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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장자권!(21) : 장자여! 교회생활에 성공하라!”
+ 본 문 : 디모데후서 4장 9절 - 11절 (신약성경 346쪽)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아멘!
서로 축복 / “나는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장자여! 교회생활에 성공하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저를 따라 선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나는 / 교회생활에 / 성공하며 살리라! 아멘!”
10여 년 동안 교회를 섬기던 목사님이, 교회를 사임하고 미국에 가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10여년이 지난 다음에 한국에서 섬기던 그 교회가 청빙해서, 다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교회에 와서 주차장에 내렸는데,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을 알아보고 인사합니다.
“목사님!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좋기는 좋은가 봅니다. 10년 전하고 똑 같습니다.”
그 말에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교회에 들어서서 당회장실로 향하는데 권사님이 알아보고 달려왔습니다.
“아이고 목사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미국 가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나 봅니다. 폭삭 늙으셨네요.”
조금 전 집사님의 인사에 기분 좋았던 목사님은 그 권사님의 인사에, 그만 기분이 상하고 말았습니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사람을 보고 “미국이 좋긴 좋은가 봅니다. 10년 전과 똑같습니다.” 하는 말과,
“미국 가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해 폭삭 늙으셨네요.” 하는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성품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상황을 볼 때, 사람을 볼 때, 말을 할 때, 여러분의 말은,
“10년 전과 똑같네요.” 하고 말하는 성품입니까? 아니면 “폭삭 늙었네요.” 라고 말하는 성품입니까?
교회는 참 소중한 곳입니다. 교회가 큰 교회이든 작은 교회이든 너무나 소중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세워 주시고, 그러므로 가장 사랑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가정과 교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약점이 참 많습니다. 모순도 참 많습니다. 모이는 사람들이 가난하고 잘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역사는 교회를 통해 흘러 왔습니다. 연약한 자를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성령의 불이 뚝뚝 떨어지던 기도원들도 100년 200년이 지나면서, 지금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꿀 것 같던 선교단체들도 그 영향력이 100년 200년, 계속된 선교단체는 이 땅에 없습니다.
세상을 깨끗하게 하겠다고 만들어진 시민단체들도, 100년 이상 영향을 끼치는 시민단체는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몸 된 교회만이, 이천년 동안 역사의 무대 한복판에서 이 세상 역사를 이끌어왔습니다.
신랑의 온 마음은 신부에게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랑 되신 예수님의 온 마음도 신부인 교회에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사랑을 받는 신부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옆구리가 터져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시므로,
세워진 주님의 몸입니다. 몸이 아플 때 머리가 고통 받습니다. 몸이 행복할 때, 머리가 영광 받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이 친히 세우신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살 것입니다. 교회는 그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지점입니다.
약점과 모자람이 있고, 실수와 허물 많은 사람들이 모여도, 교회는 이렇게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우리는 이토록 영광스런 교회에 들어와 예수님을 구세주로 만났습니다. 천국을 선물로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 가는 그날까지 갈등도 없이, 시험도 없이, 어려움도 없이 신앙생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곳은 천국에 가야 누릴 수 있고, 이 땅에 교회는 천국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을 하다가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 때문에, 심지어는 이 김목사 때문에도,
상처입고, 시험에 들고,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 때문에 부부간에 갈등도 생기고,
직장생활에서,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믿음을 포기하고, 구원도 죄 사함도 포기하고,
영생도, 천국도 다 포기하고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 될 너무나 소중한,
교회를 떠나고, 구원도, 죄 사함도, 천국도, 영생도 다 포기하고, 너무나 쉽게 훌훌 떠나버립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교회생활을 했던 그 사람의 믿음은 과연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진짜 믿음이었을까요?
아니면 교회 마당만 밟는 가짜 믿음이었을까요? 진짜 믿음이었다면, 사람 때문에 너무나 소중한,
주님의 몸 된 교회, 구원, 죄 사함, 천국, 영생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죠. 그것 때문에 믿었잖아요.
진짜 믿음이었다면, 우리에게 너무나 좋으신 예수님을 떠날 수는 없잖아요. 목숨 걸고 붙잡아죠.
“아, 나를 또 시험 들게 만드는 구나. 아, 나를 또 주님 품에서 쫓아내려고 사탄이 역사하는구나.
그런다고 내가 시험 드나 봐라. 난 예수님을, 교회, 구원, 죄 사함, 천국, 영생을 포기할 수 없어.”
지금은 그렇게 신앙고백하고, 선포하고, 믿음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말씀에 굳건히 서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는 내 교회를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품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기억하시고 명심하세요. 복된 교회생활에도 갈등은 있습니다.
목사인 저까지도 포함한 불완전한 사람이 모인 교회생활에도, 신앙생활에도, 시험은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 때문에 시험을 만났을 때, 그 시험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신앙생활이 행복할 수도,
아니면 교회를 떠나는 불행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시험 들어 넘어지면, 모든 좋은 것 다 떠납니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납니다.”
그러나 아십시오. 좋은 교회는 저절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는 바울일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과 교리의 체계를 세우고, 세계선교 역사의 발판을 만든 사람 역시, 사도 바울입니다.
