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포리즘
○ 수필은
소신공양.
삶에서 빚어지는 슬픔과 외로움을 자기 자신의 체험을 통해
진실하게 그려낼 때 감동과 공감 획득.
내면에 잠재해 있는 감성을 건드리며 냉철한 이론으로
합일을 이룬다 해도 진실이 결여되면 감동을 줄 수 없어.
□ 수필은
삼전지묘(三傳至苗)
난을 치는 사람에게는 신의 손짓으로 불리는 ‘석파란’이 존재.
흥선대원군이 난을 능란하게 그렸다 해서 그의 호를 따라 석파란으로
불리는 기법은 ‘좌란 삼십 년, 우란 삼십 년’ - 각고의 세월을 거쳐야.
범인(凡人)은 엄두 내지 못할 삼전지묘 기법.
기교가 뛰어나도 삼전지묘가 되지 않으면 난 잎이 아니라 풀잎에 불과.
◇ 수필은
등불.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진실’이라는 보석.
자기만의 빛깔과 향취를 품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고뇌는
수필작가의 소명.
작가는 그 시대를 선도하는 등불.
△ 수필은
아이러니.
완전한 글이 기교를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던 시대는 지남.
고심해서 쓴 글이 독자에게 쉽게 읽힌다고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는 시대.
어렵게 쓰인 글은 뜻이 애매하지만 주제가 다의적(多義的)임.
○ 수필은
수사학(修辭學).
원관념을 내세우지 않고 보조관념(은유, 역설, 상징)을 활용하여
작품을 형상화해야.
□ 수필은
아이패드.
사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 수필이어야.
창의적 작가는 당연한 것도 의심해야.
◇ 수필은
독대.
형체를 그리지 말고 그 안에 뜻을 그려 넣어야.
눈에 보이는 것보다 군말 없는 함축미를 묘사해야.
수필의 언어 4
2. 문 장
라. 문장의 길이에 따른 표현 효과
한 편의 글에서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을 어떻게 배열하는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이때 짧은 문장이란 곧 홑문장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구조상 홑문장이라도 수식어가 많이 붙으면 긴 문장이 될 수 있고, 겹문장이라도 주성분만으로 되어 있으면 짧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짧은 문장이 주는 효과
1. 뜻이 명료해진다
2. 깔끔한 인상을 준다
3. 장면 전환, 사건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4. 극적 장면이나 긴박한 상황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5. 긴 겹문장이 계속되다가 홑문장이 나오면 의미가 강화된다
- 긴 문장이 주는 효과
1. 유장한 느낌을 준다
2. 운율적인 맛을 살리는 데 효과적이다
3. 심리적 정황이나 명상적인 수필에 효과적이다
4. 회고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A1 바람이 세차게 불자 덜컹거리던 창문이 갑자기 폭발하듯 열리는가 했더니 순간 꽃병이 탁자 밑으로 떨어져 깨어지면서 물에 적은 빨간 장미송이들이 낭자하게 마루 바닥에 흩어졌다.
A2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덜컹거리던 창문이 갑자기 폭발하듯 열렸다. 순간 꽃병이 탁자 밑으로 떨어져 깨어졌다. 물에 젖은 빨간 장미송이들이 낭자하게 마루 바닥에 흩어졌다.
A1에서는 네 가지 상황이 한데 섞여 있어 각 상황이 독립적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되면서, 각 사건은 전체 속에 묻혀 버리고 만다.
A2처럼 짧은 문장으로 각 상황을 독립시키면, 각 상황이 감각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난다. A1이 ‘말하기telling’라면 A2는 ’보여주기showing'이다. A1보다 A2가 입체적이고 직접적이며 현장감을 준다. 뿐만 아니라 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독자를 긴장하게 한다.
하나의 문단은 긴 문장과 짧은 문장이 서로 교체되면서 내용에 알맞은 대목에 가서 알맞은 문장을 얻었을 때 표현의 묘를 얻게 된다.
무용이 동작의 완급의 교체로 구성되듯이 글도 완급의 교체가 이루어질 때 즐거운 문장, 아름다운 문장이 이루어진다.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의 적절한 교체. 이것이 문장 배열의 미학이다.
마. 우리말의 시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시급히 고쳐야 할 병이 하나 있다. 시제(時制)에 대한 불감증이다. 일관성이 없는 시제 표현이 독자들에게 혼란을 준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외국어 시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공부하고 또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왜 모국어의 시제에 대해서는 이처럼 무관심한 것인지 놀라울 뿐이다.
