분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여름을 재촉하는 비는 하루종일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내리고 있었다.
오전에 종로에 나가 평론가 박 선생님을 만나 '멕시코 벽화'와 인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 부리나케 '빌라 작업실'로 돌아왔다.
그런 뒤 하던 흙 작업을 만지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는데, 어제 부인 하나가 가져왔던 떡 쪼가리로 겨우 저녁을 챙겨 먹고는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 다음 날마저 종일 궂었다.
아침에 종로에 나가 책방에 들렀다.
그런데 자신을 실어준다는 잡지는 아직 시판에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어서, 스케치북 잉크 등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사실, 박 선생님으로부터 한 잡지에 자신에 대한 글이 실릴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인야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당시 한국 사회에서 '멕시코 벽화'라는 소재는 제법 신선한 아이템이었기에, 무명 화가였던 인야를 잡지에서 다룰 정도로 사람들의 구미를 당긴 예였다.
물론 박 선생님이 중간에서 이런저런 다리 역할을 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인야는 우두커니 앉아 생각에 잠겼다.
'사람이 사회활동을 하는 데 있어, 중간에서 누군가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존재 유무의 차이가 확실히 크구나!'
사실 이번의 귀국은 몇 년 전 스페인에서 돌아왔을 때와는 분명 달랐다. 자신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반응이 예전보다 드거워졌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인야 스스로가 그 기회를 제대로 움켜쥐지 못한 채 흘려보냈을 뿐이다.
후텁지근한 여름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한국 기후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인야가 제일 싫어하는 고온다습한 시절이라, 그마저도 짜증스럽기만 했다.
어머니를 군산의 형님 집에 모셔다드릴 수밖에 없었다. 한 달 반 만에 인야의 발로 어머니를 다시 시골 집에 모셔두고 돌아온 것이다.
비가 와서 고속버스는 한 시간여 늦게 서울에 도착했다.
집을 떠나오면서, 떠나는 자신을 바라보고 계시던... 이제는 육신마저 왜소해지신 어머니를 보고, 인야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에 돌아와서까지 왜 어머니를 떠나서 지내야 하는지, 자신의 처지가 서글펐다.
어머니를 편히 모셔야 한다는 자신의 의지는 여전히 확고했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은 아무런 능력도 없었다. 아니, 자신의 삶을 위한답시고, 그런 어머니를 몰라라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디에 있건 시간은 잘도 갔다.
인야는 요 며칠,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흙 만지작거리느라 여념이 없었고, 틈틈이 TV도 보고......
밤이 깊어가기에 그림을 그리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음악만 듣고 말았다. 오랫동안 쉬어서겠지만, 그림 그리는 게 낯설기까지 했다.
사실, 뭔가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 끝내 잡히지 않았던 건데... 그래도 그 과정만으로도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상당히 오랜만에 그림에 대한 생각으로 씨름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림을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는,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다음 날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 일은 온종일 계속되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난방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방에서 지내서였을까. 벌써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느낌이었고, 먹는 것마저 부실하다 보니... 건강이 좋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전화까지 없다 보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하루는 친구 '고'가 찾아왔다.
꼭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 찾아올 관계는 아니지만, 아무튼 두 사람은 가까운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올라왔는데, 그는 돌아오는 길에 인야가 멕시코에 가기 전에 그에게 선물했던 그림 (감나무. 수채 A2 크기)이 너무 허무했다는 얘기를 꺼냈다.
인야는 내심 깜짝 놀랐는데, 그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의 평화를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뭔가 허무해져서, 차라리 괴로움으로 변하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인야는,
"그랬냐? 그렇담 미안하네……" 하면서 그 그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코 밝기만 한 그림은 아니었으니까.
고는 이어서,
"그래도 니 생각이 많이 났다. 나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해서 그 그림을 나에게 선물한 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지. 그렇지만 그런 그림을 그렸던 널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가 않았다." 하고 무심한 듯 바라보았다.
그 사이 그가 인야 생각을 상당히 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친구니까.
그렇게 얘기를 나누다가 인야는 그가 얼마 전에 전화를 걸어와 어딘가 데려가겠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 물었다.
"근데 지난번 너 전화했을 때, 날 어딘가 데려간다면서? 어디를 가자는 건데?"
그 대답은 뜻밖이었다. 고는,
"음... 이번 현충일에 시간 좀 낼래?" 하더니, "동대문에 있는 한약방에 함께 가자. 사실은... 내가 너에게 약을 한 재 지어 먹이려고 여기에 온 거야." 하는 것이었다.
인야는 놀랐다. 정말 깜짝 놀랐다.
순간적으로 당혹스럽기도 했고 뭔가 복잡한 기분이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해주는 그가 고맙고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얘가 날 어떻게 보고 하는 말인가?' 하는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물론 내색은 하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감동이었기에 인야는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는 것 같이 어리벙벙해진 상태이기도 했다.
'친구에게 보약을 얻어 먹히는 일'이라니,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야, 내가 지금... 뭐라고 얘길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 하자,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넌, 혼자 사는 사람이라 누가 챙겨주지도 못하잖아?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내가 약 한 재 챙겨주려는 거니, 그냥 쉽게 받아들이고 넘어가자!" 하고, 그러면서도 고는 인야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아무튼, 감동인데...... 내가 만약 너였다면, 이렇게까지는 못할 텐데...... 고맙다!" 할 수밖에 없었다.
작업실에서 둘이 바둑을 몇 판 두며 밤이 깊어갔다.
고를 소파에서 재우고 인야는 바닥에서 자고 일어나, 다음 날 그와 함께 한약방에 가서 약을 짓고 돌아왔다.
그렇게 인야는 생각지도 않았던, 친구로부터 보약을 얻어먹는 사람이 되었다.
아침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요즘 농사일을 하시기 때문에 몸이 아프시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인야의 마음이 추를 단 듯 무거워졌다.
전화세 많이 나오니 자주 전화 걸지 말라고 하시는 어머니께 그런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마저도 불효라는 걸 실감했다.
그런 뒤 인야는 종일 일만 했다.
벽화 밑그림을 그려보고, 거기에 따른 부조형 소품을 흙으로 빚어도 보았다.
그렇게 인야의 상황은 자꾸만 절박해지는데, 풀어갈 실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으르고 태만해서 생긴 현상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딴에는 자신도 열심히 일하고 노력도 하고 있으니까.
혹시나 하고 아침에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한 군데도 인야가 원하는 쪽으로 일이 이어지질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을 잊기 위해, 그리고 시간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일 속에 파묻힐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