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로몬왕의 기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
시편 127편, 역대하 6장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서 자신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종교는 그 해결의 비결로 기도를 내세웁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는 기도라고 하는 것이 예외 없이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일생의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할 수 있기를 구하며, 현세에서 겪는 죽음을 해결하고 내세에서 영원히 살고자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를 기도를 해서 해결을 얻어내고자 합니다.
기독교에서의 기도도 과연 그러한 것으로 있는 것이며, 그래서 기독교에서도 기도를 그러한 것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기독교에서의 기도는“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에 있지 않다는 것을 사무엘상에서의 한나의 기도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기독교에서의 기도는“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품으신 그 거룩한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에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기도는 그렇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품고 계시며 때가 차면 이루실 일의 내용과 이것이 지닌 의미를 알려 나가시며 그 믿음에 있게 하시는 것에서 구하게 하시는 것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가장 많이 소개하여 주고 있는 것이 구약성경 시편입니다. 시편은 우리말의 이해에 의하면‘시집’, 그러니까 시 모음집입니다. 그런데 어떤 것으로서 시편인가 할 때 구약성경을 기록하고 있는 글인 원어 히브리어에 의하면‘찬양’1)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입니다. 시편의 시는 찬양이며, 따라서 찬미로 부르는 노래의 시입니다. 그러면서 시편의 시는 시로 표현되고 있는 기도이며, 또한 노래로 불리고 있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시요 노래라고 말하는 것은 기도가 시가 지닌 운율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리듬을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그 장르가 다양합니다. 감탄의 시도 있고, 탄식의 시도 있으며, 감사의 시도 있고 고통과 슬픔을 토로하는 시도 있으며, 저주와 탄원의 시도 있고, 인간의 연약성으로 말미암은 회개의 시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에 의한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는 시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윗의 시, 곧 다윗의 기도가 어떤 형식을 띠고 있든지 간에 그 모두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것에서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게 되는 기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다윗이 한 기도입니다. 이 다윗의 기도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 시편입니다. 시편은 총 150편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116편은 노래들 서두에 있는 표제들을 통해서 본문의 저자와 저작 당시의 상황에 관하여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와 저작 연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지어진 것인지에 대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시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다윗의 기도가 말해지고 있는 시입니다. 다윗의 시가 기록된 곳이 3-41편, 51-70편, 103편, 109-110편, 122편, 124편, 131편, 133편, 137-145편입니다. 그리고 또한 시편의 표제들에 암시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이들의 기도가 말해지고 있는 시편도 있는데, 솔로몬의 시(72편, 127편), 아삽의 시(50편, 73-83편), 고라 자손의 시(42-49편, 84-88편), 모세의 시(90편), 에스라 사람 예단의 시(89편),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부르는 찬양의 시(120-121편, 123편, 125-126편, 128-130편, 132편, 134편), 할렐루야 찬양의 시(111-114편, 117-118편, 135편, 146-150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시편 150편은 시편의 결론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호흡을 가진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합니다. 이러한 시편은 전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이 많은 시에서 볼 수 있는 기도에서 솔로몬의 시를 선택해서 그 내용과 이것에서 알게 해 주시고 있는 의미를 보고자 합니다.
솔로몬이 지은 기도의 시는 시편 127편입니다. 솔로몬이 한 기도를 볼 수 있는 곳은 이곳 외에도 솔로몬의 행적을 볼 수 있는 역대하 6장입니다. 이곳에서는 솔로몬이 부왕 다윗에 이어서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한 후 행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법궤를 성전으로 모셔오고서 봉헌하며 가진 기도가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시편 127편에서 보게 되는 솔로몬의 기도를 보겠습니다. 이 시는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부른 노래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부른 노래의 시는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것도 있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시 127편은 솔로몬이 지은 시이며, 그가 무엇 때문에 이 시를 지은 것인지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부른 노래의 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흔히들, 솔로몬의 이 기도를 가지고 (1) 하나님을 잘 믿는 자가 누리는 축복으로 그런 자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지켜 보호해 주실 것을 말하며, (2) 하나님을 잘 믿는 자가 누리는 축복으로 자식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는 비결로 솔로몬의 기도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잘 믿을 테니 솔로몬이 기도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솔로몬의 기도 시를 보면서 먼저 염두에 두고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 기도를 어떤 상태에서 무엇을 의식하고서 하고 있는 기도였는지를 말입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이 기도의 시를 지은 것입니다.
