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4.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저녁미사
♣ 최상훈 티모테오 주임신부님 강론말씀 ♣
오늘이 입춘입니다. 그런데 입춘이면 우리가 경계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써 붙이셨어요? 입춘대길에서 입춘의 한자가 들입(入)자가 아니라 설 입(立)자 입니다.
서 있다는 뜻, 설 입(立)자 입춘입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러니까 봄이 문 안으로 들어오는 입(入)이 아니라는 거죠.
문 안에 들어오는 봄이 아니다. 입춘, 문 밖에 서 있는 봄이라는 뜻입니다.
입춘이라는 말은 문 밖에 서 있는 봄이에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요.
입춘이라고 봄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흐트렸다가는 낭패를 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입춘 지나고 추위가 더 강해요. 저하고 내기 하실래요? 다음에 더 큰 추위가 한 몇 번 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봄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고요. 입춘은 농사 짓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시무식이에요.
시무식, 이제 처음으로 준비하는 그런 시기이다 라고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입춘을 맞이했으니까 태양의 길이가 조금씩 조금씩 더 길어질 거다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면서 희망적인 봄을 우리가 기다려야 되겠습니다.
어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킨 후에 고향 나자렛으로 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오늘 등장합니다.
6장 2절에 그러자 사람들은 놀라워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라는 기록이 오늘 복음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근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왜 놀라워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못마땅하게 여겼을까?
예수님을 예수님께서 자기 고향 나자렛을 떠나서 그 주변 카파르나움이나 벳사이다 이쪽으로 옮겨갔을 때 사람들은 열망했거든요.
그런데 자기 고향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여기는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그분의 진리와 힘, 기적에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눈이 돌아서 이야! 기적이 일어나는구나 라고 눈을 동그랗게 떳겠지요.
그런데 그 기적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알지 못했던 것이죠.
사실 안다고 하지만 진실을 모르는 무지,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그 이외의 것에 대해선 무지했다는 의미입니다.
자신들이 안다고 하는 그 알량한 지식 그것을 내려놓지 못한 거죠.
세상에서요. 그들이 아는 것은 이런 거였습니다.
아니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마리아의 아들이고 야고보와 요세, 유다와 시몬과 형제가 아닌가, 그리고 너희들은 우리와 함께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는 그 알량한 지식 그것으로 예수님의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태도였죠.
자신들이 안다는 것, 그 고정관념이 굳어진 심증을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교우님들 이 단어는 꼭 기억하십시오. 다 아시는 단어이지만 확증 편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확증 편향, 자기가 아는 지식 그 알량한 지식 때문에 모든 다른 것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태도, 이것을 확증 편향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들에게도 이 확증 편향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편향들 우연히 들어온 지식, 아니 우연히 교육받은 그 무엇 하나로 세상 전체를 그렇게 바라보는 거죠.
그런데 이거는 세상을 뒤흔들어 놓는 잘못된 완고함 입니다.
제가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여러분 대답해 보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입니다.
그것 하나로 그 사람에게는 만고의 진리로 여겨지기 때문에 내가 딱 한 권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 지식이 자신의 전체를 휘감고 있어요.
그리고 세상을 바라볼 때 그것으로 재단을 하는 거죠. 이것이 확증 편향이에요.
여러분 지식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고 나를 자유롭게 하는 거예요. 그게 지식의 힘이고 그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부르는 거죠.
그런데 오늘 예수님 고향 사람들은 확증 편향된 사람이기에 내가 알고 있는 그 알량한 지식, 어, 저 아버지 목수 아니에요? 목수 요셉아냐? 라는 그 지식 하나로 모든 것을 그렇게 단정해 버리는 확증 편향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확증 편향된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목소리가 크고 악을 쓰고 핏대를 올려요.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에요. 아니 그거 하나 밖에 모르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확증 편향의 이 민낯을 보세요. 소리 지르면서...
다시 한 번 강조드리는데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 한 권 읽은 사람입니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 더 무서운 것은 그 잘못된 신념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요한다는 거예요.
그 잘못된 확증 편향, 그 잘못된 신념을 자기만 가지면 그런데로 괜찮은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요한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는 거죠.
그래서 핏대를 올리고 눈을 부라리며 욕을 하고 싸움을 걸죠.
자신의 틀을 만들어 적대적 관계를 만듭니다. 그리고 왕따시키는 해를 끼칩니다.
어느 지역을 폄하합니다.
정말로 슬픈 일이예요.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슬픈 일이죠.
여러분 우리 몸을 한번 구상해 보세요. 우리 몸이 건강하다는 특징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아세요?
유연한 거예요. 죄송합니다. 영어 단어를 쓸께요. 플렉시블해 플렉시블(flexible).
우리 몸이 건강하다는 특징은 유연한 거예요. 한쪽에 고정되지 않은 거예요.
유연한 거예요.
그래요.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영혼은 더한 것이에요.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정신, 우리의 영혼이 고정돼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서 오로지 하나, 자기의 입력된 그 하나 그것이 죄악인지도 모르고 잘못인지도 모르고 따져보지도 않고 고민하지도 않고 그 하나로 확증 편향으로 살아가는 예수님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이 동네 나자렛에 들어 갔을 때 예수님을 그렇게 바라보는 거예요.
예수님 조차 오늘 얘기하잖아요. 기적을 믿으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라고 기록돼 있는 것을 보세요.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여러분 태풍이 많이 부는데요. 태풍에 넘어지는 것들은 뭔지 아세요?
딱딱한 것들이에요. 딱딱한 나무들이 다 넘어가요.
플렉시블, 이렇게 유연한 나무는 아무리 강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죠.
그래요. 우리 몸도 좀 유연하게 가꿉시다. 스트레칭도 하시고요.
이렇게 몸도 유연하게 좀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 말 할 자격이 없는데 저는 그렇게 유연하지 않습니다.
할 자격이 없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영혼이 고정되게 살아간다면 여러분 신앙 신심도 마찬가지예요 어디에 빠져갖고 그거 하나만 생각하는 신심, 가장 무서운 일입니다.
좀 더 포괄적이고 좀 더 유연한 정신 상태 그게 가장 아름다운 영적 생활이고 내가 자유로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을 왜 해요? 자유롭기 위해서예요.
어디 한 곳에 얽매이는 그런 게 아니야. 예수님 그거 바라지 않으세요.
내 마음은 자유롭고 우주를 헤엄쳐 다니고 그런 광대한 정신을 갖는 거, 그래서 우주와 합이 되는 우리의 정신과 영혼이 우주와 합이 되는 이게 우리가 추구하는 영성의 끝판왕, 마지막은 그거예요.
얽매이지 맙시다.
굳어지지 맙시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이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몸도 한번 움직여 보시고요.
마음도 영혼도 고정되지 않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런 게 있다는 것도 귀 기울이고 굳어지지 않는 우리의 영성 생활 신앙생활이 꼭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주임 신부님의 강론 내용과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 있습니다. 양지하시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