시제 표현의 혼란은 현재와 과거의 구분에서 나타난다. 몇 개의 문장을 현재 시제로 쓰다가 따분하다 싶으면 다음 문장은 과거시제로 바꾼다. 그렇게 또 몇 줄 쓰다가 다시 현재 시제로 바꾼다. 필연성이 없는 시제 바꾸기다.
우리말의 시제는 복잡하지 않다. 과거, 현재, 미래, 동작상(動作相)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말하는 시점(時點) 또는 글을 쓰는 시점을 발화시(發火時)라 하고, 이것을 기준으로, 그보다 사건이 먼저 일어난 경우 이를 과거, 발화시와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같은 경우 이를 현재라 하며, 뒤에 일어날 경우를 미래라 한다. 동작상에는 완료와 진행 두 가지가 있다.
과거 시제는 선어말어미 ‘~았~/~었~’으로 실현된다. ‘어제, 작년, 지난’ 등과 같은 시간 부사와 함께 쓰일 때 분명해진다.
발화시보다 훨씬 오래전에 일어나서 현재와 더 강하게 단절된 사건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았었~’또는 ‘~었었~’과 같은 겹친 형태의 과거 시제 선어말어미를 쓴다. ‘대과거’란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는 것이 옳다.
(1) 이 선생은 고등학교 시절 장거리 선수였었다
(2) 자네가 떠난 뒤에 어떤 스님이 찾아왔었다네
‘확실성 있는 미래, 보편적 진리, 습관이나 성격 또는 성질’은 현재 시제로 표현한다. 이런 몇 가지 점이 과거 시제와 현재 시제를 혼동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확실하게 알아 둘 필요가 있다.
(1) 우리는 내일 동부 유럽으로 간다 ................................. 확실성 있는 미래
(2)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 보편적 진리
(3) 짐승들은 마을로 자주 내려와서 울다 간다 .................. 습관
(4) 준우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한다 ........................... 성격
과거 시제와 현재 시제가 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앞에서 예를 든 네 가지 외에, 필자가 체험한 사건이지만 현장감을 주기 위해서 특정 장면을 현재 시제로 표현할 때 나타난다.
우리는 투우장에 a들어갔다. 그 때 마침 문이 열리더니 검은 소 한 마리가 b나왔다. 잠시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투우사를 향해 c달려든다. 투우사는 빨간색 망토를 가지고 소를 이리 저리 d조정한다. 화가 난 소가 콧김을 불며 투우사를 향해 c돌진한다. 투우사는 순간 몸을 날렵하게 피하면서 소의 잔등에 날카로운 칼을 f꽂는다. 소가 g쓰러진다. 사람들이 달려오더니 소를 싣고 h나간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i장면들이었다.
이 예문에서 a, b는 과거 시제로 표현되다가 c, d, e, f, g, h까지는 현재 시제로 표현되었다가 다시 i에 와서는 과거로 되돌아간다. 이유는 c~h까지는 투우와 투우사의 혈투 장면을 생생하게 독자가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과거 시제를 현재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목적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시제를 바꾸는 것은 문법에 어긋난다.
미래 시제는 장차 일어날 일을 표현하거나, 추측이나 의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미래 시제는 선어말어미 ‘~겠~’으로 실현된다. ‘내일, 다음에, 앞으로’와 같은 말과 함께 쓰면 미래 시제가 분명해진다.
동작상은 발화시를 기준으로 두 가지로 나눈다. 동작이 계속 이어지는 모습을 진행이라 하는데, ‘~고 있다’로 실현된다. 동작이 막 끝난 모습을 완료라고 하는데, ‘~어 있다’로 실현된다.
(1) 붕어들이 어항 속에서 놀고 있다 ................................ 진행
(2) 산이 높이 솟아있다 .................................................. 완료
정미소 풍경
구 활
폐허의 성처럼 버티고 서있는 낡은 정미소. 유령이 나올 것만 같은 정미소 앞을 지나칠 때면 마음 한구석이 찡해 온다. 헛간을 덮고 있던 지붕 한쪽은 날아가 비바람이 그냥 들어오고 다른 한쪽 지붕은 임시방편으로 색깔 다른 함석으로 덧땜질해 두었지만 미풍에도 소리를 내는 박자가 제 멋대로인 타악기로 변한 지 오래다.
두고 떠나온 고향이 못내 그리워 시골 여행을 할 때마다 정미소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 차를 세워 이곳저곳을 살펴보지만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생동감 있는 기계음은 들리지 않는다. 낱알을 주워 먹던 참새떼도, 나락 가마니 속을 들락거리던 쥐들도 더 이상 먹을 게 없어 이사를 갔는지 사위는 적요롭기 그지없다.
