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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宗敎)의 기원(起源) (하)
천도교 홈에 게재된, 본인의 모든 글과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과 교리, 교사 연구 논문과 학술논문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사오니, 자주 방문하시어 많이 읽어주시고, 교단발전에 널리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포덕 152(2011)년 11월 18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감사의 말;
1960년을 전후로 필자가 3부 경전 간행에 참여하게 된 것을 계기로, 천도교 관련 각종 출판물에 관여하게 되는 동안 교단의 중앙과 지방에 계신 많은 원로 분들과의 대화에서 천도교가 왜 종교가 아닌가? 란 물음에 대한 답변과 교리해석에 있어 사람마다 다르거나 야뢰의 해석을 앵무새처럼 말씀하시는 태도에 대해, 항상 이해의 미진(未盡)한 부분들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 후 중앙총부에서 중앙교역자로 봉직(奉職)했던 10여 년 동안에도 해결되지 않은 것은, 천도교에 대한 서양의 학문과 종교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계신 교역자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이런 서양의 학문과 종교적인 이론의 미숙과 부족이, 항상 필자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던 원로들의 천도교란 종교와 교리해석에 대한 ‘이해의 미진한 부분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욱이나 법설의 기저(基底)에 깔린 동양사상과 한국사상 마저도 정확한 이해가 없이 막연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답을 하거나 아예 피해버리거나 동문서답하는 교역자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필자로서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천도교가 ‘다시 개벽’이란 큰 이상을 안고 이 땅에 창도된 지 어언 150여년이 되었지만, 종교학 분야에 연구자가 없어 종교학, 신학, 종교철학 등의 학문의 이론으로 ‘천도교가 가장 현대적이며, 미래지향적이고 세계적인 개방종교’라는 것을 확연(確然)하게 설명하여 이해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필자는 1960년대부터 천도교를 진정한 종교로서 이해되고 인정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찾기 위해, 수백 권의 관련도서들을 섭렵(涉獵)하면서 학문적인 이론을 찾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필자가 근년에 인터넷에 올린 종교관련 글들은, 모두 오랫동안 충분히 연구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으므로 이 글들을 이해하여 활용한다면, 천도교가 이 시대의 진정한 종교임을 머뭇거림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맨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할 때, 필자도 천도교의 교의(敎義)를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교역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종교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맥(脈)을 잡는 데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이제야 부족한대로 ‘천도교가 가장 현대적이며, 미래지향적이고 세계적인 개방종교’라고 자신 있게, 타 종교인이나 일반인에게 더 나아가 세계인들에게 학문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할 수 있게 되어,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것 같은 홀가분한 자유를 느끼고 있습니다. 필자의 연구결과의 부족한 부분들은 이 연구물을 토대로 하여 후학들이 채워주고 바로 잡아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초에 필자가 교단을 떠났을 때부터 현재까지의 교단이 퇴행(退行)하게 된 사유를, 분명하고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으며 6. 25사변 이후의 교단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필자는, 교단을 떠나기 이전부터 정한 필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계속 연구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어 이제야 하나하나씩 정리되어 완결된 결과물을 발표하면서, 천도교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참신하고 미래지향적인 교단이 되어, 다가올 새 시대를 이끌어가는 진정한 종교가 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간 많은 인내가 없으면, 제 글을 읽을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신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새해에는 또 다른 문제들에 대한 글을 통하여 만날 것을 기원하면서 이 글을 줄입니다. / 오암 김 용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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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원시종교와 민간신앙, 그리고 무속(巫俗)신앙.
1. 한국의 原始宗敎(Primitive religion. Religion der Naturvölker.)와 신앙.
任東權은 ‘韓國原始宗敎史 Ⅰ’에서 ‘인류가 原始時代에 있어서 실제의 세계보다는 精靈, 靈魂이나, 天體 또는 자연의 힘을 인정하고 이것들을 숭배하고 금기하고 주술적 방법에 의해서 迎送退禳(영송퇴양; 신령을 맞아드리고 보내는 일과 신령께 빌어 악귀를 물리치고, 재앙을 없애는 것. / 필자 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행하였으니, 흔히 原始宗敎라 불러진다. 人智가 아직 얕았던 원시시대에 있어서 주야의 交替라든가, 식물의 성장이나, 생명의 탄생 또는 비, 바람, 구름 이러한 諸 現象에 대하여 신비성을 느꼈던 것이며, 그 원인이 되는 어떠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 힘은 인간보다 세고 강한 魔力의 존재를 인정하였으니 여기에 원시종교의 출발이 있었다. 원시시대에 있어서의 思惟는 神, 魔力, 靈魂을 인정하고 이것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여러 가지 呪法이 행해지고 있었으며, 지금도 미개사회에서는 여전히 원시종교가 남아 있으며, 더러는 문화민족 사이에서도 原始宗敎의 잔재(殘滓; 남은 찌꺼기. 또는 지난날의 생활방식이나 의식들/ 오암)를 찾아볼 수 있다.