내가 그 당시에 사도요 목회자인 바울 곁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얼마나 근사하고 행복한 일이었을까요?
내가 이왕에 목사를 할바엔, 사도 바울 곁에서 부목사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그런데 사도 바울 곁에서 부목사 생활했던 사람 가운데, 마가라는 사람과 데마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마가는 담임목사님이신 바울과 함께 목회를 하다가, 이제는 선교사가 되어 선교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과 함께 했던 젊은 마가도 시험에 들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떠납니다.
이때에 바나바는 마가를 용서하고 품자고 합니다. 그런데 강직했던 바울은 마가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마가는 바울 곁을 떠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 마가에게 바울이 화해의 손을 내밉니다.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 선교에 유익하니 데리고 오라는 부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가기 전에, 갈등을 일으켰던 마가와 화해하고 하나님 앞에 서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가는 그렇다치고 사도 바울은 데마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아멘!
목회지를 떠난 것은 물론, 사도 바울의 곁을 떠난 것도 모자라, 신앙의 세계를 완전히 떠나버렸습니다.
교회를 떠나버렸습니다. 믿음의 세계를 떠나버렸습니다. 세상으로 완전히 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데마가 사도 바울을 배신하고 신앙의 세계를 떠났던 이때는, 바울을 떠나서는 안 될 때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년입니다. 추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정말로 외로웠습니다.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아, 사도 바울 같이 위대한 목회자 곁을 떠나는 사람도 있구나.”
대게 교회와 신앙의 자리를 떠난 사람은 ‘제가 부족해서 떠납니다.’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겪은 경험으로는 반드시 누군가의 탓을 하고 떠납니다. 교회 공동체를 아프게 하고 떠납니다.
목회자의 리더십과 목회에 비난을 퍼붓고 떠납니다. 그래서 떠나는 사람도, 저도 상처를 크게 받습니다.
물론 그 동안 섬기던 교회를 떠나, 우리 교회로 오셔서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 중에도 그렇습니다.
우리교회로 오셔서 신앙생활하시는 가운데, 이제는 마음이 평안해지고 신앙이 굳건히 서신 줄 믿습니다.
물론 마음의 상처도 다 아문 줄 압니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에 응어리진 것 있으면 다 풀어야 합니다.
용서하고, 용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평생 기도해야 할 중보기도대상자로 삼고, 축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의 교회생활이 복되고, 신앙이 성숙해지고,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믿습니까?
교회생활 자체가 갈등입니다. 교회생활 뿐입니까? 산다는 것 자체가 모두 다 갈등입니다.
이 사람 만나서 살면 평생 행복할 것 같아서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몇 년이야 깨가 쏟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가면 권태기도 오고, 갈등도 생기고, 그래서 부부싸움도 하고 그게 인생살이입니다.
건강한 가정이란 문제없는 가정이 아닙니다. 문제를 건강하게 해결하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갔다 돌아왔습니다. 시골에 있는 시댁에 인사하러 갔더랍니다.
마침 어른들은 일터에 나가고 없습니다. 새댁이 감자를 삶아서 일하는 시어른들을 찾아뵈러 갔습니다.
집에서 늘 먹던 대로 감자껍질을 벗기고 삶은 다음, 삶은 감자 위에 설탕을 살살 뿌려서 갔습니다.
시어른들이 좋아하시며 감자를 한입 베어 먹더니 “아니, 감자에 설탕 쳐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새댁이 놀라서 “그럼 감자에 설탕을 쳐서 먹지 뭘 쳐서 먹어요?” “우리 집은 소금 쳐 먹는다.”
결국 이게 불씨가 되어서 이혼법정에 서게 되었답니다. 판사가 왜 이혼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설탕 사건, 소금 사건, 감자 사건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판사가 웃으며 “나는 그냥 먹는데?”
옆에 있던 판사는 쳐다보면서 “나는 묵은 지에 싸 먹는데?” 기록원은 “나는 물김치에 먹는데?”
그러면서 판사들이 한바탕 웃었더니, 신랑 신부도 웃고, 이혼은 없던 일로 끝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사람은 다 다릅니다. 결혼했지만 문화적인 배경이 다릅니다. 집안 전통이 다릅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혈액형이 다릅니다. 성향이 다릅니다. 성격이 다릅니다. 취미가 다릅니다. 이렇게 사람은 다 다릅니다.
하나님이 다 다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르기에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행복합니다. 서로 좋아합니다.
좋은 대학 가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시간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환영한다고 썩은 막걸리를 먹이고, 머리에 뿌려댑니다. 그게 지성의 전당인 대학의 전통이랍니다.
좋은 직장에 가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까? 출근 하는 날부터 문제를 삼고, 지적질을 당합니다.
우리 사람 사는 곳은 다 갈등이 있습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르다고 삐지고 섭섭하면 안 됩니다.
교회 왜 오셨습니까? 내 힘으로 해결 안 되는 내 인생의 모든 문제, 죄의 문제, 심지어 죽음의 문제,
죽음 후의 구원과 영생과 천국의 문제, 이런 저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탄은 여러분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 받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자꾸만 시험합니다.
