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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혁필 ‘supporting actor 4’(왼쪽), 하정우 ‘광대 시리즈 3’(오른쪽)
“제 그림의 주제는 ‘대장로봇’이에요. 만화영화 ‘마징가 Z’에 나오는 조연이죠. 사람들은 마징가는 기억하지만 대장로봇은 잘 몰라요. 하지만 조연이 있기 때문에 슈퍼스타도 있는 거죠. 제 그림에서만큼은 조연이 주연이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람은 다 저마다의 인생에서 주연이잖아요.”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마징가와 대장로봇을 재치 있게 그려낸 작가는 바로 개그맨 임혁필이다. 청주대 서양화과를 나온 임씨는 개그맨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렸고, 부천국제만화축제 등 각종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그의 작품 ‘supporting actor 4’를 한참 보고 있으니,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생활에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전략해버린 우리네 인생이 겹쳐지는 듯하다.
영화배우, 가수, 개그맨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미술가로 변신했다. ‘팝과 문화예술계 셀러브리티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2월 7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산토리니 서울’에서 열리는 ‘츄팝스타(CHUPOP’Star)’전은 영화배우 하정우, 가수 구준엽과 나얼, 리사, 개그맨 임혁필, 사진작가 권영호,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뮤직비디오 감독 허남훈 등이 참여했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알렉스 카츠, 낸시 랭 등 정통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가수이자 DJ인 구준엽은 ‘테이프 아트’를 선보였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도 박진영, 김건모, DJ DOC 등 여러 가수의 앨범 재킷 이미지를 디자인하며 그림과의 끈을 놓지 않았던 구씨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본인이 운영하는 ‘쿠바(KOO bar)’ 벽면을 다양한 색깔의 테이프로 장식하고, 이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전시 기획자가 블로그에 있는 작품 이미지를 보고 전시를 제안해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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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엽 ‘테이프 아트’(왼쪽), 나얼 ‘소울푸드’(오른쪽)
다양한 활동의 원천은 미술
“작품의 소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값싼 테이프입니다. 직선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테이프로 공간을 분할했는데, 곡선 못지않게 리듬감 있는 표현이 가능하더군요. 또 사람들은 테이프 하면 ‘청테이프’만 떠올리지만, 테이프 색깔이 알록달록하니 참 다양하고 예뻤어요. ‘박스를 붙일 때 찍찍 사용하는 테이프를 가지고도 이렇게 리드미컬한 표현이 가능하구나’ 하는 것을 관람객들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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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무제’
구씨는 가수, DJ, 앨범 디자이너 등 다양한 활동을 소화하는 원천이 바로 미술이라고 강조했다. 미적 감각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세, 독창성 등이 자신의 모든 예술 작업에 녹아들었다는 것.
홍대 회화과 출신인 가수 리사의 작품 ‘무제’는 콜라주와 경쾌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그동안 다수의 전시에 참여한 리사는 “그림 그리는 것과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이는 것 모두 ‘표현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음악 활동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어요. 이런 경험은 가사로도, 곡으로도 표현할 수 있죠. 관람객들도 어려워하지 말고 음악을 듣는 것처럼 그림을 즐겨줬으면 해요.”
최근 영화 ‘황해’에서 신들린 연기를 보인 하정우는 나무판에 오일크레용으로 인물을 묘사한 작품 ‘광대 시리즈 3’를 내놨는데, 얼굴의 구성요소를 지극히 단순화해 표현했다. 그는 2010년 ‘닥터박 갤러리 개인전’ ‘하정우 초대전’ 등을 열며 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단국대와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가수 나얼은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에 낙서를 절묘하게 혼재한 작품 ‘소울푸드’를, 패션·광고 전문 사진작가인 권영호는 작가의 시선에 따라 대상의 디테일이 얼마나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품 ‘Unbearable Silence’를 전시한다.
뮤직비디오와 영화 등에서 기발한 영상으로 주목받는 허남훈 감독의 미디어아트 작품 ‘조각 mEDIA ver 3’에는 가수이자 배우인 심은진의 ‘얼굴’이 등장한다. 그런데 두 눈은 화장이 각기 다르며 서로 딴 곳을 쳐다보고, 입술 역시 한쪽은 이죽거리지만 한쪽은 웃는 것처럼 살짝 올라간다. 흩어진 이미지가 한 얼굴에 모여 있는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신비롭다. 허 감독은 “사람의 기억도 이처럼 조각난 이미지가 점철된 게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그는 영상뿐 아니라 배경음악도 직접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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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이 리히텐슈타인 ‘As I opened fire’ 2 허남훈 ‘조각’ mEDIA ver 3’ 3 권영호 ‘Unbearable Silence’
미술의 대중화 이끌 수 있는 계기
‘츄팝스타’전은 문화예술계 셀러브리티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아티스트와 관람객의 간격을 좁히는 것은 물론, 미술이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준다. 실제로 1월 17일에 있었던 오프닝 행사에서는 상당수 팬이 전시장을 찾아 작가들에게 환호를 보냈고, 작품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산토리니 서울 강형구 대표는 “산토리니 서울이 젊음의 거리 홍대에 있는 문화공간인 만큼, 미술의 대중화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전시를 많이 선보이겠다”고 다짐했다.
복합문화공간 ‘산토리니 서울’ 2300여m2 규모 … 그리스 분위기 물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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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산토리니 섬을 연상시키는 내부 전경.
2010년 12월 15일 서울 홍대 앞에 개관한 ‘산토리니 서울’은 전시장과 박물관, 공연장, 카페가 모여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화구 전문점으로 유명한 호미화방 건물 지하층에 2300여m2 규모로 들어선 이 공간은 그리스 산토리니 섬을 모티프로 했다. 이곳은 ‘눈속임 미술’ 상설 전시장인 트롱프뢰유 뮤지엄을 중심으로 갤러리 3곳, 고양이를 테마로 한 고양이미술관 등으로 구성됐다.
트롱프뢰유(trompe-l'œil)는 ‘눈속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2차원의 평면 회화를 마치 3차원의 입체로 착각하게 하는 그림을 말한다. 의도적으로 보는 이를 혼란시키려고 그린 그림인 것이다. 서울에 처음 생긴 트롱프뢰유 장르 상설 미술관으로, 이곳의 모든 작품은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유롭게 만지고 사진을 찍으면서 체험해볼 수 있다.
홍대 앞이라는 공간에 맞게끔 모든 전시관이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열린다. 또 그리스 식 대리석 조각 분수가 중앙광장을 장식하는 노천카페와 산토리니 섬의 풍광을 재현한 에게안 스타일 스트리트몰도 무척 이색적이면서 아름답다.
www.santorini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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