원시종교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러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1. 精靈이나 영혼을 인정하는 아니미즘.(Animism)
2. 원시종교의 기술적 방면으로서의 呪術.(Magic)
3. 精靈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로 禁忌.(Taboo)
4. 민족의 先祖를 동, 식물이라고 생각하는 토테미즘.(Totemism)
5. 이러한 것을 숭배하고 祭祀하고 신화를 낳는 의식을 말한다.‘ 고 했다.
/ 韓國文化史大系 11. 宗敎, 哲學史 上 (PP. 23-24.)
임동권은 위와 같이, 원시종교에 대한 국내외 종교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바탕으로, 원시시대 인류의 원시종교를 신앙하게 된 동기와 의식의 행태를 통하여 원시종교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규명하고, 이 논리로 한국의 원시종교를 설명하고 있다. 임동권은 통시적(通時的)으로 단군 신화시대(檀君神話時代), 삼국시대(三國時代), 고려시대(高麗時代), 이조시대(李朝時代), 현대(現代)로 구분하여 각각의 시대에 나타난 원시종교적인 현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는 다른 시각(視覺)으로 한국의 원시종교를 규명하고 있는 김득황(金得榥)은 “韓國宗敎史”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신앙을 가진 동물이라고 하는데 우리 한민족도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韓民族의 신앙은 자연숭배에서 부터 시작하였다. 원시시대에 대자연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하고 신묘한 조직에 경탄하여 여기에 精靈이 있는 것을 믿어 日月星辰이나 山川같은 造化物을 숭배하며 동물이나 怪岩奇樹(괴암기수; 괴상하게 생긴 바위와 이상하게 생긴 나무들. / 필자 주)같은 물체에 까지 精靈이 있는 것으로 알고 그 신비력과 不可思議力을 숭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령은 인간의 생활과 禍福을 좌우할 수 있는 줄로 알고 여기에 여러 가지 供物과 犧牲을 바침으로써 정령의 화해(禍害)를 피하고 안심과 환희의 생활을 하려고 제사를 지내었다. 이것을 아니미즘(Animism)이라고 말한다. 한민족의 종교생활은 이 아니미즘에서 부터 시작하였다.
이 아니미즘은 약간 발전하여 우리 상고시대의 신교(神敎)를 낳았다. 신교에서도 자연의 物體를 숭배하며 또 특정한 일을 주관하는 신의 존재도 믿었거니와 인간의 혼백도 신앙하였다.인간의 혼백은 불멸(不滅)하는 것이며 이 영혼은 생전행위(生前行爲)의 선악에 따라 죽은 뒤에 惡靈 또는 善靈으로 화한다고 믿었으며 특히 선조들의 혼백은 후인(後人)이 잘 봉사함으로써 명복(冥福)을 누리며 또 혼백으로부터 재화(災禍)를 면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이리하여 선조의 혼백을 숭배하고 그 혼백에 제사를 드렸다. 라고 하여 한국의 원시종교를 ‘신교(神敎)’라는 색다른 명칭으로 분류하고 설명하고 있다. (PP. 15-16.)
김득황은 계속해서 “韓國宗敎史” 第 二編 神敎에서 신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신교의 淵源 - 우리 민족의 고대신앙을 신교라고도 하며, 혹은 仙敎라고도 한다. 신교라는 것은 신을 섬기는 종교라는 데서 유래하며, 仙敎라는 것은 신을 받드는 사람이 산에 살며 不老長生의 신선도(神仙道)를 닦는 데서 유래한다. 신교는 우리나라의 원시종교로 맨 처음에는 자연숭배에서 부터 시작 하였다. 원시종교는 아니미즘(Animism)에서 자랐다고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데 아니미즘이라는 것은 모든 물체에는 생명이 있고 또 정령(精靈)이 있다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생각되는 인간뿐만 아니라 日月星辰이나 산천초목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생물과 무생물, 유기물과 무기물 등의 구별을 분명히 할 수 있지만 미개한 상고시대에는 이러한 판단을 지울 수 없었으므로 모든 물체에 정령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우리나라의 원시종교였던 仙敎도 미개한 원시시대에 있어서 역시 아니미즘 즉 物活論에서 부터 자라났다. 원시시대의 우리 韓人들도 위대하고 불가사의한 대자연에 대하여 驚異와 공포를 느끼어 신기한 물건에는 생명이 있는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중략- 모든 물체에 정령이 있다고 생각하던 그들은 그 뒤에는 어떤 특정한 물체에 정령이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수많은 日月星辰 가운데서도 태양과 북두칠성 같은 것에 정령이 있다고 보며, 수많은 산 가운데도 어떤 高山 주봉(主峰)을 택하여 정령이 있다고 본 것과 마찬가지다. -중략-그리고 인간생활에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가져오는 모든 정령 즉 굿거리의 類에 祭祀를 드리거나 기도를 드림으로써 안심과 환희의 생활을 하고 무병장수 할 수 있다고 보아 종교적 생활을 하게 되어 신교라는 원시종교를 낳게 된 것이다.’ 라고 하여(PP. 40-41.), 임동권의 원시종교에 대한 시각과 설명과는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또 尹以欽은 ‘信念類型으로 본 韓國宗敎史’ 라는 연구논문에서 한국의 고대종교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고대종교는 주술적 기복사상이 신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군신화를 비롯한 국조(國祖)신화와 특히 주몽(朱蒙)신화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들 신화들이 대표하는 종교 전통과 그 종교사상 내용은 확실치 않지만, 그들의 신념 유형이 기복(祈福)적이라는 점만은 분명한 것이다.’ 라고 했다./ 韓國宗敎의 理解. P. 42.