솔로몬은 부왕 다윗이 준비한 성전 건축의 재료를 가지고 다윗이 짓고자 하였으나 하지 못했던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이 역대상 6장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 된 후 그곳의 원주민인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정복하고는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그곳을‘다윗의 도성’으로 삼고는 이전보다 더욱 견고한 도성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 하셨으며, 다윗은 점점 그 세력이 커지며 싸우는 전쟁에서마다 승리하며 영토는 크게 확장되어갔습니다. 그런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 두고 보관하고 있었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겼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과 함께 하시며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자들로부터 지켜 주심으로, 다윗은 다윗성으로 불리는 예루살렘 성에서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는 늘 마음이 쓰이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는 크고 넓으며 견고하고 화려하여 좋은 왕궁에서 지내지만 하나님의 법궤는 아직 천으로 지은 집, 성막 안에 모셔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다윗은 어느 날 선지자 나단을 불러 자기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을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은 백향목(백송)으로 지은 호화로운 왕궁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아직도 천막 안에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루살렘 성 안에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그 안에 법궤를 모셔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통해 그런 다윗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일러 주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첫째,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양치는 초원에서 데려다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세웠으며, 그와 함께 하여 모든 원수와 대적자들로 부터 싸워 이기도록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계속해서 다윗과 함께 하실 것이기에 앞으로도 그를 도우실 것이므로 모든 나라가 그에게 복종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도 안전히 거처하며 안심하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줄 것이므로 더 이상 원수들에게서 억압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그러할 것에서 그들을 다윗에게서 멀리 쫓아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넷째,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 - 다윗 왕조 - 을 지어줄 것이며 그의 자손을 세워 그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 그렇게 하는 것은 그가 - 다윗의 자손 -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도록 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의 왕권을 영원히 붙들어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를 아들로 양육함으로써 그 후손들이 영영히 다윗의 왕권을 계승하여 그의 왕조가 영원히 존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왕에게 전한 이 예언은 다윗과 언약을 맺어 영원한 언약으로 세우는 일로 가까이는 다윗왕 때에 하나님께서 하실 일과 그리고 그에게 주실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하실 일을 약속으로 주시며 알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예언에서 하시고 있는 약속은 다윗에게 주신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할 그의 자손을 주실 것에서 종말론적인 예언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왕과 맺은 언약에서 약속하시고 있는 그에게 주실 자손에는 다윗 왕조를 영원히 존속하게 할 자손이 예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뜻을 이루어 가실 것에서 다윗의 왕위를 이을 아들을 주실 것이며,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은 다윗의 왕권을 영원히 붙들어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도성 안에 성전을 짓게 하는 것은 다윗 왕국과 함께 하실 것에서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이 예루살렘 도성 안에 있게 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임재하여 계신 것을 나타내시는데, 그 임재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를 아들로 양육함으로써 그 후손들이 영영히 다윗의 왕권을 계승하여 그의 왕조가 영원히 존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 다윗에게 허락한 왕국을 영원히 세우고 그 나라에서 다윗에게 허락한 왕권을 영원히 행사하게 하실 것에서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솔로몬이 다윗성인 예루살렘 도성 안에 성전을 건축한 것은 그러한 것에서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전국에 거주하는 이방인의 수를 조사한 인구 153,600명 중에서 8만명은 유다의 여러 산에서 돌을 뜨게 하고 7만명에게는 채석장의 돌을 예루살렘 성전 건축장으로 나르게 하였으며 3천6백명에게는 부역을 독려하는 감독의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은 그 길이가 27미터였으며 너비와 높이는 각각 9미터였습니다. 성전은 성막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지성소와 성소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 사이는 휘장이 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두 그룹이 있는 시은좌가 있는데 그 안에 여호와의 법궤를 모셨습니다. 이 법궤 안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넣어둔 두 개의 돌판이 들어 있습니다. 두 돌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고 시내산에서 그들과 맺으셨던 언약의 율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법궤가 시은좌에 모셔짐으로써 비로소 예루살렘 성전은 그 모습을 온전히 갖추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는 것으로서 구름이 지성소 전체를 가득히 채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 속에서 장엄하게 나타나 지성소를 주님의 전으로 삼았습니다(대하 2-5장).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따르는 것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서 봉헌하며 제단을 향하여 서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말씀하시기를‘나는 캄캄한 구름 속에서 산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께 성전을 지었으니 이제 영원히 이 성전에 거하소서!”(대하 6:1-2, 현대어성경)