신앙 연조가 더해지고, 직분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마귀란 놈은 더 흔들어 댑니다. 그래서 무너집니다.
그래서 예수 바라보고, 십자가 붙들고, 말씀 꽉 붙들고,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며 굳게 서야 합니다.
문제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를 만날 때 마다 건강하게 해결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문제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문제를 만날 때, 그 문제를 건강하게 해결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한 젊은이가 취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서서 일하고, 자기만 앉아 일하는 일을 시켜 그만 두었습니다.
주유소에 취직해서 서서 기름 넣는 일을 하는데, 주인은 앉아서 카드만 긁더래요. 그래서 그만 둡니다.
그래서 공동묘지 지기로 앉아서 일하는 곳에 취직시켜 주었더니, 또 사표를 내고 나왔길래 물었더니,
나는 하루 종일 앉아 있는데 전부다 공동묘지에 드러누워 있더랍니다. 그래서 기분 나빠 나왔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걸 아십시오. 에덴동산이후 모든 인간, 모든 가정, 모든 공동체,
모든 직장, 심지어 주님의 몸이라는 교회까지도, 주님 앞에 설 때까지는 치료 중, 공사 중입니다.
도로변에서 공사를 할 때면, 반드시 이런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통행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치료 중, 공사 중인 저에게도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나 0 0 목사의 인격이 아직도,
치료 중, 공사 중이어서 우리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들의 삶과 신앙의 통행에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그렇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너도 나도 공사 중. 너도 나도 치료 중. 모든 인간은 다 치료 중입니다.
교회는 목사도, 성도들도 의인들이 아닙니다. 죄와 허물, 약점과 단점 많은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교회는 인격, 성품이 건강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모나고 비뚤어진 병든 사람이 모입니다.
교회는 천국이 아닙니다. 병원입니다. 치료중인 병원입니다. 공사장입니다. 그래서 모두 공사 중입니다.
루터가 그런 얘기했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입을 벌리면 자기 칭찬을 하든지 남 욕을 하든지 하더라.”
아마 역사상 가장 영광스런 부흥을 경험했던 교회를 시무하던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한 여자 성도님이 스펄전 목사님을 찾아와 따집니다. “목사님 우리교회는 문제가 너무 많아요.
나는 믿음이 약해서 문제없는 교회를 소개해 주시면, 그 교회로 가서 신앙생활을 잘 하겠습니다.”
그때 스펄전 목사님이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이 그런 문제없는 교회를 만나거들랑,
제게도 소개를 해 주십시오. 저도 그런 교회 가서 목회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런 교회에 자매님도, 저도 절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자매님과 제가 그 교회에 가는 순간부터,
그 교회는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이 시험 들게 하고,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시험에 들고, 교회에 갈등이 일어나고, 교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주님에게 문제가 있고,
성령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인 저와 여러분의 불완전한 인격과 성품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 삼지 말고, 갈등 느끼지 말고, 그냥 웃고 지나갑시다.
교회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참 신비한 곳입니다. 우리 모두 다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믿음으로 영접한 구원 받은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우리 안에 한 성령이 임재하셨고, 그 역사하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다릅니다. 얼굴이 어쩌면 이렇게 다 다양하게 생기셨습니까?
고향도 다 달라요, 정치적인 성향이 다 다릅니다. 자라온 배경이 다 다릅니다. 취미도 다 다릅니다.
장점도 약점도 다릅니다. 성품도 성격도 다 다릅니다. 나이도 학력도, 가정도 직장도 다 다릅니다.
오늘 우리 성가대가 찬양을 했습니다만, 소프라노, 엘토, 테너, 베이스, 바리톤 소리가 다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자기 소리를 내는데 절묘하게 화음을 이룹니다. 지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독창을 하는 곳이 아니라 합창을 하는 곳입니다. 지휘자가 있습니다. 저입니다.
여러분은 저의 지휘를 따라서 함께 가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
같은 말! 같은 생각! 같은 뜻! 같은 열매를 맺으면서, 같은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면 시험은 없습니다. 잘 됩니다. 더 잘 됩니다. 부흥합니다. 더 부흥합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생 갈등으로부터 자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평생 시험으로부터 자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가 되면, 시험 들면 안 됩니다.
임직할 때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서약했습니다. 사람과의 갈등 때문에 시험 들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느껴지는 순간 “아 나도 틀릴 수 있겠구나.” 하는 사실을 인정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따라서 합시다. “교회 안에도 갈등은 있다.”
“가정 안에도 갈등은 있다.” “직장 안에도 갈등은 있다.” “성도 간에도 갈등은 있다.”
그러므로 건강한 성도가 되십시오. 건강한 성도는 갈등과 시험과 문제를, 건강하게 잘 해결합니다.
특별히 지금 여러분의 가정안의 갈등과 문제를, 건강하게 잘 해결하여 행복한 가정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므로 우리 교회안의 갈등과 문제를, 건강하게 잘 해결하여 부흥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성령 충만함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성도가 되고,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어,
주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에 유익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