우리나라의 고대종교에 대한 명칭은 학자의 연구내용에 따라 다르다. 丹齊 申采浩는 “朝鮮上古史(1948.)”에서 고조선 시대를 ‘수두시대’ 라고 하였고, 수두의 음역(音譯)이 소도(蘇塗)라고 해석하고 수두는 선비를 의미하며, 이두문자로 仙人 또는 先人으로 표기했다고 했다.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은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나라에 현묘지도(玄妙之道)가 있어 그를 풍류도(風流道)라 한다."고 기록하고, 풍류도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하게 실려 있으나 거기에는 3교가 포함되어 있어 여러 중생을 교화해준다고 했다. 고 한 글 중에 나오는 선사를 선비들 즉 수두교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화랑의 역사로 보는 학자도 있다.)으로 해석하고 고대종교를 ‘선비교’라 했으며, 崔南善은 “朝鮮常識問答(1947.)에서 ‘부루교’라 하고 있고, 우리나라 종교사 연구의 개척자인 李能和는 “朝鮮巫俗考 / 啓明 第19號(1927.)” 제 1장 朝鮮巫俗之由來에서 ‘神敎’라고 하고 있다. 이 神敎라는 용어는 李能和가 1923년에 발표한 ‘朝鮮神敎源流考(3)’ / 京都大 史林 8-1에서 이미 사용한 용어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在今日 閭巷巫俗亦是檀君神敎之系統也’(P. 142. 필자 주: 오늘날에 시중에서 행해지고 있는 무속은, 이 또한 단군신교의 계통이라 할 수 있다.)
註 12; 수두와 소도의 사전적 의미는, 수두는 신단(神壇)을 의미하며, 소도란 수두나 높은 지대를 의미하는 솟대, 또는 솔대, 소줏대 등에서 온 말로 소는 길고 곧게 뻗음을 의미하고, 대는 간(竿)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소도의 의미는 입간(立竿)이란 뜻이 된다. 또 다른 해석은 소도는 고간(高竿)의 몽고어 발음이란 주장이다. 소도는 삼한시대에 제의가 행해지던 신성지역이며, 그 지역이 별읍(別邑)으로 축성되었을 때는 그 곳이 성역(聖域)이 되며, 국읍(國邑)이라 하여 天神에 대한 제사를 지내며 제의를 주재하는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불렀다.
註 13; 김득황은 원시시대에 숭배하던 정령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대별하면 天神, 地神, 人靈, 雜鬼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이 중 천신(日月星辰과 風雨寒暑) 중에 가장 높은 숭배를 받는 것이 太陽神이며, 태양은 森羅萬象을 育成하고 光明의 源泉이 되는 大自然界의 主宰者로 尊崇을 받으며, 天界의 人格的 存在로서 百神 中에서도 가장 높은 神格을 갖춘 이로 하님 또는 한울님이라 불렀는데, 天神, 天帝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하님은 宇宙의 最高 主宰神이었기 때문에 진역(震域;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달리 부르는 말. / 필자 주)의 여러 나라에서는 大事가 있을 때마다 事前에 하님의 加護를 빌고 事後에도 하님의 명조(冥助; 모르는 사이에 神, 佛의 도움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冥加라고도 함. / 필자 주)를 봉사(奉謝)하였다. 고 하였다.(“韓國宗敎史” PP. 41-42.)
2. 한국의 민간신앙(또는 庶民宗敎; folk-belief customary belief, Volksglauben.)