이렇게 기도한 솔로몬은 이어서 성전문을 향하여 둘러선 온 이스라엘에게 복을 기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나님은 다윗왕과 언약하셨던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으로 삼아 누구든지 이곳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 하나님께 간구하게 하며 또 다윗을 통치자로 세워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게 하겠다고 하신 일을 그대로 이루어 주셨다. 하나님은 부왕 다윗에게는 이스라엘에게 약속으로 주신 땅을 정복하는 일을 맡겨 완수에 있게 하셨으며, 다윗왕에게 품게 하신 뜻을 그 아들이 실현하게 하실 것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심으로 내가 다윗에 이어 왕이 되고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짓고 마침내 법궤를 이 성전에 모셨다.”(대하 6:3-11)
이와 같이 말한 후에 솔로몬은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여호와의 제단 앞으로 나아가 하늘을 향하여 높이 두 손을 펴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은 앞서의 기도에서 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맺은 약속을 신실히 지키심에 따라 성전을 봉헌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신“네 자손들이 나를 섬기고 내가 준 율법을 지키면 그 후손이 끊임없이 이스라엘의 왕 위에 앉아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신 대로 그 약속을 자신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하나님은 지상에 사시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성전에 사시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하나님께서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하셨으니 주야로 이 성전을 내려다보시고 이곳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하겠다고 하신 약속에 따라 이곳에 와서 주님을 부르짖을 때 들으시고 모든 허물을 용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일곱 가지를 간구 드렸습니다(대하 6:12-40). : (1) 첫째, 어떤 사람이 남에게 죄를 지은 혐의를 받을 때 죄 있는 사람은 죄 있음을 선언하고 그 행실을 그의 머리로 돌릴 것이나 무죄한 사람에게는 죄없음을 선언해 주시고 죄 없는 행실에 따라 갚아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2) 둘째,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에게 패전하였을 때 그들이 주께 돌아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주께 간구하면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땅에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3) 셋째,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그 대가로 벌을 받아 큰 가뭄을 겪게 되었을 때 그것이 주께서 내리시는 벌인 줄 깨닫고 주께 다시 돌아와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죄에서 멀리 떠나면 주님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그들이 선한 길을 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며 주님이 약속으로 주신 이 땅에 다시 비를 내려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4) 넷째,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함으로 흉년이 들거나 질병이 돌고 병충해로 농작물이 폐해를 입을 때 그것이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인 줄 깨닫고 주께 나아와 간구하면 주님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심으로써 주님이 주신 땅에서 언제나 주님을 두려워하며 순종하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5) 다섯째,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주님을 찾아와 성전을 바로보고 주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면 주님은 그들이 간구를 들어주심으로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여호와만이 참 신이심을 알게 함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그들도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성전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게 하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6) 여섯째, 전쟁에 참여한 주의 백성이 성전을 향하여 주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면 그들의 구하는 것을 들어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7) 일곱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죄를 지으면 주께서 그들을 벌하심으로 적군에게 넘겨져 포로로 끌려간 뒤에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주께 돌아와 용서를 구하면 주님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서 솔로몬의 기도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습니다.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일어나셔서 주님의 법궤와 함께
주님의 안식처로 들어가소서.
법궤는 주님의 강한 능력의 상징이오니
주께서 법궤와 함께 계시옵소서.
여기서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전권을 주셔서
주님의 구원을 우리에게 전하게 하소서.
주님의 성도들이 모두 구원을 받고
기뻐 뛰게 하소서.