그래도 햇볕만은 떨어져 나간 천정의 빈 공간을 타고 들어 와 그늘이 범접할 수 없는 사각의 성을 이뤄 조을듯 놀고 있다. 몇 마리의 거미가 떠나버린 주인으로부터 사글세라도 얻었는지 여기저기에 그물을 쳐놓고 쌀겨 속에서 깨어나는 나방이 걸리기를 기다리지만 그 세월 또한 지루하기 짝이 없다.
싣고 간 나락이 쌀이 되어 나올 때까지 지루하게 기다렸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한 정미소 앞마당은 생기라곤 전혀 없는 마른풀들의 모습만 어지럽다. 콜탈 칠한 송판떼기에 좀처럼 잘라질 것 같지 않은 가위 그림을 곁들인 '소변금지'란 팻말은 빛 바랜 잉크 글씨처럼 희미하다. 모두 흘러간 세월 탓이다. 반쯤 쏟아진 기름병, 삭은 고무호스, 넘어져 딩굴고 있는 드럼통, 빗물이 고여 있는 리어커 타이어, 녹슨 캐비넷과 수화기가 날아간 자석식 전화기 등은 고향을 잃어버린 빈 가슴에 그리움이 되어 다시 안긴다.
그리움이 사무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법, 다시 한 바퀴 돌아본다. 먼 데서 보면 지붕의 녹슨 함석은 뻐얼건 페인트를 칠한 것같이 보기에는 멀쩡한데 뚫어진 구멍 사이론 햇빛이 별이 되어 쏟아진다. 연극 무대의 조명발 같은 그 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그리운 사람이 그리운 만큼 눈이 부시다. 황토를 바른 흙벽은 속살이 떨어져 얼기설기 나무 꼬챙이들이 장기판 같고, 쇠사슬로 감아 큰 자물쇠를 채웠던 대문은 돌쩌귀가 빠져 더 이상 문이 아니다. 동네 개들도 오줌을 질금거리며 서서 들어간다.
이런 풍경은 추억을 건져 올리는 두레박이다.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 속의 양철 두레박. 그래서 나는 이런 풍경을 사랑한다. 폐허의 성에 성주가 없다. 성을 지키는 병사도 없다. 교대시간을 알리는 나팔소리도 없다.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낡은 정미소 앞에 서면 나도 모르는 새 과거로 옛날로 달리는 고물 트럭을 타고 고향마을에 빨리 내리고 싶어 안달하는 귀향객이 된다.
고향 사람들은 다리 옆 정미소를 서태근 방앗간이라 불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방앗간을 '현자네집'이라 불렀다. 그 말뜻 속엔 다분히 친근과 존경이 서려 있었다. 그 방앗간은 대한청년단 고향마을 책임자였던 서씨가 빨갱이들에게 처형당해 시신마저 불태워진 후 미망인인 현자엄마가 딸 다섯을 데리고 부리며 힘겹게 정미소를 돌리고 있었다. 현자엄마는 어린 눈으로 봐도 얼굴엔 품위가, 말씀과 몸가짐에는 항상 고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현자네집은 단순한 정미소가 아니었다. 우리 다섯 남매의 월사금을 빌리는 최후의 보루였다. 당시 어머니는 가난에서 하루빨리 탈출하는 방법은 자녀들을 교육시켜 초등학교 교사로 만드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어머니는 내보다 열 살 위인 큰 누님부터 둘째 셋째 누님까지 사범학교에 넣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모두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만들었다.
어머니의 판단은 너무나 정확했다. 그러나 논 몇 마지기뿐인 우리 집 형편으론 월사금이 항상 문제였다. 이웃, 일가친척, 금융조합 등에서 빌릴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하면 현자네집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 정미소는 방앗간이 아니라 마이너스 통장으로 현금을 인출하는 마을금고였던 셈이다.
현자네집에 다녀오는 날의 어머니 얼굴은 항상 밝았다. 카드깡이 아닌 가을 농사를 담보로 빌려온 현금이지만 다섯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더 이상 졸리지 않게 되었으니 그게 좋으신 모양이었다. 한번은 현자네 집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크게 상심하며 혼자 우셨다. 알고 보니 맏딸인 현자누님이 수녀원으로 들어간 후 그렇지 않아도 적적하던 참인데 현희라는 둘째가 농약 묻은 사과를 먹고 손쓸 겨를도 없이 숨졌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울길래 나도 따라 울었다. 혹시 월사금 빌릴 길이 막혀 학교에 영영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선 그게 걱정이었다. 그래서 더 서럽게 울었다.
상처는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지면 빨리 치유된다고 한다. 그러나 고향을 그리워할 때마다 가슴이 아려오는 나.
* 구 활 : 1942년생. 경북대학교, 수필가, 전직 신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