민간신앙이란, 용어는 학술용어로 정확하게 규정된 바가 없어 학자에 따라 개념규정이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속신(俗神). 미신(迷神)들 만을 가리킬 때도 있고, 점복(占卜), 금기(禁忌), 주술(呪術)의 현상이나 신흥교단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교단과 교리상의 체계를 갖지 않는 주술 종교적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종교로서 면모를 갖춘 교단의 기저(基底)가 되는 것으로 뮐러(F. M. Müller)가 기독교, 유태교 같은 계시종교의 기저로서의 ‘자연종교’라 부른 것이 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따라서 조직종교 가운데에 잔류침전(殘留沈澱)된 전단계적 종교현상도 민간신앙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민간신앙의 바탕은, 원시 고유 신앙의 유영(遺影)인 샤마니즘 계통의 것이고, 외래종교인 불교와 도교, 그리고 유교의 신앙이 혼합된 것이다./ (철학대사전 요약) 그러므로 ‘한국의 민간신앙이란, 민간인의 자연적 신앙, 즉 민간인이 신앙하는 자연적 종교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자연적 종교라는 단어는 인위적인 종교의 상대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인위적인 종교라는 것은 교조에 의한 교리가 문서화되고 이것을 중심으로 인위적인 조직을 갖는 인위적인 상황 속의 종교이며, 자연적 종교는 인위적인 상황이 배제된 자연적 상황 속의 종교이다. / (韓國民俗大觀 / 民間信仰, 宗敎. 3. P. 21.) -중략- 민간신앙은 각기 목적에 따라 신앙의 양상이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런 민간 신앙을 분석해서 민간신앙 속에는 어느 것이나 일정한 하나의 循環 ‘本’(pattern)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략- 민간신앙은 季節祭, 家神信仰, 洞神信仰, 巫俗信仰, 讀經信仰, 自然物信仰, 英雄信仰, 邪鬼信仰, 風水信仰, 占卜, 豫兆, 禁忌, 呪符 民間醫療 등이 있는데, 이와 같은 민간신앙은 건강과 풍요에 목적이 있고 그런 민간신앙은 전국적으로 민간층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韓國民俗大觀 / 民間信仰, 宗敎. 3. PP.354-355.) 라고 하여 신앙의 대상과 목적과 행태가 다양함을 밝히고 있다
주 14; 민간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정의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金泰坤의 “韓國民間信仰硏究” / 韓國巫俗叢書. Ⅵ. PP.11-13.을 정독하기 바람.
3. 한국의 무속신앙(巫俗信仰).
柳東植은 ‘韓國巫敎의 歷史와 構造’(연세대 출판부 1975.)에서 한국 무교의 기원을, 동북아시아와 유라시아 일대에 퍼져 있는 원시종교 현상인 샤마니즘의 일부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三國志 魏志 東夷傳에 실린 고대 한국인들의 제천의식을 주로 하는 종교현상에 관한 기록들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始祖神話들, 삼국시대의 종교생활에 관한 기록들 속에서 한국적 샤마니즘이라고 하는 원시종교의 사고구조와 특징이 일관되게 나타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P. 16). 그리고 ‘한국 무교의 역사적 전개는 그 원초적 형태인 고대 한국인의 신앙의 구성요소에 따라 세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 하나는 天神降臨信仰이 상징하는 직선적이고 음성적인 고대 祭儀의 單純傳承이다. 둘째로는 地母神信仰이 상징하는 자기變容的인 辨證法的 발전이다. 셋째는 天地融合에 대한 신앙이 상징하는 외래종교와의 혼합적 전개이다.’ 이라고 했다.(柳東植 ‘韓國巫敎의 歷史와 構造’PP. 71-72.) / 金仁會의 “韓國巫俗思想硏究.” PP. 58-59참조.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한국적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무(巫)의 현상을, 한국 무의 연원으로 삼고 있다. 이는 고대 한국 민족과, 신라, 고려, 조선을 이어 내려오면서 우리 민족의 의식구조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종교적 현상이다. 그러나 협의적으로는 민간 층에서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으로서의 민간신앙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무속을 샤머니즘, 애니미즘, 토템이즘으로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종합적인 종교현상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도 무속은 한국의 민간 신앙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것으로, 귀신사상, 점복사상(占卜思想), 풍수사상 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여타 외래종교와 신흥종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무의 종류와 제의(祭儀)의 구분과 무신(巫神)의 종류로 무속의 종교적 현상을 파악하고 있는 방법이 학계의 일반적인 접근방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속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무신을, 金泰坤은 “韓國民間信仰硏究”에서 무신의 종류를 네 가지로 크게 나누어
1. 굿 제차(祭次; 또는 무신)의 주제신이 73 종,
2. 무보도(巫補圖)에 나타난 신이 115종,
3. 신당(神堂)의 상제신(上祭神)이 138종,
4. 가신(家神)으로 무속상(巫俗上)에 제신(祭神)이 11종으로 중복되는 신을 1종으로 하여 현재 한국의 무신명(巫神名)이 밝혀진 것이 273종이라고 연구결과를 밝히고 있다.