주께서 친히 기름 부어 세우신 이 왕을
물리치지 마시고
주께서 나의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신
사랑을 잊지 마시고 베풀어 주소서.(대하 6:41-42, 현대어성경)
이것이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이 솔로몬의 기도를 가지고, 성전 건축을 하게 하는 하나님의 뜻으로 사용하며, 성전 건축을 독려하는 기도에 있게 하는 것으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과연 그러한 것으로 있는 것인지요. 아닙니다. 솔로몬은 기도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통치자인 왕으로 세우고 그 왕조를 잇게 하는 것에서 자손을 주실 것이며, 왕위를 이어 왕조가 계속되게 하는 것에서 다윗에게 주신 왕권이 계속해서 행사되게 하실 것을 다윗왕과 맺은 언약에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성 예루살렘 도성에 성전을 짓게 하는 것은 다윗 왕조를 세우신 하나님께서 그 왕조와 함께 하며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실 것을 아는 것에서입니다. 그러기에 솔로몬은 자신에게 준 왕권으로 백성을 다스리는데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악한 죄에 있을 때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따라서 말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오늘날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말하며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내세워 성전 건축을 하는 것이라며 교회당을 짓는 것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하나님이 다윗왕과 맺은 언약이 무엇으로 있는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으로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왕에게 언약을 세워 약속한 그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이 어떻게 해서 되어지는 것인지요. 과연 다윗 왕국을 영원히 견고하게 할 자손은 누구인지요. 솔로몬이 기도한 범죄한 이스라엘의 허물을 벗겨주는 용서를 성전에서 그들을 만나시는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 하게 되는지요. 이 모두가 사무엘하 7장 12-13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씨’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과 함께 그의 왕위가 계속해서 지속되어 가 다윗왕조가 굳건히 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 이루어나가실 계획, 곧 다윗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장수하고 죽은 다음에도 그의 왕위에 앉게 할‘씨’(후사)를 주어 그의 나라를 견고히 지키게 하심에 의해서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다윗의 왕조를 통해 올‘씨’의‘왕권’을 영원히 붙들어 주실 것을 언약하였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을 실행하여 가시는 것에서 베푸시는 은혜로 받은 왕조를 영원히 보존하게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에서의‘네 씨’에 사용된 원문의 단어는 그 뜻이‘씨’인데, 상징적으로는‘열매’,‘식물’,‘파종기’를 뜻하며, 이 단어가 사람에게 사용되었을 때는 아들을 나타내는‘자손’(후손), 또는 상속자의 개념에서‘후사’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왕에게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왕위를 잇게 하여 그의 왕조를 견고히 할 것에서 그에게 아들을 주실 것이며 그를 통해서 다윗이 앉은 왕위에 앉게 하고 그의 나라도 견고히 세워주겠다고 언약하였습니다.
이때의‘네 씨’는 다윗왕에게서는 가까운 시기에서는 그를 통하여 날 아들인 솔로몬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여기서의‘네 씨’는 예언적인 관점에서 앞으로 오게 하실 약속으로 주어진‘그 씨’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다윗왕과 맺은 언약을 말씀하시는 것에서“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의‘네 씨’는 이러한‘언약적 관점에 의한 씨의 개념’에 따른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왕에게 언약하시는 것에서‘네 씨’는 다윗왕 때에 그에게 주실 아들인 솔로몬을 말하는 것이면서 또한 장차 오실 아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서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온 세상 사람들을 자신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맏아들인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선지자 미가는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씨’에 대한 이해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선지자 미가는 베들레헴 에브라다2)는 비록 유다 족속의 작은 고을에 지나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그에게서 나올 것이라며, 그의 근원은 저 먼 옛날 태초에로 올라가며 그 이상인 영원으로 올라간다고 예언함으로써‘언약의 씨’를 통해서 예언되고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다윗보다 먼저 계신 분인 선재성(先在性)을 말하였다. 이는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의 사도 요한의 증거에서도 확인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이 상고에, 영원에 계신 그리스도를 품고 있는‘씨’로서 다윗에게 주실 아들을 통해 다윗왕조를 굳건히 지켜 가실 것이며, 이 다윗왕조에서 예표하고 있는 영원한 왕위는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씨로서 마침내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지닌 왕권을 통해 다스려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의해서 실현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왕조를 지켜 갈 씨<후사>를 주실 것과 그에게 주신 왕권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을 언약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에서 하십니다. 여기서“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는“그는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다”를 뜻하는 것으로,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짓는‘집’은 하나님과 관련하여 짓는 것으로‘성전’을 의미합니다. 나의 이름을 위한 집’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왕상 3:2; 5:3)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을 다윗의 뒤를 잇는 아들로 세워 왕위에 앉게 하고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그 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도록 하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에서 다윗왕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을 마음을 품고 그 계획에 있었으나 이를 막으셨는데(5절),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는 그 아들 대에서는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시는 것은 무슨 의도에서인지요. 