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저녁의 무늬』중에서
고모는 장구를 아주 잘 쳤다. 고모에게 장구를 배우러 인근 마을에서 올 정도였으니까. 고모네 집으로 가는 길에 담으로 넘어온 감나무가 서늘하게 빛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의 눈 바로 위에 큰 땀띠가 나 있었다. 가난하기도 했으나 병원에 가는 것이 죽으러 가는 일 외에는 엄두를 못내던 시절이었을 만큼 문명에 밝지 못했던 어머닌, 그냥 손으로 짜버렸다. 고모 아들이 양철 대문에 호랑이 그림을 낙서한 그 집 마루에서 고모는 장구를 쳤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고모. 얼마 후 고모는 죽었지만 그날의 풍경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여름 오후의 저무는 햇빛과 그늘진 마루에서 들리는 타악기 소리의 슬프고, 한편으론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처럼 내 안에서 고동치던 리듬을 아마 떫은맛을 내는 감나무만이 알아들었을까.
그리고 나는 먹어서는 안 되는 닭고기를 먹었다. 약사가 닭고기를 먹으면 상처가 도진다고 했으니까…… 고모는 장구를 치고 나서, 공교롭게도 닭고기를 내왔다. 어둑어둑해지는 마당의 맨드라미가 하늘에도 피어 있고, 워낙 고기를 먹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웬일인지 그때 나는 닭고기를 꼭 먹어야겠다는 이상한 집착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소금에 찍어 딱 하나 먹었던 닭다리, 고모와 어머니가 울고불고 하는 나를 말릴 때 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던 그 집착.
내 눈위에 땀띠가 생기던 날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본 밥상에서 출발되었다. 빨간 밥상보. 어머닌 내가 늦게 일어나는 날은 언제나 머리맡에 밥상을 놓아두고 밭에 일을 나가셨다. 그날은 왜였을까. 그 빨간 밥상보에서 누나들이 머리카락 뒤에 묶고 다니던 댕기가 떠올랐다.
(중략)
그 후 닭고기를 먹어서인지, 어머니의 무지 탓인지 닭벼슬 같은 상처가 눈 위에 자리잡았다. 그것 때문에 사춘기에 여자애들로부터 멸시당할까봐 그녀들을 멀리 했고, 취직할 나이가 되어서는 인상이 나쁘달까봐 백수의 길로 접어들기도 했다.
● 작가_ 박형준 — 시인.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지은 책으로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빵냄새를 풍기는 거울』『생각날 때 마다 울었다』, 산문집 『저녁의 무늬』 등이 있음.
● 낭독_ 정훈 — 배우. 연극 '과부들', '봄날' 등에 출연.
● 출전_ 『저녁의 무늬』(현대문학)
배달하며
타악기는 민중악기입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물건입니다. 때리는 행위와 반복적인 리듬, 가장 멀리까지 퍼지는 파장 같은 게 특징이죠. 값비싼 현악기의 귀족 특징과는 반대이어서 품위 대신 흥겨움이 기본입니다. 예전엔 웬만한 집에는 장구가 있어 가락도 모르면서 아이들이 두들겨보곤 했었죠. '여름 오후의 저무는 햇빛과 그늘진 마루에서 들리는 타악기 소리' 생각만 해도 아련하고 슬퍼집니다. 더군다나 이마에 종기(저자는 땀띠라고 돌려 말했지만 어림없는 소리죠)가 난 아이까지 있다면야······ 그러고보니 박형준 시인이 몇 년 전에 성형수술을 했다는데 이것 관련인지 모르겠어요.
문학집배원 한창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