4. 한국의 샤머니즘
한국의 샤머니즘은 다령(多靈)숭배,(poly-demonism) 또는 다신론(polytheism)이다. 한국의 무속에서 신앙하는 신은 273종에 달한다고 한다. 샤머니즘은 신과 인간과의 개인적 구원관계라든지, 신을 향한 신앙적 결단보다도 생활상의 당면한 현실 문제를 초월적인 신의 능력에 의지하여 해결해 나가려는 것이 샤머니즘의 목적이다. 즉 소원성취로 행복과 복을 불러들이고 액땜을 하고, 병을 고치는 등의 극히 현실적인 문제들로 집약되는 것이다. 또한 기도 방법도 정신적이라기보다는 신에게 제물을 바침으로써 그 제물의 양과 질에 비례하여 신의 응답을 기대하는 공의적(公儀的) 신앙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엑스터시와 빙의(憑依 possession:신 내림)를 통해 의무(醫巫), 사제(司祭), 점사(占使), 영매(靈媒) 등의 역할을 하는 복합체, 즉 무당(巫堂, 巫)을 뜻하며 이런 것들을 무당의 역할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무당은 지역에 따라 달리 불리는데, 영남에서는 무당, 보살, 삭세기, 전라도에서는 단골, 제주도에서는 심방으로 불린다. 그러나 무당은 이러한 여러 하위범주를 포함하는 상위개념이다. 샤머니즘의 종교적 표상은 성무(成巫)과정, 신령과의 접촉과정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성무과정은 지역적으로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뉘어 나타난다. 북부지역에서는 빙의 현상이 표면으로 나타나는 강신 현상이 현저하게 드러나는 반면,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는 엑스터시 현상(接神現象)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창무(唱舞)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강신무(降神巫)는 신병(神病:巫病)의 체험을 통해 무당이 된다. 이에 비해서 세습무(世襲巫)는 조상의 혈통을 따라 대대로 사제권(司祭權)을 계승하여 무당이 된다. 다시 말해서 강신무는 신의 영력에 의해서, 세습무는 사제권의 인위적 세습에 의해서 무당이 되는 것이다. 세습무일수록 우주관, 영혼관, 내세관이 희박하고 무가(巫歌)도 일정한 양식으로 격식화되는데, 무가에는 놀이와 풀이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무(舞)의 요건은 무병(無病), 도무(跳舞), 신탁(神託), 무복(巫服), 무가(巫歌), 무구(巫具) 등이다. 한국의 무속(巫俗)은 한국의 전래 신앙을 총칭하는 말로, 좁은 의미에서의 무속은, 무당과 관계된 종교현상을 말하며, 넓은 의미에서는 한국의 민간신앙이라 말할 수 있다.
무당들은 일반인과는 혼인을 할 수 없으며, 동성동본 불 혼률(不婚律)이 적용된다. 씨족외혼(氏族外婚)을 원칙으로 하고, 무당끼리 혼인하는 직업내 혼적(職業內婚的) 성격을 띠기도 한다. 또 무업(巫業)을 하도록 유리한 모방 친척(模倣親戚)을 확대하여 넓은 관계망을 형성한다. 무당사회에는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어 있으며, 혈연, 직업 등으로 사회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무는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위치를 외래문화에 빼앗겼지만, 불교, 도교 등의 여러 종교와 융합하는 과정에서 관념적 토대를 형성했다.
5. 한국의 애니미즘
애니미즘을 모든 종류의 사건과 사물에 정령이나 영혼이 내재하고 있는 원시종교의 한 형태로 본 타일러의 이론은, 세계 각 민족의 종교사상을 설명하는 데 그 적합성이 결여될 뿐만 아니라, 그 논리적 구성이 한국의 종교현상과 질서정연하게 대응되지 않는다. 그는 영혼과 정령의 관념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생령(生靈), 사령(死靈), 정령이 어떠한 선후관계가 존재하는 지를 밝히지 못했다.
한국의 영혼숭배사상은 오래된 원시종교현상의 한 잔존물(殘存物)이라기보다는 사회체계,
상징체계가 관련되어 있는 문화의 한 요소이다. 영(靈)이란 신(神), 혼(魂), 귀(鬼)의 총칭으로 쓰이는 말이므로 신령(神靈), 혼령(魂靈), 귀령(鬼靈) 등으로 구분되기도 하나, 포괄적인 토착개념(土着槪念)으로는 신령으로 불렸다. 신, 귀, 혼의 범주는 지역, 의례, 종교마다 다르게 변형되었으며, 귀신, 신위(神位), 영혼, 영신(靈神), 혼백, 잡귀, 요귀 등으로 세분화되기도 한다. 영의 표상은 비물질적인 것으로 사물에 원초적으로 내재하거나 인간과 관계없이 외부에서 깃들기도 한다. 개인의 꿈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인격화되어 현실화되기도 하며, 이동이 자유로워서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영의 개념은 표면적으로는 뚜렷하게 형상화되지 않고, 사물과 비 사물(非事物), 가시적(可視的)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에 융합되어 있다. 신령군(神靈群)에는 인격화 과정이 존재하고, 신통(神統)이 분화되어 있다. 한편 분화된 영의 하위범주인 신, 귀, 혼은 그것을 매개하는 유형, 무형의 형태에다 상징이 개입됨으로써 다양하게 인지되었다. 신앙대상은 돌무더기, 곡식, 나무, 산, 토지, 강, 해, 달, 별, 암석, 동물, 식물 등과 같이 다양하며, 일정한 공간에 다신다령(多神多靈)이 집합, 분화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주요한 신령으로는 옥황상제와 같이 우주를 관장하는 신, 집안 내에 조령(祖靈), 성주, 용왕, 허주, 업, 문신, 축신 등의 가택신(家宅神), 서낭, 산신, 골매기 등과 같이 지역마다 존재하는 다양한 동신(洞神), 용왕이나 곡령신(穀靈神)과 같은 생업 수호신, 삼신과 같은 산육신(産育神) 등이 있다. 이러한 신에 대해서 계절적 주기에 따라서 세시의례를 주기적으로 행했다. 신령관은 민속종교나 일반종교의 신관과 융합되어 있었으며, 신령구조는 어느 정도 위계적이며 선과 악의 범주가 개입되기도 한다. 구렁이를 지킴이, 천연두를 마마로, 사람을 저주하기 위해 인형에 화살을 쏘는 것은 모두 이런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6. 무당의 역할
1) 무당은 일정한 신령을 몸주(神主)로 모시고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 보통 자신의 집 방 한 칸에 신당(神堂)을 마련하고, 그 신령에 해당하는 그림이나 물건을 걸어 놓고, 매월 초하룻날이나 보름날에 또 각각 필요한 상황 때 신령에게 정성을 드리고 도움을 청한다.