다윗왕이 성전을 지을 마음과 그 계획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곳으로서의 성전, 곧 하나님이 거할 집으로서의 성전 개념에서였다. 다윗왕은 자신은 왕궁에서 편안하게 살며 왕위에 앉아있는 것에서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모세 때부터 천으로 만든 집인 성막 안에의 휘장 가운데 모셔져 있는 것에서 몹시 송구한 마음에 있었습니다. 즉, 늘 마음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 다윗왕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자 하여 준비에 있어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다윗에 대하여 하나님이 좋은 재질의 나무 백향목으로 만든 집이면 하나님이 흡족해 하시겠는가? 하나님께서 언제 그러한 것으로 만든 집에 거하실 것을 말씀해 오신 적이 있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날부터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어떤 집에 계시면서 산 적이 없었으며, 성막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이동할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서 떠난 적이 없었고, 사사 시대 때는 그들을 통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양 떼처럼 돌보아 왔는데, 이제 다윗이 만들어주는 성전에 머물러 앉아 있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4-7절). 하나님에게는 하늘이 보좌요 땅은 발을 딛고 있는 발판입니다. 그런 하나님에게 누가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지을 수 있겠는지요. 성전을 지으면 그곳이 하나님이 머물며 쉬는 곳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을 하나님께서 지으셨으니 그 모두에 하나님은 거하여 계십니다(행 7:49). 그럼에도 다윗왕은 자신이 왕궁에 거하며 편안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또한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성전을 지으면 성막 안에 계신 것보다 낫게 편안히 거하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다윗이 성전 개념과 하나님의 존재성을 잘못 알고 있었던 까닭, 곧 오해한 까닭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자 하는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몸에서 나올 아들에게는 성전을 짓게 할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성전은 다윗의 마음과 계획에 의한, 그래서 다윗의 의지에 의해서 지어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에 의해서, 그래서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지어질 것이었습니다.3)“내가 네 몸 에서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라고 하시는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사후에도 다윗의 나라를 견고케 하실 것인데, 다윗의 몸에서 나올 자식을 다윗에 뒤에 세우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을 계속하실 것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몸에서 나올 자식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짓게 하실 것인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성전을 짓게 하실 것은 다윗이 짓고자 한 성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전 건축을 다윗의 몸에서 나올 아들을 통해서 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흔들림 없이 지속되어 가게 하여 그 왕조를 영원히 보전하여 나가실 것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세우시는 왕권은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다윗 왕조가 행사하는 이 왕권은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이 다윗 왕조와 함께 하시는 한에는 끊김이 없이 영원히 지속되어 보전될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몸에서 나올 아들에게 성전 건축을 하게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다윗왕조를 영원히 보전할 것에서 다윗왕국과 함께 해 나가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확실한 표징입니다. 그에 따라서 다윗왕국은 하나님이 정하신 곳, 곧 이스라엘 왕국의 도성 안 중심에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릅니다.
솔로몬은 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자신에게 허락된 왕권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인 성전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이 베푸시는 속죄의 은혜를 입음으로 그들의 허물이 덮음 받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이러한 것에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것에서 솔로몬의 기도의 결론으로 41-42절의 기도가 말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기도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서 시편 127장을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솔로몬의 기도 시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비로소 해석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시편 127장의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좀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이해를 돕기 위해서 현대어성경 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집 짓는 자의 수고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이 눈을 부릅뜨고서 지켜 서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먹고 살고자 애쓰며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 늦게 자리에 눕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호와께서는 사랑하는 이에게
잠자고 있는 중에도
필요한 것 마련해 주시는 도다.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선물이요
참된 복이라.
젊은 나이에 얻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들려 있는 화살 같으니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한 이는
얼마나 복되랴.
재판받는 자리에서 원수를 만난다 해도
그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 단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내용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봅니다. 먼저 첫 번째 단락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겠는지요. 단지 하나님을 잘 믿고, 잘 의뢰하는 자의 집을 하나님께서는 세워주시고, 그의 성을 안전히 지켜 든든함 속에 있게 하겠다는 것에서 하신 말씀이겠는지요. 아닙니다. 지금 이 내용의 기도를 누가 하고 있는 것인가요. 솔로몬왕입니다. 솔로몬은 이 기도를 왜 하고 있는 것인지요. 이 기도의 시에 무엇이라고 제목이 붙여져 있는가요.‘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이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시로 부왕 다윗 때부터 준비해 오고 있었던 하나님의 성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고 그 봉헌을 하며 이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건축된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리고 그의 왕조와 함께 하시며 자기 백성을 만나시는 곳으로 지정하신 곳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허물을 보살피시고 그 죄를 용서하시며 하나님의 은택으로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축복 받은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이해시켜 주셨었습니다. 그러한 것에서 다윗 왕국과 성전은 하나님과 그 백성들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시합니다.
솔로몬이 언급한 하나님이 세우시고 지키시는 집과 성은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염두에 두어지고 있습니다. 이 집과 성을 누가 침범하여 무너뜨려 이것을 세우신 하나님의 수고를 헛되게 할 수 있겠는지요. 결코 그 누구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집이며 하나님이 지키시는 성이 아닌 한에는, 곧 사람의 손으로 세우고 지키는 집과 성은 견고할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침략을 받고 정복당하여 무너지고 패망하는 일을 거듭합니다. 해서 솔로몬이 하는 말입니다.“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이들에게서는 말입니다.“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요.
그러나 말이죠. “여호와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어떤 어려움의 상태에 처해 있을지라도 편안에 있게 하며 평안을 제공하시기 때문에 잠을 잘 자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을 입고 있는 것이라는 것에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공예배에서나 성경공부 중에 졸거나 잠이 많은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이 구절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잠이 많은지 몰라. 하나님께서는 나를 특별히 더 사랑하시는가 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라고 하시니 말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풍랑을 만난 바다에 있는 배 속에서도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마 8:23-27; 막 4:35-41; 눅 8:22-25)을 들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졸고 잠에 취해 있는 것에 계면쩍어서이기도 하지만, 이 구절을 정말 그렇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는 이 말씀을 하시고 있는 문맥을 보면 이것이 그러한 뜻에서가 아니라 사람이 비록 집을 지을지라도 하나님이 세워나가신 집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집이 아니고서는, 또한 사람이 수고하여 성을 만들었지라도 하나님이 그 성을 세워나가시고 지키시는 성이 아니면 그 집을 지키는 주인과 그 성을 지키는 파수꾼이 밤새 깨어 있으며 두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지킬지라도 그 모두는 다 헛된 일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또한 다음의 말씀으로도 말해지고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부지런하며 먹이를 많이 먹는다" 라고 하면서 사람이 아무리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먹고살려고 애써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복을 베풀어주지 않으시면 다 헛된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으시는 한에는 사람이 아무리 공들여 수고하고 애쓸지라도 그 모두는 약해지고 허물어질 뿐이니 영원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전도서에 말한 대로“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입니다. 그러한 것인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지키시는 집과 성은 다윗과 맺은 언약에 따라 영원히 견고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자는 동안에는 만사를 다 잊고 편안히 있을 것이기에 잠을 주신다는 것에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다."4)는 것에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누가 깨워도 모르고, 누가 업고 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지는 숙면을 취하는 잠이 가져다주는 평온한 상태의 혜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지키시는 집과 성에 있음으로써 하나님이 세운 왕과 그가 다스리는 백성은 자는 동안에도 복을 받는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잠언 21장 30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할 것”5)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솔로몬은 두 번째 단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솔로몬이 언급하고 있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는‘자식’은 하나님께서 다윗왕과 맺은 자손에 대한 이해에 의해서입니다. 다윗왕에게서 아들 솔로몬은 다윗왕이 언약의 열조들에게로 돌아간 후에도 다윗이 앉은 왕위에 앉아 그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할 자손으로 주어질 것의‘씨’입니다.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윗왕에게 주실‘씨’는 하나님의 언약을 잇는 씨의 개념을 갖습니다. 