2) 신령과의 관계가 하늘이나 영계와 같이 위로 향한 일이라면, 무당은 땅의 매개자로서 인간의 일에도 관여한다.
3) 무당은 일반인들에게 하는 봉사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무꾸리”라고 하는 점치는 일. 즉 사업, 입시문제, 득남(得男)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거나 부적을 써서 준다.
4) 부적에는 모든 질병을 막고 재액(災厄)을 막으며 심지어 남편의 첩을 없애주는 것까지 해주는 수많은 종류가 있다고 한다.
5) 점괘가 조금 더 심각하게 나와 부적만으로 안 되겠다 할 경우에는 치성(致誠)을 드린다. 푸닥거리’ 나 ‘살풀이’ 도 일종의 치성이다.
6) 치성만으로 안 될 때 즉 죽은 조상이 몹시 노했다든지, 집안에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있다든지 하는 등으로 귀신들을 직접 불러서 달래야 할 경우처럼 사안(事案)이 심각해지면 무당은 굿을 권한다. 굿판은 노래와 춤으로 원한이 맺힌 귀신들을 위로하는 일이다.
7) 무교에 의하면 인간계의 모든 일은, 신령계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계의 힘든 일은 신명 혹은 신령 혹은 귀신들의 맺힌 한이 풀려야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굿의 최대 관심사는 현실의 복을 구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데 있다. 곧 현실적 생활상의 문제로 집약되는 것이다.
8) 샤먼은 영계와 인간 사이에 있어서 중개적 역할을 하는데 정령과 직접 교통하는 자로서 영계를 탐지하고 영력을 행사할 수 있어 제사, 주술 등으로 재액을 없이하며 복을 가져오는 제사인 것이다.
샤머니즘의 중심에 서있는 무당들의 역할은 대중에게 수용되어 생활화되어 있다. 다른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무속은 민속의 매우 중요한 제의 중 하나의 형식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독교 계통에서는 한국의 샤머니즘이 갖고 있는 포용력을, 외래 종교까지도 무속화하는 강한 용해력(溶解力)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그 결과론적인 사례로 ‘불교의 변질이나, 도교의 샤머니즘적 요소, 유교의 특성 등이 변질되고 심지어는 전래된 지 1세기 밖에 안 되는 기독교의 변질마저 초래할 정도’로 샤머니즘의 영향은 매우 지대하다. 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한국 기독교의 교회에서 목사를 샤먼의 사제처럼 육신의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고, 장래를 아는 신령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 현상은 샤머니즘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를 입신(入神)이라고도 하고 엑스타시(ecstasy)라고도 하는데, 엑스타시 속에서 무당은 신령과 직접 교제하며 그 신령의 힘에 의한 화복(禍福)의 조절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무교의 제의(祭儀)가 기독교에 침투하여 노래하고 춤추고 북치는 굿 형식에 따르는 부흥집회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고 반성하면서 성경의 교의에 따른 새로운 신앙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샤머니즘은 종교는 물론 세속의 모든 사람들의 생활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각각의 종교의 성실한 신앙인들이지만 교회나, 불당, 그리고 교당 등과 같은 신도들의 집회 장소를 벗어나거나 의식을 마친 다음에 보여주는 한국인들의 생활양식의 바탕은 샤머니즘인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에 신문에 게재된 일진을 본다든가, 연초에 일 년의 운수를 토정비결을 살펴보고 믿는 것, 세시풍속에 따른 원화소복(遠禍召福)의 의미를 담은 생활과 여러 가지 의식들, 돌과 회갑, 진갑, 칠순, 팔순 등의 생일잔치, 결혼 배우자와의 궁합, 점집과 철학관이라 하는 곳에서의 무술인(巫術人) 또는 역술인(易術人), 관상가(觀相家)들의 미래에 대한 예지능력(豫知能力)을 믿고 각종 운세를 보는 행위, 등산로에서, 산사(山寺)로 가는 길에서, 시냇가에서 돌쌓기, 남산에서 열쇄걸기, 소망을 적은 종이나 헝겊 걸기, 결혼 날자와 이사 갈 날의 택일, 마스코트(mascot; 행운을 불러오는 물건이나 사람.)와 징크스(jinx; 불행을 불러오는 조짐이나 일.). 사람마다 바라는 바를 얻기 위해서 기피하는 말과 행위 또는 의식 등, 헤아릴 수 없는 무교적인 생활의 단면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무교(巫敎)와 개별적으로 선택한 종교를 모두 믿는 복수(複數) 종교인이라 할 수 있으며 좀 더 혹평하면 몸에 밴 무교 신앙자가 종교라는 허울을 쓰고 나는 어떤 종교인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로, 우리는 그들을 모두 어떤 특정 종교의 교의에 철저히 순종하는 진실되고 순수한 신도라 할 수도 없고 대접할 수도 없다. 이런 부류들이 타 종교를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은, 타락한 종교인의 매우 부도덕한 일이라 할 수 있다.
1. 종교의 3요소
일반적으로 종교학에서 종교의 3요소는 1. 교의(敎義). 2. 윤리(倫理). 3. 의식(儀式). 등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교의(dogma):교리.(내세관, 창조관,)
신관-다신론, 범신론, 일신론, 초월신론, 내재신론, 범재신론,
인간관-윤회, 창조 구원관, 역사관-순환적, 일회적)
2)윤리(ethicks): 경전.(토라, 성경, 꾸란, 법구경) 계명, 율법(사랑, 자비)
3)의식(function): 예배.(기도, 헌금, 찬송, 강론)와 세례, 입교식. 등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이와는 다른 주장도 있다. 이런 분류로 구분하고 있는 주장의 핵심은, 종교의 3 요소를 1. 신앙 체계(Creed); 교리(Doctrine). 2. 행위 제의 체계(Cult); 실행(Practice). 3. 사회문화 체계(Community); 문화(Culture).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참다운 종교란, 인생관, 구원관, 세계관에 따라 판가름이 나며, 종교의 신앙 대상, 종교의 본질, 종교의 공동체, 종교의 경험, 신앙의 체험, 신앙의 행위, 종교의 풍습, 종교의 문화 등의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2. 종교 구성의 3 요소(三要素)
종교라 하면 몇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 상당수의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종교 구성의 3 요소 또는 4 요소로 구분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즉 종교적인 신앙체계를 갖춘 집단을 ‘종교’ 라는 교단으로 불리려면,
첫째. 신앙의 대상으로써의 신. 또는 그 종교의 교주(창시자)가 있어야 하고,
둘째. 그 종교의 가르침으로 교리를 담은 경전. 또는 내세관이 있어야 하고,
셋째. 신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는 것이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종교학에서, 종교 구성의 3 요소라 한다. 불교의 교주(창시자)는 석가모니부처님이며 유교의 교주는 공자, 기독교의 교주는 예수, 회교의 교주는 마호메트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것을 경전(佛經), 공자의 가르침을 논어(論語), 예수의 가르침을 성경(聖經),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코란 이라고 한다. 교주와 교리만 있어서는 종교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 종교를 믿는 신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교와 유교는 신앙의 대상으로써의 신이 없다. 종교 구성의 3 요소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진 주장도 있다. 이들의 주장 즉 종교 구성의 3요소는 1. 신앙의 대상, 2. 신념체계, 3. 종교집단(성직자와 신도로 구성)이며, 이 3 요소 외에 종교의례와 계율 등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종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모든 민족과 문화에서 볼 수 있으므로 고대일수록 정치나 예술 등 사회의 전 영역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 궁극적 가치체계(價値體系)가 되어 있다.
3. 종교의 구분
인류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수많은 인종이 어울려 살고 있는 지구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수많은 종교들을 신의 유무로 나누어 구분한다면, 즉 신(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신본주의(神本主義)종교와 무신론적 종교인 인본주의(人本主義) 종교로 대별할 수 있다. 신본주의 종교로는 유태교․브라만교․기독교․회교 등을 들 수 있으며, 무신론적 종교에는 불교. 유교. 도교, 선도, 천도교 등이 있다.
1. 신본주의(神本主義) 종교 또는 유신론적(有神論的) 종교
신본주의 종교에서는 신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요, 주재자(主宰者)이며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것으로 믿고 말하고 있다. 신은 절대자이며 창조자이고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자와 피조물은 주종(主從)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종(從; 인간)은 주(主; 하나님)를 믿고 따를 때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본주의 종교는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는 것이 종교학자들에 의하여 밝혀졌다. 즉 종교는 다신교에서 소수 신교로, 소수 신교에서 유일신교로 발전해 왔던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그 문화의 여명기에는 자연과학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다신교적 신앙의 형태가 발견되고 있는 바, 원시인들은 하늘. 해. 달. 높은 산. 큰 바위. 망망한 대해. 고목. 사나운 짐승. 천둥. 번개 등과 같은 자연물과 현상들이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원시인들은 그러한 자연물이나 자연 현상을 모두 신의 조화 또는 권능으로 생각하고 숭배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인지(人智)가 점차 발달하자 사람들은 자연물이나 자연 현상 속에 신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고, 신의 권능에 따라 세분화하게 되어, 하늘에는 천신(태양신), 땅에는 지신, 산에는 산신, 나무에는 목신, 바다에 해신, 천둥에는 뇌성신이 있다고 믿고 숭배하였다고 보고 있다. 이것을 모두 정령신앙(精靈信仰; Animism)의 한 형태라고 분류하며 이러한 정령신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들 상호간의 위치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힘이 약한 신은 점점 도태되고 마침내 하나의 신만이 남게 되었다고 종교와 신학의 연구자들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유일신(唯一神)이라하며 이런 구조를 가진 종교를 일신교(一神敎)라고 한다.