다윗왕에게 언약하시는 것에서‘씨’는 다윗왕 때에 그에게 주실 아들인 솔로몬을 말하는 것이면서 또한 장차 오실 아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서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온 세상 사람들을 자신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맏아들인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포하는 것에서 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말입니다. 솔로몬이 기도한 것에서“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선물이요 침된 복이라”라고 한 것은 일차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왕과 맺은 언약대로 주신 아들인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에서 하고 있는 말인 동시에 그 후사를 대대로 잇는, 그러니까‘언약의 자손’으로 오는 다윗 왕조를 잇는 후사를 의미하고 있으면서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 왕조를 통해 보내심으로 그리스도로 오실 하나님의 아들을 지향하고 있는 것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윗 왕조에서 자식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집과 성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하나님께서 보내실 아들을 소망 중에 바라봄에 있는 것에서였습니다. 해서 솔로몬은 “젊은 나이에 얻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들려 있는 화살 같으니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한 이는 참으로 복되다”라고 기도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며, 그에 따라서 그 아들이 굳건히 왕위를 지키고 나라를 다스리는 한에는“재판받는 자리에서 원수를 만난다 해도 그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왕과 맺은 언약에서 약속하신 바인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 그 앞에서 원수와 대적자를 제거할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로부터 억압당하지 않게 멀리 쫓아 버릴 것을 해 나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마치고 봉헌하여 기도하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왕과 맺은 언약을 떠올리며 그 언약을 신실히 이루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솔로몬의 기도를 보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실 씨의 최종인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게로 우리의 눈과 마음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다윗왕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여 그 성취를 이루심으로 온 세상에 주님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 사역으로 우리들의 원수요 대적자인 악한 영, 곧 마귀의 머리를 깨부수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최종적으로는 마귀와 그를 따르는 추종 세력 모두를 영영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내던져버림으로 영원히 우리 눈앞에서 멀리 떠나 있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악한 영의 세력에 미혹당하며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 안에 두고서 자신과 함께 이긴 자로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따르며 섬김에 있는 믿음은 이런 것입니다. (*)
....................................
1) 시편은 히브리 성경에서는 찬양이라는 뜻으로 ‘테헬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여기에 수록된 150편의 노래는 같은 시기에 불려진 것이 아니다. 모세 시대부터 바벨론 포로시대 후기까지 광범위한 기간을 망라한다. 따라서 한없이 기쁠 때 부르는 노래, 말할 수 없이 괴로울 때 울부짖는 애가, 왕을 드높일 때 부른 노래 등 주제 역시 다양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노래는 탄식의 시이다. 각 시에는 현악기로 반주할 수 있도록 지금은 잊혀진 히브리 가락의 이름이 붙어 있다. 현대어성경 시편.
2) 미가 5장 2절에서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 곧 별칭이다.
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13절)는 원문에 보다 가깝게 번역한 영어성경으로 알려져 있는 NASB는“He shall build a house for My name, and I will establish the throne of his kingdom forever”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게 하시는데 사용되고 있는 표현인 ‘He shall build…’는 ‘의지미래’이다. RSV, KJV, THS 등도 이 번역의 입장을 취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짓게 하실 집의 건축을 의지미래의 표현으로 번역한 것은 원문이 지닌 하나님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는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몸에서 나올 아들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집<성전>을 짓게 하시는 것은 다윗왕에게서 보는 바와 같은 사람의 생각과 계획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의지를 따라 짓게 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의지를 따라 짓게 될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서 지어질 것이 성전이었다.
4) 표준새번역. 참조, (1)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he supplies the need of those he loves, NEB Ps 127:2b) (2)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들을 위해 그들이 자는 동안에도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For the Lord provides for those he loves, while they are asleep. GNB Ps 127:2b) (3) "그는 사랑하시는 이들을 위해 그들이 자는 동안에도 공급해 주심으로"(since he provides for his beloved as they sleep. JB Ps 127:3b)
5) “누가 감히 야훼 앞에 나서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의견을 펴랴?”(공동번역),“그 어떠한 지혜도, 명철도, 계략도, 주님을 대항하지 못한다”(표준새번역),“하나님이 네 편을 들지 않으신다면, 인간의 지혜와 재주와 통찰이 네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Human wisdom, brilliance, insight - they are of no help if the LORD is against you. GN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