유대민족도 처음에는 다신교를 믿고 있었으며, 유일신(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지도자였던 모세의 신앙에서부터 출발했다고 성서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유대민족은 한 때 애급(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다가 모세가 그들 민족을 노예 생할로부터 구출하기 위하여 민족의 힘을 하나로 단결시켜야 한다는 판단과 신념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으로 사상(종교)의 통일이 필요함을 느끼고, 그 당시 12부족으로 이루어진 유대민족 중, 한 부족의 신인 여호와를 민족의 신으로 삼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유대민족만의 하나님이었으나, 신약시대의 하나님은 온 인류의 하나님으로 확대되어, 누구나 믿으면 구원해 주는 하나님으로 변모하였다, 이와 같이 유대인의 한 부족 신을 세계의 신으로 만든 것이 예수 크리스트이다.
아랍인들도 원래는 원시적인 우상숭배와 다신교를 믿고 있었는데, 유대교와 크리스트교의 영향을 받아, 기원 후 7세기경 마호메트가 알라를 유일신으로 섬기고 숭배하는 일신교(一神敎)를 창시하였는바, 이것을 이슬람교(마호메트교)라 한다. 그런데 다신교에서 유일신교로 신이 소수 신화(小數神化)하여 가면 갈수록 상대적으로 신의 역할과 위력은 커져서 마침내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으로 되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세계적인 종교인 기독교의 ‘여호와 하나님'이나 이슬람교의 ‘알라신’ 도 처음부터 유일신이었던 것이 아니라, 다신교에서 발전한 신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의 개념은 앞으로도 역사의 발전과 함께 부단히 수정되고 발전되어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2. 인본주의(人本主義) 종교 또는 무신론적(無神論的) 종교
신본주의 종교에 반대되는 노선을 취하는 세계관, 인생관을 제시하는 종교를 인본주의(人本主義) 종교 또는 무신론적(無神論的) 종교라 한다. 이런 무신론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대표적인 것은 유물론적 무신론이다. 이런 사상에 입각해 있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이므로 우리들은 비교적 그 이론에 생소한 편은 아니며, 동서를 막론하고 이런 사상은 고대에서도 있었음이 사실로 연구되어 확인되었다. 인도의 경우 그 좋은 전형은, 아지타(Agita)가 주장한 유물론이다. 그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의 네 원소만이 진실한 실재며, 독립 상주(獨立常住)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 서는 한, 신과 같은 것은 인정될 수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근대의 유물론적 무신론도, 결국은 이런 사고형(思考型)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인격신 대신, 우주 창조의 어떤 원리를 인정하는 입장이 있어 왔다. 다신교이던 인도의 재래종교는 우파니샤드(Upanishad)에 오자, 만물생성(生成)의 원리로서 브라흐만(brahman)을 생각하였고, 고대 중국인들은 같은 원리로서 천(天)을 인정하는 따위가 그것들입니다. 인격적 원리에도 생각이 미쳐서 인도인은 아트만(ātman), 중국인은 성(性)이라는 것을 설정했다. 자아, 영혼의 뜻이던 아트만은,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본체(本體), 만물에 내재(內在)하는 영묘한 힘을 의미하는 술어가 됨으로써 절대시되고, 드디어 아트만은 브라흐만 자체라는 주장이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현상계의 밑바닥에는, 그 잡다한 것을 통일하고 지배하는 유일자(唯一者)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던 것이니, 이 브라흐만(Brahman), 즉 범천(梵天)이라는 신으로서 숭배되기에 이른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 같이 인도의 그것이 다신교에서 출발하여 결국은 유일신으로 돌아간 데 비해, 중국의 천(天)은 천지를 지배하는 원리로서 남은 데 그 특징이 있다. 물론 중국에서도 천을 인격화한 신앙, 이를테면 도교의 옥황상제(玉皇上帝)숭배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고도한 신앙에까지 승화되지를 못하고. 민속신앙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점에서, 천을 원리로서 파악하여 그 특유의 교학을 전개시켜 간 유교와 대결할 위치에 서 본 적이 없었다. 유교에서는 천에서 받은 것이 우리 인간의 성(性)인 바, 이 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라고 했다(中庸). 이리하여 천은 도덕의 근거가 될 수 있었으나, 항상 거기에 머물렀을 뿐 인격화되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도의 브라흐만이 처음부터 종교적 요구에서 모색된 결과인데 비해, 중국의 천(天)은 어디까지나 도덕론적 요청에서 생각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고래(古來)로 한국인들은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유교인, 도교인, 선인이 되어 살아왔다. 불교와는 달리 이런 종교들은 분명하게 조직화된 종교가 아니고, 종교사회학자들이 말하는 "흩어진 종교(diffuse religion)"로 존재해 왔다. 여기에다 무속을 보탤 수도 있고. 불교도 포함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신이 없어 인본주의(人本主義) 종교 또는 무신론적(無神論的) 종교라 할 수 있다.
/ 종교의 기원. (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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